앙악
【정견뉴스】

양연소 전기──삼관구에 위명을 떨친 수중도병(水中渡兵). (청옥/대기원)
양연소(楊延昭)는 《송사(宋史)》에 기록된 북송의 항요(抗遼) 명장으로, 20여 년간 변방을 수비하니 요나라(거란) 사람들이 그를 매우 두려워했다. 요나라 사람들은 육랑성수(六郞星宿)가 자신들의 천적이라 믿었는데, 양연소의 지혜롭고 용맹한 전투 능력이 마치 육랑성이 세상에 내려온 듯하여 그를 양육랑(楊六郞)이라 불렀다.
양연소와 천파부(天波府) 양가장이 나라를 지키고 가문이 충의를 다했다는 각색된 이야기는 원나라 때부터 연극, 소설, 평서 등 다양한 판본으로 널리 유포되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 【양연소 전기】 시리즈에서 필자는 민간에 구전되는 일화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천년 동안 이어져 온 양육랑의 영웅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양연소가 삼관(三關)에 위명을 떨친 이야기는 가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삼관은 보통 웅주(雄州)의 와교관(瓦橋關), 패주(覇州)의 익진관(益津關), 그리고 어구관(淤口關)을 지칭한다. 당시 북송과 요나라의 접경지대는 천 리에 달했는데, 전조(前朝)인 오대(五代)와 대당(大唐)에 비해 북송은 건국 초기에 이미 연운십륙주(燕雲十六州)라는 광대한 강역을 잃은 상태였다. 이 지역 남쪽이 바로 삼관 지역으로, 이곳은 몇몇 관문과 호수를 제외하면 거의 평원이라 지킬 만한 험지가 없었다. 따라서 한정된 병력으로 주요 거점을 사수해야만 중원 문명이 외세의 침범을 면할 수 있었다.
국방상의 선천적인 결함 때문에 송 태조는 건국 초기부터 모든 힘을 다해 이 유연(幽燕) 땅을 되찾아 후환을 없애려 했다. 그러나 수년간 이어진 북벌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양연소는 아버지 양업(楊業)의 유지를 받들어 변방을 지키며, 처음에는 유연 땅을 수복해 대송(大宋) 제국의 장구한 안녕을 꾀하는 적극적인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태조의 뒤를 이은 진종(真宗) 황제는 수세적인 입장만을 고수했고, 조정에는 간신들이 득세했다. 이에 양연소는 차선책으로 변방 전장을 경영하는 데 집중하여 요나라 군대가 결코 넘을 수 없는 지하 장성을 구축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 일대에 양연소와 관련된 지명만 수십 개에 달하며, 그는 이곳에 천고에 빛나는 수많은 영웅 이야기를 남겼다.
초교(草橋) 출격
요나라 군대가 여러 차례 국경을 침범하자 양연소는 조정에 부국강병의 책략을 담은 상소문을 수차례 올렸다. 그는 삼관의 병력을 10만으로 늘려 요나라가 방비하지 못한 틈을 타 북상하여 유연 땅을 수복하고 대요(大遼)를 굴복시켜 북쪽 변방의 영구한 평화를 얻고자 했다. 하지만 조정의 군권은 추밀사 왕강(王強)의 손에 있었다. 그는 요나라가 송나라에 심어놓은 간첩으로, 젊은 시절 문재를 앞세워 수왕부(壽王府 진종이 왕으로 있을 때의 칭호)의 참모가 되었고 진종 즉위 후 중용되어 천하의 병마 대권을 장악한 인물이었다.
왕강의 방해로 인해 황제는 변방 군비를 늘려달라는 요청만 승인했다. 양연소는 백구하 기슭 근처에 초교관(草橋關)이라는 관문을 세워 익진관 북쪽의 전초 기지로 삼았다.
어느 날 양연소가 익진관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밤이 되어 백성들과 병사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도 그는 방에서 불을 밝히고 책을 읽고 있었다. 이는 양연소가 수년간 지켜온 습관으로, 그는 주로 《시경》, 《한서》, 《논어》, 《손자병법》 같은 고전을 읽었다. 한참 책을 읽던 그는 문득 마음이 불안해져 방을 나와 망루에 올라 밤하늘을 살폈다. 이때 들새 무리가 날아오자 당번병이 다가와 “원수님, 시간이 늦었으니 이제 그만 쉬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양연소가 대답했다. “재성(災星)이 남쪽을 범하고 들새들이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니 한창이 또 오겠구나! 어서 장수들을 깨워라.” 그는 즉시 다른 두 관문에 전령을 보내 경계를 엄중히 할 것을 명했다.
준비를 마친 장수들이 집결하자 양연소는 군사를 이끌고 전초 기지인 초교관에 도착했다. 그는 맹량과 초찬에게 강 건너 양옆 숲속에 매복하라 이르고, 자신은 관 내에서 대기하며 모든 등불을 끄도록 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창과 대붕(大鵬)이 과연 대부대를 이끌고 야습해 왔다. 한창은 초교관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송나라 군대가 경계를 풀고 쉬는 줄 알고 크게 웃었다.
“하하! 좋다, 이번에야말로 양연소를 속였구나. 내가 여러 번 출병하는 척하며 의구심만 심어주었더니 결국 송나라 놈들이 지쳐서 다 잠들었나 보구나. 모두 공격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요나라 군대가 초교관으로 맹렬히 돌진했다. 그러나 관문에 다다르자마자 연달아 신호포 소리가 울려 퍼졌고, 성벽 위에는 순식간에 수많은 횃불이 켜지며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앞서가던 요나라 군사들은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졌다.
양연소가 군사를 이끌고 관문을 나서며 호령했다.
“한창! 네놈이 올 줄 알고 기다린 지 오래다! 어디로 도망가려느냐!”
말을 마치고 창을 휘두르며 한창에게 달려들자 두 사람은 격렬한 싸움을 벌였고, 양측 군대도 뒤섞여 난전을 치렀다. 이때 강 건너 숲에서도 신호포 소리가 울리며 맹량과 초찬이 이끄는 복병이 나타나 협공하니 요나라 군대는 포위망에 갇혔다. 한창과 대붕은 전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필사적으로 혈로를 뚫어 북쪽으로 달아났고, 나머지 요나라 병사들도 전의를 상실한 채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다. 송나라 군대는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지하(地下) 증원
초교관 전투에서 승리한 후 양연소는 요나라 군대가 전열을 가다듬는 틈을 타 입조(入朝)했다. 진종 황제에게 요나라의 침략 상황을 대면 보고하고, 변방 증병과 유연 땅 수복 계획을 승인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왕강이 강력히 반대하며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진종은 병력 증원과 군비 요청만 수락하고 유연 수복 계획은 보류했으며, 왕강은 자신의 심복을 양연소 곁에 감군(監軍)으로 파견했다.
진종이 북벌을 허락하지 않자 양연소는 변방 건설에 매진했다. 여러 관문과 성채, 교량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지형을 이용해 각 관문을 연결하는 지도(地道 지하도로)를 뚫었다. 농번기에는 병사들을 시켜 백성들의 개간과 농사, 나무 심기를 돕게 했고, 농한기에는 넉넉한 보수를 주어 백성들이 지도를 파는 일을 돕게 했다. 이는 방어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한번은 농번기를 맞아 양연소가 장수 및 백성들과 함께 밭을 갈고 있을 때였다. 첩보병이 달려와 보고했다. “한창이 다시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현재 와교관 근처에 도달했습니다!” 양연소는 보고를 듣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수고했다, 다시 올 줄 알고 있었다.” 이어 백성들에게 “여러분 걱정마세요! 계속 농사를 지으세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안심시켰다.
양연소가 망루에 올라 멀리 와교관 근처를 보니 요나라 병사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진형을 바꾸며 두 길로 나뉘려 하고 있었다. 잠시 살핀 후 양연소가 말했다.
“한창이 또 잔꾀를 부리는구나. 두 관문 사이에 군사를 배치해 나를 막으면 와교관을 함락시킬 수 있을 줄 아느냐?”
양연소는 봉화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한편 맹량과 초찬에게 장수들을 소집해 출전을 준비하게 했다. 이때 한창은 대군을 이끌고 와교관 밖에서 싸움을 걸고 있었다.
“대요 원수 한창이 왔다! 어서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내가 이미 5만 대군을 두 관문 사이에 배치해 두었으니 양연소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곳까지 오지 못할 것이다. 순순히 항복하면 죽음은 면해주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이 관문을 짓밟아 기와 한 장 남기지 않고 몰살하겠다.”
수비 장수 악승(岳勝)이 성벽 위에 서서 대꾸했다.
“한창! 꿈 깨거라. 원수님의 원군이 곧 도착할 것이다. 억지로 성을 공격하다가는 앞뒤로 협공당해 참패할 것이니, 병사들을 헛되이 죽이지 말고 어서 요나라로 꺼져버려라.”
한창은 그 말을 듣고 즉시 와교관 공격을 명했다. 악승 역시 장수들을 지휘해 맞섰다. 뇌목, 연노, 화포가 일제히 뿜어져 나오니 요나라 군대는 관문을 넘지 못하고 고전했다.
격전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요나라 군대 후방에서 한 부대가 나타나 전장에 합류했다. 한창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원군이 갑자기 나타난단 말이냐?”
그는 멀리 익진관 근처에서 송나라 군대와 대치 중인 자신의 부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양육랑은 지금 익진관에서 야율사(耶律沙)와 대치 중일 텐데 어떻게 갑자기 나타났지? 날개가 돋아 날아온 것인가? 아니면 땅 밑에서 솟아오른 것인가?’
알고 보니 정말 땅 밑에서 온 것이었다. 세 관문 사이에는 수많은 지하 도로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비록 말 한 마리와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정도였으나 중간중간 장수들이 쉬거나 무기와 식량을 비축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어 수천 명의 군사를 숨길 수 있었다. 양연소는 맹량과 초찬에게 군사를 주어 야율사와 대치하게 하고, 자신은 한 무리의 장수들을 데리고 신속하게 지도를 통과한 뒤 와교관 밖 지하 굴에 매복해 있던 복병들과 함께 출격한 것이었다.
양연소가 백마를 타고 달려 나와 호령했다.
“한창! 양육랑이 여기 있다. 네놈의 계략은 이미 꿰뚫어 보았으니 창을 받아라!” 말을 마치고 한창에게 달려들자 한창은 대차(大叉)를 휘두르며 맞섰으나 수십 합의 격전 끝에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관을 지키던 악승은 주수(主帥 원수)가 현장에 도착한 것을 보고 사기가 충천하여 성문을 열고 출격했다. 사방의 장병동에서 송나라 군사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니 요나라 대군은 순식간에 포위당했다. 한창은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고 필사적으로 혈로를 뚫어 북쪽으로 철수했고, 익진관 앞의 야율사 역시 주력 부대가 패퇴했다는 소식에 군사를 거두었다. 이로써 송나라 군대는 다시 대승을 거두었다.
수중도병(水中渡兵)
연패를 당한 한창은 어구관이 평상시 방어 병력이 적고 다른 관문과의 교통이 불편해 원군이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전 병력을 집중해 단시간에 관문을 점령하고자 야율사, 대붕과 함께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범했다. 수장 양흥(楊興)과 진림(陳林)은 중과부적으로 관 내로 물러나 사수했다. 방비가 엄중해 한창이 쉽게 함락시키지 못하고 봉화가 사방에서 오르는 것을 보자 한창은 크게 노했다.
“정말 밥통 같은 놈들이로구나! 열 배의 병력으로 작은 관문 하나 못 뚫다니.”
계속된 패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한창은 결국 야율사와 대붕에게 공격을 맡기고, 자신은 일부 부대를 이끌고 관 뒤쪽 마을을 돌아 들어가 약탈하기 시작했다. 한창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아 내 한을 풀게 하라!”
이어 덧붙였다.
“서쪽 수십 리가 모두 큰 물이니 양육랑이 신선이라 해도 단시간에 오지는 못할 것이다.”
당시 어구관과 익진관 사이에는 사방 수십 리에 달하는 거대한 연못인 도화만(桃花漫)이 있어 군대가 지원을 오려면 멀리 돌아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 뒤 요나라 병사가 달려와 보고했다.
“장군님! 큰일 났습니다! 양육랑이 장수들을 거느리고 물 위로 말을 타고 건너오고 있습니다.”
한창이 대꾸했다.
“허튼소리 마라! 그놈이 신선도 아닌데 어떻게 물을 건너온단 말이냐?”
이어 다른 병사가 보고했다.
“양육랑이 정말 군사를 이끌고 물을 건너와 이미 우리 코앞까지 닥쳤습니다!”
한창이 직접 살펴보니 양연소, 맹량, 초찬이 기병대를 이끌고 물을 건너오고 있었는데, 마치 말이 물 위를 걷는 듯했다. 그는 서둘러 진형을 갖추고 전투를 준비했다.
사실 양연소는 미리 군사들을 시켜 연못 속에 암교(暗橋)를 건설해 두었다. 이 다리는 상판이 수면과 매우 가까워 안개가 끼면 멀리서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곧 송나라 부대가 어구관에 접근하자 맹량과 초찬이 물었다.
“원수님, 뒤쪽 마을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니 요나라 놈들이 마을을 약탈하는 모양입니다. 관문을 먼저 구해야 합니까? 마을 백성들을 먼저 구해야 합니까?”
양연소가 즉시 명했다.
“백성들을 먼저 구하라!”
이에 양가 장수들은 마을에서 난동을 부리는 한창을 향해 돌진했다.
순식간에 원군이 마을에 도착했다. 백성들은 원군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용기를 내어 무기를 들고 요나라 군대에 맞섰다. 관 내 장수들도 주수의 도착에 사기가 올라 기병 부대가 몇 차례 돌격하며 한창 대군의 진형을 와해시켰고, 관 내 군사들도 대붕과 야율사의 공세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요나라 군대는 사기가 꺾여 무너졌고 한창은 대세가 기운 것을 보고 후퇴했다.
과거 양연소는 퇴각하는 요나라 군대를 적극적으로 추격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모든 기병 부대를 집결시켜 도망치는 요나라 군대를 추격하게 하니, 마치 마을을 약탈한 악행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듯했다.
한창의 대군은 싸우면서 밀려났고 양가 장수들은 기세를 올려 요나라 접경지인 탁주성(涿州城) 아래까지 추격했다. 당시 탁주성은 방비가 비어 있어 강공을 펼치면 며칠 내로 함락할 수 있었고, 만약 탁주를 점령하고 삼관 장수들을 집결시켜 승세를 몰아붙인다면 유연 땅을 한꺼번에 수복할 가능성도 컸다.
그러나 양연소가 성을 공격하려던 찰나 감군이 앞을 막아섰다. 그는 황명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격을 허락하지 않았고, 양연소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이때 초찬이 참지 못하고 강편(鋼鞭)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장수가 전장에 있을 때는 군명도 거부할 수 있는 법이다! 이 간신 놈아, 내 너를 죽여버리겠다! 내가 죽인 놈이 부지기수인데 너 하나 못 죽일 것 같으냐.”
양연소는 즉시 초찬을 물러나게 하고 하늘을 오랫동안 올려다보더니 끝내 말했다.
“하늘의 뜻이 이러하니 억지로 할 수 없구나.”
양연소는 전군에 삼관으로의 철수를 명했고, 유연 수복의 기회는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연이은 승전보에 진종 황제는 양연소에게 높은 관직과 막대한 하사품을 내리는 조서를 내렸다. 양연소는 더 높은 관직을 사양하고 오직 변방을 지키기를 원했으며, 하사품도 모두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
전투 후 양연소는 장수들을 데리고 약탈당한 마을로 돌아가 백성들을 위로하고, 사로잡은 요나라 포로들을 시켜 마을을 재건하고 전답을 개간하게 했다. 이후 군민들은 도화만을 가로지르는 암교를 바탕으로 제방을 쌓고[후에 육랑제(六郞堤)라 부름] 수리 시설을 건립하여 백성들이 더 이상 가뭄과 홍수로 고통받지 않게 했다.
이 육랑제는 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양연소는 삼관 사이에 총면적 1,300여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 도로(후세에 송요고전도宋遼古戰道, 인마동引馬洞, 육랑장병동六郎藏兵洞이라 부름)를 구축했다. 이는 마치 지하 장성과 같아 천여 년 동안 하북 땅에 남아 중원 문명을 수호하고 있다.
참고사료:
《楊六郎威鎮三關口》河北人民出版社 1984年出版 趙福和李巨發等人搜集
《楊家將外傳》河北少年兒童出版社 1986年出版 趙雲雁搜集整理
(에포크타임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3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