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악
【정견뉴스】

양연소 전기——천문진을 크게 깨뜨리다. (칭위/에포크타임스)
천문진을 크게 깨뜨리다
옥황전 주진에서 일시적으로 고전한 후, 왕란영, 양연소, 목계영은 장졸들을 이끌고 옥녀(玉女), 동광(銅光) 등 수십 개의 진을 차례로 함락했다. 또한 흑수국과 서하국의 군사들이 송군 진영으로 돌아서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때 요나라 소태후가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하자 요군의 사기가 크게 올랐고, 송나라와 요나라 양측은 승패를 주고받으며 수개월간 전황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송군의 제장들은 대책을 고심했으나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이때 양연소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옛날에 황제(黃帝)께서 치우와 아홉 번을 싸우고도 이기지 못하자, 태산으로 물러나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하늘에 기도드렸소. 결국 그 정성에 감동한 하늘이 신령을 내려보내 도와주셨소. 현재의 곤궁한 상황을 보니, 우리 마땅히 스스로를 반성하고 하늘의 가호를 빌어 백성들이 하루빨리 병란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오.” 이에 제장들은 명을 받들어 다 함께 재계하고 정좌하며 상천에 신령의 가호를 빌었다. 며칠이 지난 후, 한 떠돌이 승려가 목계영을 찾아왔다.
승려가 말했다. “노승의 성은 종(鍾)이고 이름은 한(漢)이라 하며, 봉래산에 살며 약초를 캐어 생계를 잇고 있습니다. 이번에 요나라가 군사를 일으킨 것은 사파(邪派)의 요사한 인물에 의해 시작된 것이니 참으로 생령을 도탄에 빠뜨리는 일입니다. 나는 진을 깨는 것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이 천문진은 옥황전 지휘대가 핵심인데, 그곳의 49개 천등(天燈)과 호령기(號令旗)는 병마를 움직이고 진세를 바꾸는 도구이니 마땅히 먼저 파괴해야 합니다. 또한 주진인 옥황전과 연결된 수십 개의 진은 서로 고리처럼 맞물려 있으니, 하나씩 깨뜨리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어찌 단번에 중심을 파괴하지 않으십나까? 그러면 나머지 각 진은 두려워할 것이 못 됩니다.”
말을 마친 그는 선단(仙丹) 하나를 꺼내 목계영에게 건넸다.
목계영이 선단을 받고 고개를 돌려보니 승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목계영은 신선을 만났음을 직감하고 급히 무릎을 꿇어 절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어 그녀가 선단을 먹으니 즉시 정신이 맑아지고 생각이 확 트였다. 그녀는 곧바로 장졸들을 불러 파진의 계책을 세웠다.
회의에서 그녀는 수십만 송군을 열 갈래 대군으로 나누어 각기 진격하여 단번에 천문진을 함락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회의 후에는 다시 왕조아의 이름을 빌린 가짜 편지를 첩자를 시켜 요군 통수 한창에게 보냈다. 내용은 송군의 보급이 끊겨 철군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요군 진영에 잠입했던 첩자가 보고했다. “천문진 각 진의 경계가 눈에 띄게 느슨해졌으며 군사들은 소일하고 있습니다. 한창과 군사 안동빈, 백천조는 매일 밤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 여자들을 불러 밤마다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목계영은 공격의 때가 왔음을 알고 직접 수백 명의 목가채 친병을 거느리고 구룡곡 후방을 넘어 적진 깊숙이 침투했다. 안팎에서 호응하기 위해 진 내의 여러 통로 문과 주요 지휘 거점을 탈취할 준비를 마친 뒤, 매를 날려 양종보에게 소식을 전했다.
다음 날 양종보는 매의 전갈을 받고 수십만 대군을 집결시켜 열 갈래로 나누어 공격을 개시했다. 공격이 시작될 때도 한창과 제장들은 여전히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이때 군사가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송군이 열 갈래로 나뉘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위급합니다!”
한창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럴 리가 있느냐! 그들은 철군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더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진영 밖에서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있었고, 목계영이 보낸 이들이 이미 거점들을 하나둘 점령한 상태였다. 한창이 장졸들을 모아 출전했을 때 송군의 제1로에서 제8로군이 이미 진지에 진입하여 주요 통로를 차단했다.
초찬과 맹량이 먼저 옥황전 지휘대에 난입해 각종 지휘 깃발을 부수었고, 양연소는 연달아 49개의 천등을 쏘아 맞혔다. 요군은 지휘 신호를 잃어 진형이 크게 어지러워졌고, 수십 명의 요나라 장수들이 돌파하려 했으나 왕란영, 초찬, 맹량 등에게 차례로 베였다. 목계영과 양오랑, 양연소는 중군으로 쳐들어가 장대(將台) 여러 곳을 연달아 깨뜨렸다.
백천조는 전세를 만회하고자 양연소와 목계영에게 급히 주문을 외웠다. 두 사람이 도력이 없으니 주문으로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도리어 주술이 걸리지 않고 반사를 당했다. 그 결과는 지난번보다 심각하여 백천조는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때 사방에서 불길이 솟구쳤고, 황경녀와 흑수국 주장 토금숙(土金宿)의 화전 부대가 합세하여 각 진을 불태우니 요군은 대혼란에 빠졌다.
송군은 파죽지세로 나아갔고, 양종보는 옥황전 주진을 점령한 후 계획대로 남은 각 진을 치라고 명했다. 얼마 후 맹량이 주작진(朱雀陣)을, 초찬이 현무진(玄武陣)을 깨뜨렸으며 양연소와 호연찬이 장사진(長蛇陣)을 함락했다. 왕란영과 양팔매는 칠고산진(七姑山陣)을, 양오랑은 사문천왕진(四門天王陣)을 깨뜨렸다. 요나라 대장 야율휴가, 토금우(土金牛), 토금수(土金秀) 등이 잇따라 전사했고 야율사는 도망갈 길이 없자 자결했다.
천문진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패색이 짙어지자 한창은 군사 안동빈에게 구원을 청했다. 안동빈이 급히 제단으로 가서 술법을 부리니 삽시간에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모래와 돌이 날아다녀 송군 장졸들이 눈을 뜨지 못하고 나아가지 못했다. 목계영이 이를 보고 항룡목을 꺼내 바람을 일으켜 맞서려 했으나 효과가 없는 듯했다.
안동빈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 주술은 나의 독문절학(獨門絶學)으로 내 정원(精元)의 절반을 소모하지만 위급한 때라 어쩔 수 없구나.”
한창은 다시 궁노수들을 지휘해 송군을 향해 만 개의 화살을 쏘게 하며 전세를 되돌리려 했다.
이 위급한 순간, 스스로 종한이라 칭했던 승려가 다시 나타났다. 그가 도포 소매를 한 번 휘두르자 순식간에 풍향이 바뀌고 천지가 다시 맑아졌다. 안동빈은 자신의 절학이 깨진 것에 경악하며 급히 술법을 써서 한 줄기 금빛으로 변해 달아났다. 국사가 도망치는 것을 본 한창은 급히 후영(後營)으로 가서 소태후에게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렸다. 장수들 태반이 전사하고 군사 안동빈마저 도망쳤기에 소태후는 어쩔 수 없이 한창의 호위를 받으며 몇몇 근신들과 함께 황급히 퇴각했다. 송군은 남은 각 진을 차례로 타파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전투가 끝난 뒤 송군은 군사를 거두어 본영으로 돌아왔으며, 조정에 상소하여 파진을 도운 서하와 흑수 두 나라에 포상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장졸들을 점검하는데 집사 목과와 초찬, 맹량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들은 두 명의 포로를 압송해 왔는데, 바로 요나라 군사 안동빈과 연수공주였다.
알고 보니 안동빈은 요술을 써서 달아나다 목과와 마주쳤는데, 목과의 무공이 약해 보이자 요술로 그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손을 쓰려는 순간 술법이 걸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때 양업(楊業)의 무령(武靈)이 나타나 말했다.
“안동빈, 너는 악행을 수없이 저지르고도 도망 중에 무고한 이를 해치려 하는구나.”
이어 그의 요법을 폐해버렸고 안동빈은 그렇게 목과에게 사로잡혔다. 연수공주는 난군 중에 숨어 달아나다 초찬과 맹량에게 발각되어 생포되었다.
안동빈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이를 해쳤기에 목계영과 제장들은 일제히 죽여 마땅하다 판결하고 그를 압송해 참수했다. 연수공주의 처리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는데, 이때 양팔매가 나서서 그녀를 위해 구원했다.
“이 여인은 요나라 공주이니 처형하면 두 나라의 원한이 깊어질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간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홀로 요나라에 있을 때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덕분에 선친의 금도(金刀)를 되찾을 수 있었으니 너그러운 처분을 바랍니다.”
결국 목계영과 양연소는 동의하여 그녀를 석방해 요나라로 돌려보냈다.
전투가 끝난 후 양가에서는 목계영과 양종보를 위해 성대한 혼례를 치러주었고, 진종 황제도 연회를 열어 공을 세운 장령들을 포상했다. 양가에는 특별한 봉상을 내렸는데, 양종보는 절도사로 봉해져 금군을 이끌고 경성 방어를 맡게 되었다. 양연소는 절도사 겸 초토사에 봉해졌으나 본인의 뜻에 따라 다시 삼관과 안문관의 수비 임무로 돌아갔다. 목계영과 양문의 여장들은 모두 여장군으로 봉해졌으며, 악승, 맹량, 초찬 이하 장졸들도 공훈에 따라 단련사(團練使)와 도감(都監)직을 제수받았다. 양오랑은 관직을 원치 않아 호국선사(護國禪師)라는 명예 칭호를 내렸다.
사태군은 양오랑에게 함께 머물며 천륜을 즐기자고 청했으나, 오랑은 환속을 거부하며 말했다. “어머님 곁에서 효도를 다 하지 못하는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이미 불문에 귀의하기로 맹세했고 속세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이제 정진 수행하여 양가 대대로 지은 살업(殺業)을 갚고자 합니다.”
아들의 뜻이 확고함을 본 사태군은 더는 강권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작별했다.
이로써 반년 동안 이어지며 송나라와 요나라 양측에서 수십만 명의 전사자를 낸 최대 규모의 천문진 전투는 막을 내렸다.
참고자료:
《楊家將(穆桂英)傳說》北京美術攝影出版社 2015年出版 高雪松 整理
《楊家將外傳》河北少年兒童出版社 1986年出版 趙雲雁 搜集整理
《河北民間故事集》遠流出版社 1998年出版 陳慶浩主編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