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은(敬謝恩)
【정견망】
(9) 마귀는 중국에서 특수한 절차와 특수한 법률 상태를 만들어 대법 박해에 사용하려 한다
기묘한 수법 4의 배경: 마귀의 전체 배치는 중국을 핵심으로 하며, 향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법을 박해하기 위해 충분한 준비를 했다
여기서 우리는 마귀가 배치한 인류 파괴 사업의 전체 배치를 간단히 회고하고 요약해 보고자 한다. 그 배치는 다음과 같다.
(1) 마귀의 진신(真身)은 전 세계에 퍼져 기초적인 진리로 간주되었으며, 자연 연구 내지 사회 이론의 기초로 쓰였고, 교육 및 사회 활동의 주류 사상 기초가 되었다. 요컨대, 마귀의 진신이 전 세계를 통치하고 있다.
(2) 전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가지 체제로 나뉘었다. 그중 자본주의 체제 안에는 많은 공산주의 요소가 숨겨져 있어 객관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공산주의이며, 개별적인 상황에서는 심지어 공개적인 ‘부의 균등화, 결과의 평등’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3) 보이지 않는 공산주의는 실질적으로 이익을 중심으로 한다. 점점 더 이익 중심이 됨에 따라 전통적인 인권 이념과 도덕 전통을 갈수록 포기하게 되었으며, 이는 결국 중공이 대법을 박해하고 인류의 구도를 방해할 때 의도적이든 아니든 중공과 협조하는 작용을 하게 했다.
(4) 유형적인 공산주의는 표면적으로 소련을 우두머리로 삼았으나 사실상 중공을 핵심으로 삼았다. 이는 양대 진영이 대항하는 과정에서, 동구권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는 모습이 나타날 때,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경제 건설 중심’으로 전환하는 듯 보일 때, 중공이 주목받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즉, 자본주의 진영에 주요 상대로 간주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온갖 사악한 능력을 획득하여 최종적으로 대법을 박해하고 인류 구도를 가로막을 때 사용하려는 것이다.
(5) 유형적인 공산주의의 실체는 ‘인민의 행복’이나 ‘빈부 격차 해소’와는 정반대이며 완전히 허구다. 그 진정한 실체는 인민에 대한 억압과 폭정이며, 정권의 깡패적인 운용이다. 이러한 폭정과 깡패적인 태도는 최종적으로 대법을 박해하고 인류 구도를 방해할 때 갖추어야 할 태도와 능력이다.
이상과 같은 마귀의 배치는 목표가 매우 명확하다. 최종적으로 중공이 대법 박해를 발동하고 인류 구도를 방해할 때, 미리 중공을 육성해 두었다가 그때 사용하기 위함이다. 이상의 전체 배치는 매우 계통적이며 주객이 명확하고 단계가 구분되어 있다. 각 단계에서 채택한 수단 역시 매우 정교하여 중공의 사악한 능력과 사악한 태도를 육성하려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
기묘한 수법 4의 개요: ‘무신론 함정’과 협력해 대법을 박해하는 범죄 운동을 발동하고 지속할 수 있게 한다
마귀가 전 세계에 ‘무신론 함정’을 설계하고 배치한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 함정을 잘 깔아놓은 후, 장차 ‘대법 박해’라는 일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따라서 마귀는 전 세계에 ‘무신론 함정’을 배치하는 동시에 중국 내부에 또 다른 기제(機制)를 설계하고 배치했는데, 그것이 바로 ‘당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와 ‘법률의 공동화(架空)’다. 이 기제의 직접적인 작용은 대법을 박해하는 범죄와 사악한 정치 운동을 발동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장쩌민 이후 다른 당 두목들의 태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쉽게 중단되지 않으며 독립적이고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귀가 이 기전을 설계한 목적은 ‘무신론 함정’과 협력하기 위함이며, 마귀가 정성껏 배치한 ‘무신론 함정’이 안정적인 ‘활용처’를 갖게 하려는 것이다.
기묘한 수법 4의 1단계: 중공의 역사를 온갖 죄악으로 시작되게 만들어 천하의 도리에 크게 어긋나게 해
세계 공산주의 역사는 파리 코뮌에서 시작되었다. 파리 코뮌은 유망(流氓 룸펜)들의 반란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리의 예술품들을 파괴하고 간음과 약탈을 일삼아 죄악이 가득했다. 사실 중공의 역사도 죄악에서 시작되었다. 죄악에서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죄악이 매우 많고 모두 천하의 도리에 크게 어긋나는 것들이었다. 사실 이는 모두 마귀가 일부러 배치한 것이다.
기묘한 수법 4의 죄악 사례 1: 반국가죄
마귀가 중공에 배치한 첫 번째 죄악은 반국가 행위다. 중공의 역사는 레닌의 제3인터내셔널 확장 준비에서 시작되었으므로, 필연적으로 공산 인터내셔널의 폭력 혁명 사상 및 실천과 관련이 있으며, 소련이 이를 기회로 세계 패권을 확립하려 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뜻 있는 이들이 거듭 나라를 구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리하여 중공 성립 전인 1920년 전후, 중국 사회의 많은 지식인은 극도의 분노와 광기에 가까운 상태에 빠졌다. ‘다급해서 아무 의사에게나 매달리는’ 상태에서, 레닌이 “소비에트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 “중국과의 모든 불평등 영토 조약을 포기한다”라고 선언하자,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레닌이 주장한 ‘마르크스주의’를 ‘구국의 양약(良藥)’으로 여겨 중국에 들여왔다. 도입 당시 이들 지식인은 그것이 폭력적인 수단이며 소련이 주도하고 소련에 유리한 색채를 띠고 있음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중화민족이 거듭 실패하고 억압받던 상황이라, 당시 이를 도입한 이들은 새로 성립된 중공이 반국가 혐의가 있다는 문제를 진지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인류의 이성적인 판단 능력에 비추어 볼 때 당시 그들도 어느 정도 인식했을 것이나,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입장이나 다른 이유로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역사적 실천을 보면 중공은 1949년 이전에 여러 차례 ‘소련 보위’라는 구호를 직접 내걸었으므로, 자신들이 구성한 반국가적 입장에 대해 확실히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당시 집권 정부인 ‘중화민국’을 배반해야만 진정으로 중국 인민과 세계 인민에게 유리하다고 정말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공은 1949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과거 중국을 배반했던 입장과 행위를 감히 선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한 상황으로 실제 소련 등에 국가 영토와 주권을 팔아넘긴 일이나 일본 침략자와 결탁한 일 등이 있다. 중공의 초기 역사 중 이 부분은 국가에 대한 죄악을 구성하며, 중공은 이를 감히 직면하지 못한다.
기묘한 수법 4의 죄악 사례 2: 계급투쟁에 기반한 중국인 대학살
두 번째 죄악은 초기 단계에서 계급투쟁을 지도 사상으로 삼아 중국인을 대량 학살한 것이다. 일반적인 국가와 정권은 법률과 정책을 집행하며 살인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반적인 국가와 정권은 사회의 정상적인 질서와 기본 도덕을 유지하기 위해 절도, 강도, 간음, 밀수 등을 저지른 자들을 죽이는 것이므로 그 처형 이면에는 도덕과 법리의 지지가 있다. 따라서 사회적 필요에 부합하고 천리와 민심에 순응하므로 나쁜 후과(後果)가 없다.
두 군대가 서로 싸워 승패가 갈리고 패배자가 죽거나 치욕을 당하는 과정에서도 직접적인 대상은 우두머리와 전사들뿐이기에, 시간이 흐른 뒤 남는 원한은 적다. 그러나 중공은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그 시작과 건국 과정이 중국 역사상의 어떤 ‘왕조 교체’ 상황과도 달랐다. 왜냐하면 중공은 전통적인 사회 질서와 사회 도덕을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공은 ‘계급투쟁’을 깃발로 내세워 이 사회의 수많은 사람을 살육했다. 여기에는 토지를 소유한 지주, 기업을 소유한 자본가, 유산자(有産者)를 위해 일한 수행원, 중화민국 정부(전 정부)에서 근무한 공무원 등이 포함되었다. 중공은 이들을 ‘악덕 세력(惡霸)’과 동일시했으나, 사실 살해된 이들 대부분은 악덕 세력이 아니라 정상적인 백성과 공무원이었다. 이처럼 계급에 따라 악덕 세력으로 모함하여 도살하는 방식은 통상적으로 원한을 남기게 된다.
이로 인해 중공의 지도자들은 권력을 잃는 것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설령 피살자의 후손과 친척들이 실제로 복수할 생각이 없더라도, 중공 지도자들 스스로 권력을 잃으면 복수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기묘한 수법 4의 죄악 사례 3: 자기편에 대한 대량 학살
세 번째 죄악은 중공 집권자가 자기편을 학살한 것이다. 중공 집권 후 첫 번째 수괴는 마오쩌둥(毛澤東)이다. 마오쩌둥은 당내와 군대의 최고 지도권을 획득하기 위해 ‘AB단 숙청’ 및 ‘연안 정풍 운동’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대규모 내부 정돈 중 두 가지 사례일 뿐이다. 다른 소규모 사례들, 예컨대 섬북(陝北)에서 정치적 지도권을 획득한 후 류즈단(劉志丹)을 제거한 것 등도 실질적으로는 내부인에 대한 살육이다. 이 역시 중공 집권자가 지은 죄악이다.
기묘한 수법 4의 죄악 기타 사례: 아주 많음
중공 정권 건립 전의 다른 죄악도 매우 많다. 예컨대 창춘(長春) 포위전 등은 더 언급하지 않겠다. 중공은 정권을 잡은 후에도 여러 차례 정치 운동을 발동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특히 대약진 기간에 수천만 명을 굶겨 죽인 것은 철저한 인재였다. 파룬궁 박해 과정에서는 국가적 규모의 생체 장기 적출 등을 자행했는데, 이는 이 지구상에 전례 없는 죄악이다.
이러한 죄악들에 대해 중공은 감히 직면하지 못하며, 직면하기도 매우 어렵다.
기묘한 수법 4의 2단계: 마오쩌둥 시기에 중공 및 최고 통치자가 투쟁 철학을 고수하도록 보장
중공의 초대 지도자인 마오쩌둥은 중공을 이끌고 온갖 매국 행위와 내전 승리를 통해 중국 대륙의 정권을 획득했다. 동시에 여러 차례의 내부 학살과 내부 투쟁을 통해 중공 내부의 최고 지도권을 획득했다. 따라서 그는 중공의 초기 과정에서 발생한 위와 같은 여러 죄악의 발기인이자 수혜자다. 그러한 죄악 위에 지도권을 세운 마오쩌둥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권력을 잃으면 죽어서 묻힐 곳조차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마오쩌둥의 사상 속에서는 당내든 당외든 누군가 몰래 복수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최고 지도 지위를 잃을까 봐 가장 걱정했으며, 특히 부하들이 겉으로는 따르면서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을까 봐 몹시 두려워했다. 그는 국가가 경제 건설을 주요 과제로 삼는 시대로 나아가게 둘 수 없었으며, 반드시 온 나라가 계속해서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삼도록’ 유도해야 했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왕조가 세워지면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가 자연스럽게 발전하며 인민이 평온한 삶을 시작하지만 중공은 달랐다. 중공은 초기와 뒤이은 사회주의 개조 과정에서 많은 죄악을 지었기에, 반드시 ‘무산계급 독재(專政)’를 견지해 모든 잠재적 적의 실력을 뒤엎을 수 없는 상태로 눌러놓아야 했다. 이러한 죄악들 때문에 중공은 투쟁 철학을 포기할 수 없었다.
외부인이 보기에 중공 수괴는 온 나라의 군대와 정부를 장악하고 당내는 물론 중국 사회 모든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면서 단지 ‘헌법과 법률 준수’를 표방할 뿐이기에 사람들은 중공 수괴가 최고의 권력과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중공 수괴 역시 마귀의 손아귀에서 엄격히 통제되는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다. 마귀가 중공 수괴를 장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중공과 마오쩌둥 자신이 초기부터 지어온 각종 죄악이다.
마오쩌둥은 이러한 죄악과 내면의 공포심 때문에 고도의 의심과 철권 살육 수단으로 중국을 계속 통치했다. 그는 누가 무조건 자신을 따르고 영원히 충성할 것인지를 고르는 데 일편단심이었으며, 끊임없이 ‘야심가, 음모가’ 등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찾아내려 했다. 이로 인해 중공 정계와 온 나라, 전체 사회는 피비린내 나는 정치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것은 물론 마오쩌둥의 죄다. 그러나 이는 또한 마귀의 통제 아래에서 마오쩌둥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생사를 국가와 인민의 안위보다 중요하게 여길 것임을 미리 계산한 결과이기도 하다. 동시에 마귀는 마오쩌둥을 부추겨 계속 죄악을 짓게 함으로써 더 큰 공포를 느끼게 했고, 그리하여 마귀에게 더 단단하고 엄격하게 장악되도록 했다.
마귀는 왜 이토록 마오쩌둥을 장악했는가? 마귀는 마오쩌둥을 이용해 중공의 당성(黨性)을 강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20여 년간의 당 건설을 통해 중공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이미 당성과 내부 투쟁 메커니즘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마귀는 그것을 더욱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마귀는 중공과 마오쩌둥에게 미리 존재하는 죄악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의심 및 공포 심리를 통해 중공 피라미드의 꼭대기부터 중공과 중국을 뒤흔들었다. 중공 당내의 각급 단위부터 모든 거리와 마을에 이르기까지 강요하여, 그 안의 모든 간부와 당원, 나아가 대중이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삼는’ 상황 속에서 ‘생존 조건’을 얻기 위해 선택하게 했다. 그 진정한 실체는 중공의 모든 구성원과 추종자들이 무조건 당의 말을 듣고 마오쩌둥의 권위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설령 당의 명령과 마오쩌둥의 권위가 나라를 그르치고 백성을 해치더라도 당성을 강화하여 당의 말을 듣고 마오쩌둥의 말을 들어야 했다. 만약 누군가 인민의 고난 앞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버리고 계속 당성을 견지하며 마오쩌둥의 말을 듣는다면, 그는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마오쩌둥이 가진 강력한 정치 운동 발동 능력을 이용해 중공의 당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한 방법이다.
중공은 마오쩌둥의 통치하에, 마귀의 통제 속에서 이렇게 문화대혁명이 끝날 때까지 걸어왔다.

기묘한 수법 4의 3단계: 개혁 개방 후 법제를 수립했으나 법률에 독립적인 권위가 없고 중공에 의해 공동화됨
문화혁명 이전과 과정 중에는 정상적인 국가 기능이 점차 폐기되었고 법률은 기본적으로 버려졌다. 심지어 국가 운용은 법률 체계 밖에서 성립된 ‘혁명위원회’가 밀어붙여야 했으며, 사건 처리는 각급 간부와 대중이 ‘최고 지시’와 ‘마오쩌둥 어록’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최종적으로 마오쩌둥은 혁명 정신의 최고 대표가 되었고, 서로 투쟁하는 여러 혁명 세력이 동시에 보위해야 할 대상이 되어 중화 국가와 중국 각급 공산당 당위원회 위에 군림했다. 그의 정신은 중국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을 직접 통치했으며, 동시에 모든 사람을 위협하여 누구도 마오쩌둥을 조금이라도 따르지 않으면 비판을 받고 죽어서 묻힐 곳조차 없게 만들었다. 이는 중국의 모든 사람, 특히 관료 계층의 모두에게 극심한 위협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마오쩌둥이 원했던 바였다.
문화혁명이 끝난 후 중공 당내는 잠시 지도자가 없는 상태였고 마오쩌둥과 같은 수괴를 형성할 수도 없었다. 이후 덩샤오핑 등이 주축이 되어 ‘경제 건설 중심’을 제기하고 법제(法制) 건설을 추진하여 관료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기본 안전을 보장하려 했다. 즉, 중국 사회가 ‘마오쩌둥이 정신으로 모든 사람을 통치하고 위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법치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중국 사회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진정한 법치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름은 법치이나 실질은 당치(黨治)’인 길로 갈 것인가? 이것은 곧 ‘공산당과 법률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집권자와 권력자의 개인적 소양과 결정은 국가의 앞날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마귀의 작용 하에 실제 중공의 결정은 ‘권귀(權貴 기득권) 세력이 특권을 소유하고 국가 정권과 경제 건설 성과를 공유하는’ 길을 선택했으므로 중국은 진정한 법제 건설의 길을 걷지 못했다. 문화혁명 후 중국이 실제로 걸은 길은 ‘명목상 법치, 실질적 당치의 길’이었다. 이 길의 실체는 표면상의 법률 규정이 아무리 엄격하더라도 실제 집행 시에는 먼저 당 조직의 영도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법 기관 내부의 당 조직은 사건 결과를 지휘하고 결정하기에 충분했다. 사법 기관 밖에서도 고위 당 조직은 당의 원칙에 따라 사건 결과를 결정할 자격과 능력이 더 컸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법률은 높은 권위를 가진 듯 보이지만, 누구나 그것은 중공 당 중앙과 각급 당 조직이 사법 기관에 ‘권위’를 부여하고 지지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진정한 본질은 여전히 당의 권위였다.
이러한 상황은 장쩌민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 1989년 장쩌민은 학생 운동을 탄압하는 단호한 입장을 구실로 중공 수괴가 되었다. 장쩌민은 수괴가 된 후 부패한 인맥 정치를 통해 자신의 정치 세력을 확장했고, 이는 사회 전체의 대부패를 초래했으며 권귀(權貴) 세력이 인민의 이익을 착취하는 현상을 가중시켰다. 이때 권귀 세력은 앞다투어 중공 당 조직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했다. 그 결과 중공 법률의 집행과 입법 과정에서 ‘당이 법률을 지휘하고 법률은 장식물에 불과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으며, 권세 집단에 있어 법률을 통제하는 체제도 날로 완비되었다.
특히 장쩌민이 실제 권력을 쥔 시기에 중국의 정치 경제는 중공의 수많은 권귀 가문과 집단에 장악되었다. 위에서 아래까지 모든 층위의 국가 기구의 실질적 결정권자가 각급 당위원회의 주요 인물들이었으므로, 각 가문과 집단, 단위가 서로 제약하고 형량을 저울질하며 합의를 끌어낼 때도 각 층위의 당위원회 인물을 찾아가 해결해야 했다. 그리하여 위에서 아래까지 각급, 각지, 각 단위의 중공 당 조직은 권귀와 세력들이 서로 실력을 겨루고 제약하는 실질적인 작업 대상이 되었으며, 하급 기관과 사법 기관에 실질적인 명령을 내리고 결정을 내리는 기구가 되었다. 최종적인 법률 기관과 국가기관은 단지 도장을 찍기 위해 대기하는 대행 기구이자 표면적으로 유효한 법률 문서를 만드는 대행인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법률의 규칙은 더 이상 강제적이지 않고, 합의된 결과를 실현하기 위해 사법 기관이 엄격히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강제적이 되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면 회피되는 유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법률의 권위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 역시 중공 당위원회가 필요로 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법률에는 독립적인 권위가 없다. 중국 국가 법률과 각 기관의 기능은 실질적으로 중공 당 기구와 당의 권위에 의해 공동화되었다.
기묘한 수법 4의 4단계: 장쩌민 이후의 다른 수괴들은 당을 보위함으로써만 권력을 잡고 몸을 지킬 수 있음
이러한 국면은 장쩌민 이후의 모든 후임 수괴가 실권을 장악하고 자원을 점유하려 할 때, 헌법과 법률에 의지할 수 없고 오직 ‘당 보위’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만들었다. 즉, 그들은 “내가 총서기다”라는 핑계를 대며 “당의 영도를 강화하자”라고 크게 외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실권을 단계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중공의 실제 역사 속에서 후임 수괴가 법률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 적도 있었으나, 그들은 곧 이 모든 것이 당 조직을 통해 운영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중공이 법률 체계와 국가 체계를 이토록 장악한 상황에서 국가 체계 내에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도구는 남아있지 않다. 유일하게 사용 가능하고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도구는 중공 기율검사위원회를 포함한 중공 당 조직뿐이다. 당위원회의 지지와 운영 없이는 어떤 것도 작용하지 않는다.
중공 정치에서는 인적 쇄신과 권력 구도를 둘러싼 투쟁이 끊임없이 존재한다. 따라서 중공 수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자신의 실권과 영향력을 확충해야 한다. 이때 가장 편리한 방식은 ‘당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실현하는 것이며, 수괴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더 많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법률은 국가기관의 투표와 제약 절차를 거쳐 제정 및 수정되어야 하지만, 당의 결의는 당 조직의 원칙에 따라 최고층이 추진하여 수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은 수괴에게 가장 편리한 도구이자 심지어 유일한 도구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수괴가 ‘국가와 인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경지와 흉금이 있지 않은 이상, 그는 ‘당 보위’를 선택하고 ‘당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선전하며, 심지어 이를 실현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을 수정하게 된다. 이때 수괴가 말하는 ‘당 보위’의 근본 목적은 우선 자신의 신분과 생명을 보호하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덩샤오핑이 중국을 통치하기 시작한 시점을 분기점으로 중공의 통치 방식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즉 ‘특정 수괴가 당보다 우선하는’ 방식에서 점차 ‘당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당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통치 방식은 기본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이것은 마귀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기묘한 수법 4가 목표로 하는 효과: 대법 박해자들에게 구실을 제공하고 당이 박해의 선봉이 되게 하며 박해 역량이 독립적으로 운용되게 함
마귀가 이 시기에 중공 당이 모든 것에 우선하도록 유지한 이유는 대법 박해라는 마귀의 사업을 실시하기 위해서였다. 장쩌민은 이미 형성된 ‘당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전체 국면을 이용했다. 그리하여 최고 수괴의 신분으로 자신의 의지를 ‘당’의 의지로 위장하거나 변모시킬 수 있었고, 법률 밖에서 당 조직 체계 내에 ‘610 사무실’을 설립했다. 이 조직은 전국 각 층위와 단위에 침투하여 각 국가 기관과 사법 기관, 사회 전체를 지휘하며 파룬궁 박해라는 정치 운동을 발동했다.
장쩌민 이후에도 마귀가 ‘당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모델을 계속 유지한 것 역시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지속하기 위함이다. 사실 장쩌민 이후의 새로운 수괴가 박해에 동참할지는 미지수였다. 만약 어떤 수괴가 스스로 박해에 가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중공의 대법 박해는 계속될 수 있을까? 마귀는 나름의 배치와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마귀가 주도하고 장쩌민이 발동한 대법 박해 과정에서 그들은 중공에 ‘생체 장기 적출’, ‘때려죽여도 자살로 처리하고 즉시 화장하며 신원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등 수많은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악을 저지르게 했다. 이러한 죄악들은 역사상의 매국 행위나 민중 학살 등과 유사하면서도 더욱 처참하고 악독하며 인성(人性)이 멸절된 것으로, 마찬가지로 중공이 직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만약 후임 수괴가 중공의 대법 박해를 중단시키고 그 죄행을 폭로한다면 중공 자체는 세상 사람들의 심한 욕을 먹고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마귀의 기만과 배치로 인해 이때의 새로운 수괴들은 ‘오직 당을 보위해야만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함정과 잘못된 인식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새로운 수괴는 대법 박해를 감히 중단하지 못한다. 설령 새로운 수괴가 마음속으로 대법 박해에 참여하고 싶지 않고 사악한 범죄에 물들고 싶지 않더라도 공개적으로 중단시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중단시키지 못하는 한, 대법 박해는 나쁜 자들의 손에서 계속될 수 있다. 나쁜 자들은 ‘당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깃발을 사용해 법률 위에 군림하며 장쩌민 시기에 하달되고 규정된 ‘파룬궁 박해’ 명령을 하루 더 집행할 수 있게 된다.
(소결) 공산 마귀는 대법 박해를 위해 국제 및 중국 국내의 온갖 준비를 미리 마쳤다
공산 마귀는 자신을 숨기고 치장하는 데 매우 능하다. 자신의 진신(真身)을 공산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 아래 교묘하게 숨기고 전 세계에서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동시에 인류 구도를 파괴할 선봉 세력인 중공 사당(邪黨)을 단련시켜 각종 능력과 체제를 미리 갖추게 했다. 그리하여 ‘당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과 같이 대법 박해 범죄에 딱 들어맞는 법률 상태를 포함한 최종적인 마귀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마귀는 자신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법을 박해하기 위해 국제와 국내의 온갖 준비를 미리 마쳐놓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