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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송대 효녀의 억울한 죽음, 하늘이 내린 이상 현상

덕혜(德惠)

【정견망】

송대(宋代) 나강(羅江 지금의 사천 덕양)에 장(張) 씨 성을 가진 선비의 딸이 있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성이 양(楊) 씨로 시댁에서 계속 수절하고 있었다. 편의상 이들을 장씨, 양씨라 부르자.

어느 날 친척 집에서 혼례가 열렸다. 양씨와 장씨 모녀는 창고를 관리하는 하인 옹을(雍乙)을 데리고 혼례에 참석했다. 옹을이 볼일이 있어 먼저 돌아갔고, 잠시 후 어머니 양씨가 돌아와 보니 옹을이 창고에서 살해되어 있었다. 관아에 신고했으나 관청에서 살인범을 찾지 못하자 모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성도부로(成都府路)의 형옥(刑獄)을 담당하던 관리 장문요(張文饒)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엉뚱하게도 과부 양씨가 부인의 도리를 지키지 않고 옹을과 사통(私通)하였으며, 갈등이 생긴 후 입막음을 위해 옹을을 살해했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양씨의 평판은 매우 좋았다.

장문요는 자신의 뜻대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이 사건을 성도부 산하의 군사 행정 구역인 ‘석천군(石泉軍)’으로 이송해 타 지역에서 심리하게 했다. ‘석천군’은 북송이 설치한 군사 행정구로, 그 치소는 석천현에 있었으며 지금의 북천현(北川縣)에 해당한다. 양씨는 남편을 여의고 지낸 이래 줄곧 딸과 함께 잠을 잤으며 결코 사정(私情)은 없었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이에 수사하던 관리는 그녀의 딸 장씨까지 잡아들여, 어머니 양씨가 죽은 옹을과 사통했다고 자백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끝내 원하는 진술을 얻어내지 못하자 모녀를 갈라놓고 가혹행위를 하며 윽박질러 자백을 받아내려 했다. 예컨대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양씨를 그 속에 묶어둔 뒤 곁에 뜨거운 불을 피우고 물을 끼얹는 등 온갖 고문과 괴롭힘을 반복하여 양씨가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만도 여러 번이었다. 딸 장씨에게도 온갖 가혹행위를 가했으나 모녀는 끝내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어느 날 목숨이 경각에 달한 딸 장씨가 옥졸에게 말했다.

“이처럼 가혹한 고문에 시달려 나는 이미 죽게 되었으니, 죽기 전에 어머니를 단 한 번만 뵙게 해주오.“

옥졸이 그녀들을 가엾게 여겨 이를 허락했다. 장씨가 어머니를 뵙고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줄곧 청결함으로 명성이 높으셨는데, 어찌하여 이 같은 모욕을 받으십니까. 차라리 매를 맞다 죽을지언정 스스로 죄를 뒤집어써서는 안 됩니다. 딸은 오늘 죽을 것이니, 죽어서 반드시 우리의 억울함을 하늘에 고발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장씨는 숨을 거두었다.

딸 장씨가 죽은 뒤 석천현에는 사흘 동안이나 대지진이 일어났고, 우레와 같은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겨울이 아님에도 눈이 내렸고, 많은 집들의 기와가 떨어져 백성들이 극심한 공포에 떨었다. 석천현 관리 이지녕(李志寧)은 여기에는 분명 억울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 여겨 정식 관복을 갖추어 입고 경건하게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잠시 후 그가 반쯤 잠이 든 선잠 상태에 있을 때 원숭이 한 마리가 뚝 떨어지는 환영을 보았다. 그는 깜짝 놀라 깨어난 뒤 사람들을 시켜 사방에서 원숭이를 찾게 했으나 한참이 지나서야 아까 본 것이 반쯤 잠들었을 때 본 광경임을 깨달았고, 이것이 하늘이 준 계시임을 깨달았다.

“혹시 살인자가 ‘원(袁)’ 씨 성을 가진 자가 아닐까?“

그가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하더니 곧바로 문서를 대조해 보았다. 그때 부하 직원이 보고하기를, 평소 장 씨 집에 음식을 가져다주던 사람의 이름이 원대(袁大)라고 했다. 이에 곧바로 원대를 체포하여 사건에 대해 추궁하자 원대는 안색이 변하며 겁에 질려 말했다.

“제 마음에 오랫동안 죄책감이 있었으니 죽음으로 목숨을 갚겠습니다.”

그러고는 범행을 모두 자백했다.

“그날 창고의 재물을 훔치러 갔는데 아직 떠나지 않았을 때 미리 돌아온 옹을에게 들키는 바람에 옹을을 죽였습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자 현지가 발칵 뒤집혔고, 양씨는 무죄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는 딸 장씨가 죽은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사건이 조정에 보고되자 억울한 옥사를 조작한 관리들은 처벌을 받았고, 조정에서는 모녀가 살던 곳에 ‘효감방(孝感坊)’이란 이름을 하사해 이를 기념하게 했다. 지금까지도 덕양시에는 ‘효감거리(孝感街道)’ 등 관련 명칭이 남아 그 시절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이 사건은 또한 신령(神靈)의 존재를 실증하며 천인감응(天人感應)이 틀림없이 존재함을 증명한다. 장씨와 양씨 모녀의 억울함이 신령을 분노하게 하여 석천현 일대에 지진과 지명(地鳴) 등의 기이한 현상이 잇따라 발생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개별 문인의 수필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정사인 《송사·열녀전(宋史·列女傳)》에 기록되어 있어 신뢰도가 극히 높다.

오늘날에도 중공 정권 치하에서는 억울한 옥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1999년 중공 정권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박해를 발동한 이래 더욱 그러하다. 파룬궁은 기공의 형식으로 전해진 불가의 수련대법으로, 쉽게 말해 바로 불법(佛法)이다. 공산당이 불법을 박해하고 불제자(佛弟子)를 박해한 죄악의 크기는 역사상의 어떤 억울한 사건을 초월한다.

때문에 중국 대륙의 날씨는 갈수록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다. 맹렬한 홍수와 가뭄, 번번이 역사 기록을 경신하는 강수량, 하늘의 붉은 달, 환일(幻日) 등 각종 불길한 천상(天象)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바로 하늘의 경고이다. 파룬궁을 박해한 악인들은 반드시 악보(惡報)를 받을 것이며, 파룬궁을 박해한 공산악당은 반드시 하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다. 일찍이 공산당·공청단·소선대 조직에 잘못 들어갔던 민중들도 탈퇴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반드시 공산당에 연루되어 재난과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공업(共業 공동으로 지은 업)’이라 부르는데, 이는 한 조직이나 무리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악보(惡報)에 연루되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파룬궁 수련자들은 불가(佛家)의 자비에서 우러나와 줄곧 세상사람들에게 공산당·공청단·소선대를 탈퇴하여 사악한 공산당을 멀리하고 평안을 지키기를 권고해 온 것이다. 세인들은 파룬궁 제자들의 권선(勸善)을 받아들여 속히 공산당의 모든 조직에서 벗어나고, 미래에 평안히 역사 다음의 기원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바란다.

자료 출처: 《송사·열녀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