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2026년 8월 9일】
서기 1127년 1월 9일, 북송의 수도 개봉이 금나라 군대에 함락되었다. 뒤이어 북송의 황제 송흠종과 태상황 송휘종이 포로로 잡혔고, 수많은 황실, 귀족, 관리들도 함께 포로로 잡히면서 북송이 멸망했다. 황실 주요 멤버 중에는 오직 조구(趙構)만이 탈출하여 남송의 첫 번째 황제인 송고종이 되었다.
송고종 조구는 양주(揚州)로 도망쳐 피란하였다. 당시 송나라 장수 장준(張浚)도 따라 양주로 왔는데, 장준은 말년에 ‘위국공(魏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사료에서는 그를 ‘위공’이라 부른다. 장준은 양주의 임시 거처에서 묘응(妙應)이라는 법호를 가진 승려를 공양하였는데, 묘응은 관상과 점을 치는 재주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어느 날, 묘응이 밖에서 돌아와 장준에게 말했다.
“제가 성 안을 둘러보니, 만 명이 넘는 사람에게서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각컨대 일반적인 재앙으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을 리가 없으니, 오직 한 가지 가능성뿐입니다. 바로 금나라 군대가 추격해 오는 중이며, 이것이 전란의 전조라는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송고종께 권하여 속히 양자강을 건너시게 해야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장준은 묘응의 관상술을 매우 믿었기에, 상주(上奏)하여 송고종에게 속히 남쪽으로 강을 건널 것을 청했다. 그러나 송고종은 등불 축제(연등)를 구경하고 떠나기를 원했기에 양주에 계속 머물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금나라의 대장 점한(粘罕), 즉 금올출(완연종필)의 형인 완연종한(完顏宗翰)이 군사를 이끌고 들이닥쳤다. 송고종은 황급히 남쪽으로 강을 건너 간신히 포위망을 빠져나왔으나, 양주성 안의 백성들은 금나라 군대에 의해 참혹하게 많이 살해되었다.
송고종은 묘응의 예측을 믿지 않다가 결국 황급히 남쪽으로 도망쳐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묘응이 배운 것은 소법소도(小法小道) 속의 점술과 관상술이어서 불과 며칠 앞의 전란을 예측하고 송고종에게 빨리 떠나라고 권할 수 있었을 뿐, 성 안의 백성들은 구하지 못했다. 오늘날 불가(佛家) 대법을 수련하는 수련인들은 ‘하늘이 공산당을 멸한다(天滅中共)’는 천상의 커다란 변화를 발견했다. 이것 역시 공산당이 지은 죄업으로 인한 것이며, 하늘이 이 사악한 무리를 청산하려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들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공산당의 당·단·대(공산당원, 공청단원, 소년선대) 조직에서 탈퇴할 것을 권하고 있다. 대법 수련인들은 수년 앞서 천상의 커다란 변화를 발견하였고, 수년 동안 세인들에게 널리 탈당하여 구도를 얻으라고 끈질기게 권해왔으니, 이는 진정한 ‘보도중생(普度衆生, 뭇 중생을 널리 제도함)’이며, 수많은 재난이 이로 인해 뒤로 미뤄졌다.
여러분은 모쪼록 그들이 선을 권하는 말을 믿기 바란다. 미래에 당신은 반드시 이로 인해 다행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자료 출처: 남송 《조야유기(朝野遺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