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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명의 장석순: 산약(山藥) 일미로 기사회생 (5)

류여(劉如)

【정견망】

장석순이 약을 쓰는 것은 신의(神醫) 화타(華佗)의 풍모가 있는데, 우리는 아마 화타가 조조의 두통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단 하나의 침으로 그 요혈을 찌르자 쪼개질 듯 아프던 두통이 즉시 가라앉았는데, 그 이유는 병의 원인을 손바닥 보듯 환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을 쓰는 것도 이와 같아서, 전해지기를 화타는 종종 단 한두 가지의 약만으로도 약이 이르자마자 병이 낫게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신화나 전설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모두 진실이며 장석순의 용약(用藥) 스타일이 바로 이와 같았다. 그는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산약을 중증과 위증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여 번번이 놀라운 공을 세웠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산약이 이토록 신묘하고, 중화민국 시기에 그의 명성이 혁혁했는데, 어째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우리 중 그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일까? 현재의 중의사들도 마치 그것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근본적인 원인은 잠시 말하지 않고, 다만 근현대 트렌드에 대해 말하자면 서양학문을 숭상하여, 의학에서 양의가 주도권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조차 이른바 신문화운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서당에서는 더 이상 유학 경전을 가르치지 않고 문언(文言)이 백화문으로 점차 대체되었다.

그렇다면 고대 의서들은 기본적으로 전부 문언문이거나 반(半)문언문인데, 전통 교육을 받은 선배들은 떠나갔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전부 이해하지 못하니 보지도 않으려고 하며, 그리하여 이 귀중한 유산이자 간단하고 효과적인 목숨을 구하는 훌륭한 처방들이 점차 묻히게 되었다. 매우 마음 아픈 일이다. 오늘날에는 일반 백성들이 자신의 문화 유산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늘날의 중의사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언어 문제 때문에, 혹은 장석순이 서양 의사와 서양 약물을 포용하는 것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장석순의 책을 연구해 읽으려 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많은 의사들이 장석순의 약 쓰는 방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믿지 않는다. 사실 그의 언어는 고대 의서 중에서 가장 백화문에 가까우며, 처방 구성의 이치가 아주 상세하게 쓰여 있어 일반 백성들도 이해하기 매우 쉬우므로, 당시 《의학충중참서록(醫學衷中參西錄)》은 “가장 본받을 만한 책”으로 불렸다.

당시 장석순이 생존해 있을 때, 적지 않은 문인(文人)들은 의서를 읽을 수 있었고 전통 의학의 이치를 대략 통달하였기에, 의사를 찾아도 효과가 없고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 장석순 처방의 고상함을 알아보고는 병환이 위중한 친척을 살려내었다. 아래에 소개하는 이 병례가 대략 이러한 상황일 것이다.

이번에는 먼저 원문을 열거하고, 그 뒤에 개인적인 해설을 제공하니, 여러분이 보면 곧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문언문이라 문장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케이스는 노인의 만성 폐질환으로 기침과 천식이 수십 년 동안 뿌리를 뽑지 못하다가, 마침내 갈수록 심해져 병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된 사례이다. 산약이 만성 폐질환에도 신기한 효과가 있음을 실증해 준다.

【원문】

봉천(奉天) 법고현(法庫縣) 만OO(萬××)이 보내온 편지:

어머니께서 담천(痰喘: 가래 끓고 숨이 찬 증세)과 기침을 앓으신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온갖 처방을 써도 효험이 없었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병세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에 올봄에 오랜 지병이 도진 데다가 다시 발작하여 열이 나고, 목이 마르며, 머리에 땀이 나고, 음식을 먹지 못하는 등의 증세가 심해졌습니다. 저는 비록 의학을 익히긴 했으나, 이때는 그저 두렵고 떨리기만 하여 감히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마침내 늘 (어머니를) 진찰하던 의사를 청해 진찰하게 하였더니 이르기를 ‘가래가 성하고 화(火)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실은 폐기(肺氣)와 비음(脾陰) 및 신음(腎陰)이 장차 허물어져 다하려는 것이었음을! (의사가) 인삼청폐탕(人參淸肺湯)에 생지황, 목단피 등을 더해 두 첩을 복용시켰으나, 특별히 효험이 없을 뿐더러 마침내 불처럼 타오르는 열이 발생하고, 설사까지 더해져 하루도 버티기 힘든 형세가 되었습니다.

이에 감히 의사를 부르지 못하고, 스스로 자생탕(資生湯 장석순이 만든 처방) 처방을 골라 한 첩을 복용시켰으나 역시 뚜렷한 효험이 없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때 처방 속의 백출, 우방자, 지각·계내금 등의 약미들이 (상황에) 잘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일미서여음(一味薯蕷飲: 산약 한 가지만 쓴 탕약)’으로 바꾸어, 생산약(生淮山藥) 4냥(四兩)에 현삼 3돈(三錢)을 더했습니다. 한 첩을 복용하자 효험이 보였고, 두 첩을 복용하자 크게 효험이 있었으며, 세 첩을 복용하자 곧 병이 절반 이상 나았습니다.

후에 이에 ‘서여죽(薯蕷粥: 산약죽)’으로 바꾸어, 생산약 1냥을 가루 내어 죽을 쑤고, 백설탕을 약간 타서 매일 두 번 간식으로 복용하게 하였습니다. 또 틈틈이 입맛을 돋우는 약을 복용하게 하였습니다. 열흘 남짓 만에 완전히 나았습니다.

해설:

이것이 편지에서 묘사한 전체 내용이다. 우리는 편지를 통해, 편지를 보낸 사람이 환자의 아들이며 의학을 공부하였고 심지어 장석순의 이 책을 사서 공부하기도 하였으나 단방(한 가지 약) 산약의 신기함을 직접 시험해 본 적은 없었고, 아마 단방 산약을 그리 쉽게 믿지 못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머니가 수십 년 동안 만성 폐 질환의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마주하고서, 틀림없이 어머니의 병이 복잡하고 치료하기 어렵다고 여겼을 것이며, 그토록 많은 의사들도 아무런 방법이 없었고 자신 역시 의학을 알면서도 손을 쓰지 못했으니, 산약이라는 이 흔한 약이자 음식이 진정으로 병을 치료하는 데 쓰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모두 효심이 지극하여, 여러 해 동안 자애로운 어머니를 모시면서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드리지 못하였으니 틀림없이 매우 괴로웠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병세가 매우 위중하여 버텨내지 못하게 되었고, 의사에게도 좋은 방법이 없었으며 도리어 치료할수록 더욱 심해져, 눈앞에 병이 위중하여 세상을 떠날 지경에 이르니,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장석순의 처방을 시도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여전히 산약을 함유하고 있되 산약의 분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다른 약들이 함께 들어 있는 ‘자생탕’을 선택했다. 복용하고 나서도 그다지 큰 효험이 없었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대담하게 장석순의 용병 스타일을 모방하여 단방 산약을 대량으로 사용함으로써, 매우 크고 가장 핵심적인 작용을 발휘하였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 병례로부터 우리는 장석순이 말한 “산약은 색이 희어 폐경(肺經)으로 들어가며, 오래된 기침·천식과 설사를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사실임을 판정할 수 있다. 앞부분의 《본초경》 내용을 함께 종합해보면, 산약은 비위(脾胃), 간, 신장 및 폐에 대해 모두 자양(滋養)하고 보하는 효능이 있으며, 온화하게 그리고 정기를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한(寒)과 열(熱) 두 가지 병사를 물리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장과 폐는 표리(表裏) 관계이므로, 폐의 양기가 충분히 보충되고 기능이 회복되면 자연히 대장을 고섭(固攝 단단히 거두어 붙들어 맴)하여 설사 역시 낫게 되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비위는 후천의 근본이고 신(腎)은 선천의 근본이므로, 두 가지 근본이 보충되고 튼튼해지면 인체의 정기(正氣)가 자연스럽게 회복되어 병이 낫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른 약물을 더했을 때는 도리어 효험이 뚜렷하지 않았을까? 자생탕은 어떤 환자에게 적합한가? 다음에는 이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자.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1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