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방행(石方行)
【정견망】
천국의 신운(神韻) 돈황에 모이니
무한한 위엄 불광이 넘치네.
미소 띤 응시에 자비를 드러내
중생더러 무상(無常)을 벗어나라 일깨우네.
天國神韻聚敦煌
無限威儀佛光漾
凝眸含笑慈悲展
喚醒眾生脫無常
돈황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굴 속 벽화와 조소에 큰 감동을 받는다. 당초(지난 1940년대 이래) 일부 연구자들이 돈황에 온 후 상상하기 힘든 고난을 다 겪었지만 돈황을 지키려는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들 개인의 책임감・사명감이 아주 강할 뿐만 아니라 돈황의 채색 조소와 벽화 자체가 오성이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체 잡념을 없애고 자원해서 귀의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생각을 바탕으로 이번 문장의 제목은 돈황신운으로 정했다.
돈황 벽화와 조소의 운치를 말하려고 하면 먼저 간단하게나마 천국의 상태를 말해야 한다.
미륵경변(彌勒經變), 제202굴 중당(中唐)
그림 1에서 우리는 불국(佛國)의 풍부하고 장엄한 상태를 볼 수 있다. 사람의 언어는 극히 제한되어있고 또 문자는 부동한 공간에서 부동한 뜻을 드러낼 뿐이다. 따라서 여기서 나는 단지 사람의 언어로 최대한도록 사람의 사유를 결합해 형용할 뿐이며 불국 세계의 완전한 진상은 아니다. 수많은 진상과 상태는 사람의 언어로는 형용할 방법이 없다.
인간세상에서 우리가 이곳에서 생활한 시간이 길어지면 아주 많은 일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여긴다. 예컨대 길은 걸어서 가야하고, 집은 거주하는데 쓰며 참외나 복숭아 등은 먹는데 쓰인다. 하지만 천국세계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천상의 모든 것은 다 아름다운 것으로 천상에도 길이 있고 과일과 집이 있다. 하지만 ‘실용성’은 그리 크지 않다. 다시 말해 주요 역할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길을 걷고 식용하며 거주하는데 있지 않다. 가령 도로를 말하자면 그 한 층차의 생명이라면 일반 중생을 포함해서 어떤 층차든 다 날 수 있고 어떤 이는 시공의 터널을 돌파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로의 실용성은 줄어든다. 다시 말해 생명이 왕래할 때 많은 경우 도로를 사용하지 않아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여기서 또 도로 자체를 말해보자. 사람에게는 흙길, 모래 길, 아스팔트 길, 시멘트 길 등 각종 다양한 유형의 길이 있지만 천상에서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답고 신기한 것이다. 산길, 물길, 육로가 완전히 서로 호환된다. 사실 그곳의 ‘도로’ 자체 역시 생명이며 온갖 변화를 갖추고 있다. 그 위를 걷는 생명에게 불법(佛法)의 자비와 신성(神聖)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인간세상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일에도 많은 종류가 있고, 매 과일마다 영양 성분이 다 다르며 외형상 차이도 아주 크다. 천상에서는 과일의 종류가 더욱 풍부하며 그것들 자체가 천국 세계 생명 상태를 풍부하게 하는 외에 또 하나의 기능이 있으니 중생들의 음식으로 제공된다.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음식은 사람이 생존할 필수 원소다. 하지만 신에 대해 말하자면,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한 층차의 생명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며 신과 기타 생명이 소통하고 순환하는 일종의 방식이다.
집은 인간계에서 거주하거나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다. 하지만 천상에서는 실용적 가치 외에도 신불(神佛)의 지혜를 펼쳐내고 천국 세계 상태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선정불(禪定佛) 제259굴, 북위(北魏)
관음(觀音) 흉상(胸像) 제25굴, 수나라
채색 소조 제25굴, 성당(盛唐)
신불을 말하자면 천국세계에는 법왕(法王) 외에 또 다른 많은 불(佛), 보살, 나한, 천왕(天王) 등이 존재하는데 하나의 몹시 풍부한 세계이다. 돈황 벽화와 채색 소조(가령 앞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다시피, 신불(神佛)은 장식(裝飾)에서 차이가 아주 크다. 설령 같은 천국 세계라 하더라도 이렇다.
바로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불국 세계의 아름다음과 신성함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불국세계 신의 머리 장식을 말하자면, 특히 보살은 한 방면으로는 신의 위엄을 드러내고 다른 한편 부동한 신들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또 아주 많은 머리 장식이 전부 ‘법기(法器)’라고 불릴 수 있다. 이런 법기는 일반적인 상황 하의 법기와는 달리, 극한 상황이 아니면 신불의 몸을 떠나지 않는다.
복장을 말하는 김에 파룬따파 창시인께서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불국(佛國)세계의 사람은 모두 누런 천으로 감싸는 옷을 입고 있다. 두발(頭髮)도 같지 않다. 가장 큰 차이가 두발이다. 도가는 머리를 빗어 틀어 올리고 불가 나한은 대머리이며 보살은 중국 고대 여인의 그런 머리 양식이다. 무엇 때문인가? 중국 고대의 이런 옷차림과 천인(天人)의 옷차림은 같다. 실제로 천국(天國) 하늘 세계 사람이 입는 차림새와 같다. 서양 역시 이러하다. 그것은 바로 그 천국 세계의 이런 차림새이다.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시드니 법회설법’)
그림 2에서 그림 4까지 자세히 관찰해보자. 우리가 알 수 있다시피 서로 다른 각자(覺者)마다 자비를 펼쳐내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얼굴 표정만 보자면 그림 2에서는 얼굴, 눈, 눈썹, 코, 입술, 뺨이 모두 웃고 있다. 하지만 그림 3의 관음보살은 표면적으로는 미소의 폭이 그림 2만큼 크진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의 자세와 눈빛, 입술에서 모두 자비로운 심태를 느낄 수 있다. 그림 4의 채색 조소는 극히 생동하며 미간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일종의 위엄을 드러낸다. 동시에 보는 사람에게 자비와 선(善)의 힘을 느끼게 한다.
본문에서는 곤유(坤崳)라는 한 화가가 예전에 법을 찾으러 다닌 경험을 쓰려고 한다.
이 화공은 천계(天界)에서 자비와 지혜로 지칭되는 법왕(法王)이었다. 그의 미소 짓는 모습은 늘 미간에 드러나곤 했다. 하지만 얼굴은 그림 3과 마찬가지로(외형의 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라 기질을 말함) 그의 생명 상태를 알지 못하는 중생은 그의 자비의 힘을 깨달을 방법이 없다.
한번은 그의 세계에 같은 천체(天體)중의 다른 천국세계의 신불들이 왔다. 모두 함께 어떻게 하면 더 자비롭게 중생을 대하고 이 한 경지의 일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상의했다. 한참 상의하고 있는데 불전(佛殿)의 지붕에서 가벼운 탄식 소리가 전해져 왔다. 뭇신들이 눈을 들어보니 문득 불전 꼭대기 부분 신수(神獸)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문제의 엄숙성을 의식했다. 왜냐하면 이는 지금까지 전혀 있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천국 세계의 법왕(곤유)은 신통으로 이 신수와 불전을 관리하는 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었다. 신수는 단지 몸 안이 뭔가 좀 불편하고 자신의 안색이 좀 검어졌다고 했다. 불전을 관리하는 신 역시 사방으로 금빛을 발하는 것이 약간 변해서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곤유는 전반 천체에 틀림없이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와 이 경지의 다른 법왕들이 함께 신통을 움직여 조사해보았다. 자세히 보니 이 천체에는 이미 커다란 편이와 변화가 발생하였고 더 이상 순정(純淨)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이 일을 위해 뭇신들이 함께 해결하는 방법을 토의한 결과 실천을 해도 안 되었다. 나중에 신들은 함께 모여 더욱 높은 층차의 신에게 하소연하며 발생한 일에 대해 계시를 얻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아주 여러 차례 호소를 했음에도 늘 아무런 결과도 없었다. 곤유 법왕은 어쩔 수 없는 나머지 먼저 일체 좋은 상태와 신채(神采)를 보존하여 천상에서 신의 지혜와 능력을 모아 그 경지의 상태와 많은 천국 세계의 부처, 보살, 나한 등 여러 신들의 모습과 신채(神采)를 신통을 이용해 어느 한 공간에 ‘고정’시키려 했다. 다른 천국세계의 많은 신불 역시 이 신성한 일에 협력했다. 이런 일을 완성했을 때 많은 불국(佛國)은 이미 변이와 패괴가 아주 심하게 되었다.
나중에 곤유는 몇몇 신선을 이끌고 그 공간에 가서 ‘고정’된 신채(神采)를 조사하러 갔을 때 어찌된 일인지 그것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이곳을 지키던 신조차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곤유 법왕은 매우 마음이 아팠다. 그는 이제 다시는 원래의 그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찾을 수 없다고 느꼈다. 그가 한창 실망하고 비통해하고 있을 때 문득 더욱 높은 경지에서 매우 위대한 신이 온 것을 보았다. 이 신은 오른손에 광구(光球)를 받쳐 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더니 곤유 법왕에게 말했다.
“보라. 당신이 앞서 ‘고정시킨’ 신채(神采)는 모두 여기에 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이 신채에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일체를 부여했다. 이곳에 또 많고 많은 요소들이 충분히 순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은 내가 이것을 돌려줄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장차 어느 매우 특별한 공간에 넣어 보존할 것이다. 나는 창우(蒼宇)의 중생을 널리 제도하기 위해 무수한 층차를 지나왔다. 당신들 이곳은 망망한 창우 중에서 하나의 작디작은 층차일 뿐이다. 만약 철저하게 그 모든 변이와 불순을 해결하려면 그럼 법을 바로잡아야 한다. 때문에 나는 전체 우주 일체의 충분히 바르지 못한 요소를 바로잡으러 왔다. 나는 또 계속 아래로 내려가 삼계 인간세계까지 갈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우주대법(宇宙大法)을 널리 전하는 방식으로 생명이 진정으로 회귀하는 길로 이끌 것이며 동시에 그런 충분히 순정(純正)하지 못한 일체를 바로잡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이 만약 나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그럼 나와 서약을 맺고 내려갈 수 있다.”
곤유 법왕은 이 말을 듣고는 급히 물었다.
“저희들이 어떻게 당신을 불러드려야 합니까?”
그 위대한 신이 말했다.
“뭇신들은 나를 ‘창세주(創世主)’라 부른다.”
곤유 법왕은 곧 자신이 창세주를 만난 이 일을 천체의 모든 신들에게 다 말했다. 잠시 후 뭇신들과 중생들이 잇달아 이곳에 왔다. 창세주께서는 또 뭇신들에게 그들이 지금 직면한 현실과 해결 방법을 아주 상세히 말씀하셨다. 당시 아주 많은 신들이 모두 창세주와 서약하고 세상에 내려가기로 했다. 이때 이 경지의 비천(飛天)들이 가장 성대한 연합 공연을 조직해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창세주의 강림과 자비하신 구도를 공경히 맞이했다.
그것은 정말 다음과 같았다.
만 가지 어여쁨과 천 가지 멋짐
거문고 얼후 상서로운 관현악 음률
극도로 넓어 있어본 적 없으니
중생(重生)의 희열이 하늘에 스며드네!
萬般婀娜千般靚
琴胡管弦音律祥
極度恢弘未曾有
重生喜悅沁天鄉!
공연을 끝낸 후 많은 신장(神將)들이 원래 있던 경지 중의 책임과 일을 안배하고 창세주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삼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곤유 법왕은 원래 그 한 층차의 신채를 고정한 일 때문에 창세주께서는 돈황 대흥(大興)에서 굴을 파고 상을 만들 때 그를 이곳에 배치해 자신의 방식으로 신과 신의 운치를 나타내게 했다.
곤유의 부친은 당나라 때 돈황에서 꽤 유명한 화가였다. 그는 부친을 따라 십여 년간 그림을 배웠다. 나중에 부친이 말했다.
“어젯밤 신인(神人)이 내게 말씀하시길 나의 이 기술은 최고의 정도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네가 더 좋은 불화(佛畫)를 그려 세인들에게 남기는데 적합하다고 하는구나. 너는 먼저 중원에 가서 유명한 사람을 찾아가 보거라.”
말을 마친 부친은 이미 잘 준비된 행낭을 들고 나왔다. 그는 부친의 말씀을 듣고 매우 감동했으며 자기는 마땅히 부친의 솜씨보다 더 한층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간단한 행낭을 지고 중원으로 향했다.
돈황은 장안이나 낙양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가는 길에 그는 줄곧 노숙을 했다. 장안까지 5,6일 정도 노정이 남은 거리에서 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돈이 은자(銀子) 몇냥 밖에 남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도처에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어 그는 가게 주인에게 혹시 그림 그릴 일이 없느냐, 그림을 그려 돈을 갚겠다고 말했다.
주인이 그를 보니 사람이 성실해보이고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자 그더러 자화상을 하나 그려보라고 했다. 확실히 그림을 아주 잘 그렸다. 주인은 만족하고 몇냥의 은자를 주고는 가게 했다.
그는 장안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서 큰 세상을 볼 수 있었는데 눈이 부족할 정도로 볼거리가 많았다. 여기에는 많은 나라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며 복식과 언어도 서로 달랐다. 이곳에 와서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누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을 들으면 곧 찾아가곤 했다.
당시 몇 명 노선생들이 그와 그림 그리는 기본기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모두들 자신은 그를 가르치지 못할 것 같다면서 더 고명(高明)한 스승을 찾아보라고 했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 금방 3년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을 가르칠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는 본래 장안을 떠나 다른 곳에서 화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꿈에 한 신인이 나타나서는 그의 운명 속 화공은 장안에 있으며 지금은 단지 기연이 닿지 않았을 뿐이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고 했다. 동시에 어떤 일이 있든 늘 선량한 마음을 유지하라고 했다.
그는 신의 말씀에 따라 여기서 계속 기다렸다. 또 이곳에서 머무는 비용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림 그릴 일이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때로 어느 부호의 집에 경사가 있을 때면 그는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좀 벌었다. 그가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지명도가 점점 높아졌으며 이따금씩 사람들이 찾아와 그림을 부탁하기도 했다.
어느 날 돈이 좀 있어 보이는 사람이 페르시아 고양이를 안고 와서 그려달라고 했다. 또 이 사람은 고양이를 위엄 있게 그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 페르시아 고양이를 보고나서 좀 생각해보고 마치 무엇을 쫓아가는 것처럼 매우 생동감 있게 그렸다. 다 그린 후 그 사람은 기뻐했다.
또 어떤 사람은 모친이 병이 들었는데 곧 세상을 떠나실 것 같았다. 그는 효자였기 때문에 모친의 초상을 남기고 싶어 곤유를 찾아온 것이다. 곤유가 그 집에 가서보니 사방이 네 개의 벽 밖에 없이 텅 비어 매우 가난했다. 그는 얼른 그림을 그려주고는 곧 떠났다. 그 남자가 돈을 주려고 했으나 곤유는 필요 없다고 했다.
한편 그가 좀 유명해진 후 일부 돈 있는 호사가들이 그를 괴롭혔다. 예를 들면 장(張)씨 성을 가진 한 사람은 그더러 돼지 한 마리를 그려달라면서 사람보다 더 예쁘게 그려 달라고 했다. 이는 일부러 그를 난처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곤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돼지 주변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들을 많이 그렸고 얼굴과 몸을 왜속시켰다. 그는 그림을 보고는 매우 화가 났으나 그렇다고 적당한 구실을 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큰 수탉을 안고 와서는 말했다.
“이 수탉이 노래하는 모습을 그려주시오.”
그는 생각하다가 수탉 옆에 거문고를 그렸는데 이 거문고 현을 파동의 형상으로 그려서 닭이 소리 내어 우는 것 같았다. 또 가까운 곳에 아이들 몇 명이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을 그렸다. 그 사람은 그걸 보고 감복하여 20냥의 은자를 주었다.
이렇게 각종 평상적이고도 괴팍한 문제를 해결하며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가 한 맹인 여자를 만난 후 그의 생활에 조용한 변화가 일어났다.
어느 날 이곳에 한 맹인 여자가 왔는데 자기 이름은 남궁총아(南宮聰兒)라고 하며 아주 총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지만 자신이 세상 만물을 볼 수 있는 모습이 어떤지 알고 싶다고 했다. 듣자하니 곤유 화공의 그림 솜씨가 아주 좋으니 한번 시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곤유는 그 말에 참 별난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분명 볼 수 없는데 나더러 그림을 그려달라니, 내가 무엇을 그리는 지 그녀가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곤유는 손 가는 대로 소묘를 하나 그렸다. 그녀의 눈은 보지 못하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띤 모습이었다. 그림을 그린 후 맹인 여자에게 주자 그녀는 손으로 그림을 더듬어보더니 말했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니 다시 그려주세요.”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또 한 장 봄날 강변에 한 무리 여자 아이들이 노는 장면을 그려주었다. 맹녀는 또 만져보더니 말했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니 한번 더 그려주세요.”
그는 속으로 더는 그리고 싶지 않았고, 그녀가 앞을 볼 수도 없으면서 따지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이때 그는 돈황에서 부친을 따라 그림을 배울 때 비천(飛天)을 그리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래서 맹녀를 비천의 모습으로 높은 곳에서 세간의 창생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렸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맹인으로 그렸다
그림을 완성한 후 그는 생각했다.
“나는 신에게 불경한 죄를 지은 것 같다. 하지만 맹녀가 이렇게 나를 고의로 곤란하게 하니 어쩔 수 없구나.”
[역주: 비천 역시 천상의 위대한 신(神)인데 그런 신을 장님으로 그렸기 때문에 불경하다고 생각한 것]
그 뜻은 신들에게 용서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곤유가 그린 그림을 다시 전해주자 맹녀는 손으로 잘 더듬어 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왜 채색의 상서로운 구름을 그리지 않았나요? 화면 전체 배치에 빈틈이 있어요. 또 당신은 눈이 먼 신선을 본 적이 있나요?”
이 몇 마디 말에 곤유는 자신이 농락당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가 정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맹녀는 말했다.
“이 그림에 상서로운 구름 몇 송이와 비천의 눈을 그리되, 비천이 보지는 못하지만 일체를 통철(洞徹)할 수 있도록 그려주세요.”
그러면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자 곤유는 이 일을 하려면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히 말을 꺼내진 못했다.
맹녀는 오히려 아주 당당했다.
“잘 생각해보세요. 열흘 후에 제가 그림을 가지러 올게요.”
하고는 가버렸다. 곤유는 맹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처음에는 그녀가 그야말로 교활하기 그지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앞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혼자 왔을까? 또 손으로 만져서 내가 무엇을 그렸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아마 어떤 내력이 있는가 보다 생각했다.
맹녀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곤유는 아예 문을 닫아걸고 누가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도 받지 않았다. 한마음으로 어떻게 해야 맹녀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며칠이나 생각해도 두서가 잡히지 않았는데 9일째 되는 밤 갑자기 영감이 번쩍하여 천녀(天女)의 얼굴에 면사를 그리고 눈을 그렸다. 그림 속안에 그렸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볼 수 있지만 면사는 전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천의 눈에서 나오는 빛은 자비와 위엄 및 지혜로운 상태를 나타낼 수 있었다.
이것을 생각하자 그는 붓을 들고 그리기 시작했는데 한 폭을 그리고 나서 마음에 차지 않아 또 한 폭을 더 그렸다. 그린 후 어떤 점이 좀 못하다고 느껴 또 그리다 보니 어느 새 4,5폭을 그렸다. 그가 만족했을 때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렸는데 맹녀의 음성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밤새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문을 여니 맹녀 옆에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한 백발노인이 서 있었다. 맹녀는 이 분이 자기 사부님이라고 하면서 오늘 자신이 모시고 그림을 보러왔다고 했다. 곤유는 얼른 자신이 그린 그림을 꺼내놓았다. 또 자신이 이 그림 때문에 여러 장이나 그렸다고 설명했다. 노인은 그림을 들고는 매 한 장을 자세히 보더니 갑자기 붓을 들어 곤유가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하던 그림에 그가 돈황 동굴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추가했다. 그리고 몇 가닥의 시원한 바람을 그리자 모든 것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곤유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가 멍하게 있을 때 맹녀가 말했다.
“나는 맹인이 확실해요. 내 눈은 비록 인간세상의 것을 보지는 못하지만 인간세상의 사물에 오염되길 원치 않아요. 기본적으로 생활하는 요소 외에 다른 것은 나도 알아보지 못하고 내가 볼 가치도 없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바로 신선계(神仙界)의 것입니다. 내가 태어나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제게 이 방면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저를 찾으러 오셨고 저를 데리고 신선계의 일부 수행방식을 가르쳤습니다. 이번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장안성에 자신과 돈황에서부터 인연 있던 한 화가가 있다고 하셨고 그래서 제가 당신을 찾아온 것입니다. 처음에 내가 당신을 괴롭힌다고 느꼈겠지만 사실 나는 당신더러 신을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어떻게 해야만 신운(神韻)을 그려낼 수 있는지 알려준 것입니다.”
곤유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 노인이 말했다.
“내 제자와 자네는 전에 아주 큰 인연이 있었다네. 금생에 너희들은 함께 돈황에서 신의 운치를 그릴 사람을 성취할 무거운 책임이 있다네. 자네들은 애초 창세주를 따라 내려왔으니 그럼 지금 자네들이 할 일은 한편으로는 신의 상태를 펼쳐내고, 다른 한편 장래 사람들이 진정으로 이런 것을 볼 때 신을 동경하고 신을 찾는 길을 시작하는 것이네. 모든 것은 장래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에서 대법을 널리 전하실 때 중생이 대법을 알도록 기초를 다지기 위한 것일세. 내가 방금 자네가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그림에 자네가 돈황 동굴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덧붙인 것은 전체 그림이 ‘살아나게’ 해서 자네더러 자네와 총아의 금생 인연과 자네들의 사명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세.”
곤유는 이 말을 듣고는 두 사람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즉시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노인이 그를 부축해 일으키고는 놀리듯이 말했다.
“앞으로 총아에게 무릎을 꿇지는 말게….”
말을 마친 후 그는 또 자세하게 어떻게 해야 신의 운치를 그려낼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알려주었다. 설명을 마친 노인은 남궁총아에게 말했다.
“남은 길은 너희들 스스로 해 보거라. 스승으로서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맹녀와 함께 돈황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초를 겪지 않도록 곤유는 곧 이곳에서 반 년간 그림을 그리며 여비를 모았다. 곤유가 맹녀를 데리고 돈황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자 원래 그에게 그림을 부탁했던 사람들이 또 찾아와서는 그림을 부탁했다. 이렇게 접촉한 시간이 길어지자 모두들 친구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맹녀가 매우 예쁘고 현숙한 것을 보고는 그들에게 혼례를 올려주었다. 또 많은 돈을 주어 두 사람이 돈황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간단히 줄이자. 곤유와 남궁총아가 돈황으로 돌아왔을 때 부친은 이미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음을 알았다. 임종할 때 부친은 주변 사람들에게 “내 아들의 그림이 나보다 나을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곤유는 부친의 붓을 이어 받아 동굴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남궁총아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단지 묵묵히 곤유 옆을 지키며 마음으로 그의 그림을 느꼈다. 가장 중요한 지방에 가서 신불(神佛)의 경지(境界)와 운치를 나타내야 할 때 총아가 곤유에게 말했다.
“당신은 먼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나서 신불의 자비, 위엄, 지혜 등 여러 방면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당신 어느 화폭에 어느 방면을 표현할 것인지(또는 위주로 할 것인지)한번 보세요.”
처음에 곤유는 총아의 말을 단지 표면적으로만 이해했고 그림을 그릴 때 여전히 신운(神韻)을 그려내지 못했다. 나중에 총아가 그곳에 늘 가부좌하여 앉는 것을 보았다. 그도 총아에게 수행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여 이때부터 부부 두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서 수행을 계속했다.
곤유는 근기가 좋고 게다가 본래 창세주께서 의도적으로 신의 상태를 펼쳐내도록 배치한 생명이었기 때문에 그는 곧 어떻게 해야만 각자(覺者)의 신운(神韻)을 그려낼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장악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아주 빨리 그림을 완성했고 걸작을 만들었다.
한번은 곤유가 총아와 그들이 그린 작품들이 장래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에서 대법을 널리 전하실 때 문화를 다지고 견증으로 남겨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곤유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 견증으로 남길 수 있는지 알아요?”
총아가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 그때에도 아마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에서 대법을 널리 전하시는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알릴 사람이 있을 거예요. 부처를 수련하기 때문에 분명 불가의 요소가 있겠죠. 하지만 그때 사람들이 신을 믿는 최저선이 비교적 낮아서 일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근거해 표현할 겁니다.”(가령 그림 5에서 그린 것)
오복임문(五福臨門) 심향(沁香) 2010년 작품.
부부 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하고 있을 때 창세주께서 이곳에 오셨다. 창세주께서 손을 한번 휘두르시자 총아의 눈이 즉시 좋아졌다. 그리고는 곤유에게 말씀하셨다.
“자네는 장래 화가가 될 것이다. 때가 되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한다.”
몸을 들리신 후 총아에게 말씀하셨다.
“그때가 되면 너는 매우 어린 나이에 법을 얻을 것이다. 너는 네가 있는 환경 속에서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한다.”
떠나기 전에 창세주께서는 그들에게 한 가지 예술기법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곤유 부부는 함께 그림 배울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서 함께 모아 자기의 배운 바를 조금도 아낌없이 그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이 사람들은 막고굴의 벽화와 채색 조소에 광채를 더해주었다. 이런 것들은 일일이 말할 필요가 없다.
이번 생에 곤유는 원래 교사였으나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다 박해를 받았다. 나중에 한 서방 국가 정부에서 크게 힘써준 덕분에 해외로 나왔으며 자유의 땅에서 자신의 종전 서약을 이행하고 있다. 남궁총아는 금생에 대륙에서 전생(轉生)해 아주 어린 나이에 이미 법을 얻었다. 자신의 장사를 하면서 자신이 처한 환경 중에서 최대한도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바로 다음과 같다.
신이 전한 기예 돈황에 펼쳐지니
불국의 찬란한 빛이 크게 간수해두었네
예전의 서약 동굴에서 이행하다가
금생에 화가가 되어 다시 그림을 그린다네!
神傳技藝敦煌展
佛國光華大收攬
誓約在前洞窟履
今朝畫筆再點染!
후기: 내가 조사한 자료에서 알기로는 돈황 막고굴을 만든 화가와 조각가들 중 충분한 문자기록이 있는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고 대부분은 기록이 없다. 이에 유감을 느껴 보완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몇 세대에 걸쳐 역대로 막고굴을 조성한 무명의 화가와 장인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비록 그들은 금생에 대부분 다른 역할로 전생했지만 이 자리를 빌려, 아직 법을 얻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모두 진상을 똑똑히 알기를 바라며, 이미 법을 얻은 사람들은 더욱 노력해서 역사가 일찍이 당신들에게 부여한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3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