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만약 삼계와 인간의 역사상의 일체가 모두 우주의 정법을 위하여 배치된 것이라면, 그럼 역사란 단지 대법을 위하여 역사 과정 중에서 중생과 인류 및 사람의 사상방식과 문화를 육성했을 뿐이다. 이리하여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 사람의 사상으로 하여금 능히 법을 이해하고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수련이며 무엇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인가 하는 등등과 각종 수련형식을 알게 하였다. 만약 이렇다고 한다면, 역사상의 일체 수련과 신앙 그것은 우주가 장래에 세간에서의 정법을 위하여 문화를 다져놓은 것이 아닌가? 무엇이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인가? 하늘의 신들은 내가 사람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한 부의 사다리를 놓아주었다고 모두 말하고 있다. (《역시 방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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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금광사를 수리하고 길일을 택해 야마산에 들어가다
묘선공주는 영련이 이날 수행할 뜻을 세워 하늘에 맹세한 것을 보고는 같이 수련할 도반이 늘어나 속으로 아주 기뻤다! 그녀는 이제 출가한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는 모든 수속을 준비하며 오직 머리를 깎기만 기다렸다.
한편, 묘장왕은 금광명사를 수리하는 공사를 일으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또 대(大)부마를 파견해 감독하게 했다. 이 소식은 곧 온 나라에 퍼졌고 뛰어난 장인들이 다투어 찾아왔다. 또 일부 백성들은 셋째 공주가 몸을 바쳐 수도하기 위해 금광명사를 중창한다면서 몹시 경탄하고 또 동정했다. 원래 일국의 공주로서 편안하고 부귀한 날을 살 수 있음에도 오히려 고생스럽고 쓸쓸한 수도자의 삶을 살고자 하니 이 얼마나 보기 힘든 귀중한 일인가!
이에 많은 백성들이 존경하고 탄복하는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진귀한 보물을 바치며 사찰을 장엄하게 장식했다. 당신이 보석으로 조각된 불조(佛祖)의 가람을 바치면 나는 좋은 향나무로 조각된 화려한 대들보를 바치는 식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사찰 중창에 사용한 자재는 전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바친 것이다. 이는 또한 수년간 나라의 기후가 고르고 백성들이 부유해졌기 때문인데 덕분에 이렇게 많은 자재를 보내온 것이다.
기왕에 자재가 풍부해지니 공사 일정도 자연히 순조롭고 속도도 빨랐다. 더욱이 이 금광명사는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무너지기는 했지만, 기단은 훼손되지 않고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어 오히려 공사가 더 쉬웠다. 그래서 2월 초순에 착공했고 줄곧 날씨가 좋아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5월 초순에 이르자 전각이며 선방(禪房)은 이미 완공되었다. 퇴락한 기와밖에 없던 금광명사가 장엄하고 찬란하게 다시 지어졌고, 황색 기와와 붉은 담이 훤히 펼쳐졌다.
그러나 건물은 이미 완공되었지만 아직 많은 불상이 완성되지 못했다. 또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내부가 질서정연하게 꾸며졌고 공사를 감독한 대부마가 임무를 완수했노라고 복명했다.
묘장왕이 직접 가서 보니 과연 매우 마음에 들었다. 환궁 후 천상을 관측하는 관성사(觀星司)와 예를 주관하는 부서에 각각 명령해 좋은 날과 시간을 택해 셋째 공주가 출가하는 예절을 규정에 따라 시행하게 했다. 모두들 한차례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침내 6월 19일이 공주가 불문에 몸을 바쳐 절에 출가하는 날로 결정되었다.
즉, 6월 17일 선왕(先王)의 능을 찾아가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고 18일에는 임금께 하직인사를 올린다. 19일 새벽 궁궐을 하직해 절에 들어간다. 모든 의장은 다 불가(佛家)의 규정에 따랐고 정오에 묘장왕이 직접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서 삭발대례를 거행하기로 했다. 이런 모든 절차를 정한 후 묘장왕은 묘선공주를 불러 여러 가지 일을 알려주고 준비하게 했다. 묘선공주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도록 도와준 부왕의 은덕에 감사드리고 자신의 것을 다 수습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17일이 되자 묘선공주는 여전히 공주의 복식을 입고 궁중 연(輦)을 탔다. 의장대가 앞뒤로 에워싸고 궁문을 나와 왕릉을 찾아가 역대 조상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출가하는 이유와 자책하는 말을 전한 후 술과 예물을 올렸다. 그리고는 궁궐로 돌아왔다. 성 안의 백성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길에 나와 공주의 옥 같은 얼굴을 우러러보았고 가마가 지나가는 곳마다 우레와 같은 환성을 올렸다. 묘선공주는 가마 속에서 그저 웃음을 머금고 허스 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답례했다.
이튿날 새벽, 묘장왕은 전례대로 보좌(寶座)에 올라 문무백관을 만나고 있었다. 갑자기 황문관(黃門官)이 들어와 셋째 공주가 오문(午門)에 작별인사를 올리러 왔노라고 아뢰었다. 묘장왕이 곧 대전 안으로 들어오게 하라고 명령했다. 이윽고 공주가 대전에 올라와 큰절을 올리며 계단에서 부복하며 말했다.
“신(臣)이 불효하여 오직 한마음으로 예불(禮佛)하고자 부왕 곁에서 늘 섬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나 오직 부처님의 법력에 의지해 아바마마를 대신하여 복과 수명이 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이 출가하는 날이라 오늘 특별히 감사인사를 올리니 아바마마께선 부디 만수무량(萬壽無量)하소서!”
묘장왕이 이 말을 듣자, 마치 칼로 화살을 뚫고 쏘는 것처럼 마음이 몹시 괴로워 하마터면 두 줄기의 굵은 눈물을 흘릴 뻔했다. 생각해보라, 이렇게 총명하고 영리한 공주를 지금껏 낳아 길렀는데, 이제 자신과 모든 관계를 끊고 출가하려 하니 부모로서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그는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묘선공주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어연(禦輦 왕이 타는 수레)으로 공주를 처소까지 바래다주게 했다.
묘선공주는 비록 뜻을 굳게 세웠지만, 십여 년 부모의 정을 깨끗이 포기하진 못했고 오히려 좀 아쉬웠다. 공주가 궁중 처소로 돌아온 지 얼마 후 묘음과 묘원이 다 왔다. 자매들이 깊은 정으로 은근히 대화를 나누다 저물 때에야 헤어졌다.
묘선공주는 모든 것을 사전에 이미 잘 배치했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할 일이 없었다. 이번에 같이 가는 반려자는 보모와 영련 두 사람 외에도 주방에서 일하던 십여 명이 공주를 따라가겠노라고 자청했다. 그녀들 역시 주상의 허락과 상관없이 각자 짐을 수습해 내일 셋째공주와 함께 궁궐을 떠나려 했다. 때문에 이 사람들이 오히려 바빠졌다.
이들은 우선 묘선의 사람됨이 선량해서 모두들 진심으로 복종했고 둘째로 이들이 어느 정도 숙근(宿根)이 있었기 때문에 번화함을 팽개치고 담담하게 살고 싶어 했다.
공주는 밤새 말이 없다가 오경(五更)이 되어서야 일어나 세수를 마쳤다. 공주는 아직 삭발하기 전이라 여전히 궁중복장을 입었다. 아침햇살이 희미하게 내리쬐는 가운데 일찍이 궁녀가 말했다.
“준비가 다 되었으니 공주님은 지시에 따르소서.”
묘선공주는 다시 궁문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묘장왕이 침궁에 가서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다. 묘장왕의 침궁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묘음, 묘원 두 공주가 오더니 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아바마마의 명을 받들어 동생을 배웅하러 왔다. 아바마마께서 굳이 궁궐에 들어와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묘선공주는 이에 침궁을 향해 멀리서나마 아홉 번 절을 올린 후, 두 언니와 함께 작별했다. 어쨌든 친자매인지라 끝내 섭섭한 마음을 금치 못해 또 한 번 흉금을 털어놓고 나서야 비로소 섭섭해 하면서 연에 올랐다. 두 언니도 각자 연을 타고 뒤에서 동생을 배웅했다.
곧장 궁문을 나서자 종소리가 울리고, 범악(梵樂 불교음악)이 울려 퍼졌다. 번당(幡幢 의장용 깃발)이 앞에서 인도하고 우보(羽葆 의장용 화개)가 뒤따랐는데 쌍쌍이 난로를 들고, 여러 가지 좋은 향을 피우니 향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 하늘 높이 치솟았다. 또 꽃바구니마다 온갖 종류의 기이한 꽃들이 있어 향기로운 바람이 불었다.
보모와 영련은 한 손에 백옥여의(白玉如意), 다른 손에 불진(拂塵)을 잡고 보련(寶輦)의 좌우에서 시종했다. 마침 당직을 맡은 가섭 장군이 삼백명의 어림군을 거느리고 연을 따르며 호송했다. 또 큰 공주와 둘째 공주의 보련에도 많은 궁녀들이 있었다.
이날 도성안 여섯 거리와 세 시장(三市)에서는 셋째 공주가 출가해 절에 들어가는 날을 미리 알고 온통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른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 서서 공주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려고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공주에게 바치려고 신선한 꽃과 진귀한 화초를 가져왔다. 나중에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져서 왕궁에서 금광명사에 이르는 큰길에는 오직 사람들의 머리만 보일 정도였다. 그야말로 모두들 거리로 뛰쳐나와 온 나라가 열광했다.
공주의 보련이 지나는 곳에서 모두들 즐겁게 춤을 추며 앞 다퉈 생화와 진귀한 화초를 연에 던졌다. 비록 어림군이 이들을 쫓아내긴 했지만 그들을 흩어지게 하진 못했다. 얼마 가지 않아 보련 안에는 이미 꽃이 가득 쌓였고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모두 꽃다발처럼 향기가 자욱해서 아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곧장 성을 나와 천천히 야마산 기슭을 향해 나아갔다. 공주가 연에 앉아서 멀리 야마산을 바라보니 비록 그리 높고 험준하진 않아도 웅장함과 화려한 모습을 겸비했다. 성에서 약 십 리쯤 떨어진 곳에 이르자 번화한 소리가 끝나니 수진(修真)하기에는 절호의 땅이었다.
다시 또 길을 가니 이미 산 앞에 도달했다. 산속에 있는 평지를 한번 돌자 바로 눈앞이 환히 밝아졌고 황금빛 찬란한 산문이 보였다. 이곳에는 흰 돌로 만든 용도(甬道)가 천왕전까지 곧장 연결되었다. 건물 겉면은 모두 금색 유리 기와로 덮여 있었다. 이때 태양이 위를 비추니 마치 만 갈래 황금 뱀이 허공을 에워싸는 것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정말 장엄하고 찬란했으며 비할 바가 없었다.
묘선공주는 산문(山門)에 이르자 연에서 내려 도보로 천왕전에 들어가 사천왕, 미륵, 위태(韋馱)에 예를 올렸다. 그리고 더 들어가니 아주 넓은 광장이 펼쳐졌다. 광장 안에는 고색이 창연한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마치 반룡처럼 하늘을 덮었다. 바로 그 위에 흰 돌을 쌓아 만든 법대(法臺)가 있었고, 그 뒤에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있었다.
그때 대 옆으로 비구니 삼십여 명이 두 줄로 시립하고 있다가 공주가 도착한 것을 보고는 줄을 지어 내려와 그녀를 맞이했다. 원래 다른 사찰에 있던 비구니들이 공주가 금광명사로 출가한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 때, 대 위와 아래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공주가 오는 것을 보고는 사방으로 비켜섰다. 두 줄로 선 비구니들이 공주를 맞이해 대웅보전으로 올라갔다.
이때 전각 위에 있던 종이 울리고, 탁자 위의 화려한 촛불이 밝게 빛났고, 난로 안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목탁을 울리고 경(磬)을 치자 모두들 눈을 감고 허스하며 소리 높여 능엄경(楞嚴經)을 외웠다. 공주는 세존께 예를 올렸다. 경전 한권을 다 읽은 후에야 여러 비구니들이 인솔해 선당에 와서 휴식했다. 여러 비구니들이 한 사람씩 공주를 알현해 법명(法名)을 알렸고 또 좋은 차를 대접해 공주의 갈증을 풀어 주었다.
이때 한 무리 사람들이 선당 밖으로 몰려와서 아주 떠들썩했다. 다행히 묘장왕의 어가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들 국왕에게 죄를 지을까 두려워 비로소 흩어졌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오늘 아침 불좌(佛座)로 돌아가
언젠가 운운중생을 구도하리라.
今朝歸佛座,他日度芸芸
이후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다음 회를 보라.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4/10/23/869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