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기실: 창산이해(3) 산처럼 무거운 은혜
작자: 천애지기
【정견망 2009년 10월 26일 】많은 친구들이 내게 묻곤 한다. 너는 어째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느냐? 나는 늘 웃으며 말한다. 생생세세에 윤회전생하며 다른 사람에게 빚진 것이 많고 다른 사람의 은혜를 얻은 것이 많아 금생에 일일이 보답할 수 없으니 그저 글로서 표현해내어 빚을 갚은 셈 치려 한다고 말한다.
오늘 말하려는 이 이야기는 나로 말하면 정말 뼈에 새기고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느 노인의 손자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가족정과 자애라는 두 단어로 완전히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무사무아한 경지로서 일종의 평탄한 흉금이었으며 자기의 늙은 몸과 본래 매우 유약한 두 어깨로 손자를 위해 한편의 하늘을 굳세게 버텨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체의 댓가를 치른 이유는 그저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이유였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아이라는 것이다.
각설하고 오늘의 이야기를 하겠다!
부친은 당시 대리성에서 작은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매우 예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부친의 장사가 갈수록 커졌으므로 부친은 모친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친이 나를 낳은 후 내가 바보이며 또 매우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았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고 또 움직이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이 자기를 얼마나 다치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
부친은 내가 이런 모양을 보고 그만 집을 버리고 떠났으며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나갔다. 모친은 본래 성격이 비교적 유약했는데 내가 이런 것을 보고 눈물을 머금고 나를 연로한 할머니에게 던져놓고 역시 떠났다. 모친은 떠나기 전 할머니에게 말했다. “만일 이 아이가 너무 바보 같으면 산골짜기에 던져버려도 그만이에요. 어머니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할머니는 내가 아무리 바보이든 어떻게 자기 자신을 해치든지 그녀는 차마 나를 버릴 수 없었다.
기억하기에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할머니는 일이 있어 한번 어디에 나갔는데 나는 혼자서 산으로 뛰어가 놀았다. 그러나 어쩌다가 발을 돌 틈에 내밀다 끼었고 내가 아무리 힘을 다 써도 빠져 나오지 않았다. 이때 하늘에서는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있는 곳은 마침 매우 푹 꺼진 곳이어서 얼마 안되어 빗물이 곧 목까지 잠겼다.
이때 나는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 마치 목이 다 쉰 것 같았다. 나는 매우 멍청했기 때문에 무슨 바보 같은 말을 한마디 했고 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 즉각 달려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돌을 밀고 내 발을 돌 틈에서 빼내었다. 이때 내 발은 껍질이 벗겨져 길을 걸을 수 없어 할머니는 나를 업었다.
그 광경은 나에게는 영원히 기억이 새삼스럽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며 대야같이 퍼붓는 폭우 속에서 아주 쇠약한 할머니가 바보 손자를 업었는데 얼굴에는 눈물, 핏물, 빗물, 땀이 범벅이 되어있으니 그것은 어떤 경지와 심정이겠는가? 게다가 그의 생부모는 그를 돌보려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 순간 나는 진정으로 부모 어른들이 말하는 “괴롭고 힘든 일을 견딘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다. 정말로 이렇게도 쉽지 않은 것이었다!
나중에 할머니는 내가 함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나를 연한 가죽끈으로 묶어놓는 등 어쨌든 많은 방법을 생각해내어 많이 다치는 것을 피해보려고 했다.
할 말은 많지만 간단히 말하자. 내가 12살 되던 해 나는 매우 엄중한 병에 걸렸는데 무슨 병인지 이름도 알 수 없었다. 할머니가 조급하여 어쩔 줄 모르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의 말을 들었다. 부근의 산꼭대기에 일종의 풀이 있는데 이런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침대에 묶어 놓고 스스로 그 풀을 채집하러 갔다. 황혼이 되었을 무렵 할머니는 잘못하여 발을 삐었다. 지팡이를 짚고 기다시피 집으로 겨우 돌아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옷은 모두 다 찢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나를 위로하느라고 말했다.
“얘야, 조금만 있거라, 할머니가 네게 약을 다려줄게, 마시면 병이 나을 게다.”
나는 그때 울었다. 그리고 힘없는 소리로, 그러나 그 생에서 가장 뚜렷한 한마디 말을 했다.
“할머니는 저한테 큰 은혜를 베푸셨어요. 저는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지만 장래 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할게요!”
말을 마치고 나는 눈을 감았다…. 할머니는 대성통곡하며 실성했다. “얘야, 나는 아무 보답도 필요 없단다. 그저 네 병이 빨리 좀 낫기만 하면 된단다. 들었니? 나는 너의 보답이 전혀 필요 없어.” 슬픔과 피로가 지나쳐 할머니는 역시 쓰러졌고 보름 후에 할머니 역시 세상을 떠났다.
나의 왠선이 내 몸으로부터 빠져나갈 때 아름다운 창산이해를 보며 나는 만일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여기 일체의 나에 대한 할머니의 은정을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할머니와 나의 연분은 너무나 크다. 그녀는 내가 강희연간(康熙年間)에 변방의 순사로 갔을 때 그 생애의 모친으로 전생했고 건륭연간에 또 모친으로 전생했다. 이것은 『대막충혼』중에 간단히 기록되어 있다. 당연히 또한 원명원이 불에 휩싸였을 때 내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던 그때의 모친이기도 했다.
내가 강희연간에 전생했을 때 20살 정도 되어 벽련(碧蓮)을 아내로 취했다. 그래서 총명한 아들 소박(小博)를 낳았다. 어느 날 그곳의 관부에서 징병을 하므로 모친은 내 이름을 등록하라고 했다. 나는 효자이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았고 침상 앞에서 노인과 아내를 모시려고 했다. 모친은 화를 내며 말했다. 나라가 너를 필요로 하고 백성이 너를 필요로 하는데 너는 겨우 자기 모친과 처만 생각하느냐? 그건 우리 불의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냐?
무슨 효도냐?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큰 효도이다! 네가 만일 다시 미룬다면 나는 밥을 먹지 않겠다, 어떻게 할래? 벽련도 말했다. “제가 이 집을 지킬 수 있어요. 소박 역시 곧 자랄 테니 집 일은 염려할 것 없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마지못해 겨우 고향을 떠났다. 군대에서 나는 늘 떠날 때 모친의 부탁을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전장에서는 매우 용맹하게 싸웠고 나중에 중.러 전쟁에 참가하여 “중.러 네르친스크 조약”을 서명하는 과정을 직접 보았다. 그 후 강희 황제가 친히 변방의 순사로 임명했으며 오제(烏第)강변의 외흥안령(外興安嶺)에서 스스로 자신의 병사를 데리고 중국의 국토를 수호했다. 그래서 금생에 나는 토지에 대해, 우리 민족에 대해 심후한 감정과 애틋함을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 고향에 기근이 들었는데 모친과 벽련, 소박은 서로 많이 먹지 않으려고 했다. 어른은 벽련과 소박에게 먹으라고 했고 벽련은 노인과 소박에게 먹으라고 했으며 아이는 모친과 할머니가 먹으라고 했다. 이렇게 양보하고 미루다가 나중에 모두 굶어 죽었는데 솥 안에는 아직도 두 그릇의 밥이 있었다. 그 해 소박은 겨우 15살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파룬궁 수련자가 고생을 마다 않고 날마다 이 사악한 당의 압력 하에 굳세게 자비롭게 천안문으로 가서 많은 광대한 중국민중을 향하여 진상을 호소하는 것이 생각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편히 지내지 않고 굳이 나와서 말을 하는가? 사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들은 당신들을 자기의 가족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자기의 가족을 보고, 진상을 모르고 장래 도태될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들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부처수련 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의 자비로운 심장을 가지고 있어서 당신들이 사악한 당과 함께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누구도 부모처자가 있다. 누구도 편안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겠는가? 또 금일 당신더러 진상을 알게 하기 위해 그들은 일을 버리고 부모처자를 버리고 심지어 박해 당하여 유리실소 하거나 교란을 견디지 못해 천지를 떠돌아 다닌다. 그들의 커다란 선과 자비로 당신의 선념을 깨우니 기억하라. 파룬다파 하오! 삼퇴하여 평안하라!
설마 이 호탕한 불은이 먼지에 덮인 당신의 양지를 일깨우지 못한단 말인가? 설마 이 광대한 자비가 당신의 오래된 선량함을 찾아오지 못한단 말인가. 소중히 하라, 우리 동포들아! 잊지 말아라! 이것은 천고의 기다림이다! 만고의 기연이다 이것은 무수한 세월을 지난 후의 용련이다. 이것이 당신이 생생세세로 힘들게 찾고 있던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 부디.
당신이 진상을 아는 것이 우리 최대의 소원이다.
발표시간: 2009년 10월 26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10/26/622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