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전생을 기억한 진용영
작자: 감은(感恩)
【정견망 2010년 5월 7일】 진용영(陳容永)은 자(字)가 직방(直方)으로 청나라 초 홍문관 대학사(직급은 높지 않지만 실직적인 재상에 해당)를 지낸 진언승(陳彥升)의 아들이다. 진용영은 성격이 착실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진용영은 순치 11년(1654년) 함께 과거에 붙은 여사홍(黎士弘)과 사이가 좋았다. 여사홍의 자는 괴증(愧曾)으로 복건 장정(長汀) 사람이다.
하루는 진용영이 갑자기 여사홍에게 말했다. “자네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여사홍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묻자 진용영은 한 가지 놀라운 일을 들려주었다. 알고 보니 그는 네 차례 윤회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다음은 진용영이 말한 전생이야기다.
첫 번째는 사천(四川) 통판(通判)의 서자였는데 정실 어머니의 구박 때문에 밖에 나가 장사를 하다 부친이 사망한 후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부귀한 집의 자제로 태어났다.
세 번째는 경성 죽림사(竹林寺)의 승려였다. 한번은 밖에 나갔다가 한 무리의 부녀자를 만났는데 우연히 그들의 자태를 감상하다가 수련성취 하지 못하고 계속 인간에 떨어져 윤회하게 되었다.
금생에는 진(陳)씨의 태에 들어 8살 때 부친을 따라 죽림사에 갔는데 재를 지내는 건물이나 길 등을 매우 분명히 기억했다. 금생에 비록 재상의 집에 태어났지만 다음 생에 또 떨어질까 두렵다. 금생에 나는 일찍 죽어야 하는데 만일 일찍 죽지 않는다면 반드시 도병(刀兵)의 화를 당할 것이다!
진용영의 부친은 대학사인데 왜 재상의 집에 태어났다고 했는가? 청나라 때는 재상이란 직책이 없었기 때문에 흔히 대학사를 재상이라 불렀다. 이어서 진용영은 그가 이번 생에서 9살 때 저승의 관원이었다고 했다. 매일 초야 경 원신은 몸을 떠나 저승에 갔으며 안건을 판결하고 새벽종이 울릴 때 인간으로 돌아왔다. 저승의 각종 일은 눈을 뜨면 곧 잊어버렸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저승의 일을 누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리라. 열두 살 때 그는 일을 잘못하여 저승에서 하던 일을 중단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뭘 잘못했는지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과연 얼마 되지 않아 진용영은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순치 15년(1658) 진언승이 죄를 지어 파직 당하고 군대에 충원되었다. 고대 왕조에는 연좌제가 있어 집 어른이 유배되면 식구들도 따라서 유배를 가야한다. 진용영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아마 부친을 따라 군대에 끌려갔을 것이고 아마 정말 도병의 화를 당했을 지도 모른다.
자료출처 <견문록(見聞錄)>
발표시간 : 2010년 5월 7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5/7/659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