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이야기 – 청풍여협(青風女俠) (하)
작자 / 소옥(蕭玉)
[정견망] 홍무(洪武) 원년(1368년), 국사(國師) 유백온(劉伯溫)이 황성을 건설하라는 명을 받고 그 건립 계획을 수립한 후 다음해 공사를 시작했다. 이때 십여 년 전 헤어져 항주에 있던 조현상인(照玄上人)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는 닭이 우는 밤중이 되자 유백온을 데리고 산위로 올라가 천상(天象)을 보았다.
자미원(紫微垣) 중에 육갑육성(六甲六星), 화개십육성(華蓋十六星), 전사구성(傳舍九星), 천주육성(天廚六星), 천뇌육성(天牢六星)이 산란하고 쇠락해 보일 듯 말 듯 했다. 또 삼사(三師), 문창(文昌), 천리(天理), 사세(四勢), 오제내좌(五帝內座), 천주(天柱), 천상(天床), 대리(大理), 어녀(禦女), 내주(內廚)와 삼원 외에 적지 않은 별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유백온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별들이 없어진 것은 자미성을 따라 세상에 내려와 20년 후 황손(皇孫)을 겁탈할 것이며, 아울러 자신의 자손들도 연루될 것임을 알았다.
조현상인은 세상 밖의 고인(高人)으로 유백온을 찾아오기 전에 이미 인과(因果)를 알고 있었다. 그는 유백온과 상의해 성을 지을 때 비밀 통로를 만들어, 후세 사람들이 위급할 때 이용하도록 준비했다. 또 성 동쪽 구화산에 도관을 지어 그의 사매에게 주지를 맡겼다. 이 비밀은 세 사람만 아는 것이었다. 조현상인은 이 일을 안배한 후 표연히 떠나갔다.
하지만 유백온은 홍무 8년 재상 호유용(胡惟庸)이 밀파한 어의에 의해 독살당하는 바람에, 황성 건설의 중임은 화현진 한 사람에게 마껴져, 건립과 관련된 비밀도 화현진인(華玄真人) 한 사람만이 알게 되었다.
십여 년 전 당시 태자였던 주표(朱標)는 자신의 아들이자 황손인 주윤문(朱允炆)을 데리고 성문을 나가 사냥을 하며 놀았고, 밤이 되자 야숙을 했다. 그날 밤 황손 주윤문은 외출 중이었는데, 자시가 되자 남동쪽 어느 별이 등잔처럼 노란색의 빛을 내며 천천히 대전 앞 마당에 떨어졌다. 태자 주표가 잠든 궁인을 다그쳐 깨워 등불을 켜고 찾아보니, 놀랍게도 별이 떨어진 그 곳에는 매끄러운 한 덩이 짙은 남색의 물건이 있었다.
다음날 화현진인에게 물어보니, 이것은 세상에서 극히 드문 운석 철이라며 이것으로 보검을 만들어 올릴 수가 있다고 했다. 태자 주표는 보검이 완성되면 즉시 알리라고 이르고, 그 검을 황손 주윤문에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뜻밖에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십여 년이 지났으며, 그 사이에 태자 주표가 일찍이 죽자, 황손 주윤문이 보좌에 올랐으며 보검은 도관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주윤문은 그녀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드렸다. 그의 옆에 있던 승려는 설연(雪緣)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경사 제일 고승 부흡(溥洽)의 제자였고, 무사와 유생은 궁중의 호위였다. 그들은 지난날의 쌓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이제 나라와 가정이 망하고 국면은 정해졌다. 밖에는 풍파가 심하고 성내외에는 도처에 적군뿐이었다. 자현관 아래의 산길도 모두 병사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검사하고 있는데다, 설연 스님과 무사 모두 다친 상태이니, 오로지 서울로 가서 소식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청련과 궁중 사정을 잘 아는 유생 두 사람 뿐이었다.
그들 둘이 길을 떠난 지 7일이 되자, 청련은 자현관에 돌아왔으나, 유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사정은 이러했다. 그들은 원래 성내에 들어가 모든 소식을 알아본 후 황궁으로 잠입해 “주체”를 암살하려고 했는데, 주체가 워낙 경계심이 심해 밤에는 궁중에 있지 않았다. 그러니 잘못되어 흉수를 놀라게 하여 깨우게 했던 것이다. 유생은 할 수 없이 청련에게 자기가 탐지한 소식을 황상에게 잘 알려드리라고 당부를 하고 그는 순국하고 말았다.
이 후 대략 3개월이 지나서, 한 가지 일이 빌미가 돼서, 건문제 일행의 종적이 알려지게 됐고, 그래서 또 자현관도 이 때문에 파괴되었다. 화현진인은 신선이 되어 떠나가고, 청련은 주윤문을 따라 멀리 도망가야 했다. 설연스님이 혼자 몰래 서울로 돌아가 그의 사부 부흡을 찾아서 그에게 대신 황자징((黃子澄), 유경(劉璟) 등에게 연락을 하여 왕을 위한 의거를 부탁했다.
그러나 일이 여의치 않아 금위병의 은밀한 감시를 받던 황자징과 유백온의 아들 유경은 모두 검거돼 옥에서 죽었다. 또 주체의 밀정꾼들이 건문제의 종적을 알게 됐다. 그 시각에 화현진인은 청련과 건문제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동굴의 비밀 통로로 탈출시키고, 적들을 도관으로 유인했다. 화현진인은 앉아서 선화(仙化)하기 전에 바람과 벼락을 일으켜 청허대전을 불태웠다. 이 때 자현관과 화현진인은 함께 사라졌다. 화현진인이 떠나자 청련은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사부님의 길러준 은혜, 목숨을 구해준 은혜 등이 청련의 뇌리에 하나하나 떠올랐으며, 생생세세 이 슬픈 정서는 금생에도 여전히 드러나고 있다.
청련과 건문제가 금위군의 추적을 따돌린 소식은 이미 황제가 된 주체에게 전해졌다. 그는 매우 노했으며 수없이 많은 자객과 무림의 고수를 시켜 그들의 행방을 찾으라고 했다. 청련과 건문제는 줄곧 강소성, 호북성 등에서 서남지구의 사천, 운남, 귀주 등으로 떠돌아 다녔다. 여러 번 위험을 만났으나 주위 신변에 홀연히 나타난 청의 여협의 보호가 있었다. 그녀의 청풍검과 청풍장은 당시의 무림을 진동시켰으며 그들을 접근한 자객들이 바람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게 만들었다. 청풍여협의 이름은 당시 민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이 자현관에서 도망 나온 지 5년째 되는 해였다. 한번은 그들이 사천 기주(夔州) 연화산 아래의 연화사에서 잠잘 곳을 빌렸다. 한밤중이 되었는데 청련과 건문제는 같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 수염이 허연 노인이 나오더니 자칭 송경렴(宋景濂)이라고 하며 황상을 배알하러왔다고 했다. 그들에게 이곳을 빨리 떠나라고 했으며 늦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즉시 몸을 일으켜 연화봉 정상으로 올라갔는데 해가 뜨자마자 한 무리의 병사들이 간밤에 그들이 자던 곳을 덮쳐왔다.
나중에 그들은 하나의 계책을 만들어내었다. 각종 소문을 만들고 설연스님을 출가한 건문제로 분장시켜 강호에 다니게 했다. 또 무사를 변장시켜 건문제가 신물(信物)을 들고 바다로 나가 멀리 놀러 간 것으로 했다. 그래서 이후부터 어 떤 사람들은 건문제는 서생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건문제가 바다를 빠져나가 해외로 갔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진짜 건문제는 중국과 미얀마 경계의 마애동굴을 찾아 청련과 함께 사부가 남겨준 <도덕경>을 꺼내 함께 수행했다. 20여 년이 지나자 그들의 공부가 깊어져 함께 성인이 되어 인간을 떠났으며 그 일생의 경력을 완성했다!
문장발표 : 2010년 10월 1일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10/1/688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