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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의 전생

왕양명의 전생

작자: 무사(無思)

[정견망] 왕양명(王陽明 1472-1529) 즉, 왕수인(王守仁)의 원래 이름은 왕운(王雲)이며 절강 여요 사람이다. 명나라 최고의 사상가, 철학가, 서예가, 군사가, 교육자, 문학자로 관리 집안 출신이다. 그는 한번 들으면 외우는 능력이 있었다. 28세에 진사가 되어 변경에서 단련을 거쳐 나중에 군사를 통솔해 반란을 평정했으며 공이 뛰어나 관직이 남경 병부상서(南京兵部尚書), 남경도찰원좌도어사(南京都察院左都禦史)에 이르렀다. 신호(宸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신건백(新建伯)에 봉해졌고 융경(隆慶 1567-1572년) 때에는 후작(侯爵)의 작위가 더해졌다.

왕양명은 육왕(陸王)의 심학(心學)을 집대성한 인물로 유불도에 정통하고 군대를 통솔하고 정벌에 능했으며 중국 역사에 보기 드문 전능한 대유학자였다. 여요(餘姚) 양명동(陽明洞)에 움막을 짓고 자호를 양명자라 했기 때문에 후세에 양양명선생이라고 존칭했다. 왕양명의 심학에서는 양지와 심즉리, 지행합일 등을 강조했다. 중국은 물론 일본, 한국, 동남아 등 각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문에서는 왕양명의 3가지 일화를 소개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다섯 살 때 이름을 고치다

왕양명이 출생할 때 그의 조부는 꿈에서 그가 구름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매우 길한 조짐이라고 여겨 아이의 이름을 왕운(王雲)이라 지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이보다 휠씬 총명했으나 줄곧 말을 하지 못했다. 다섯 살이 됐을 때 어느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왕양명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좋은 아이인데 애석하게 너무 도를 설파했구나.” 그 뜻은 왕운이라는 이름이 그의 내력을 밝혔기에 말을 못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수인이라고 바꾸었더니 그때부터 말을 할 수 있었다.

2. 금산 노스님의 환생

50세가 되던 해 양명은 이미 이름이 천하에 떨치는 대유학자이자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도적을 토벌하는 대원수가 되어 있었다. 그가 진강(鎮江)에 있을 때 금산사(金山寺)에 유람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갖다 오는데 길이 매우 익숙해 마치 전부터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그는 스님이 폐관 수련하는 한칸의 방을 보았는데 문은 단단히 잠겨있고 매우 심하게 낡았으며 문에는 아직도 봉인이 붙어 있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자 일하는 스님이 말했다.

“이곳은 50년 전 원적한 노스님의 육신 사리가(부패하지 않은 금신-金身)이 있는 곳인데 50 년 이래 연 적이 없으며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왕양명은 단호하게 열 것을 요청했다. 당시 그의 명성이 매우 높았기에 스님은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어보자 원적한 노스님은 여전히 방석 위에 앉아 있는데 50년 전 옛날 옷이 아직 생생하게 엄숙했다. 벽에는 한마디 글이 씌어 있었다.


50년 후 왕양명이 문을 여는데
문을 연 사람이 바로 문을 닫은 사람이다.
정령은 끝난 후 회복되고
비로소 선문에 불괴의 몸이 있음을 믿게 되리라

五十年後王陽明
開門猶是閉門人
精靈閉後還歸複
始信禪門不壞身

알고 보니 노승은 원적할 때 이미 미래의 일을 알고 일부러 이런 게송을 벽에 남긴 것이었다. 그래서 왕양명에게 자기의 본래 면목을 잃지 말라고 일깨워준 것이었다. 사실 바로 자기 자신을 일깨운 것이었다.

3. 영암(靈岩) 옛절의 게송

57세 되던 해 양명은 중병에 걸려 남안 청룡진(南安青龍鎮)의 아산(丫山)을 지나다 산위에 있는 영암사(靈岩寺)를 찾아갔다. 마침 절의 고승이 며칠 전 좌화(앉은 채 입적)했기에 손님을 받지 않았다.

나중에 교섭을 하여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절에 들어가니 밀실이 한 칸 있는데 책상 위에 게송이 하나 적혀 있었다.


57세 된 왕수인이
나의 자물쇠를 열고 먼지를 터는데
이전의 일을 알고 싶은가
문을 여는 사람이 바로 문을 닫는 사람이오.

五十七年王守仁
啟吾鑰,拂吾塵
問君欲識前程事
開門即是閉門人

게송을 보자 양명은 남은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줄 알고 총총히 떠나갔다. 얼마 안 되어 대 유학자는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는 기이한 일이 많지만 현대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진정하게 기이한 일의 배후의 연유를 안다면 그것을 기이하다고 할 수 없다. 왕양명의 전생은 보기에 기이하지만 사실은 평상적인 일이다.

발표시간: 2011년 12월 7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12/7/791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