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海濤)
【정견망】
필자는 어릴 적 세계의 미스터리 읽기를 가장 좋아했다. 집에 있던 초록색 표지의 《소아백과전서》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외계인, 미스터리 서클, 버뮤다 삼각지대 등은 어린 시절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상상하게 한 원천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현재 중국 인터넷상에는 수많은 비판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미스터리나 사전문화(史前文化) 등을 반박하기 위해 소위 ‘이미 파헤쳐진 수수께끼’라는 내용을 전문적으로 정리해 올리기도 한다.
비판자들은 이미 이른바 ‘과학’으로 모든 사물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듯한 기세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 보면 그들의 글에서 대단히 모호하고 논증이 불분명하며 단장취의(斷章取義)한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마치 새로운 ‘문화혁명’ 운동이 시작된 것과 같아 보인다.
오늘 필자는 이카(Ica) 검은 돌(이하 이카석)을 반박하는 글 중 하나를 분석하여 독자들에게 사건의 전체 모습을 복원해 주고자 한다. 미흡한 점이 있다면 지적을 바란다.
만약 당신이 망원경을 현대 인류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카석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분명히 깜짝 놀랄 것이다. 페루 국립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검은 돌에는 기이한 모자를 쓴 사람이 망원경을 들고 천체를 관측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하늘에는 각종 성체(星體 별)가 있고 긴 꼬리를 끌며 지나가는 혜성도 보인다. 더욱 불가사의한 점은 이 석각의 역사가 이미 만 년이 넘었다는 사실이다.
이 놀라운 발견은 진화론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중국 내 진화론 가설의 정당성을 흔들기 때문이다. 그 ‘이미 파헤쳐진 수수께끼’라는 글에서 저자는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이카석들이 우슈야(Uschuya)라는 농부가 위조한 것이며 치밀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그 농부가 입으로 직접 이 돌의 문양은 자신이 새긴 것이며, 치과용 드릴로 조각한 뒤 돌 표면에 구두약을 바르고 불로 그을려 만들었다고 시인했다는 것이다. 또한 우슈야는 이 돌을 새기는 것이 밭을 가는 것보다 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는 이 글의 저자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의 앞뒤를 다 잘라내고 아주 작은 부분만을 발췌했다. 그렇다면 진실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짧고 영문 모를 설명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이제 필자가 천천히 이야기해 보겠다.
사실 이카석은 이미 1525년에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선교사 시몬 신부는 피사로(Pizarro)를 수행해 페루 해안을 따라가다가 자신이 본 이 기이한 돌들에 대해 기록을 남겼다. 1562년 스페인 탐험가들도 일부 돌들을 스페인으로 보낸 적이 있다. 비록 이런 놀라운 발견들이 500년 전의 일이지만,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중점은 아니다.
시간은 흘러 1966년 5월이 되었다. 하비에르 카브레라(Javier Cabrera) 박사의 친구인 로메로(Romero)가 그에게 물고기가 새겨진 돌 하나를 주었다. 그는 깜짝 놀랐는데, 이것이 그가 본 두 번째 유사한 석각이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카브레라가 16세였을 때, 아버지가 이런 돌 하나를 파낸 적이 있었는데 그는 그 돌에 날아가는 새가 새겨져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로메로는 또한 이런 돌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으며, 어떤 고분(古墓)에서는 자신이 아는 형제도 수집품을 가지고 있고 이카 지역 박물관에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카브레라는 매우 흥미를 느껴 그 석각들을 소유한 형제를 찾아갔다. 과연 그곳에서 각종 동물의 석각과 사냥 및 낚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카브레라는 다시 이카 지역 박물관 관장인 힝크스(Jinks)를 찾아갔고, 관장 역시 자신이 소장한 돌들을 내놓았다. 카브레라는 여기에 깊이 매료되어 자금을 들여 약 5,000점의 석각을 수집했다. 나중에 그는 페루 역사를 연구하는 학생 부스(Buss)가 쓴 책 한 권을 발견했는데, 그 책에는 이카석의 존재를 확증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다. 1961년 수십 년 만의 폭우로 이카강이 범람했을 때 주변 모래가 씻겨 내려가면서 대량의 돌이 드러났고, 현지인들이 이를 팔아 돈을 벌었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정황상 당시 페루 사람들은 이미 사적으로 이런 석각을 몰래 거래하고 있었다.
1966년 5월 13일, 카브레라는 또 하나의 특이한 돌을 받았는데 돌 위에 조각된 동물이 수백만 년 전에 멸종된 물고기 종류임을 발견했다. 그는 이 발견이 어쩌면 사전문명의 존재를 설명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우 놀랐다. 격분된 마음으로 그는 돌을 판매한 농부 바실리오 우슈야(Basilio Uschuya)를 찾아갔다. 우슈야는 해안 산악 지대의 동굴에서 조각된 돌을 많이 발견했으며 예상컨대 10만여 개가 있다고 했으나, 동굴의 구체적인 위치는 밝히기를 거부했다. 카브레라 박사는 이 농부로부터 수천 개의 돌을 샀고, 이후 총 2만여 개의 돌을 수집했다.
이 돌들은 모두 단단한 안산암이다. 안산암은 화산 분출로 형성된 화성암으로 경도가 매우 높다. 놀라운 점은 조각된 돌의 수량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조각이 정교하고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이 돌들이 묘사하는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관측하는 모습, 의사가 심장 이식 수술, 제왕절개 수술, 뇌 이식 수술, 내장 수술을 하는 모습, 악단이 조직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공룡을 타고 전투하는 거인, 공룡을 사냥해 식량으로 삼는 거인, 각종 물고기, 조류, 파충류, 트리케라톱스, 스테고사우르스, 프테라노돈, 티라노사우르스 등 각종 공룡, 공중에서 내려다본 각도로 그려진 세계지도(현재의 대륙판과는 다름), 인류의 출산과 수유 장면 등이다. 수만 개의 돌 그림은 중복되지 않으며, 그것들은 공동으로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인간과 공룡, 거인이 공존했던 사회를 묘사하고 있었다.
공상과학 잡지에나 나올 법한 이런 문양과 이야기들에 충격을 받은 카브레라는 외부 사람들에게 이 돌들을 보여주기 위해 개인 박물관을 열기로 결심했다.
1966년 12월, 카브레라는 또 다른 보도를 보게 되었다. 당시 국립공과대학교 총장인 칼보(Calvo)가 쓴 글로, 두 곳의 고분 발굴에서 프리 인카(Pre-Inca) 시대의 신비한 문양이 새겨진 돌들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으며, 이는 페루의 고고학자 아세레토(Acereto)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이 돌들은 어느 시대에 조각된 것일까. 조각된 홈에는 산화층이 존재하는데, 이 산화층이 조각된 면 위에 붙어 있다는 것은 그 연대가 조각된 시간보다 확실히 나중임을 의미한다. 지질학자 에릭 울프(Erik Wolf) 박사와 본 대학교 광물학 및 석유학 연구소는 돌 홈의 산화층에 대해 연대 측정을 실시했다. 결과는 조각 홈의 산화층이 최소 1만 2천 년을 넘었다는 것이었다. 즉, 과학적 수단으로 검측한 결과 이 돌들은 결코 이번 차례 인류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왜 농부 우슈야는 자신이 이 돌들을 새겼다고 주장했을까.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BBC에서 이카석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면서 이카석의 명성이 높아지자, 페루 정부는 도굴꾼과 골동품 판매 행위를 엄격히 단속하기 시작했다. 우슈야 역시 문화재 판매 혐의로 붙잡혔고, 투옥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말을 바꿔 자신이 가지고 있던 15,000개의 돌을 직접 조각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때부터 이 돌들에는 사기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검은 돌들을 직접 본다면 그의 일방적인 주장을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조각된 돌의 수량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화면이 정교하고 세부 묘사가 풍부하며, 심지어 공룡의 피부 질감까지도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공룡의 피부 화석을 발굴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점점 더 많은 화석이 발견됨에 따라 공룡학자들은 이카석의 공룡 피부 묘사가 관련 고고학적 발견보다 수십 년 앞서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이 농부가 무슨 신통한 능력이 있어 이를 미리 알았겠는가. 물론 현지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모조품을 만든 행위도 실제로 존재했기에, 사건의 전체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이 진위를 구별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인류가 자신과 역사에 대해 아는 바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완벽해졌다. 과학의 각종 이론과 정리는 지난 백 년간 수없이 뒤집혔으며 교과서의 이론이 반드시 진리인 것도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현실이 나타났을 때, 맹목적으로 배척하고 자신을 가두는 것이 어찌 과학적 정신이라 하겠는가. 치밀한 사기극이라는 한마디로 이카석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고 사전문명을 부정하며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는 문을 닫아버리는 것은, 진화론자들 배후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5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