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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을 기억한 장방평

작자/ 육문

【정견망】

사람은 윤회 전생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소수사람만 지니고 있다. 이 역시 세인의 믿음과 오성을 고험하는 것이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가지 부류가 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전생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후천적으로 수련이나 신앙생활을 통해 얻는다. 또 어떤 사람은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전생 기억을 떠올린다. 북송 시기 유명한 정치인 장방평이 바로 그런 예다.

송나라 때 장방평(張方平 1007~1091)은 자가 “안도(安道)”, 호는 “낙전거사(樂全居士)”로 응천부 남경(지금의 하남성 상구시) 사람이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총명하기 그지없어 책을 읽으면 한번만 봐도 마음에 새겨 전부 알 수 있었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책을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삼사(三史)”를 빌려 읽었다. 삼사란 바로 사기, 한서, 후한서를 일컫는다.

그런데 겨우 십여 일 만에 책을 돌려주며 말했다. “이미 다 읽었습니다.” 송나라 대신 송완, 채제 등은 모두 그를 천하기재라 칭했다. 장방평은 인종, 영종, 신종의 삼대에 걸쳐 신하로 일했으며 조정에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서하(西夏)에 관한 중요하고 정확한 건의를 했다. 철종 원우 6년(1091년) 세상을 떴다. 철종은 그에게 사공(司空) 벼슬을 추증하고 시호를 “문정(文定)”이라 했다. 그의 친구 소동파는 애통해하며 그를 위해 《/span>장문정공 묘지명을 지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의 인품을 평가하기를 신불을 신봉하고 위인됨이 너그럽고 의리를 중시했으며 지조가 고상하다고 했다. 지금 사람들은 그를 북송 시기 유명한 정치가이자 문장가로 칭한다.

《/span>인천보감(人天寶鑒)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낙방유고(樂邦遺稿)와 소동파가 지은 《/span>서능가경후(書楞伽經後)등에는 장방평이 사찰을 유람하다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자신이 승려였던 일을 기억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내용을 종합하여 간단히 소개한다.

경력(慶曆) 8년(1048년) 봄 장방평은 저주(滁州) 태수로 발령 받았다. 신임 태수로서 장방평은 업무차 저주 낭야사(琅琊寺)를 방문했다. 그런데 매번 낭야사에 갈 때마다 마치 전에 알고 있었던 듯 친근함을 느껴 떠나기가 싫었다. 어느 날 장방평은 또 시간을 내어 낭야사를 유람했는데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승방 문 앞에 왔을 때 갑자기 아찔하더니 뜻밖에 많은 전생의 일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곳은 오랫동안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옛날 방이었는데 그 속에는 많은 폐기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장방평은 그곳에 꼭 들어가 보고 싶었다.

방에 들어가서 장방평은 머리를 들어 두리번거리다 사다리를 가져오게 하여 들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곳에는 경서 한권이 있었다. 장방평이 펴보니 반쯤 베껴 쓰다만 능가경이었다. 장방평은 먹을 가져오라 하여 중단된 부분부터 이어서 새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보니 놀랍게도 새로 쓴 글자와 원래 글자의 형태가 완전히 꼭 같았으며 일체를 이루었다.

다 쓴 후 장방평은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이 낭야사에서 장서를 책임진 승려였다. 이것은 내가 전생에 마저 완성하지 못한 불경이다. 그때 중병을 앓았기 때문에 완성하지 못했고 떠나기 전에 원고를 이곳에 숨겨놓고 내생에 반드시 이것을 완성하겠노라고 발원했다.” 친구인 소동파는 《/span>서능가경후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태자태보인 낙전선생 장공안도(장방평)는 마음이 매우 넓고 크며 맑고 깨끗한 깨달음을 얻어 경력(慶曆) 연간에 서주에 있었다. 어느날 우연히 사찰에 들러 이 경을 입수했는데 홀연히 옛날 물건을 얻은 것처럼 책을 펴자마자 덮지 않았으며 오랜 장애가 사라진 것 같았다. 필획을 자세히 보니 솜씨가 아주 흡사했기에 크게 탄식하며 이로서 깨달았다.”

또 《/span>서능가경후에서 말하기를, 장방평이 만년에 직접 자기가 두 생에 걸쳐 완성한 《/span>능가경을 막역한 친구 소동파에게 은자 30만 냥과 함께 주며 각인해서 세상에 전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소동파의 또 다른 친구 불인(佛印)화상이 그대로 각인하기보다는 소동파가 새로 써서 각인하는 것이 더 오래 전해질 거라고 권했다. 당시에는 보통 목판에 글자를 새겨 인쇄했다. 이때 글자공이 원래 문장을 쓴 사람의 글을 따라서 새겼는데 소동파의 글씨는 당시 매우 유명했다. 때문에 세인들이 그의 글씨를 더 진귀하게 볼 것이며 불경을 보존하기에 유리했다. 소동파는 이에 경문을 한번 베께 썼고 책으로 찍어 후세에 전했다.

장방평은 원래 전생의 기억이 없었지만 전생에 살던 곳에서 자극을 받아 예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때문에 전생에 발원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 역시 전생에 그의 수련 및 발원과 관련이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우선 사람의 생명은 윤회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신론이나 유물론은 잘못이 아닌가? 진일보로 무신론과 유물론을 선양하는 공산당은 큰 잘못이 아닌가? 또 한 가지는 사람의 발원이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장방평은 전생에 발원했기 때문에 내생에 스스로 경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중국인들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을 때 그것을 위해 생명을 바치고 희생하겠다는 맹서를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일정한 시기가 되면 이 독한 맹세는 작용을 일으켜 실현하려 할텐데 두렵지 않은가. 그러니 “공산당을 탈퇴해 평안을 지키자”는 말은 정말 이치에 맞는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당, 단, 대를 탈퇴하도록 권한다면 거절하지 말고 부디 응하길 바란다.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237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