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劉曉)
【정견망】
윤회전생이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대 서적에는 적지 않은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세 가지 실화 사례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여자로 환생한 장군
절강(浙江) 사람 정란(鄭蘭)은 청나라 도광 연간의 거인(舉人)으로, 함풍 연간에 산동 안찰사를 지냈다.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후, 인과응보를 믿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산동의 한 동지(同知, 관직명)는 승보(勝保) 장군과 친분이 두터웠다. 승보가 살아있을 때 두 집안의 부인들은 자주 왕래하며 지냈다.
자료에 따르면 승보는 후기 청나라의 유명한 장수였다. 그는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고 서태후의 ‘수렴청정’을 돕기도 했다. 그러나 1863년 4월, 그는 교만하고 음탕하며 군량을 횡령하고 뇌물을 받은 점, 군대를 끼고 도적을 방치하며 황제를 속여 일을 그르친 점 등 여러 죄목으로 직위를 박탈당하고 북경으로 압송되었으며, 서태후에 의해 자결을 명받았다.
승보가 죽은 후, 그와 친했던 동지의 집에서 딸이 태어났는데 집안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승보의 환생이라고 말했다. 승보는 생전에 왼쪽 뺨 아래에 검은 혹 같은 살점이 있었는데, 이 여자아이에게도 그것이 있었다. 게다가 얼굴 생김새와 신태, 거동까지 거의 똑같았다.
정란의 친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승보는 생전에 여색을 밝혔기에 지금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것은 응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과는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이 사건은 양공신(梁恭辰)이 편찬한 《권계록(勸戒錄)》에 기록되어 있다.
부인 친구의 아들로 태어난 원관찰
양공신은 앞선 이야기의 주석에서 자신의 아들이 과거 급제 동기이자 절친했던 원관찰(袁觀察)의 환생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아들은 동치 갑자년(1864)에 태어났는데, 피부가 희고 깨끗하여 누구나 안아주기를 좋아했다. 양공신의 부인은 원관찰의 후처와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원관찰은 복건성에서 관직에 있을 때 태평천국의 난 중에 순절한 인물이다.
원관찰의 부인 좌(左) 씨는 시와 문장에 능하고 그림에도 소질이 있는 유명한 재녀였다. 양 부인은 그녀에게 대련(對聯) 한 폭을 부탁해 벽에 걸어두었다. 하루는 양 부인이 아들을 안고 벽을 등진 채 앉아 있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가 워낙 잘 울었기에 당시에는 다들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며칠 후 양공신이 아들을 안았을 때도 아이가 또 크게 울자, 사람들은 그가 아이를 안을 줄 몰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다음 날 친척이 아이를 안았을 때도 아이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이에 사람들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를 안은 사람이 벽을 등지고 앉으면 아이의 눈이 정확히 대련 하단에 적힌 낙관을 향하게 되는데, 아이는 낙관의 이름을 보고 대성통곡한 것이었다.
이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 한동안 사람들이 아이를 안고 대련을 마주 보게 하자, 아이는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으나 매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는 필시 원관찰이 환생한 것일 게다”라고 말했다. 다만 아이가 한 살이 넘어 말을 하기 시작하자, 대련을 봐도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돼지로 태어나 빚을 갚은 부자
절강성 동향(桐鄕)에 셈이 빠른 한 부자가 있었다. 같은 마을의 어떤 이가 그에게 은 12냥을 빌렸다가 이미 갚았으나 차용증을 돌려받는 것을 잊었는데, 부자는 얼마 후 다시 찾아와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은 12냥을 내주어야 했다.
십여 년 후 부자가 죽었고, 빚을 갚았던 그 사람의 집에서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매우 건실했다. 주인은 이 돼지를 잡아 고기를 팔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한 도살자의 꿈에 부자가 나타나 말했다. “내가 당초 그 집에서 은 12냥을 중복해서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명부(冥府)에서 돼지로 태어나 빚을 갚으라는 벌을 받았소. 내일 그 집에서 당신을 불러 돼지를 잡으려 할 텐데, 흰 바탕에 검은 꽃무늬가 있는 작은 돼지가 바로 나의 환생이라오. 간곡히 청하건대 나를 죽이지 말고 내 가족을 찾아가 나를 집으로 데려가게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소.”
다음 날, 과연 그 집에서 도살자에게 돼지를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도살자가 새끼돼지의 털색을 보니 정말 꿈속에서 들은 것과 같았다. 꿈이 진실임을 믿게 된 도살자는 돼지 잡기를 거부하며 주인집에 그 사연을 들려주었다. 주인집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워하며, 새끼돼지를 그 부자의 생전 이름으로 부르며 조롱했다. 그러자 돼지가 사람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크게 울부짖었고, 주인은 크게 놀라 땅에 쓰러진 뒤 한 달 넘게 앓고서야 나았다. 아마도 주인 역시 그런 방식으로 고인을 조롱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의 아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와 그 돼지를 사서 집으로 데려갔다.
위의 세 가지 사례는 육도윤회(六道輪迴)가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님을 증명해 주지 않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5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