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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기실: 천년의 법연 3-제자심진(諸子尋真)

작자/대륙대법제자

【정견망】

주(周)나라 유왕(幽王)이 거짓봉화로 제후들을 놀린 일로 신뢰를 잃은 후 마침내 나라가 망했다. 평왕(平王)이 동쪽으로 천도하여 동주(東周)가 시작되었다. 동주는 시작한 후 예악 방면에서 더욱 타락했는데 이 역시 춘추시기 제자백가의 출현을 위한 문화적 기초와 분위기를 다진 것이다.

나라도 “분리한 지 오래되면 반드시 통합되고 통합이 오래되면 반드시 나뉜다.”는 설이 있는 것처럼 문화나 사상영역도 마찬가지로 사상이 혼란한 시기와 사상이 통일되거나 평화가 공존하는 시기가 있다.

최근 나는 대륙에서 나온 중국고대사 책을 보았는데 모두 1980~90년대 작품들이다. 이 작품 중 몇몇 역사학자들이 공자를 무신론의 표방으로 보았다. 이런 전제 하에서 그에 관한 사적을 기술했다.

그들은 공자가 말한 “나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로 삼았다. 그러나 그들은 고의로 공자가 평생 주나라의 예를 부흥하려 한 일과 노자를 스승으로 삼은 사실을 빠뜨렸다. 이치대로라면 공자는 반쯤은 노자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또 노자를 매우 존중했다. 우리는 절대 공자를 무신론자로 대해서는 안 된다. 단지 중공의 어용문인들만이 막무가내로 무신론의 족쇄를 공자에게 씌우고는 이를 이용해 계속 백성들을 우롱할 뿐이다. 사실 공자는 언행 중에 인간의 도덕규범에 편중했을 뿐이다. 이는 공자가 인간세상에 온 사명이기도 하다.

중공이 공자를 이용한 말이 나온 김에 더 가소로운 것은 과거 린뱌오(林彪)가 중공과 다른 길을 가다 몽골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은 후의 일이다. 린뱌오의 집인 모가만(毛家灣)을 수색하다 공자와 관련된 책을 발견하자 전국적으로 “린뱌오 비판 공자 비판(批林批孔)”의 정치운동이 시작되었다. 상식대로라면 린뱌오가 정말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그가 무슨 책을 보았다는 이유로 그 책의 저자까지 비판해야 하는가? 게다가 저자는 수천 년 전의 사람이다. 린뱌오는 천안문 성루에 마오쩌둥 어록을 가져갔는데 그런데 왜 이것 때문에 전국적으로 마오쩌둥을 비판하지 않는가? 다시 말해 중공 당문화의 논리는 매우 황당하고 가소롭다. 중공이 그때 린뱌오와 공자 비판을 시작한 것은 단지 린뱌오를 구실로 삼아 진일보로 전통문화를 파괴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공자는 일생 인간의 이치를 완성하려 했기 때문에 평생 말한 것은 어떻게 사람이 되고 처사하며 나라를 다스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또 노자가 말한 일체는 표면적으로는 역시 사람이 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데 오성이 좋은 일부 사람은 그것을 이용해 더 잘 수련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후대의 진한(秦漢 서한)을 포함해 일부 사상가와 역사의 명장들이 앞 다퉈 출현했다. 이들은 중화문명을 위한 문화기초, 제도기초, 사상기초와 국가기초를 다졌다. 동시에 분봉하는 봉건제도에서 천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군현제도로 근본적인 변화를 완성했다.

위키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이런 기록이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한 애제 원수(元壽) 원년 (기원전 2년) 박사 제자 경로(景盧)가 대월지(大月氏)에 사신으로 갔다. 왕이 사람을 시켜 사신에게 《/span>부도경(浮屠經)>을 주었다. 동한 영평 10년(기원 67년)에 한명제가 서역에 사람을 파견해 두 분의 고승을 맞이했고 많은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왔다. 백마와 낙타를 이용해 수도 낙양으로 돌아왔으며 황제가 건물을 지어 그들이 거주하고 불경을 번역하도록 했으니 바로 지금의 백마사다.

백마사를 언급하자니 나는 2011년 낙양에 갔을 때 들른 적이 있지만 들어가진 못했다. 그냥 밖에서만 보았다. 겉모습은 이미 상점으로 변했고 관광객에게 각종 기념품을 팔았다. 그곳에서 나는 한 사람이 승복을 입고 절에서 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일을 보는 것을 보았다. 매우 괴상하게 느꼈다.

내가 백마사에 들어가지 않은 원인은 간단하다. 그때 백마사의 고적은 이미 문화혁명 시기에 다 파괴되어 2천 년간 전해오던 고적(古跡)이 철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중화 전통문화에 대한 중공의 한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나중에 그 속을 아무리 잘 수리하더라도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 한 것이다. 이런 사원은 들어가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시대에 대해 나는 세 사람을 이 시기 대표로 선택하여 그들이 법을 찾은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

(1) 동주 시기 왕실의 힘이 점차 쇠약해짐에 따라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이 다투는 국면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강남 오월(吳越) 지방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고인(高人)의 지도를 받아 학문이 높을 뿐만 아니라 병법에도 아주 정통했다. 하지만 산림에 은거하기를 원했다. 일부 제후국 왕들이 여러 차례 초청했지만 산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종남산에 가서 은거했다.

그곳에서 그는 상고시기 아주 유명한 도인을 만났다. 그 도인은 그에게 상고시기 헌원황제가 황산에서 용을 타고 승천한 일과 주 목왕과 서왕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오성이 확실히 아주 좋아서 수련을 더욱 동경했으며 도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20년을 수련했다.

이별할 때 도인이 말했다. “내가 가르친 이런 것들은 모두 겉모양일 뿐이며 모두 깔개다. 진정하게 되돌아갈 법을 얻으려면 너 스스로 찾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체는 모두 더 높은 법력을 갖춘 그 대각자가 진정으로 우주대법을 널리 전하기 위한 바탕을 깔뿐이다.”

그는 다급히 물었다. “다시 한번 명시해 주십시오.” 도인이 말했다 “그 대도를 전하는 분이 거처하는 시대에 사람들이 타는 수레는 역시 네 개의 바퀴가 있는데 말이나 소가 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갈 수 있다. 집에서 네모난 상자를 통해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다. 도를 전하는 그분은 손에 둥근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 속에 도안 하나는 태극이다.” “그럼 제가 몇 년이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도인이 품에서 8괘경(八卦鏡)을 꺼내 주문을 외우자 거울에서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가 하나씩 나타났다. 마치 책을 한 장씩 넘기는 것 같았다. 마침내 거리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사람들은 두 바퀴 달린 쇠로 된 수레도 타고 어떤 사람은 네 바퀴 달린 수레나 심지어 여러 바퀴 달린 수레를 타고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녹지에서 함께 한가지 공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도인이 말했다. “너에게는 여기까지만 알려줄 수 있다. 나머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기억하거라, 성심으로 찾으면 반드시 찾을 수 있다. 또한 너와 나는 금생에 사제의 인연을 다했다. 나도 더 이상은 너를 가르칠 수 없다. 기억할 것은 반드시 정진하고 노력해서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대도(대법)를 찾으려는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도인이 떠난 후 그는 또 종남산에서 십여 년을 더 머물렀다. 나중에 이곳에 있은 시간이 길어지자 일부 사람이 그가 수련하는 것을 교란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화산으로 들어가 매우 은밀한 동굴에서 또 30년을 수련했다.

이때 그는 이미 보기에 매우 늙었다. 어느 날 그는 밖에 나가 이 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래 진정한 대도를 만나는데 무슨 도움이 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화산을 나와서 세간으로 들어갔다. 생활하고 일을 하는데 편리를 위해 그는 두 동자를 찾아 동반했다. 어디를 가든 그는 사람들에게 수련과 사람이 되는 도리를 말했고 장래 성인이 대도를 전하는 정황을 알아보기도 했다.

일부 제후왕들이 이 이야기를 들은 후 사람을 보내 그를 이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매번 병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몇 차례 이렇게 하자 제후들은 포기했다.

나중에 그가 당시 연나라가 있는 요동에 도착하였고 오늘의 조양 봉황산에서 원적했다. 아무 소식도 없었고 흔적이나 기록도 전혀 남기지 않았다.

2011년 내가 요녕 조양 봉황산을 여행할 때 이곳이 원래 많은 수행인이 수행하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 소일 심지어 돈을 투자하는 곳으로 변했다. 말법시기 여러 마가 출동하여 세간을 화란시키고 위해가 심한데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그는 이후 황제로 태어나거나 황비, 무장 심지어 거지 등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무엇으로 전생하더라도 법을 찾으려는 결심은 없어지지 않았다. 금생에 그는 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고 온몸에 병이 생겨 죽으려고도 생각했다. 이런 고비에서 그의 친척이 그에게 《/span>전법륜을 한권 주었다. 그는 사부님의 사진을 보고 주위 정경을 쳐다보고 (자전거가 다니고, 승용차 몰고 다니는 사람들) 종전에 법을 찾으며 고생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부터 굳건한 대법 수련자가 되었다.

(2) 진시황이 수천 년의 제왕제를 만들어 봉건제를 군현제로 바꾸어 대대적으로 중앙 집권 통치를 강화했다. 그래서 지리적으로 중국을 다졌고 화폐를 통일하고 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신속하게 신전문화를 보급하는 길을 닦았다.

신전문화는 대체로 두 방면으로 나뉜다. 신이 직접 사람에게 준 것과 사람이 신의 문화를 계승한 것이다. 상고시기에는 많은 신들이 직접 사람의 몸으로 신적(神跡)을 드러내며 사람에게 문화를 전했다. 나중에 진(秦)나라 이후부터는 사람이 신의 점화를 받고 파견하거나 혹은 원래 신이 직접 사람에게 전해준 문화기초 상에서 개진한 현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신적을 드러내어 문화를 전해준 일도 있었지만 그리 많진 않았다. 가령 팔선(八仙) 등은 직접 수련 문화를 다져준 것이다.

진 왕조 시기에 사람들이 쉽게 소홀히 하는 현상이 하나 있다. 바로 진시황이 방사를 믿고 장생불로약을 찾아 수명을 늘리려 했다. 이에 서복(徐福)이 많은 동남 동녀를 데리고 청도의 낭아대에서 바다로 나갔고 마지막에 일본에 정착했다. 나중에는 그곳에서 토착인과 융합해 일본(大和) 민족을 형성했다.

요즘 사람들이 이 일을 언급할 때면 모두 일종 반면적인 예로 본다. 진시황이 사기를 당했고 소위 ‘불로장생약’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만약 역사의 각도에 서서 이 모든 것을 본다면 새로운 견해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바로 이런 추구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천상의 집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추구하는 과정에서 각종 외재적인 방법을 추구하는데 첩경을 찾기 위해서다. 오늘 날 인도의 일부 각자들이 항하 아래에서 죽으면 천당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그건 안 된다. 한 사람의 도덕 품행을 제고하지 않으면 전혀 더욱 높은 층의 생명 경지로 도달할 수 없다. 국왕이든 서민이든 모두 이 법칙을 지켜야 한다.

낭야대(琅琊台)를 말하면 그곳에 진2세가 쓴 제사(글)가 있고 중국 최초의 천문대(관성대) 유적지가 있다. 진나라에서 법을 찾은 이야기는 낭야대에서부터 말해보자.

이 아가씨는 진나라 때 낭야대 지방관의 딸인데 여려서 매우 우둔했다. 세 살이 되어서도 엄마 아빠를 부르지 못했고 울 줄도 몰랐으며 하루 종일 멍하게 창문 밖만 바라보았다.

어느 날 이곳에 구걸하는 거지가 찾아왔는데 아이를 데리고 제장성(齊長城, 현재 청도 시 황도구 경내)에 가서 한번 보겠다고 했다. 아이 부친이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이 거지가 가난할 뿐 아니라 또 좀 미쳤구만.’ 하면서 세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장성으로 가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여 거지의 요구를 거절했다.

거지는 웃으며 말했다. “삼일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아이 부친은 별로 더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이 되자 아이가 갑자기 고열이 나며 내려가지 않았다. 다음날까지 열이 내리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의원을 찾고 약을 썼어도 효과가 없었다. 마침내 아이가 죽었다. 부모는 매우 상심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옆에서 권하기를 아이가 매우 바보였으니 일찍 죽어 죄를 덜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부모의 마음은 조금 위안이 되었다.

삼일 째가 되자 거지가 와서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울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지도록 울었다. 부모는 마음의 상심이 더해졌다. 아이 부친은 이때 감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 거지는 더 비정상이라고 느꼈다. 울음을 그친 후 거지는 관을 열어 여아의 시체를 꺼내어 안고서는 다시 크게 곡을 하며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눈물 콧물이 아이 얼굴에 다 흘렀다. 아이의 부친은 더는 볼 수가 없어서 사람을 불러 거지를 끌어냈다.

또 사람을 시켜 아이를 잘 염하여 관에 넣어두라고 했다. 넣는 과정에 식구들은 원래 굳었던 아이의 몸이 부드러워진 것을 발견했다. 다시 보니 얼굴이 홍조를 띈 것을 알았다. 그래서 즉시 부친에게 보고했다. 아이의 부친이 보고 즉시 의원에게 보라고 하니 의원이 맥이 약하던 것이 강해졌다고 하며 아이의 코를 만지자 조금씩 강해졌다.

이때 또 거지가 나타나서 말했다. “이 아이는 하늘에서 파견해 온 것입니다. 제가 아이를 데리고 제장성에 가겠다고 한 것은 아이에게 약간이나마 과거의 기억을 되찾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도무지 동의하지 않으니 아이는 한번 죽어야 했습니다. (그 뜻은 본래 아이는 이 같은 난이 없어야 하는데 식구가 협력하지 않아 이 같은 난이 아이에게 내렸으며 이후에 좋아졌다는 것이다)” 아이의 부친은 이 말을 듣고 거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다. 또 거지가 아이를 구했다 치고는 말했다. “만일 아이가 살아난다면 데리고 가시오, 아이만 낫는다면 우리는 안심하겠소.”

잠시 후 아이가 깨어났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여전히 멍했다. 그러나 거지를 보고는 먼저 손을 뻗어 안기며 매우 즐거워했다. 부모는 그걸 보자 분명 많은 인연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거지에게 아이를 안고 가도록 허락했다.

거지는 아이를 데리고 제장성으로 가서 아이에게 아이가 전생에 제나라에서 서로 만난 인연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는 비록 어렸지만 거지의 말을 알아들었고 울거나 시끄럽게 하지 않으며 줄곧 미소를 지었다. 몇 년 후 다른 사람이 다시 제나라의 그 인연을 이야기 하면 그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중에 거지는 여아를 물 위에서 경공을 펼칠 수 있는 여자 사부에게 맡겼다. “이 아이는 근기가 매우 심후하니 부디 잘 키워주세요. 그녀가 장래 어떤 선비를 만나게 되면 내가 다시 와서 맺어줄 것입니다.”

여아는 사부를 따라 공부를 배웠다. 원래의 바보 같은 점은 다 씻어버렸고 매우 총명하고 영리하게 변했다. 근기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사부가 한 말을 매우 빨리 깨달았고 또 매우 선량했기 때문에 많은 일이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되었다.

한번은 사부가 그녀를 데리고 교주만의 해면 위에서 경공을 연습했다. 이때 마침 황해 용왕이 일부 다른 용왕과 해신들을 초청해 연회를 열고 있었다. 당시 여러 신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 사도 두 사람이 해면에서 파도를 타고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뭇 (해)신들은 한때 흥이 일어나 분분히 해면으로 솟아나왔고 자기들의 신통을 나타내었다. 많은 신은 고의로 각종 계층과 직업을 가진 사람의 모양으로 변했다.

여자아이와 사부는 처음에 놀라서 자세히 쳐다보고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문득 어떤 해신이 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비틀비틀하면서 해면을 걸었다. 일부러 그는 용머리 지팡이를 짚었다. 어떤 신은 상투 두 개를 튼 어린이 모습으로 변해 바다 위에서 공중제비를 하고 있었다. 어떤 신은 미녀나 아름다운 부인으로 화해 아름다운 바구니나 연꽃 잎 위에 앉아 있고 어떤 신은 비파를 타거나 피리를 불고 또 표주박으로 변하는 등 한껏 재미있게 놀았다.

사제는 한참 보다가 갑자기 멀리서 거위 털로 만든 부채가 날아오는데 부채를 따라 준수한 젊은 사람이 나타났다. 이 젊은이는 해신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장래 당신들은 나와 함께 한 가지 충의로운 일을 연기할 것이오, 장래 진정하게 정법을 얻도록 준비하는 것이오. 때가 되어 만일 당신들이 정말로 잘할 수 있다면 끝없는 우주 중의 강이나 바다에서 당신들 마음대로 노닐 것이오!” 말을 마치고 아이 사도 면전으로 날아와 부탁했다. “금후 그녀(아이)는 일부 마난을 만날 것이니 잘 보호하세요. 아무리 힘들어도 선량을 유지하고 말겁 시기 정법이 전해지기를 기다리세요. 나는 용왕을 만날 일이 있습니다.” 하고는 젊은이는 깃털 부채로 용왕을 찾으러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이 사도와 뭇 해신들은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었기에 매우 감동을 받았다. 사부는 뭇신들에게 말했다. “이왕 신의 점화가 있었으니 그럼 우리 이번 생에 깊은 연분을 맺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래 충의지사를 해결할 때 다시 만나기로 하지요. 장래 정법이 인간에 널리 전해지는 시기에 반드시 서로 잘 부탁합니다.”

이후 아이는 정말 그 준수한 젊은이의 말처럼 마난이 적지 않았다. 온 얼굴에 수포가 나기 시작해 원래 수려했던 작은 얼굴이 물집이 생겨 보기 흉해졌다. 아이의 마음도 좋지 않아 나중에 사부는 늘 일깨웠으며 아이를 데리고 명산으로 의원을 찾아 치료하려 했다. 나중에 어느 은사가 알려주기를 황산의 천도봉 꼭대기 부근의 샘물로 고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얼른 그곳에 갔다. 천도봉 아래에 도착하여 비로소 이 산봉우리가 절벽임을 알았다. 전혀 올라갈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전혀 사도 두 사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날로 천도봉은 구름이 아득했고 매우 짙었는데 그들은 물위에 떠다니는 재주를 이용하여 쉽게 구름을 딛고 올라가 그곳에 도착했으며 얼굴의 물집을 깨끗이 씻었다. 씻은 후 문득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황산을 관리하는 신이다. 너희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연분이다. 장래 너희들이 정법을 얻으면 반드시 내게 알려주어야 한다.” 아이는 말을 잘 듣지 않고 말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구름을 타고 와야 할텐데요.” 그 음성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때가 되면 내가 너의 학생이 될 것이니 이 인연을 잊지 말아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녀들은 황산을 떠나 사방으로 떠돌아 다녔다. 시간이 점점 지나갔고 아이는 자라서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사부는 그녀가 속세 인연이 다하지 않은 것을 알고 그녀에게 좋은 사람을 찾아주려 했는데 정말 어려웠다.

한번은 그들이 함께 남해에 도착했는데 연일 큰 비가 내려 그들은 작은 섬에 갇혀 있었다. 원래의 집은 큰 바람에 뒤집혀버려 갈 곳이 없어서 작은 동굴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이틀이 지나 날이 맑아지자 그들도 나와서 태양을 쬐고 날씨를 좀 보려고 했다. 동굴을 나오자마자 어느 거지가 마주쳐 오는 것을 보았다. 또 매우 누추한 남자를 데리고 있었는데 이 남자의 추함은 박처럼 작고 대추처럼 못생겼다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것도 칭찬하는 말이었다. 거지를 보자 여아의 사부는 얼른 나아가 인사를 했으며 상대에게 이 십여 년간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상대방은 자기의 경력을 말했다. 마지막에 말하기를 아이와 그 사이의 혼인의 인연을 맺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여자 아이는 그 말을 듣고 그리 즐겁지 않았으며 작은 얼굴이 즉시 침울해졌다.

거지는 그녀가 기뻐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럼 당신들 이야기를 해보시오.” 여자아이 사부를 불러 나가서 산보하자고 했다. 동굴에는 여자아이와 추남만 남았다.

여자아이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신을 보았고 사람도 보았다. 자기 운명이 평범하지 않음을 느꼈다. 추남에게 말했다. “공부를 좀 했어요? 해신을 본적이 있나요?” 상대는 말했다. “책은 15년 읽었고 내가 읽은 책(죽간)을 쌓으면 사람 두 길 높이가 될거요. 내가 과거 남해의 일부 해신 궁전에 간적이 있고 그들 궁전에서 며칠 보냈어요.” 여자는 그가 허풍을 친다고 느껴 말했다.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나는 검사할 수 없어요. 하지만 해신은 당신의 이런 모습에 놀라 달아났을걸요. 어떻게 며칠이나 지낼 수 있었죠?” 이 말은 듣기 거북했다.

추남은 담담히 말했다. “사람 마음이 없는 신 앞에서는 나는 매우 준수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있는 사람 앞에서는 나는 매우 추합니다.” 말속에 가시가 있어서 비록 약간 건드렸지만 여자는 여전히 반신반의했다. 추남은 여자가 잘 믿지 않는 것을 보고 그녀를 데리고 동굴을 나가 해변에 도착하여 주문을 외웠다. 잠시 후 아름다운 궁전이 바다 속에서 나타났고 추남이 말했다. “우리 저기 가봅시다.” 여자의 답을 듣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궁전에 들어갔다. 이 궁전을 보니 인간의 궁전과 화려함으로 형용할 수 없었다. “선운십족(仙韻十足)” “만반영롱(玲瓏萬千)” 등으로 그런 뜻을 형용할 수 있었다.

그 속에 매 하나의 물건은 어떠한 사람의 마음이 없는 상태에 도달해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었다. 또 그 특유의 현묘한 점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때 여자아이와 추남은 해신을 향해 절을 올렸다. 종전에 교주만에서 본 해신이 해면에 나와서 신적을 드러낸 일과 나중에 깃털 부채 청년이 말한 것을 한번 말했다. 그 해신이 말했다 “나중에 나도 그들의 일을 들었다. 이 일 때문에 나는 너와 네 사부를 보고 싶었다.” 이때 여자의 사부와 거지도 이 궁전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함께 모이자 시원하게 이야기 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의 사람 마음은 점점 깨끗해졌고 특히 미추에 대한 마음이 깨끗해졌다

다시 추남을 보자 이때 단번에 매우 영준하게 변해 있었다.(사실 소위 말하는 ‘추남’은 본래 추하지 않고 다만 ‘추’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지 여자를 떠보고 점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신의 대전을 떠난 후 사람들은 육지에 돌아왔다. 여자의 사부와 거지는 그들과 한동안 함께 걸었고 나중에 추남에게 부탁했다. 반드시 여자아이에게 신심이 있도록 해야 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두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했다. 절대 법을 찾는 신심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그들 부부 두 사람은 낭야대로 돌아와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부모님이 보자마자 기뻐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도 마음이 움직였다. 이곳에 온지 십여 일이 지났을 때 여자 아이의 온몸에 통증이 나타났는데 고통을 억제할 수 없었다. 무수한 의원을 찾아도 연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다급해진 부친은 줄곧 그 늙은 거지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거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정황을 맞이하여 추남은 여전히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았으며 잘 간호했다. 그녀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을 보고도 돕지 못하니 이런 괴로운 느낌을 오직 자기만 알았다.

나중에 여자가 너무나 아파 견딜 수 없을 때 그에게 자기를 업고 자기가 어렸을 때 가본 적이 있는 우물 옆에 가보자고 했다. (사실 그녀는 죽으려고 했다) 그녀의 궁리를 모르는 그는 곧 아이를 업고 그 우물가로 갔는데 여자는 그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곧 우물에 떨어졌다. 그가 손을 뻗었으나 잡을 수 없었다. 사람을 불러 밧줄을 가져와 여자를 구해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 소리가 없었다. 그는 매우 후회했으며 역시 우물에 뛰어들었다. 그 속은 매우 컴컴했기 때문에 한참 지나서야 정신이 들었으며 알고 보니 이곳에는 목까지 차지 않은 진흙이었고 여자도 그 속에 있는 것을 알고 얼른 아이를 묶어서 먼저 구출해내고 자기도 나중에 우물에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은 그들을 깨끗이 씻고 집에서 휴식을 시켰다. 삼일이 지나 여자는 깨어났고 아픔이 다 나았다. 이후는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늘 놀러 다녔는데 이번의 경험 이후 여자는 속세의 일에 대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일은 더 알맞게 원만하게 처리했다.

그 일생이 끝난 후 여자는 이후의 전생에서 많은 마난을 겪었다. 독살당하거나 혹형으로 시달렸으며 유배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다른 신의 가호하에 종래 장래 말법시기에 널리 전해질 우주 대법을 찾는 일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삼국시대에 제갈무후가 깃털부채를 들고 두건을 쓰고 나온 그 시대에 그녀와 그 때의 해신들은 부동한 옷으로 바꿔 입고 이 한부의 충의의 연극을 연기했다.

이번 생에 여자아이는 산동에서 법을 얻었으며 교육 일에 종사하는데 그 속의 학생 중에 물론 그때의 산신도 있다.

(3) 동한 시기는 불법이 중국에 전해지던 초기였다. 중원 민족과 북방 흉노와 서역 민족 사이에 융합이 점점 커졌고 국내에 제지술이 발명되어 문화 전파가 더욱 편리해졌다. 외척과 환관이 정치에 간섭했는데 그것은 역사의 연극 중에 반면적인 역할과 안배일 뿐이다.

이 이야기는 동한 초기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개국 장군의 후예였다. 비록 가정환경이 좋아서 비단 옷에 좋은 음식을 먹었지만 어려서부터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청정하고 조용히 책을 보는 것을 좋아했으며 달을 감상했다. 무장의 후예에 속했기에 기마와 무예를 좋아했다.

자란 후에 식구들은 그녀를 다른 개국 장군의 후예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식을 올리기 며칠 전날 도망을 갔으며 식구들은 어쩔 수 없어 그녀가 병으로 사망했다고 하며 사실을 숨겼다.

그녀가 집에서 도망친 후 흉노의 변방으로 달려갔다. 비록 여자였지만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흉노 경계에 많은 신기한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아 비록 그곳이 매우 위험했지만 여전히 갔다.

변방에 도착하여 순조롭게 흉노 경내로 진입했다. 이곳에 그녀는 흉노인으로 변장하고 사처에 신기한 일이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망망한 고산과 초원에 그녀의 족적을 남겨놓았다. 그녀가 말을 타고 항애산(杭愛山)에 도착했을 때 어쩐 일인지 말이 곧장 깊은 산속으로 달려 들어가 길을 잃었다. 그년 배고프고 목말라 말을 나무에 묶어놓고 휴식을 취했다. 이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두 손을 빗물을 받아 해갈했다.

이때 자기가 내내 고생한 일을 생각하고 금생에 무슨 우연을 만날지 생사를 끝낼 법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와도 아무것도 만나지 못하고 또 많은 어려움만 겪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자 슬픔이 올라왔다. 그래서 엉엉하고 울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어느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누가 밖에서 울어 내 꿈을 깨우느냐?” 그녀는 듣고 놀라 눈물을 닦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잠시 후 머리가 더부룩한 노인이 산 뒤에서 나왔는데 걸으면서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나왔고 입으로는 중얼거렸다. “좋은 꿈이 가로막혔어…”

이때 그녀는 어떤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목마른 것도 잊고 몸을 일으켜 노인 앞으로 다가가 깊은 예를 표하고 말했다. “어르신 신선의 일이나 생사를 끝낼 법에 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까?” “이런 건 나도 잘 모르네. 나는 어떤 사람이 여기에서 낙양으로 가는데 하루 만에 갈수 있다는 것만 아네.” “그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제가 만나 뵙고 싶습니다.” “아이타 지구에 있다고 들었어.” 그녀는 즉시 말을 차고 찾아가려 했다. 노인이 말했다. “먼저 급하게 가지 말고 이곳에 며칠 머물게. 며칠 후 내 친구들이 모일텐데 아마 때가 되면 그들이 일부 문제의 답을 해줄거야.”

그녀는 그 말이 옳은 것 같아 노인을 따라 뒤쪽에 있는 동굴에 머물렀다. 그곳에 가서 보니 노인에게도 3명의 딸이 있는데 나이가 자기와 비슷해 매우 잘 어울렸다.

대략 열흘 정도 지나자 노인의 친구 몇 명이 방문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사방을 떠돌아다니는 협객이었고 어떤 사람은 음산의 산신이었고 또 어떤 사람은 중앙아시아의 장사꾼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같은 군체에 속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의심하고 있을 때 그중 협사가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우리 형제 몇 명은 지난번 사부의 명을 받들고 하산하여 각자 직업을 찾아 50년 후 다시 모이기로 했고 우리가 생사 해탈할 법을 찾았는지 보기로 했습니다.”

노인은 “하산한 후 줄곧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은거하여 가정을 이루고 세 딸을 두었지요.” 그 산신이 말했다. “하산한 후 음산으로 돌아다니다 그 산신이 나쁜 요정에게 미혹되어 나쁜 짓을 한 것을 보고 그것을 천제에게 보고했습니다. 천제는 나더러 그곳의 산신이 되라고 했습니다. 음산을 잘 관리하면 장래 역사의 큰 연극이 끝날 때 쓸모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는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천제는 말속에 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음산 산신이 보충했다.

중앙아시아의 장사꾼은 말했다. “나는 하산 후 이렇게 오랫동안 약간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 그들에 생사를 해탈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장래 인간 세상에 일종 방법이 나올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는 그들 역시 분명하지 못했소.”

사방을 떠돌아다니는 협사가 말했다. “나는 곤륜산에 간적이 있는데 곤륜산에서 천년 수도한 사람을 만나 들은 이야기가 있소. 그는 장차 인간세상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고 쇠로 만든 수레가 달릴 때 아마도 진정 생사를 해탈할 대법이 전해 나올 때라고 했습니다. 그때 곤륜산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기와도 진도를 구하러 온 사람이 매우 드물고 대개 놀러 온 것이며 쇠로 만든 수레를 타고 오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 말을 듣고 이번 생에 법을 만나기는 어렵다고 느꼈다. 하지만 어쨌든 장래 만날 기회가 오겠지 했다. 바로 이때 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며칠 전에 꿈을 꾸었는데 어린애로 변했소. 엄마에게 안겨 함께 어떤 반에 참가했는데 반에서 선생님의 하는 것이 생사해탈의 법을 말해주는 느낌이었소, 내가 자세히 들어보려고 했는데 바깥에서 나는 울음소리에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나가서 보니 생사해탈법을 찾으러 온 저 처녀가 있었습니다. 당시 보고서 첫눈에 흉노인이 아니라 중원인임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걸어와 생사해탈 법을 찾으려 하다니 대단합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도 그녀에게 감탄하는 눈빛을 보냈다. 나중에 사람들이 그녀를 제자로 삼으려 했다. 그녀는 한참 생각하다가 완곡하게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들 앞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없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곳에 한동안 머문 후 또 계속 북으로 향했고 마침내 바이칼호 옆에 거처를 정해 그곳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있었다.

나중에 삼국시기에 그녀는 위나라의 대장으로 전생했으며 당나라에서는 곽자의의 며느리가 되었다. 송나라 때는 유명한 도공이었고 명나라 때는 유명한 화가였으며 청나라 때는 유명 서예가였다. 금생에는 학자 가문에 태어나 여자 몸으로 법을 얻었다. 비록 많은 고난을 겪었다고 할 수 있으니 천년동안 연이어 온 그 소원은 바뀌지 않았다.

바로 다음과 같다.

예악이 붕괴하고 제자백가가 나타나 해탈법을 천년이나 찾아다니며온갖 험한 고생 다 겪고오늘 날 법을 얻어 영원히 전진하네!

禮樂崩壞諸子現追尋解脫千年前曆盡萬難經萬險今朝得法永向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5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