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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을 아는 사람들

심평(心平)

【정견망】

낡은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지하실에 놓여 있던 오래된 재봉틀을 한 대 발견했다. 온 힘을 다해 끌어냈는데, 상판 위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고 철제 프레임도 이미 녹슬어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 이런 기계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쓰시던 모습을 본 것이 전부였다. 재봉틀은 크지 않지만 그 안에 오묘한 이치가 담겨 있었고 디자인 감각이 뛰어났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평범한 책상 같아서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평소에는 나의 전용 책상으로 썼다. 오직 사용할 때만 상판 아래에서 재봉틀을 위로 뒤집어 꺼내곤 했다. 외할머니가 발로 페달을 밟고 몸을 숙여 옷을 짓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어? 이거 재봉틀 아니에요?“

나는 깜짝 놀랐다. 초등학생인 딸아이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너도 아니?”

“당연히 알죠. 재봉틀을 이렇게 나무판에서 꺼내서, 이렇게 바퀴를 굴리고, 발로 이렇게 밟는 거잖아요.”

딸아이는 말을 하며 흉내를 냈다.

“아는 게 아주 많구나? 누가 사용하는 걸 봤었니?“

“누가 쓰는 걸 본 적은 없어요. 이게 처음이에요.“

“어쩜 그럴 수가 있어?”

“정말이에요! 정말 처음 봐요.“

“그럼 어떻게 이게 재봉틀인지 알았어? 게다가 어떻게 쓰는지도 알고 말이야.”

“그냥 아는 거죠. 보자마자 알았어요.”

나는 딸아이를 바라보고 나서, 심지어 아직 열어보지도 못한 그 재봉틀을 다시 바라보았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이 일은 자연스럽게 일찍이 보았던 몇 가지 옛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했다.

양호(羊祜)는 서진(西晉)의 명신으로, 《진서(晉書)-24사 정사 중 하나》에 다음과 같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있다. 양호가 다섯 살 때, 갑자기 문뜩 생각이 나서 유모에게 전에 쓰던 금팔찌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유모는 아이가 기억을 잘못한 것으로 여겨 “너는 금팔찌 같은 건 없단다”라고 말했다.

꼬마 양호는 유모가 자기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그녀를 데리고 이웃 이(李) 씨의 집으로 갔다. 이웃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뜰 안의 뽕나무 아래로 직행하여 잠시 뒤지더니, 그곳에서 금팔찌 하나를 찾아냈다. 꼬마 양호는 매우 기뻐하며 금팔찌를 들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이웃사람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떻게 내 죽은 아들이 예전에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갈 수가 있느냐?”

유모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멍해져서, 방금 있었던 일을 이웃에게 낱낱이 들려주었다. 비로소 이(李) 씨는 이웃집 아이가 바로 자신의 죽은 아들이 환생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비단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수 문제 개황 연간에 최언무(崔彥武)는 위주자사(魏州刺史)였다. 어느 날, 그가 성읍을 순시하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매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나는 일찍이 이곳의 한 부인이었는데, 지금도 내 집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네.“

그러면서 그는 수행원들을 이끌고 거리와 골목을 누비며 어떤 사람의 문앞에 이르렀다.

그가 문을 두드리자 방에서 한 노인이 나왔고, 노인은 최언무를 보자 절을 하며 맞이했다. 그와 노인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 정당(正堂)에 이르렀다. 바닥에서 여섯 칠 척 높이의 벽이 튀어나온 곳을 바라보며 노인에게 말했다.

“내가 예전에 읽던 불경과 다섯 개의 금비녀가 이 벽 속에 숨겨져 있소. 불경 제7권 끝부분의 글자들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난 지금도 제7권을 암송할 때면 늘 잊어버리곤 하지.”

이에 그들이 벽을 뚫어보니 과연 경서와 금비녀가 나왔다. 집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제 아내는 평소에 늘 이 불경을 암송했었지요. 금비녀도 여기에 있었고요.”

최언무는 또 무언가가 생각나는지 뜰 안의 회화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일찍이 잘라낸 머리카락을 나무의 구멍 진 곳에 넣어두었었지.“

수행원이 올라가 살펴보니 과연 그 안에서 긴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이러한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타고난 것이지만, 수행을 통해 서서히 깨달은 이들도 있다.

북송이 대문호 소동파(蘇東坡) 역시 일찍이 자신의 전생에 대한 정보를 여러 차례 내비친 적이 있다. <남화사(南華寺)>라는 시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찌하여 조사(祖師)를 뵈오려가,
본래의 참모습을 알아보려 하네.
우뚝 솟은 탑 속의 사람이여,
내게 무엇을 보았느냐 묻네.
가련하구나 명상좌(明上座)여,
만법을 깨치기 번개 같네.
물을 마심은 이미 스스로 아나니,
달을 가리키매 다시는 현혹되지 않네.
나는 본래 수행인이니,
삼세를 두고 정성스레 갈고닦았네.
중간에 일념을 놓쳐,
이 백 년의 꾸지람을 받는구나.
옷깃 여미며 진상(真相)에 절하니,
북받치는 눈물 비와 싸락눈처럼 내리네.
스님의 석단천(錫端泉)을 빌려,
화려한 말만 앞서는 내 벼루를 씻으리라.

雲何見祖師,要識本來面。
亭亭塔中人,問我何所見。
可憐明上座,萬法了一電。
飲水既自知,指月無複眩。
我本修行人,三世積精練。
中間一念失,受此百年譴。
摳衣禮真相,感動淚雨霰。
借師錫端泉,洗我綺語硯。

선종의 6조 혜능이 주지하던 남화사에서 소동파는 자신이 삼세를 수행한 사람이었으나, 단 일념의 차이로 수행이 끊어져 결국 번잡한 세속과 명리의 장으로 몸을 받아 태어났음을 깨달았다.

〈장자야가 보내온 시 3수에 화답하며 — 옛 자취를 지나며(和張子野見寄三絕句‧過舊遊)>에서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전생에 나는 이미 항주에 있었으니,
가는 곳마다 늘 옛날에 놀던 곳 같구나.
다시 동소(洞霄 관음산의 도관)의 은일한 관리가 되고 싶으니,
한 칸 암자의 한가한 땅에 나를 잠시 남겨다오.“

前生我已到杭州
到處長如到舊遊
更欲洞霄爲隱吏
一庵閑地且相留

소동파는 자신이 전생에 이미 항주에 온 적이 있으며, 이르는 곳마다 모두 옛 자취를 유람하는 것 같았고, 게다가 이곳에서 계속 수행을 이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고 말했다.

전당(錢塘 항주) 서호(西湖)의 수성사(壽星寺) 노스님이 과거에 이런 일을 말한 적이 있다. 소동파가 항주에 왔을 때 일찍이 참료자(參寥子)와 함께 수성사의 방장실에 올라, 참료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평생에 처음 이곳에 왔는데도 눈앞의 경치가 매우 익숙하고, 모두 예전에 와보았던 곳처럼 느껴지네. 이곳에서 참당(懺堂)까지 마땅히 아흔두 계단이 있어야 하네.“

그들이 사람을 보내어 세어보게 하니 과연 아흔두 계단이었다.

소동파는 또 말했다.

“내 전생은 이곳의 스님이었는데, 지금 절 안에 있는 이 스님들은 모두 나의 한 법문(法門)의 사람들이네.”

어찌 옛날뿐이겠는가. 지금 인터넷에서 ‘재생인(再生人 다시 환생한 사람)’, ‘환생(轉世)’ 등의 단어를 검색해 보더라도 수많은 실제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가령 중국의 기상 프로그램 진행자인 송영걸(宋英傑 쑹잉제)의 아들, 군인으로 환생한 왕펑카이(王鵬凱), 평양향(坪陽鄕)의 재생인 마을……. 이러한 실제 사례들은 사실 윤회가 고인의 풍부한 상상력이나 미신의 산물이 아니라 실재로 존재하는 현상임을 오래전에 증명해 주었다.

만약 언젠가 당신의 아이가 갑자기 당신에게 어떤 ‘이상한 말’을 한다면, 서둘러 제지하려 들지 말라. 어쩌면 그(녀)의 배후에도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