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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암화명](柳暗花明) 유래

[정견망] 육유(陸游)(기원 1125-1210년)은 南宋(기원 1127-1279년)시기 애국 시인이다.

금나라(기원1115-1234년)에 대한 항거를 주장한 것으로 육유는 여러 번 주화파(主和派)의 비난을 받았다. 기원 1166년에 42살 육유가 관직에서 떨어졌다.

나라에 보답할 수 없게 되어 마음속에 비분(悲憤)을 품고 육유는 고향 산음(지금의 절강 소흥)에 돌아갔다. 그는 온종일 집에서 책을 읽었고 늘 등불과 같이 밤을 지새웠다.

이듬해 4월은, 시골 곳곳이 북치고 괭가리를 불면서 산신제를 준비하느라 들끓는 분위기였다. 육유는 갑자기 20리 밖 서쪽 산에 가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지팡이를 짚고 집을 나섰다. 가면 갈수록 점점 산길은 돌아가게 되었다. 두 시간 남짓 더 가니 점점 인가가 드물었다. 그가 한 비탈에 이르러 바라보니 앞에는 겹겹이 놓인 산과 물 뿐이며 길은 끊기고 사람은 없어 도저히 어디로 갈 방도가 없었다. 육유는 흥미에 도취되어 돌아서려 하지 않고 비탈을 따라 걸어서 산자락을 돌아가니 멀지 않는 곳에 광활한 논이 나타났고 작은 마을이 버들이 무성하여 그늘이 짙고 꽃이 활짝 피어 환하게 아름다운 것과 어울려(유암화명) 전설에서의 별천지(이상향)과도 같았다. 육유는 아주 기뻐하면서 마을에 들어섰다. 의복이 간수하고 마음이 순진한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빚은 술로 이 손님을 환대하였다.

이 잊을 수 없는 체험과 느낌이 있어 육유는 다시 분발하였다.

“유암화명”은 대치하여 양보하지 못할 상황에서 갑자기 轉機가 나타난 것을 가리킴.
또 버들은 무성하여 그늘이 짙고 꽃이 활짝 피어 환하게 아름답다.
즉 시골의 아름다운 봄 경치를 이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