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배역을 어찌 자신이 결정할 수 있으랴?
글:천년 구름
【정견망 2006년 6월 12일】
3. 연극 배역을 어찌 자신이 결정할 수 있으랴?
나는 일부 신화와 전설에서, 예를 들어 《봉신연의(封神演義)》, 《서유기》 속의 많은 신들이 모두 진짜이고 그들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 중 일부 기본적인 사실 역시 진실임을 발견했다.
민간 설화 속의 설강(薛剛)이 당나라를 반대한 후 설가의 온 식솔들이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반리화(樊梨花)가 300여 명의 설씨 가문을 공중으로 들어올리려 할 때 반리화의 사부가 나타나 이는 하늘의 뜻이니 하늘의 뜻을 위배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여 사람들을 내려놓았는데(그 결과 측천무후에 의해 다 죽임을 당했음) 이런 불가사의한 일도 진짜였다.
일부 신화와 전설에서는 옥황상제에게 7명의 딸이 있다고 하는데 이말도 빈말이 아니다. 옥제에게는 7명의 딸과 아들 2명이 있었다. 그리고 신화인물 속의 나타(哪吒), 양전(楊戩), 화산성모(華山聖母)는 모두 진짜다. 일곱 공주가 인간세상에서 환생한 일에 대해서는 나 역시 아주 똑똑히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아래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일부분만 이야기할 것이고 민간전설과 신화에서 말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만 중점적으로 말하겠다. 아마 일부 사람들은 내가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다고 할 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만약 여러분이 믿지 못하겠다면 그냥 이야기로 간주하기 바란다.
(1) 양전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양전은《봉신연의》,《서유기》에서 나오는 인물이며 또 역사의 진실한 인물이다. 단지 그의 어머니에 관해 잘못 전해진 것이 있다. 신화소설 《서유기》에서 작가는 양전의 어머니를 옥황상제의 여동생이라고 했지만 사실 옥황상제는 천계에 누나만 있을 뿐 여동생이 없으며 더욱이 그 여동생이 사사로이 속세에 내려온 일이 없다. 그리고 당시 양천우(楊天佑)의 배필은 대공주로 즉 대공주가 바로 양전과 화산성모의 어머니에 해당한다.
당시에는 신(神)과 사람(人)이 함께 하던 연대이므로 많은 신들이 모두 인체를 갖고 있었다. 대공주와 양천우의 혼인은 옥황상제가 결정한 혼인이며 대공주가 사사로이 세속에 내려온 것이 아니다. 양천우의 집은 대대손손 선량하고 공덕을 쌓았는데 본래는 자손이 가득해야 했다. 후에 대공주는 일남일녀를 낳았으니 바로 양전과 화산성모이다. 대공주가 두 아이를 낳은 얼마 후 인간세상에서는 전란이 발생했고 대공주는 할 수 없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 궁전으로 올라갔다. 당시 화산성모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대공주의 행위는 천계를 오염시켰고 옥황상제는 신의 계율에 따라 대공주를 하늘 감옥에 넣었다. 두 아이는 모두 14살 난 7공주가 데리다 키웠다. 후에 7공주는 인간세상에서 평민으로 태어나야 했고 대공주 역시 속세에 내려와 7공주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로써 7공주가 자신의 아이들을 키워준 은혜에 보답한 셈이다.
(2) 7선(仙)은 사사로이 인간 세상에 내려간 것인가?
7선이 속세에 내려와 동영(董永)과 혼인한 것도 진실이다. 신화 《천선배(天仙配)》도 사람과 신이 함께 있었던 그 시기에 발생했으며 당시에는 신선들도 인체가 있어 모태에 들어갈 필요 없이 직접 인간 세상으로 올 수 있었다. 7선이 내려와 동영과 혼인한 것도 옥황상제가 결정한 혼인이다. 주로는 동영이 자신을 팔아 부모의 장례를 치르고자 한 마음이 천지를 감동시켰기 때문이었다. 후에 7선은 속세에 내려와 백일만 머물렀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 인간세상의 생활이 너무나 고달팠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집은 참대로 지었고 밥그릇은 흙을 구워 만든 것이며 가끔 한 밤중까지 잠을 자다가 큰 바람이 불면 방 전체가 사라질 때도 있었다. 그때 7공주는 왕모가 가장 총애하던 딸이었다. 7명의 공주에게는 모두 사부가 있었으며 7공주의 사부는 신통이 아주 대단한 천계의 도고(道姑)였다. 도고는 7공주의 영리함을 좋아했고 자신에게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7공주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였다.
7공주가 속세에 내려가는 일은 도고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혔다. 옥황상제는 비록 엄격했지만 역시 신선 중에서 위망이 지극히 높은 도고를 무시할 수 없었고 도고가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것 역시 정리 속에 있었다. 그리하여 7선을 천궁으로 불러들였다. 그 시기 선계(仙界)와 지계(地界)의 생활은 아주 차이가 났는데 어느 신선도 속세로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부 이야기에 선녀가 속세에 내려온 것은 천계가 적막해서 인간세상의 즐거움을 찾으러 내려온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우스개 소리이다.
(3) 공주들의 환생 이야기
지난번 문장에서 나는 대공주가 전생에 왕소군이었고, 3공주는 반리화, 5공주가 손상향, 6공주가 송경령, 7공주가 악부인(악비의 부인)이자 청나라 강희제의 비로 환생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역사와 당대의 유명한 인물들로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다.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2공주와 4공주의 전생에 대해 말해보겠다.
2공주와 4공주에 대해 나는 그녀들의 일세(一世)만 알 뿐이다. 2공주는 대략 193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평민으로 태어났으며 실제 나이는 60~70세이지만 겉으로 보기엔 40여 세로 보인다. 현지 사람들도 그녀는 선녀가 환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 자신도 자신이 왕모의 딸임을 희미하게 알고 있었고 매년 8월 15일 반도회에는 그녀의 왠선(元神)도 가서 참석했다. 그녀에게 있어 하늘나라의 일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녀의 왠선은 갈 때마다 선계의 아름다움과 흥성함을 기억하려고 했지만 돌아올 때 은색 수염을 휘날리는 한 노신선이 그녀의 뒤통수를 가볍게 두드리면 그녀는 모든 것이 모호해졌다. 그녀는 70여세 되던 시기에 자신의 남편과 함께 천궁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녀는, 사람은 어차피 죽을 것이고 70여세까지 살았으니 더 살면 요귀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농약을 마셨다. 자살은 장난이 아니며 그녀는 천당으로 가지 못할뿐더러 또 지옥에 떨어져 고생을 겪었다. 2공주의 이런 어리석음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한숨이 나온다. 왕모는 이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하고 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4공주는 평민으로 태어났다. 16살 무렵, 한 서생에게 시집을 갔고 후에 아들과 딸을 하나씩 낳았다. 서생은 후에 북경에 들어가 장원급제했고 어느 높은 관리의 마음에 들어 그 집 사위가 되었다. 그 후 서생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소식조차 없었다. 4공주는 집에서 위로는 시부모를 공경하고 아래로는 아들딸을 키웠다. 산과 들에 있는 야채와 야생 과일로 생계를 유지했고 아껴서 모은 돈으로 아들을 공부시켰다. 그녀의 아들은 왕모가 내려 보낸 문곡성(文曲星)이 환생한 인물로 대단히 총명했다. 이 아들은 또한 4공주의 유일한 의지였다. 20년 후 아들은 연달아 장원에 급제했으며 비로소 고생을 끝내고 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녀가 겪은 일생은 진상련(秦湘蓮)과 흡사하다.
여기서 또 6공주 송경령을 말해보자. 송경령은 60세 이후 정사(政事)에 담담했고 마음이 조용해지기만 하면 신통이 있었다. 가끔 집에서 잠을 자지만 왠선은 나가서 천지를 돌아다녔고 또 여러 차례 우리 집에도 놀러왔었는데, 단지 기색이 총망해 보였다. 내가 어릴 때 본 적이 있는 일부 국내 선전물에서 송경령과 송미령을 마치 적처럼 말했지만 사실 그녀들의 자매정은 아주 깊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겠다. 2003년 3월, 어느 날 하늘에 있는 6공주가 7공주에게 말하기를, “일곱째야, 나는 속세에 내려가서 여동생을 보고 와야겠다. 며칠 후면 그녀의 생일인데 이번이 그녀의 마지막 생일이란다.”라고 했다. 7공주가 “언니 여동생이라고요? 어느 여동생이요?”라고 묻자 6공주는”바로 미국에 있는 장(蔣)부인 말이야, 그녀는 올해 106세로 곧 수명이 다 할거야.”라고 답했다. 나중에 한 대법제자가 중국 국가안전부에 잡혔고 이 대법제자는 그녀들과 연분이 있었는데 6공주가 급히 대공주에게 불려갔다. 후에 그녀들은 신통을 써서 이 대법제자를 구출해냈다.
왕모와 어떤 신들도 나에게 7공주가 악비의 부인으로 태어난 일부 속세 이야기들을 알려주었다. 그 시기 악비의 집은 무척 가난하여 구차하기 그지없었다. 오늘날 왕모는 아직도 악비 일가의 일부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기 악비의 부인은 두 아들(악운, 악뢰)를 낳았고 딸을 하나 낳았는데, 딸의 아명은 대모(大毛), 소모(小毛), 삼모(三毛)였다. 그들은 늘 비가 온 후 숲 속에 자라는 지권피라는 일종의 풀을 먹고 살았다. 세 아이들은 어릴 때 모두 허약했다. 악운은 12살에 전투에 참전했다. 악비 부자가 간신들에 의해 살해된 후 악비 가족은 황범(皇犯)이 되어 풀조차도 먹을 수 없었다. 악부인 역시 이로 인해 상심이 지나쳐 눈물이 거의 메말랐다. 나중에 하늘에 있는 왕모는 자신의 딸이 너무나 고생하는 것을 보고는 눈물을 머금고 딸을 천궁으로 데려왔다. 후에 악왕(岳王)은 강희대제로 태어났고 7공주는 의비(宜妃)로 태어났다. 강희는 의비를 몹시 사랑했는데 아마도 그들 전생의 이별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호기심이 아주 강해서 전에 웃으면서 왕모와 공주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들은 어떤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이 좋습니까? 황제나 황후로 태어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평민으로 태어나는 것이 좋습니까?” 그들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모두 좋지 않다고 말했다. 황제로 태어나면 조국과 백성을 위해 걱정해야 하고 자칫 잘못하면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살해할 수 있어 여러 세(世)를 거쳐도 갚지 못할 빚을 지게 된다. 황후로 태어나도 궁중 안의 암투가 극심하다. 7공주가 황후로 태어났을 때 황후자리를 노리고 있던 악독한 황비에 의해 궁이 불타 하마터면 불에 타서 죽을 뻔 했다. 다행히 왕모가 미리 알고 7공주를 공중에서 데려갔다. 왕자로 태어나도 좋지 않은데 황위를 다툴 때면 형제간에 서로 반목하고 서로 죽여야 한다. 평민으로 태어나도 고생을 겪어야 하고 좋은 날이 없다.
일반적으로 비교적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공주와 부마로 태어나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좀 편안하다. 그러나 다음 생에 무슨 역을 맡는가는 하늘이 정하는 것이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뭇 여신(女神)들은 모두 다시 속세에 내려오는 것을 싫어했는데 또 역사의 큰 연극도 최후에 도달했음을 알고 있다. 오로지 고층의 신으로 성취되어 더 이상 윤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가장 좋은 것이다.
※역주: 송경령(쑹칭링 1892~1981) 중국의 혁명지도자 손문의 2번째 처로 1925년 손문이 죽고 나서 국민당이 좌우로 갈리자 좌파를 지지했다.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에도 대륙에 남았고 1981년에는 인민공화국 명예의장으로 지명되었다.
송미령 1897년 광둥성에서 태어나 2003년 10월 23일 미국 뉴욕에서 106세를 일기로 타계. 국민당 우파 장제스의 2번째 아내로 언니인 송경령과는 친자매 사이.
발표시간:2006년 6월 12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6/6/12/380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