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林雨)
【정견망】
역사상 수많은 군왕(君王)들이 도(道)를 추구하거나 심지어 집을 떠나 승려나 도사가 된 이도 있었다. 물론 이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석가모니다. 하지만 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당 태종은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 태종의 《종남산을 바라보며(望終南山)》란 이 작품은 모두 40글자인데 우선 전문을 감상해보자.
겹겹의 산봉우리 위수(渭水)를 굽어보고
푸르고 가파른 봉우리 하늘 높이 우뚝 솟았네.
고개 위로 붉은 해 떠오르니
암벽 사이로 구름이 자욱하게 끼네.
우거진 소나무 숲 아침이 저녁 같으니
겹겹의 산봉우리 잠긴 듯 드러난 듯
이를 마주하니 온갖 근심 사라지나니
굳이 구선(九仙) 찾으려 애쓸 필요 없노라.
重巒俯渭水,碧嶂插遙天。
出紅扶嶺日,入翠貯岩煙。
疊松朝若夜,復岫闕疑全。
對此恬千慮,無勞訪九仙。
“겹겹의 산봉우리 위수를 굽어보고
푸르고 가파른 봉우리 하늘 높이 우뚝 솟았네.
고개 위로 붉은 해 떠오르니
암벽 사이로 구름이 자욱하게 끼네.
우거진 소나무 숲 아침이 저녁 같으니
겹겹의 산봉우리 잠긴 듯 드러난 듯”
대체적인 뜻은 종남산의 겹겹 산봉우리가 위수를 내려다보고 푸른 봉우리가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다. 태양이 고개 위로 떠오르면 암벽 사이로 구름이 자욱하다. 층층 소나무 숲에서는 아침이 오히려 밤과 같고 첩첩이 쌓인 먼 산은 모자란 듯 완전한 듯 보인다(역주: 구름에 쌓인 산이 제 모습을 다 드러낸 듯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는 뜻이다.
여기서 종남산을 표현한 기세가 더욱 두드러지니 과연 일대(一代) 군왕에 부끄럽지 않다. 또 “우거진 소나무 숲 아침이 저녁 같으니”에서 가리키는 것은 숲의 그윽함이고 “겹겹의 산봉우리 잠긴 듯 완전한 듯”은 산봉우리가 구름에 가로막혀 원래 모습이 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대체적으로 종남산의 현묘함과 그윽한이다.
“이를 마주하니 온갖 근심 사라지나니
굳이 구선(九仙) 찾으려 애쓸 필요 없노라.”
이 두 구절이야말로 이 시의 핵심이다. 시인은 수도(修道)에 대해 세간의 일반적인 해석과 다른 이해를 보여준다. 시인의 안목은 마치 일체 번뇌가 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데 더는 신(神)이나 신선을 찾기 위해 애쓰거나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말 밖의 뜻이란 바로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는 뜻이다.
당시에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시에 담긴 진실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직 지금의 대법제자들과 신통을 지닌 일부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진상을 똑똑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정법시기(正法時期)로 창세주(創世主)께서 우리 곁에 오시어 우리를 구도하고 계신다. 사실 창세주께서는 진작에 오셨고 늘 우리 곁에 계셨다. 대법 사부님은 이미 《홍음》〈장안을 회상하며〉에서 “어디에서 태종을 찾으리요 대법은 당나라 사람을 제도하고 있도다”라며 우리에게 진상을 명확히 알려 주셨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당 태종은 왜 “굳이 구선(九仙) 찾으려 애쓸 필요 없노라.”라고 했을까? 왜냐하면 중생이 모두 창세주를 찾고 있으니 창세주께서 굳이 구선을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창세주께서는 인류의 시작부터 줄곧 우리와 함께 계셨고 우리와 인연을 맺으셨으며 우리를 구도하기 위해 일체를 감당하셨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내려놓지 못할 게 또 무엇이 있겠는가?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9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