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月影)
【정견망】
역사상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를 지었고, 적어도 최소 수십만에 달한다. 또 아주 유명한 시도 수천 편에 달한다. 하지만 어느 시가 가장 아름다운지에 대해 사실 명확한 결론은 없다. 그러나 양만리(楊萬里)의 이 시, 《초승달이 구주를 비추니(月子彎彎照九州)》는 참으로 아름답다.
초승달이 구주를 비추니
몇 집이 기뻐하고 몇 집이 근심할까
슬픔은 달에 관한 일처럼 사람을 괴롭히니
쉴 곳을 얻으면 쉬어야
月子彎彎照九州
幾家歡樂幾家愁
愁殺人來關月事
得休休處且休休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천상(天上)에서 법을 얻으러 세상에 왔다. 따라서 대부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천국 고향 찾기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보는 것은 온 하늘에 가득 찬 별과 아름다운 달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유난히 달을 좋아한다.
활처럼 굽은 초승달은 사람에게 동경을 준다. 이욱(李煜)의 시 “말없이 홀로 서쪽 누각에 오르니, 달이 갈고리 같구나[無言獨上西樓,月如鉤]”는 지극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 “몇 집이 기뻐하고 몇 집이 근심할까”라는 구절은 이미 사람의 감정을 초월해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와 관심을 보여준다. 시인의 마음속에는 중생의 미래에 대한 탄식과 무력감이 있다.
사람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죽이는 것이 정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인은 이러한 자신의 영혼에게 묻는다.
“쉴 곳을 얻으면 쉬어야[得休休處且休休]”
여기에 등장하는 4개의 ‘쉼(休)’이란 글자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道)를 깨달으라고 경고한다. ‘휴(休 휴식)’와 ‘수(修 수련)’는 모양은 달라도 발음이 같으니 같은 함의가 있다. 또한 인간 세상의 이익심을 내려놓고 수련에 들어가는 것만이 인생의 바른 도[正道]이다.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귀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쉽지만 의경(意境)이 심오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자비와 선념(善念)을 품었고 또한 수도(修道)의 뜻이 담겨 있다. 이야말로 이 시가 진정 아름다운 곳이다.
시인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은 그의 선량함을 보여주는데, 오직 선량한 사람만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견해일지 모른다. 모든 사람은 각자 좋아하는 내용과 형식이 있다. 취향과 선호도가 다른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 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대단히 아름답다. 이 시를 노래로 만든 이가 있는 것을 보면 이 시의 유려함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시인의 근심은 해결되었을까? 대법이 전해지면서 마침내 모든 것에 희망이 생겼다. 사람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법을 얻어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때라야 비로소 마음속의 그 희망이 진정으로 의지할 곳을 찾은 것이다. 아마 이것이 시인이 찾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던 노인이 참으로 부럽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3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