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혜희는 청령만으로 끌려왔으나 오히려 마음은 아주 홀가분했다. 아마 한바탕 제대로 싸웠기 때문일 것이다.
혜희는 자신에게 어디서 그런 법력이 생겼는지, 왜 거대한 용나무가 나무 지팡이로 변해 무궁한 위력을 발휘했는지, 또 머리의 비녀는 왜 찬란한 빛을 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두 법기가 무척이나 손에 익어 마치 예전에도 이것들로 싸워본 것만 같았다.
혜희는 생각하다 보니 목이 말라 청령만의 샘물을 떠서 시원하게 들이켰다!
물을 마시고 나니 머리가 핑 돌더니 뇌리에서 ‘탁’하는 소리와 함께 기억의 일부가 열리는 듯했다……
그녀는 광활하고 푸른 세상을 보았다. 자신이 그 세계의 법왕(法王)임을 보았고, 그 세계에 거대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았다. 찬란한 빛을 내뿜는 거대한 부처님이 강림하시고 감로가 내려 불길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손을 세워 맹세한 뒤 이 지팡이와 비녀를 들고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어린 전하! 정말 싸움을 좋아하시는군요!”
두툼하고 낯선 목소리가 기억을 깨뜨렸다.
혜희가 눈을 떠보니 바로 흑요였다. “세상에! 네가 말을 하네! 네가 말을 하다니 흑요! 네 목소리는 처음 들어봐. 헤헤, 꽤 매력적인데?”
흑요도 웃으며 말했다.
“다리는 이제 안 아프세요?”
혜희는 짐짓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리는 안 아픈데 마음이 너무 아프구나. 흑요 네가 나를 물다니.”
흑요가 말했다. “나는 당신 몸에 쌓인 진한(嗔恨, 원망과 분노)의 독을 뺀 것입니다. 당신의 화기(火氣)가 너무 컸어요. 벽요(碧瑤), 당신은 삼계(森界)의 천겁을 잊었습니까?”
혜희는 가슴이 철렁하며 말했다.
“흑요, 방금 전생의 기억이 조금 떠올랐는데 아주 분명하지는 않아. 너는 어떻게 아는 거야? 너는 대체 누구니?”
흑요는 고개를 들고 창가로 걸어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 사부님께서 당신을 보호하라고 보내신 호법신(護法神)입니다!”
“뭐라고?! 나한테 사부님이 언제 계셨어? 그렇다면 내 사부님이 누구신데?”
혜희는 어리둥절했다.
“어린 전하, 당신이 태어날 때 미간에 매화 인장이 있었던 것을 보셨지요. 그것은 만왕의 왕( 무상왕님의 제자 인장입니다. 당신은 무상왕님의 제자입니다.”
흑요는 말을 마치고 미소 지으며 혜희를 바라보았다.
혜희는 더욱 놀랐으나 마음속에는 이름 모를 기쁨이 솟구쳤다. 혜희가 흑요에게 물었다.
“흑요, 그럼 내 사부님은 어떻게 생기셨어?”
흑요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잘 묘사하기 어렵고 감히 묘사할 수도 없습니다. 대체로 남색 머리카락에 흰 가사를 입으셨다고 보면 됩니다.”
혜희는 자신도 사부님이 돌봐주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얀 가사에 남색 머리라고 푸른… 푸른 광채! 어머니의 원신은 설마 그분께서! 설마…..”
흑요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혜희는 그제야 안심했다!
“어린 전하, 이제 삼계(三界)로 내려가 단련할 준비를 하십시오! 조금 있으면 구지신군이 당신을 찾아올 겁니다. 그의 손바닥에서 아직 피가 배어 나오고 있으니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하하!”
“야! 흑요 너 가지 마! 그가 나한테 어떻게 보복할 줄 알고! 야! 흑요…”
흑요는 말을 마치고 웃으며 떠나갔다.
흑요가 떠난 뒤, 혜희는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는 말을 떠올리며 갑자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구지가 나타났다. 혜희가 보니 그의 오른손에서 정말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구지가 입을 열기도 전에 혜희가 먼저 말했다.
“신군께서 오신 뜻은 대략 알겠습니다! 일단 말씀하지 마시고 제가 상처부터 치료해 드릴게요!”
유리비녀와 복룡장은 본래 삼계(森界)의 법기로서 벽요를 따라 일진천으로 내려온 것이기에, 일진천의 모든 법기들보다 층차가 높았다. 게다가 청령만 샘물로 씻겼으니 신통력이 대단했다. 일진천의 생명이 유리비녀에 상처를 입으면 오직 복룡장 안의 홍묘(洪淼)로만 치유할 수 있었다.
혜희는 방금 기억 속에서 홍묘가 유리비녀의 상처를 고칠 수 있음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래서 복룡장 끝에서 홍묘 몇 방울을 꺼내 구지의 오른손을 잡아 상처에 발라주었다.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구지는 원래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 같은 얼굴로 왔으나, 혜희가 이렇게 나오자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의 얼굴에 온기가 도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신군님, 어머님이 인간 세상의 미혹 속에서 당신들의 안배를 고친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했죠. 저 역시 대놓고 당신들의 안배를 부수었으니, 당신들이 보기에는 역시 용서받지 못할 일일 거예요. 저는 힘없는 어린아이니, 처분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녀는 천궁에서 쫓겨날 각오를 한 상태였다. 진한(嗔恨)의 독을 빼내고 맑은 샘물로 씻겨서인지 혜희의 성격은 훨씬 온화해져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구지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
“전하께선 굳이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청령만에서 이렇게 평온하게 지내셔도 좋습니다.”
혜희는 깜짝 놀랐다. 구지가 이토록 온화하게 자신에게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희는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있었고 반드시 삼계로 내려가야 했기에 사양하며 말했다.
“당신은 사법 대천신인데 저 때문에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제가 한 짓은 정말 지나쳤으니까요. 다만 제가 떠난 뒤에 부디 자비로운 마음으로 일진천 중생들을 잘 대해주세요. 그런… 무슨 ‘안배’ 같은 건 이제 그만하시고요.”
혜희의 말을 들은 구지는 화를 내지도, 무시하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휴, 이 궁우(穹宇)의 신들은 왜 정(正)과 부(負)로 나뉘어야 하는지? 나는 또 왜 이런 성정을 지녔으며, 또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에휴…”
혜희는 정말 너무나 놀랐다! 오만하고 자부심 강한 구지가 탄식을 하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막막해하다니? 혜희는 갑자기 눈앞의 구지가 조금은 귀엽게 느껴졌다.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모든 것이 바뀔 거예요.” 혜희가 말했다.
구지의 얼굴에 감돌던 아주 작은 온기가 다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다시 차갑게 말했다. “바뀐다고? 허허…” 구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얼음장 같은 얼굴로 떠나갔다……
이번에는 정말 혜희가 떠날 차례였다. 그녀는 죄를 지어 쫓겨나는 몸이었기에, 떠날 때는 하얀 옷을 입고 형대(刑台)에서 일진천 아래로 뛰어내려야 했다.
처형 당일, 혜희는 하얀 옷을 입고 형대에 도착했다. 혜맹과 혜교가 울면서 그녀와 작별했고, 일진천의 다른 중생들도 많이 눈물을 흘렸다. 군주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혜희 전하마저 일고여덟 살 어린 모습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정작 혜희는 담담했다. 그녀는 자신이 원래 이곳 소속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형대에 서서 신의 광환을 막 벗으려 할 때, 멀리서 감미로운 공후(箜篌) 소리가 들려왔다.
해주와 희운이었다. 그녀들은 눈물범벅이 된 채 배웅하러 왔다. 희운은 이모에게 배운 공후를 연주했고, 해주는 예전에 이모가 가르쳐준 그 노래를 불렀다.
“이제 안녕이라~ 말해야~ 하나 봐요~
눈물이~쉬지 않고 떨어지네요~
비록 머나먼 곳으로 떠돌러 가시지만~
부디 잊지 마세요~ 저와
또~ 당신이 사랑하는 천국을~
선량함을 지니시고~ 인간 세상을 지나시며~
고개 들어~ 저 흰 구름을 보세요~
그건 천국 가족들이 보낸~ 전서구랍니다~
반드시~ 명심하세요~ 신(神)의 당부를~
강인하고~ 용감하게~ 진아(真我)를 잃지 마세요~
당신은 반드시~ 신성한 약속을~실현하실 거예요
언제까지나 기다릴게요~ 당신과 포웅할~ 그 순간을~
잊지 마세요~저와
또~ 당신이 사랑하는 천국을~”
혜희의 뺨을 타고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혜희는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시 여러분을 안아주러 올게요! 기다려주세요!”
말을 마친 혜희는 신의 광환을 벗고 몸을 던졌다! 삼계(三界)로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시즌 2 종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1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