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지난 전투가 승리로 끝났으나, 치우의 군사(軍師) 공공(共工)이 워낙 교활하고 독랄하여 갈고리가 달린 칼과 검을 제작한 탓에 많은 천병(天兵)이 살점이 파헤쳐지는 중상을 입고 고통스러워했다.
승리는 거두었으나 사상자가 속출하자 요진은 서둘러 희화에게 영약을 가져오라 일렀다. 그러나 함을 열어본 희화는 영약이 거의 바닥났음을 보고했다.
요진은 생각했다.
‘떠나올 때 옥경산의 영약을 모두 챙겨왔기에, 이곳에 없다면 사주(四洲) 어디에도 없겠구나.’
이에 요진은 청란과 희화에게 곤륜의 여자 신선들을 데리고 약초를 캐오라 명했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남주의 산천은 짓밟혀 진통 효과가 있는 약초조차 찾기 힘들었다.
병사들이 고통받는 모습에 요진의 마음은 번민으로 가득 찼고, 풍잠이 다가와 그녀를 위로했다.
풍잠이 한참을 위로했지만 요진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곁눈질로 풍잠의 허리에 술 호로병이 있는 것을 본 요진이, 그것을 빼앗아 꿀꺽꿀꺽 두 모금 마시고는 다시 술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요진은 그의 허리에 찬 술호리병을 낚아채 두어 모금 마시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술이 참 맛이 없구나. 향도 없고 맛도 없어 꼭 우리 사부님이 빚은 물 같아.’
풍잠(風潛)이 말했다.
“왜 두 모금만 마시는가? 통쾌하게 마시지 않고? 네 스타일이 아닌 것 같은데?”
요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술은 너무 맛이 없어요. 향도 없고 맛도 없어서 물과 다름없으니, 마치 우리 사부님(師父)께서 빚으신 것 같네요.”
풍잠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내가 옥경산에서 아무거나 집어 온 것이라 누가 빚었는지는 모르겠네. 하지만 우리 옥경산의 술도 나쁘지는 않단다! 네 말처럼 그렇게 아무 맛도 없을 리가 있겠니?”
요진도 웃으며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하하, 곤륜산 ‘이화루(梨花淚)’를 마셔 보셨어요?”
풍잠이 말했다.
“들어는 보았어. 눈물로 빚은 술이라고 하던가?”
요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술은 먼저 이화(梨花 배꽃)로 빚어 이화 나무 아래에 묻어 두는데, 천 년 혹은 만 년을 두며 눈물 한 방울을 기다린데요.”
풍잠은 흥미를 느끼며 말했다.
“어 그래? 이 양주법이 참으로 재미있구나.”
요진이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인연이 있는 사람이 그 이화주를 만났을 때 마침 눈물 한 방울을 술 속에 흘려 넣으면, 이 이화루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죠. 이 눈물이 만감이 교차하고 백감이 어우러질수록, 뼈에 사무치게 아플수록, 말로 다 못 할 고통이 서려 있을수록 술이 더욱 향기롭고 진해진대요.”
풍잠이 감탄하며 말했다.
“너희 곤륜산에는 정말로 별난 일이 다 있구나. 술 빚는 것조차 이토록 낭만적이고 흥미롭다니. 너는 이화루를 맛본 적이 있니?”
요진이 말했다.
“딱 한 번 맛본 적 있어요. 맛이 실로 향기롭고 진했는데, 노귀(老龜)가 청해(靑海) 해저의 폐허 속에서 짊어지고 올라온 것이라고 했어요. 아마 상고(上古) 시대에 빚었을 거에요.”
풍잠이 말했다.
“언젠가 나도 한 병을 빚어 그 곤륜산 이화나무 아래 묻어두고, 인연 있는 이가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기를 기다려야겠구나.”
요진이 말했다.
“제가 이미 한 호루박을 빚어 이화나무 아래 묻어두었으니, 언젠가 눈물이 떨어지면 드릴께요! 하하!”
풍잠은 요진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기다릴께…”
이때 청란(青鸞)이 다가와 요진의 귀에 대고 무언가 긴요한 말을 전하는 듯했다. 요진은 급히 일어나 풍잠에게 말했다. “일이 좀 생겨서 먼저 가요.”
풍잠이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요진은 이미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풍잠이 요진의 뒤를 따르다 보니 멀리서 푸른 적삼을 입은 한 젊은이가 요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풍잠이 자세히 보니 그는 자운산 소장(小將) 아택(阿澤)이었다.
아택은 요진을 보자마자 입가에 미소를 띠었는데, 자신이 장수이고 상대가 원수(元帥)라는 사실도 잊은 채 예의를 갖추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요진은 그를 보자마자 곧바로 말했다.
“예의는 생략하고 어서 말해 보게!”
그제야 아택은 자신이 예를 잊었음을 깨닫고 정신을 차려 읍(揖)을 하며 말했다.
“원수님, 조용한 곳으로 저를 따라오시면 제가 그 법(法)을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친 아택이 구름을 타고 날아가자 요진도 구름을 타고 그를 따랐다.
요진은 그의 구름을 타고 안개를 모는 공력(功力)이 정순(精純)하고 오르내림이 허무(虛無) 사이에서 자재로운 것을 보고 말했다.
“자네 각력(腳力)이 꽤 쓸만하군!”
아택은 요진의 그 말을 듣고 얼른 공력을 삼 분쯤 거두며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각력이 좋은 건 다 남에게 쫓기며 연마한 것이죠!”
요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전쟁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장수라는 생각이 들자, 이 말이 그저 농담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택은 요진을 어느 그윽하고 고요한 동굴 옆으로 데려가 말했다.
“여기서 하시지요.”
요진은 생각할수록 의아해서 그에게 물었다.
“아택, 자네가 장졸들을 치료할 방법이 있다고 해서 이곳으로 나를 데려왔는데, 도대체 그것이 어떤 법(法)인지 자세히 좀 말해 보게. 왜 여기까지 와야 하는가?”
아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것은 ‘전업술(轉業術)’이라 불리는 비밀리에 전수하는 술법입니다. 단약(丹藥)이 없이도 상대방의 고난을 자신의 몸으로 전화(轉化)시켜 대신 감당하기만 하면 됩니다. 본래 외부인에게는 전하지 않는 것이나 지금은 상황이 급박하니 그런 규칙을 따질 때가 아니지요. 전쟁이 끝나면 잊어버리시면 됩니다. 제가 알려드리지 않은 셈 치면 되니까요.”
요진이 말했다.
“좋네! 약속함세! 전쟁이 끝나면 잊어버리겠네! 시작하세.”
그리하여 아택은 이 술법을 요진에게 가르쳐 주었다. 요진은 배운 뒤에 조금 미숙한 듯하여 몇 번 더 연습했다.
아택은 요진이 진지하게 배우느라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말했다.
“잠시 앉아 쉬십시오. 공력과 술법이 체내에서 융합될 시간을 준 뒤에 다시 몇 번 연습하면 될 것입니다.”
요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네. 고마워… 이런 대단한 비밀 공법을 내게 가르쳐 주니, 나 역시 뭇 천병천장(天兵天將)들을 대신해서 자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네.”
아택은 그녀를 보며 살짝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마친 요진은 아택과 나란히 풀밭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아택은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고 마음속으로는 기쁘면서도 당황스러운 기분이 교차했다.
요진은 그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자 분위기가 어색하다고 느꼈다. 어색함을 깨려 말을 건네려 했지만, 그와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요진은 마침내 한 마디를 짜내어 말했다.
“이… 이 전업술을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많은 생령(生靈)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아택이 요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곤륜산에서 많은 생령이 다쳤습니까?”
요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내가 방금 어색함을 깨려고 한 말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한 건가?’
그러고는 말했다.
“그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예전에 불을 뿜는 홍추(紅貙)가 나타나 많은 생령이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지.”
아택이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도 부상을 입었습니까?”
요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왜 이 말을 꺼냈을까? 그때 홍추에게 죽을 뻔했는데, 그걸 말하자니 참 체면이 안 서는군……’
이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음… 뭐라고 할까, 나는 불이 제일 무서워…… 우리 곤륜산 생령들도 불을 무서워하고…”
아택은 요진의 곤란해하는 표정을 보고 그녀가 좋은 꼴을 보지 못했음을 짐작하고는 더 캐묻지 않았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웃음만 짓고 아무 말이 없었다.
방금 조금 체면을 구겼기에, 요진은 자신도 원수이니 원수다운 모습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짐짓 무게를 잡으며 물었다.
“아택, 최근 작전이 힘들지는 않은가?”
아택은 그녀가 그렇게 묻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말했다.
“어… 어… 괜찮습니다……”
요진은 그가 푸른 적삼을 입은 마른 체구에 청수(淸秀)한 얼굴을 하고 있어 전쟁터에 어울리는 인물로 보이지 않자 위로하듯 말했다.
“괜찮네, 승패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이니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네!”
아택은 요진이 자신을 조금도 경멸하지 않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역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미소만 지었다.
요진은 이 젊은이가 고개를 숙이고 미소 짓는 모습이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저 성격이 너무 수줍고 내성적이라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겼다.
요진은 다시 자신의 공을 살펴보며 말했다.
“거의 융합된 것 같군.”
말을 마친 후 일어나 다시 이 술법을 연습해 보니 이미 숙달된 느낌이었다.
이에 아택에게 말했다.
“이제 된 것 같군. 어서 돌아가 부상자들을 구해주세!”
아택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와 함께 구름을 타고 돌아갔다.
요진은 돌아온 후 즉시 중상자들에게 이 술법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과연 이 술법은 옥경산의 영약보다 효과적이어서 상처와 통증을 8할까지 치료할 수 있었다. 약은 7할 정도만 치료할 수 있었다. 사실 이는 요진의 공력이 순수하고 숙달되지 못했기 때문인데, 아택이라면 이 술법을 10할까지 운용해서 완전히 고칠 수 있었다.
요진이 돌아온 후 풍잠이 그녀에게 오후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 요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술법은 그쪽의 비밀공법이니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요진은 대충 거짓말을 하며 약초와 선방(仙方)을 찾으러 갔었다고 말했다.
풍잠은 그녀가 아택과 함께 구름을 타고 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기에 요진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언짢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요진을 좋아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으나 요진도 같은 마음인지 알 수 없었기에, 달빛을 빌려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 술을 마셨다.
풍잠은 흐르는 물과 같은 달빛을 보며 취기에 기대어 읊조렸다.
“밝은 달은 낭랑하고 시원한 바람은 살랑이누나!
꽃빛은 물과 같아 정에 치우친 어리석고 망령된 슬픔은 씻기 어렵네!
그대는 부질없이 정을 저버리니, 긴 밤이 더욱 차갑기만 하구나…..”
마침 다보(多寶)가 나무 아래 앉아 술을 마시는 풍잠을 보고 다가가 말했다.
“형씨의 재주가 넘치고 풍류가 뛰어나다는 말은 익히 들었으나, 오늘 형씨의 훌륭한 풍채를 직접 보고 달을 빌려 시를 읊는 것을 보니 이 정경이 참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구려……”
풍잠은 취한 눈을 들어 상대가 자운산의 다보임을 확인하고는 그를 앉혀 함께 술을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요진은 중상 입은 장졸들을 치료한 후 자신의 막사로 돌아와 평소처럼 향기로운 물에 목욕을 하고 침상에 들어 휴식을 취했다. 한편 아택은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에 요진의 막사 밖으로 와서 그녀를 대신해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치료가 끝날 때마다 그의 몸은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졌다.
이날, 아택이 막 요진의 상처를 치료하고 자신의 막사 밖으로 돌아왔을 때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