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이번 수임 대전이 흐지부지 끝난 후 다보(多寶)는 매우 화가 났다. 신관이 그에게 “하늘의 뜻에 따르시오”라고 권했다.
다보가 막 떠나려 하자 요진(瑤眞)이 그의 팔을 붙잡고 엄숙하게 말했다.
“다보, 우리 둘 사이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진은 그를 끌고 천제를 뵈러 가려 했다.
다보가 아무리 뿌리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요진은 그를 곧장 천제 앞으로 데려가 천제에게 말했다.
“폐하, 이 자는 남주 전쟁 중에 마족(魔族)과 사사로이 통하고 암중으로 결탁하여 남주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나중에는 군령을 거역하여 남주의 생령들을 무수히 죽게 했습니다! 천제께서 명확히 조사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보가 급히 말했다.
“요진이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암암리에 마족과 결탁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너는 분명 내가 네 사법천신 자리를 빼앗은 것을 질투하는 것이다!”
요진이 냉소하며 한마디 했다.
“허! 사법천신이 비록 내 예전 포부이긴 하지만, 사법신장(神杖)조차 들지 못하는 못난 천신(天神)을 질투할 정도는 아니다.”
화가 난 다보는 “너, 너, 너” 하고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폐하! 요진의 터무니없는 말을 듣지 마십시오. 듣지 마십시오.”
천제도 짜증이 났는지, 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말했다.
“알~았다. 요진! 증거가 있느냐.”
요진이 말했다.
“증거가 있었다면 벌써 내놓지 않았겠습니까?”
천제 뒤에 있던 늙은 하인이 얼른 요진에게 주의를 주었다.
“무례하구나. 공손히 아뢰거라.”
요진이 또 말했다.
“만약 모든 사건에 증거가 있다면 어찌 사건을 심리하는 사람이 필요하겠습니까? 영명(英明)한 군주는 사건을 심리할 때 증거가 필요 없습니다. 스스로 명확히 살필 수 있습니다.”
천제는 속으로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고약한 계집애가 참으로 말을 잘하는구나.”
그러고는 다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짐은 그리 영명하지 못해 사건을 심리할 때 증거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자. 다보야, 네가 만약 이런 일들을 하지 않았다면 맹세를 하거라.”
요진이 즉시 천제의 말을 이어 말했다.
“독한 맹세[毒誓]를 해야 합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요진은 세 손가락을 세우고 맹세했다.
“내가 만약 남주에서 암암리에 마족과 결탁했다면 오뢰굉정(五雷轟頂 다섯 방위의 번개가 정수리에 떨어짐)을 당하고 몸이 가루가 되어 곱게 죽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너도 하거라.”
[사람에게 맹세라는 일은 그리 무섭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신은 알고 있다. 맹세는 정말로 매우 무서운 것이며 백 퍼센트 응험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자 다보는 전전긍긍하며 머뭇거리고 감히 맹세를 하지 못했다. 요진과 천제는 조용히 그가 맹세하기를 기다렸다.
다보는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손을 들고 말했다.
“만약 내가 남주에서 마족과 함께 백성들을 해쳤다면 나는….”
요진이 다보의 말을 가로막았다.
“개념을 바꾸지 마라! 암암리에 마족과 결탁해서다”
다보는 기회를 틈타 화를 내며 말했다.
“요진, 네가 사람을 너무 못살게 구는구나. 너는 방금 우리의 무고한 장령 아택(阿澤)을 죽였고 또 나를 핍박해 이런 독한 맹세를 강요하느냐! 네 속셈이 무엇이냐!”
이 말은 요진의 아픈 곳을 찔렀다. 요진은 본능적으로 반박하려 했으나 아택을 생각하자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보가 다시 말했다.
“요진, 네가 이 사법천신 자리를 탐내는 것이 아니냐?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니 네게 양보하겠다!”
요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비루한 소인배 같으니, 분명 자신이 사법권장을 들지 못했으면서 나를 발판으로 삼는구나!’
요진이 차갑게 말했다.
“너는 본래 자격이 없었다.”
요진의 말을 들은 천제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요진에게 물었다.
“그가 자격이 없다 했느냐? 그럼 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요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제는 노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흥, 하나는 쓸모없는 무리이고 또 하나는 오만한 무리이니, 큰 임무를 맡을 자가 하나도 없구나!”
천제는 말을 마치고 소매를 뿌리치며 떠났다.
천제가 떠난 후 대전에는 무릎을 꿇은 다보와 요진만 남았다. 천제가 간 것을 보고 다보는 안도하며 겨우 위기를 넘겼으니 얼른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다보는 주위를 둘러보고 요진을 슬쩍 보았다. 요진이 다소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휭 하니 달아나 버렸다.
요진은 다보가 사라진 것을 보고 생각했다.
‘내가 아택을 해치지만 않았어도 방금 그 소인배에게 휘둘리지 않았을 텐데… 천제께서도 곤란해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결국 내가 중생에게 미안할 짓을 했구나….’
요진은 생각에 잠겨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막 일어서자마자 어지러움을 느꼈다. 요진은 겨우 몸을 가누고 머리를 세게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손으로 등을 만져보니 타신편(打神鞭)에 맞은 상처에서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등의 옷은 이미 흠뻑 젖었고 혈흔은 흰색 망토까지 물들였다.
요진이 손으로 망토를 훑자 눈처럼 하얗던 망토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이러면 피를 흘려도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요진은 전쟁도 끝났고 해야 할 일도 다 했으니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구름을 타고 곤륜산으로 향했다.
요진이 막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두 명의 신관이 그녀의 집 문패를 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요진은 평남원수부(平南元帥府)라는 밝게 빛나는 편액이 이 두 신관에 의해 철거되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속에 서늘함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그 두 신관은 요진을 보고 읍을 하며 예를 표하려 했으나 요진은 “이 집도 헐어버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요진이 방에 들어서자 원시천존이 고당(高堂)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진은 얼른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사부님.”
원시천존은 말이 없었고 요진도 감히 일어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원시천존이 입을 열었다. “요진아, 이번 출정 전야에 이 정곤유리검(淨坤琉璃劍)에 검집이 하나 더 있다고 사부가 말하지 않았더냐.”
요진이 답했다.
“예, 사부님.”
원시천존이 또 말했다.
“사부가 그때 말하기를 네가 사법천신이 되면 천제가 자연히 이 검집을 네게 줄 것이라 했다. 그 이유를 아느냐?”
요진은 머리를 저으며 “제자는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원시천존이 또 말했다.
“그 검집이 바로 사법 신권(神權)의 화신인 사법권장이기 때문이다.”
요진은 매우 놀라며 물었다.
“그럼 이 검과 그 지팡이가 본래 일체였단 말입니까? 그런데 왜 나누어 사용합니까?”
원시천존이 계속 말했다.
“이 검은 사악함을 제거하는 예리한 무기로 그 서슬이 무한하다. 반면 이 검집은 날카로움을 갈무리하는 물건으로 중후하고 낮게 가라앉아 있다. 사법천신은 삼계의 사악을 제거하는 최고 직위이니 이 예리한 물건을 쓰는 것이 더없이 적합하다. 하지만 사법천신은 삼계의 선악에 대한 상벌도 관장하며 중생을 책임지고 그들의 보위자(保衛者)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리함만으로는 안 되며 중생을 보살피는 자비가 있어야 한다.
사부도 너와 이 정곤유리검 사이에 인연이 있어 사법천신이 되기도 전에 이 검을 얻게 될 줄은 몰랐구나. 그러나 만약 심지(心智)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 그저 싸우고 죽이는 것만 알고 자비로운 마음이 없는데 이 예리한 물건을 얻었다면, 그것이 복(福)일지 화(禍)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요진은 듣고 나서 조금 깨달은 바가 있어 고개를 점점 숙였다.
원시천존이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얘야, 고개를 들거라.”
요진이 고개를 들자 원시천존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얘야, 기억하거라. 네 검은 영원히 중생을 겨냥해서는 안 된다!”
요진은 눈물을 왈칵 쏟으며 절을 올리며 확고하게 말했다.
“제자, 삼가 사존의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
원시천존이 떠난 후 요진은 천천히 일어나 손에 든 검을 보고 그것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청란(靑鸞)과 희화(曦和)가 마침 그녀가 돌아온 것을 알고 찾아왔지만 요진은 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쳐 갔다.
청란이 보고 말했다.
“그녀가 언제부터 검은색 망토를 입었지? 저렇게 서둘러 어디를 가는 걸까?”
희화가 말했다.
“우리 가서 보자.”
요진은 자신이 예전에 살던 한 산동네로 들어갔다. 요진이 손을 들어 내리치자 산동의 석벽에 틈이 생겼고 이어 정곤유리검을 그 바위 틈에 끼워 넣었다. 다시 장력(掌力)으로 합치자 정곤유리검은 석벽 속에 봉인되었다.
청란이 그 모습을 보고 농담을 던졌다.
“왜, 문패를 떼어버리니 이제 싸울 일도 없다는 거야.”
희화는 요진의 표정이 엄숙한 것을 보고 청란을 잡아당기며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
희화는 요진의 안색이 창백하고 입술에 핏기가 없는 것을 보고 이상함을 느껴 즉시 그녀의 검은 망토를 들춰 보았다. 등은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다급하게 말했다.
“왜 약을 바르지 않았어. 사부님의 이 타신편은 장난이 아니야. 게다가 천존께서 약도 남겨주셨잖아.”
요진이 말했다.
“괜찮아. 그저 회복이 좀 느릴 뿐이야.”
청란도 걱정하며 말했다.
“자책하는 건 알지만 자신에게 이렇게 모질게 굴 필요는 없잖아. 희화, 빨리 약을 발라.”
요진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정말 피곤하니 내일 바르자.” 그러고는 두 사람을 밖으로 내보냈다.
요진은 정말로 몹시 피로했다. 옷을 갈아입고 동굴 안의 온천에 들어가 간단히 씻은 뒤 침상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요진이 깊은 잠에 빠져들 무렵 반쯤 잠든 상태에서 갑자기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사실 치우(蚩尤)에게 가슴을 도끼로 맞았던 옛 상처가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십 대의 매를 맞고 출혈까지 심해지자 옛 상처가 재발한 것이었다.
요진은 가슴을 부여잡고 연신 기침을 했다. 몽롱한 가운데 누군가 자신의 침상 곁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것이 느껴지자 요진은 가슴의 통증이 사라지고 훨씬 편안해졌다. 요진은 비몽사몽간에 황홀하게 어느 산봉우리 앞에 도착했다.
보니 그곳은 예전의 일지봉(一止峰) 금심곡(金心谷)이었다.
다시 보니 남색 머리에 흰옷을 입은 그 불타(佛陀)가 여전히 그곳 호숫가에 앉아 계셨다.
요진은 이 남색 머리 불타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요진이 남색 머리 불타에게 점점 가까워지자 불타가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것이 보였다. 이어 불타의 신체가 순간적으로 무한히 커졌고 요진은 불타 앞에서 아주 작은 점처럼 변했다.
그 불타가 손을 뻗어 엄지와 검지로 요진의 다리 하나를 집어 올리더니 요진을 거꾸로 매달았다.
요진은 조금 겁이 나서 말했다.
“아, 불타께서는 무슨 의도이십니까?”
거꾸로 매달린 요진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대하고 푸른 호수가 있었다. 요진은 기억해 냈다. 이곳은 예전에 불타가 정곤유리검을 씻어주던 곳이었다.
이에 요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저도 씻어야 합니까?”
불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놓아 요진을 호수 속으로 던졌다.
요진은 비명을 지르며 호수로 수직 낙하했다. 호수에 빠진 요진은 호숫가가 비할 데 없이 시원하고 부드러우며 심지어 이 물이 자신의 몸을 관통하여 모든 혈위와 맥락을 씻어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심신이 이 호숫가에 흠뻑 젖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요진이 그런 기분에 젖어 있을 때 커다란 손이 다시 그녀를 받쳐 올렸고 다시 던져 넣고 받쳐 올리기를 몇 번 반복했다.
요진이 머리를 수면 밖으로 내밀자 불타가 자신을 보며 미소 짓고 계셨다. 하지만 요진은 최근 마음이 좋지 않아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불타가 물방울 몇 개를 튕겨 그녀의 겨드랑이를 정확히 맞혔다. 요진은 너무 간지러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불타가 연달아 물방울을 요진에게 튕겼고 그것들이 모두 요진의 간지럼 타는 곳에 맞자 요진은 마침내 유쾌하게 크게 웃기 시작했다.
요진이 어느 정도 다 씻자 불타는 손바닥으로 그녀를 받쳐 들어 침상에 다시 데려다 놓았다.
요진은 가물가물한 정신에 이 남색 머리 불타가 자신의 침상 곁에 앉아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보며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이것은 요진이 남주 전쟁 이후 가장 편안하게 잔 잠이었다. 그녀가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온몸의 기력이 회복되었고 가슴도 아프지 않았다.
동굴 밖으로 나가자 마침 빛 한 줄기가 그녀의 얼굴을 비추어 매우 따뜻했다. 이때 마침 청란과 희화가 약을 들고 요진의 거처로 걸어오고 있었다.
요진이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아침 일찍부터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희화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어제는 오늘까지 살지 못할 것 같더니만.”
그 말을 들은 요진이 하하 크게 웃었고 청란도 우습다고 생각해 모두 함께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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