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곤륜산의 기새회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해치(獬豸)가 막 종료를 선언하려는데, 희화(曦和)가 말을 가로채며 외쳤다.
“잠깐, 잠깐만요! 마지막으로 요진이 우리를 위해 장기를 보여주기로 했잖아요! 이걸 빠뜨리면 안 되죠! 다들 그렇지요?”
모두가 환호하며 요진에게 공연을 청하자, 관중석에 앉아 있던 요진이 웃으며 일어나 대답했다. “좋아요, 좋아요!”
청란(靑鸞)이 거들었다.
“반드시 우리 누구도 할 수 없는 걸 보여줘야 해!”
좌중에서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요진이 웃으며 무대로 올라와 말했다.
“딱히 장기라고 할 만한 건 없어요. 대신, 여러분을 태우고 삼계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가 사주(四洲)의 전체 모습을 구경시켜 드리는 건 어떨까요?”
곤륜산의 많은 생령은 법력이 낮아 구름을 높이 타지 못하므로, 평생토록 사주의 전경을 다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모두 일제히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모두가 찬성하는 것을 본 요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본체인 백호(白虎)로 변신했다. 그리고 식구들에게 말했다.
“자! 사주의 전경을 보고 싶으면 모두 등 위로 올라오세요!”
가장 먼저 올라탄 것은 청란이었고, 이어 희화, 해치, 추우(鄒虞) 등 신수(神獸)들이 뒤따랐다.
요진은 평소 법력이 낮아 주저하는 생령들을 보고 격려했다.
“어서 타요! 누구든 다 괜찮아요! 내가 다 태울 수 있으니까!”
그러자 법력이 낮은 생령들도 요진의 등 위로 올라왔다. 아직 다람쥐나 원숭이처럼 법력이 전혀 없는 작은 동물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머뭇거리고 있자, 요진이 물었다.
“너희 땅에 있는 친구들도 올라오고 싶니?”
그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자, 요진이 진기(眞氣)를 한 번 내뿜어 그들을 모두 자신의 등 위로 실어 올렸다.
이제 곤륜산의 거의 모든 생령이 요진의 등에 올라탔다.
요진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다들 꽉 잡으세요! 출발합니다!”
그렇게 요진은 곤륜산의 생령들을 태우고 서서히 하늘로 솟구쳤다. 땅에서 점점 멀어지며 속도가 빨라졌지만, 모두가 느끼기에 요진의 등은 대지처럼 두텁고, 온화하며, 넓고 안전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사주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두 경탄하며 즐거워했고, 요진은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똑같이 행복함을 느꼈다.
그 시각, 청허(靑虛)는 왕석지(汪昔池)에서 상고 시기 서왕모(西王母)가 남긴 편지들을 세밀히 대조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요진의 편지를, 다른 한 손에는 서왕모의 편지를 들고 글자 하나하나를 관찰했다.
청허가 경탄했다.
“너무 똑같구나! 필적이 어쩜 이리도 닮았단 말인가! 설마…. 요진이 서왕모의 환생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
“아니야. 나와 서왕모는 모두 복희대제의 자식인데, 복희대제께서 인면룡신(人面龍身)이시니 나는 청룡으로 전생했고 그녀 역시 마땅히 용이어야 맞거늘, 어찌하여 백호로 전생했단 말인가?”
청허는 편지들을 내려놓고 생각해보다 말했다.
“안 되겠다, 청해(靑海) 바닥에 한 번 다녀와야겠어. 옛 곤륜의 폐허에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말을 마친 청허는 생각을 움직이자 순식간에 청해에 도착했다. 그 폐허는 아주 깊은 심해에 있었기에 그는 편의상 응룡(應龍) 진신(真身)으로 변해 바닷속으로 잠입했다.
한편, 요진은 생령들을 태우고 오후 내내 비행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갔다.
해치가 말했다.
“이제 돌아갑시다. 날이 어두워지면 보이지도 않을 테고, 요진도 힘드실 테니. 다들 눈 호강 제대로 했으니 만족하지요?”
생령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맞아요! 이제 돌아가요. 오늘 이런 기경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요진을 좀 쉬게 해줍시다!“
요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돌아갑시다!”
요진은 식구들을 곤륜산에 내려주었다. 식구들은 축하 연회를 시작했으나, 요진은 기력이 다해 신선으로 변할 틈도 없이 곧장 복숭아 정원으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요진은 백호의 몸 그대로 복숭아나무 아래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청허는 심해의 폐허 속을 밤새 뒤졌으나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그 역시 피로를 느껴 청해에서 빠져나왔다. 때는 바야흐로 새벽녘이었다.
청허가 뭍으로 올라오자마자 은은한 복숭아꽃 향기가 풍겨왔다. 근처 곤륜산 주봉(周峰) 부근인 듯했다. 그는 생각했다.
‘저 앞 근처에 분명 복숭아 정원이 있겠군, 거기서 잠시 쉬어가야겠다.’
그리하여 한 마리 푸른 응룡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요진의 복숭아 정원에 내려앉았다.
청허는 생각했다.
‘향기가 참으로 그윽하구나. 아무 복숭아나무 아래나 몸을 말고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
청허는 나무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요진 역시 잠들어 있었다. 두 사람의 코 고는 소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어우러졌다.
물처럼 흐르는 달빛 아래 향기가 그윽하고, 산들바람에 복숭아꽃잎이 흩날려 청허의 어깨와 요진의 이마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다음 날 동트기 전, 밤새 축제를 즐겼던 곤륜산 식구들이 막 잠자리로 들려던 참이었다.
해치가 졸린 눈을 비비며 자신의 처소로 가다가 무심코 복숭아 정원 쪽을 바라보았다. 돌연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빨리 와 보세요! 저 정원 위로 상서로운 빛이 반짝반짝합니다! 저것은 용반호거(龍蟠虎踞,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림)의 형상이 아닙니까!”
모두들 이 기이한 광경을 보고 입을 모았다.
“정말 상서로운 모습이네요. 상서로운 빛이 정원을 온통 감싸고 있어요……“
해치는 식구들을 이끌고 서둘러 정원으로 달려갔다.
이때 막 잠에서 깬 요진은 정원에 손님이 찾아왔음을 느끼고 서둘러 신선으로 변했다. 앞을 내다보니 푸른 용 한 마리가 나무 아래 몸을 말고 있었다.
청허 역시 인기척에 눈을 떴다. 막 변신하려다 자세히 보니 깜짝 놀랐다. 상대는 뜻밖에도 요진이 아닌가!
그때 해치 일행이 정원에 들이닥쳤다. 청허는 이토록 많은 이들 앞에서 정체를 드러낼 수 없다고 판단해, 곧장 청룡의 몸으로 하늘로 솟구쳤다.
요진은 날아오르는 청룡의 갈비뼈 근처에 돋아난 하얀 날개를 보았다. 무척 낯익은 모습이었다. 순간, 그녀는 이 용이 바로 남주에서 황제를 도와 천유(天油)의 불을 껐던 그 청색 응룡임을 깨달았다!
요진이 반갑게 외쳤다.
“청응룡! 당신인가요? 당신을 알아봤어요!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그때 나무를 살피던 해치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열매가 맺혔다! 열매가 맺혔어! 이 나무에 열매가 열렸다! 요진, 이것 좀 보세요!”
요진이 보니 꽃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마다 주먹만 한 열매들이 맺혀 있었다!
요진은 벅찬 감동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서둘러 무릎을 꿇고 청응룡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를 또 한 번 도와주셨군요……”
하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청허는 의아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 꼬마 바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나한테 절을 하다니? 사람이 너무 많으니 일단 돌아가야겠군. 요진, 네가 정말 서왕모인지 내가 꼭 밝혀내고 말 테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겐 이번 생에도 이어질 인연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 기다려라, 요진!’
말을 마친 그는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청응룡이 떠난 후, 요진은 가지마다 맺힌 작은 복숭아들을 어루만지며 기뻐했다.
“이 복숭아는 보통 것과 달라요. 여러분이 보기엔 어때요?”
청란이 말했다.
“빛깔은 분홍빛이라 일반 복숭아와 다를 게 없는데, 모양이 참 특이하네요. 보통은 둥근데 이건 무언가에 한 바퀴 눌린 듯 납작하잖아요!”
요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맞아요. 방금 청응룡이 나무 아래 서려 있었잖아요. 아마도 저 신룡(神龍)의 몸에 징음과 징양의 기운이 깃들어 있으니 열매도 그를 닮은 게 분명해요!”
희화가 말했다.
“신룡이 머물다 간 나무에서 용이 서린 듯한 모양의 열매가 맺히다니, 정말 신기하네요!”
요진이 덧붙였다.
“맞아요! 내가 말했죠? 남주에서도 저 청응룡 덕분에 큰 고비를 넘겼다고요. 그는 법력이 무궁무진한 분이에요. 그런데 이제 또 저를 도와 중생을 구제하러 오셨네요. 이 복숭아가 잘 자라면 얼마나 많은 수행자의 육신(肉身)을 제도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인간들도 더는 고해(苦海)에서 헤매지 않아도 될 테니, 드디어 희망이 생긴 거예요!”
해치가 수염을 만지면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건 평범한 복숭아가 아니니, ‘반도(蟠桃)’라 불러야겠구나! 하하하!”
요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원 입구에 커다란 팻말을 세웠다. 그곳에는 ‘반도원(蟠桃園)’이라고 적혀 있었다……
청허가 동궁으로 돌아오자마자 홍균노조의 시동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동은 노조의 지시를 전했다.
“청허는 즉시 폐관(閉關)에 들어라. 4,999일 7시 8각을 채운 뒤에야 나올 수 있다.”
청허는 명을 받들고 폐관에 들어갔다. 이로써 요진이 서왕모인지 조사하려던 계획은 잠시 멈추게 되었다.
반도원에 열매가 맺힌 후, 요진은 밤낮으로 반도를 돌보며 사주의 선악을 다스리고 상벌을 정하는 업무를 병행했다. 또한 이 경사스러운 일을 천제께 어떻게 보고할지 고민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반도는 큼직하게 자랐고, 천제로부터 정식 허가도 받아냈다.
어느 날, 요진은 도하산인(渡河散人)과 함께 반도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요진이 물었다.
“반도가 완전히 익으려면 얼마나 더 걸릴까요?”
도하산인이 대답했다.
“3년 정도 남았습니다.”
요진이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우리 둘만 맛을 보는 건 너무 주관적일 수 있으니, 사람을 제도하는 뭇 신선들을 모셔다 반도 시식회를 열고 싶습니다.”
도하산인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진 역시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좋아요, 조만간 초대장을 보내 반도원에서 연회를 열어 뭇 신선들을 청하고 또 수행인 몇 분도 함께 데려오시면 더욱 좋겠어요.”
도하산인은 말없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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