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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목기 시즌 4 (15)

화본선생

【정견망】

“얘야 정아야, 어디 가느냐?” 건장한 사내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며 다정하게 물었다.

“어…… 그냥 좀 돌아다니는 길이에요…… 공자님, 지난번에는 미처 감사 인사도 못 드렸네요. 우리 아가씨 몸이 좋지 않으셔서 급히 돌아가느라…….” 정아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아무렴 어떠냐, 괜찮다. 세화 낭자는 좀 나아지셨느냐?”

“그날 공자님께서 말을 찾아주신 덕분에 패(貝)가 생겨 보양식을 많이 살 수 있었어요. 덕분에 아가씨는 거의 다 나으셨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허허, 내 이름은 이광요라고 한다. 그냥 광요라고 부르면 되지 공자라고 부를 것 없다.”

“아, 광요 형님.” 정아가 예를 갖춰 인사했다.

“내가 북쪽 거리에 술집을 하나 열었단다. 먹고 싶은 것이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가서 가져가거라.”

“네, 감사합니다. 광요 형님. 저는 이제 가서 밥을 지어야 해서 이만…….”

“그래, 바쁘겠구나. 세…….” 이광요가 막 세화 낭자라고 말하려는데 정아는 이미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그의 말이 채 끝나지 않은 것 같자 정아는 예의 바르게 다시 고개를 돌려 물었다.

“네? 뭐라고 하셨나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어서 가거라, 가!”

정아가 다시 예를 표하고 떠나자 이광요는 더 묻고 싶었지만 이내 생각했다.

‘이제 세화 낭자는 출가하여 남의 부인이 되었고, 나 역시 악행을 버리고 양민이 되었으니 이런 분에 넘치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휴…… 내 나이도 적지 않고 이 장가만에서의 생활도 나쁘지 않으니, 나도 이제 집안일을 돌봐줄 부인을 찾아야겠구나…….’

이광요는 생각할수록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쓸쓸한 마음으로 자신의 술집으로 돌아가자, 가게 일을 돕던 점원이 그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형님, 요 며칠 매일같이 싱글벙글하시더니 오늘은 어찌 이리 울적해 보이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먼저 일을 보거라. 일이 끝나면 뒤뜰로 오너라. 상의할 일이 있다.”

“알겠습니다, 형님!”

이 이광요라는 인물을 말하자면 그는 사실 어릴 때부터 양회를 알고 있었다. 당시 양회는 일곱 살이었는데, 큰 병을 앓고 난 직후라 말을 타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마침 그날 양부(楊府)의 늙은 하인의 조카가 놀러 왔는데, 아가씨가 말을 타겠다고 막무가내로 울어대니 하인들이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늙은 하인이 아가씨에게 말했다.

“아가씨, 저희 집에 검은 망아지가 한 마리 있습니다. 울음을 그치시면 제가 지금 당장 데려오겠습니다!”

아가씨가 떼를 멈추자 하인은 얼른 집으로 가서 조카를 데려와서는, 양부 아가씨를 위해 잠시 말 노릇을 하며 달래주라고 일렀다.

그 늙은 하인의 조카가 바로 이광요였다.

아가씨가 보니 이건 검은 망아지가 아니라 웬 새까만 남자아이가 아닌가? 그래서 다시 울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이광요는 눈치가 빨라서 곧바로 사지(四肢)를 땅에 대고 엎드리며 말했다.

“아가씨가 말을 좋아하시면 말이 되고, 개를 좋아하시면 개가 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는 말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덧붙였다.

“아가씨, 어서 올라타세요! 말이 달립니다!”

양회는 사지를 땅에 댄 채 시커먼 모습을 한 이광요를 보자 왠지 낯설지 않아 울음을 멈추고는 날쌔게 올라타 어린 광요와 놀기 시작했다.

양회의 부모는 딸이 드디어 울음을 그친 것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양부는 다시 평소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이광요는 이렇게 사흘 동안 양회와 놀아주다가 부모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사흘은 이광요의 기억 속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훗날 그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타지에서 방황하다가 그만 발을 잘못 들여 산적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이광요는 매우 의리가 있고 일 처리가 꼼꼼하며 사람 됨됨이가 좋아 주변의 신망을 얻었다. 늙은 산적 두목이 죽으면서 그에게 두목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는 그 일대의 두목이 된 후 주로 부유한 자의 재물을 털어 가난한 이를 돕는 일을 했는데, 대개 탐관오리 첩의 친가 같은 곳을 노렸다. 그러다 양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세화 낭자가 처지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산적질을 그만두고 양민이 되어 세화 낭자와 혼인하려 마음먹었다. 그러나 부하들은 우리가 양민이 되어봐야 보잘것없는 평민일 뿐이니 아가씨가 우리에게 시집올 리 없다며 차라리 신부를 가로채자고 제안했다.

이광요는 그 말에 마음이 움직여 부하들을 이끌고 혼례 행렬을 덮쳤고, 그리하여 이야기 도입부의 그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뜻밖에도 신부를 뺏기는커녕 장가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광요는 양회가 진작 장가만을 탈출했을 거라 생각하고 남은 부하들과 함께 이 술집을 차려 장가만에서 자리를 잡았다.

사실 이광요는 이전부터 악행을 버리고 선하게 살고 싶었으나, 산적의 길에 한 번 발을 들이니 되돌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살생과 약탈을 멈춘다 해도 이전에 훔친 것과 죽인 사람들은 어찌하겠는가? 관가에서 개과천선했다고 해서 과거의 일을 눈감아주겠는가? 그럴 리 없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민이 된다 해도 평생 도망자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장가만은 복된 땅이었다. 이곳은 외부에서 들어올 수도, 안에서 나갈 수도 없었으며 관가도 없었다. 인심은 선하고 교양은 높았으며 외상이나 도박, 매춘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치에 밝아 장사하기에도 더없이 좋았다.

그리하여 이광요는 이곳에서 매우 안락하게 지내며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유일한 유감은 세화 낭자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 여긴 점이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술집을 뚝딱 차릴 밑천은 어디서 났을까? 가져온 돈인가? 산적질하러 가는데 밑천을 챙겼을 리 없지 않은가.

사연인즉슨, 당시 장우방과 요사스러운 도사가 대전을 벌인 후 양부에서 가져온 혼수 상자 몇 개가 강가에 흩어졌는데, 이를 이광요와 부하들이 몰래 주웠던 것이다.

덕분에 이광요는 주점을 차릴 수 있었고, 청동과 조개 화폐 및 옥 장신구도 많이 남았다. 이광요는 전당포에서 보석을 좀 더 처분해 가게를 몇 군데 더 차릴 생각으로 전당포에 갔다가 마침 말을 찾으러 온 양회와 마주친 것이다.

그날 양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타고 떠났다. 그는 막 뒤를 쫓으려다 생각했다.

‘이제 나는 도둑질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출가한 몸이니 더는 쫓아가서는 안 된다. 세화 낭자, 부디 몸조심하시오!’

이광요는 술집으로 돌아와 부하들에게 세화 낭자를 만난 일을 아주 기쁘게 이야기하며 당부했다. 앞으로 장부(張府)를 지켜주고 장부 사람들을 만나면 예의를 갖추며, 장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식사하거나 묵으면 한 푼도 받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고는 남은 재산을 전부 세화 낭자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이 술집도 그녀가 운영하고 싶다면 돌려주고, 자신과 부하들은 앞으로 그녀를 위해 일하며 잡일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며칠간 장부를 정리하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장부 별원 주변을 서성이며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 혹여 진실을 말했다가 세화 낭자가 크게 화를 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침 정아가 나오자 그는 슬쩍 말을 걸어 안면을 튼 뒤, 친해지면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려 했던 것이다.

……

“형님, 저희 일은 다 끝났습니다.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광요는 부하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형제들에게 할 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나도 나이가 찼으니 집안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 다들 나를 위해 부인감을 좀 물색해 다오.”

부하들이 흥미를 보이며 그중 한 명이 물었다.

“형님, 어떤 사람을 원하십니까?”

이광요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음…… 검은 머리카락은 폭포처럼 길고 검어야 하고, 눈썹은 짙푸른 산과 같아야 하며, 눈은 살구씨 모양에 맑고 신기가 있어야 한다. 얼굴은 반드시 둥글고 복스러워야 하며, 콧날이 굳이 높을 필요는 없지만 코와 입은 반듯해야 한다. 웃지 않을 때는 단정하고 웃을 때는 시원스러우며, 내숭 떨지 않고 꾸밈없는 참된 성품이어야 한다…… 체구는 너무 크거나 너무 말라서도 안 되고 어깨가 너무 좁아서도 안 된다. 버드나무처럼 연약한 사람은 안 되고, 영기와 호기가 있으며 말을 탈 줄 알고 활도 쏠 줄 알아야 한다…….”

부하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중 건장한 사내 하나가 농담조로 말했다.

“형님! 제가 지금 당장 장부 별원에 가서 양 아가씨를 업어 오겠습니다!”

다들 박장대소했지만 이광요는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 아니다. 누구도 양 아가씨에게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이미 시집을 갔다. 두 번째 일도 양 아가씨와 관련이 있다. 우리 술집이 양 아가씨의 혼수로 차린 것이 아니냐. 이제 우리는 도둑질을 하지 않기로 했으니 이 혼수를 한 푼도 남김없이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본래 술집도 통째로 돌려주려 했으나 며칠간 장부를 따져보니 술집 수익이 꽤 나서 이미 밑천을 다 뽑았더구나. 혼수만큼의 돈을 다 벌었으니, 여기에 내가 좋은 선물들을 더 얹어 양 아가씨의 도움에 보답하려 한다. 날을 잡아 너희도 나와 함께 이 혼수와 선물들을 돌려주러 가자.”

부하들도 듣고 보니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자신들이 안락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양 아가씨의 혼수 덕분이었기에 기꺼이 찬성하며 각자 준비를 하러 흩어졌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