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비록 아들을 잃었지만, 나는 그가 분명 어느 신선의 눈에 띄어 이 십악(十惡)의 말세를 피하고 도를 닦으러 갔을 것이라고 짐작해요.” 거울 속의 여인이 말했다.
“당신 신선극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에휴.” 옆에 있던 거무스레한 남자가 말했다.
“너무 근심하지 말아요, 사람마다 각자 운명이 있는 법이니까요. 지금 전국에 홍수가 나고 있는데, 소동(小同)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해도 꼭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여자가 다시 말했다.
“음,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요, 오늘 태양이 얼마나 큰지 보세요. 꽃밭을 비추는 모습이 정말 눈부시니 사진 한 장 찍어줘요!” 여자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 꽃밭 안으로 들어가 봐.”
“정말 덥구나” 그녀는 겉옷을 벗고 눈처럼 하얀 두 팔을 드러냈다.
요곤은 거울 속의 자신이 다시 어깨와 팔을 노출하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손을 내저으며 도액성군에게 말했다.
“됐어요. 일단 그만 보고 그대가 내게 설명해 주면 되겠소.”
“알겠습니다 전하. 아무래도 공주님께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듯하니 제가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이러한데, 당신께서 이번에 인간 세상에 내려가 겁난을 겪으신 것은 인류 문명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 사전문명(史前文明)을 다지기 위해서였습니다.
전하께서는 말세 상인(商人) 가정에 태어나셨는데, 당신이 태어나신 해는 이번 차례 인류가 멸망하기까지 불과 32년이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32년 동안 비록 삶이 평탄치 않았으나 여전히 선량하고 정직하며, 하늘을 공경하고 도를 중히 여기셨습니다. 불법(佛法)을 비방하지 않고 이단과 사령(邪靈)에 좌우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신명(神明)과 인과(因果)를 믿으셨기에 이번 멸세(滅世)의 대홍수 속에서 다행히 살아남으셨습니다.
전하께서는 남은 생을 살아남은 인류와 함께 산굴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며 보내셨습니다. 당신께선 기억을 더듬어 석벽에 사진기의 도상을 새기셨고, 이로써 이번 생의 임무를 완수하여 성공적으로 겁난을 겪고 천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기’가 새겨진 석벽은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화석이 되어 땅속 깊이 묻혔다가 다시 심해로 옮겨졌습니다. 결국 인간 세상의 2억 년이 흐른 뒤, 삼계(三界)의 마지막 인류 문명 시기에 나타나 인류의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됨으로써 당시 인류의 이른바 ‘과학계’를 뒤흔들게 될 것입니다. 이는 폐하의 정법(正法)을 돕기 위함입니다.”
이때 그녀는 도액성군의 말을 들으며 갑자기 “천서(天書)를 들음”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정말이지 무엇 하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법(正法)’이라는 두 글자를 듣고 마음속이 울렁이며 말했다.
“정법이라고?”
도액성군이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하께서 설마 이런 대사(大事)를 잊으신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이 노신(老臣)이 어서 폐하께 아뢰어야겠습니다!”
그녀는 폐하께 아뢰겠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다급해져 얼른 말했다.
“아, 기억나오, 기억나. 이런 큰일을 내 어찌 잊을 수 있겠소? 음, 말하자면, 내가 기억의 일부분을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 겁난을 지난 것과는 상관이 없는 듯하오. 아마 다른 곳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니 내가 다른 성군(星君)들에게 물어보리다. 그대는 일단 물러가시오!”
도액성군은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그럼 노신은 이만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아 별일 아니니 돌아가시오!”
도액성군이 떠난 후 그녀는 조금 시름에 잠겼다.
“에휴, 이 천국의 공주 노릇도 오래 하지는 못하겠구나. 공주 노릇이 비록 화려하고 편안하긴 하지만 남을 흉내 내는 것도 참으로 고된 일이로다. 나는 지금 왜 원신(元神)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언제 떠나게 될지도 모르니, 차라리 그들에게 솔직히 털어놓는 게 낫지 않을까? 만약 능력 있는 분이 있어 내가 요곤의 몸을 떠나게 해주고 투태(投胎)를 도와준다면, 나도 이어서 수련을 할 수 있을 텐데! 내 스스로 수련해서 천국에 오는 것이 좋지, 굳이 남을 ‘사칭’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럼 누구에게 고백해야 할까. 맞다, 현궁의 숙광경을 빌리자. 듣기로 현궁이 가장 소탈하고 친절하다고 하니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기회를 보아 이 사실을 털어놓아야겠다.’
이때 시녀 무리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어떤 이는 향로를 들고, 어떤 이는 대나무 국자를 가졌으며, 어떤 이는 목욕 수건을 받들고, 어떤 이는 목욕용 구슬을 들고 있었다.
“전하, 목욕하시옵소서.” 앞장선 시녀가 백옥 병풍을 열자 목욕용 구슬을 든 시녀가 18개의 수정 구슬을 천천히 욕조에 넣었다. 향로를 든 시녀가 향기를 욕조에 뿌리자 욕실에는 금세 달콤한 향기가 퍼져 나갔다.
그녀가 욕조에 들어가자 수정 구슬이 그녀의 몸 위를 장난스럽게 굴러다녔고, 시녀는 대나무 국자로 물꽃을 떠서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에 부드럽게 끼얹었다.
그녀가 창밖을 내다보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하늘 가득 별들이 수놓아져 있고 자줏빛과 푸른 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천궁의 밤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전하, 잠자리에 드시옵소서.”
……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어제의 그 시녀를 다시 불러 말했다.
“나와 함께 좀 걷자꾸나. 그러고 나서 나와 함께 현궁의 숙광경을 빌리러 가자.”
“명을 받들겠습니다.”
요곤과 어린 시녀가 침전을 나서자 길에서 마주치는 신선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모습도 제각각이어서 옷자락을 휘날리는 이, 소매가 넓은 도포를 입은 이, 코끼리를 탄 이, 학을 탄 이가 있었고, 백발인 이와 흑발인 이, 머리에 천을 두른 이와 맨발인 이도 있었다. 이 신선들 중 어떤 이는 요곤에게 읍을 하며 예를 표했고,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였으며, 어떤 여신선은 예법을 행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지나간 자리에 향기가 남기도 했다.
“저들은 모두 어떤 신들이냐?” 요곤이 물었다.
“전하께 아뢰나이다, 저들은 모두 천정의 신관(神官)들로 아침 조례에 가는 길입니다.”
“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날아갔다.
한참을 날아가던 그녀는 문득 낭랑한 글 읽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푸른 대나무로 만든 전당이었는데, 전당 밖에는 나무로 조각된 귀여운 신수(神獸)들이 있었다. 신수들은 저마다 다른 물건들을 들고 있었다. 어떤 것은 그네 같았고 어떤 것은 미끄럼틀 같았으며, 도저히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녀가 신수들에게 서서히 다가가자 기린 목조각이 갑자기 입을 열어 말했다.
“전하, 그네를 타시겠습니까?”
요곤이 대답하기도 전에 기린은 자신의 목을 밧줄로 바꾸고 몸은 푹신한 방석으로 변하게 하더니 스스로 그네 모양이 되어 구름 사이에서 흔들거렸다.
요곤은 그 익살스러운 모습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기린은 다시 순식간에 목조각으로 돌아갔다.
요곤이 전당 가까이 다가가니 전당 위에는 편액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맹동양정(萌童養正 역주: 새싹과 같은 어린 아이를 바르게 기른다는 의미)”
“이곳은 어디냐?”
“예 전하, 이곳은 폐하께서 신관들의 자녀를 위해 만드신 유아 학당입니다.”
요곤이 학당 안을 들여다보니 많은 아이들이 포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학당에 있는 훈장 선생님은 생김새가 조금 기이했다. 그가 웃으며 눈매를 굽히면 두 눈이 네 개로 변했다가, 웃음이 멈추면 다시 두 개로 돌아왔다. 다만 그 두 눈 역시 눈동자가 겹쳐진 ‘중동(重瞳)’이었다.
요곤은 그 선생을 보며 왠지 무척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때 문 입구로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 하나가 날아왔고, 그 아이 뒤에는 두 명의 어린 서동이 따르고 있었다. 세 아이는 함께 학당 안으로 들어갔다.
중동 선생이 몸을 굽혀 인자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오, 네가 바로 문창제군(文昌帝君)의 막내아들이구나!”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선생님(老師). 저… 저는… 오늘 처음 왔습니다.”
선생은 아이가 조금 긴장한 것을 보고 농담조로 말했다.
“노사(老師)가 아니라 소사(少師)라 부르거라, 나는 아직 젊으니까.”
아이는 이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작은 손을 들어 읍을 하고 절하며 말했다.
“소사님, 안녕하십니까.”
선생은 자애롭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아이가 읍을 하며 대답했다.
“소사님, 제 이름은 임풍잠(林風潛)이라 합니다.”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손짓했다.
어린 풍잠이 자리에 앉자 선생이 다시 다정하게 물었다.
“소림(小林)아,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느냐?”
어린 풍잠이 대답했다.
“네 선생님, 역사책을 읽었습니다.”
선생이 기뻐하며 말했다.
“오, 기특하구나! 좋다, 그럼 선생님이 하나 물어보마. 우리의 이 건곤(乾坤)은 누가 여셨느냐?”
어린 풍잠이 공경히 대답했다.
“반고(盤古) 대신(大神)이십니다.”
상고 신명(神明)의 이름을 올렸기에 그는 말을 마친 후 다시 공경하게 하늘 끝을 향해 읍을 하며 예를 올렸다.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반고 대신께서는 자녀를 몇이나 두셨느냐?”
풍잠이 대답했다.
“예 선생님, 다섯 자녀를 두셨습니다.”
선생님이 또 물었다.
“그 다섯 자녀의 이름은 각각 무엇이냐?”
풍잠이 대답했다.
“예 선생님,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칭찬하며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네가 모르는 것이 없구나! 그럼 내가 조금 더 어려운 것을 물어보마. 음…”
중동 선생은 짐짓 생각에 잠긴 척하다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반고 대신의 다섯째 자녀인 토(土)는 또 무엇으로 변하느냐?”
이 질문에는 어린아이들 모두가 대답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선생님이 힌트를 주며 말했다.
“토를 또 무엇이라 부르느냐?”
풍잠이 말했다.
“토는 또 지(地)라고 합니다.”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지(地)는 또 무엇이라 부르느냐?”
아이들이 또 대답을 못 하고 있을 때, 청아한 악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동 선생이 말했다.
“수업 끝이다!”
아이들이 일어서서 선생님에게 공경히 절을 올렸다.
요곤은 문가에 서서 멍하니 그 중동 선생을 바라보았다.
“둘째 전하?” 선생이 문을 나서다 요곤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요곤이 멍하니 그의 중동을 쳐다보자, 선생은 책으로 그녀의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
“스승을 보고도 예를 올릴 줄 모르는구나!”
요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읍을 하며 몸을 굽혀 인사했다.
“깜빡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노여워 마십시오.”
“할 일 없이 자꾸 돌아다니지 말고, 전쟁에서 돌아왔으니 책 좀 많이 읽거라. 문장을 다듬는 법도 나중에 다 쓸모가 있을 것이니라.”
“예, 예.” 요곤은 여전히 몸을 굽힌 채 대답했다.
중동 선생은 한참을 잔소리하며 멀리 날아갔다.
요곤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이 선생님은 누구시냐?“
”저분은 창힐(倉頡) 대인입니다. 전하께서 어릴 적부터 모셨던 문사(文師)이십니다.“
”아, 어쩐지. 가자, 이제 현궁을 찾으러 가자.“
……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1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