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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목기 시즌 4 (29)

화본선생

【정견망】

“현궁의 처소는 내 침전에서 아주 멀구나.” 요곤(瑤坤)이 날아가며 말했다.

“맞습니다. 하나는 서쪽에 있고 하나는 동쪽에 있지요.” 시녀가 대답했다.

어린 시녀는 요곤을 데리고 한 장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서쪽 궁전만큼 웅장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아하고 담박한 기운이 더해져 머물기에 훨씬 편안한 듯했다.

그들이 어느 궁전 앞에 날아가니 궁전 편액에 커다란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동궁(東宮).

“전하!” 문 앞의 두 시위가 무릎을 꿇고 요곤에게 예(禮)를 올렸다.

요곤이 전내(殿內)로 들어가니 대전 정당 앞의 책상 위에 상소문이 가득했다. 수십 무더기는 됨직했는데, 무더기마다 상소문이 아주 높이 쌓여 있었다.

“누이가 왔구나!”

그녀는 방 안에 서서 현궁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누이야! 이쪽으로 오너라!”

그 목소리가 상소문 더미 뒤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녀가 책상 쪽으로 날아가 옆면에서 살펴보니 현궁이 상소문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는 여덟 개의 팔을 내어 네 개로는 상소문을 받치고 네 개로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요곤을 바라보자 요곤은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에는 여덟 개의 눈이 더 생겨나 이마에서 턱까지, 다시 턱에서 이마까지 한 바퀴를 두르고 있었다. 이 눈들이 다소 무섭게 보여 요곤이 소스라치게 놀라자, 현궁은 서둘러 팔과 눈을 거두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걸로 놀란 것이냐? 설마 그럴 리가?” 현궁이 물었다.

요곤이 보니 상소문이 너무 많아 현궁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서 정면에서는 아예 그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눈이 여덟 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다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아 그녀가 말했다.

“상소문이 이렇게 많은데 눈 여덟 개로 충분한가요?”

현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네 눈 여덟 개도 빌려주려무나!”

“아 참, 오빠의 숙광경(宿光鏡)을 좀 빌려줘. 요곤이 말했다.

현궁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우선 여기 앉아 차를 좀 마시렴. 잠시 후에 가져다주마.“

현궁이 중지로 튕기자 작은 사람 둘이 나타났다. 이 작은 사람들은 키가 고작 1촌(寸) 정도였으나 힘이 매우 셌다. 그 둘은 한 손으로 상소문 뭉치를 받쳐 들고 쏜살같이 책상 절반 분량의 상소문을 구석으로 옮겨 책상 한쪽을 깨끗이 치웠다. 그러고는 번개 같은 속도로 찻주전자와 찻잔, 찻잎을 가져와 차를 우려냈다.

요곤의 눈에는 작은 그림자 둘이 눈 깜짝할 사이에 움직이며 찻상 절반을 정리하고, 의자를 닦고, 차를 우려내는 모습만 보였다. 이 모든 일이 대략 2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두 작은 사람은 책상 위에 나란히 서서 요곤에게 예를 갖추어 말했다.

“전하, 차를 드십시오.”

요곤은 그제야 그들의 얼굴을 똑똑히 보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도(阿陶) 아묵(阿默)?”

두 작은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그중 하나가 말했다.

“아도 아묵이라굽쇼?”

다른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이름도 나쁘지 않네.”

방금 말한 쪽이 다시 말했다.

“그럼 네가 그렇게 불려라. 너 이제부터 아도아묵이라 할까?”

다른 쪽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네가 해, 난 안 할 거야.”

방금 말한 쪽이 또 대꾸했다.

“안 돼, 네 글자는 너무 길어. 난 싫어.”

요곤은 그들 둘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

그런데 요곤이 한창 즐거워하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리 위로 뜨거운 찻물이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찻잎과 뜨거운 물이 이마에서 얼굴로 흘러내려 옷깃을 적셨다.

‘누가 한 짓일까?’ 방 안에는 다른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현궁이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눈썹을 세우며 아주 흉험(凶險)한 기색으로 현궁을 노려보았다.

찻주전자를 들고 있던 현궁이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솜털이 바짝 서며 몸이 절로 뒤로 움츠러들었다.

요곤이 머리에 찻잎을 얹은 채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현궁은 즉시 웃음을 띠며 말했다.

“너구나! 정말 너야!”

말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찻주전자를 던져버리고 일어나 직접 요곤의 머리에 붙은 찻잎과 얼굴의 찻물을 닦아주었다.

현궁은 당황해서 찻잎을 떼어내며 입으로는 요곤의 머리카락을 후후 불어주었다. 그는 불면서도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후후, 화내지 마라. 누이야, 후후, 화내지 마. 미안하다, 미안해.”

요곤이 앉아 있고 현궁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분주히 움직일 때,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오빠 나를 시험해 본 거야? 진짜 친동생 요곤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너야, 너. 틀림없는 너구나. 허허.” 현궁이 웃으며 말했다.

“됐어. 우리 다 신(神)인데 굳이 직접 손으로 치워야 해?”

요곤이 말을 마치고 손을 휘두르자 머리 위의 찻잎과 몸에 묻은 찻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현궁이 몸을 굽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 안 났지?”

요곤은 현궁의 길쭉한 눈이 가늘게 실눈이 된 것을 보았다.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웃으며 물었다.

“오빠는 여동생이 그렇게 무서워?”

현궁은 고개를 저으며 허허 웃으며 말했다.

“무서운 게 아니라 흉험하고 오싹한 것이지.”

요곤은 하하 크게 웃으며 쓴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하하하! 공주에게 천병천장(天兵天將)을 거느리고 전쟁터에 나가 요괴와 마귀를 베라고 하셨으면서, 흉험하지 않을 수 있겠어? 오싹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현궁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누이야, 지금을 소중히 여겨라. 시집간 후에는 예전처럼 전쟁터에 나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요곤이 물었다.

“왜? 시집가면 왜 전쟁에 못 나가는데?”

현궁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하듯 말했다.

“네가 정말 정신이 없구나. 시집가기 전에는 요(瑤)라 불리지만, 시집간 후에는 곤(坤)이 된다. 너는 곤이다! 삼계의 대지(大地)란 말이다! 네가 다시 전쟁을 일으켜 무기를 휘두르면 이 건곤(乾坤)에 지진이 나지 않겠느냐!”

요곤은 이해한 듯 만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시집이라고? 누구한테 시집가는데?”

현궁은 멍해지더니 손등으로 그녀의 이마를 살짝 짚어보고는 자신의 이마도 짚어보며 물었다.

“도액성군(度厄星君)이 너를 보러 왔었느냐? 그가 뭐라더냐? 어디가 잘못된 것이냐?”

요곤은 한숨을 쉬더니 입술을 내밀고 큰 결심을 한 듯 말했다.

“됐어, 그냥 말해줄게. 사실 난 원래…”

“태자 전하! 낭랑(娘娘)께서 급히 입궁하라고 하십니다!”

“알았다.”

현궁은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요곤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방해를 받자 나직이 중얼거렸다.

“숙광경도 아직 못 빌렸는데, 정말이지. 휴.”

요곤은 동궁에서 나와 어린 시녀와 함께 천천히 자신의 침전으로 날아갔다. 가는 길에 크고 아름다운 화원을 만났는데, 그 안의 신령한 꽃들이 매우 기이하고 아름다웠으며 저마다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요곤이 화원에 내려앉자 꽃의 선녀들이 저마다 기뻐하며 말했다.

“둘째 전하께서 오셨다! 둘째 전하께서 오셨어! 또 신수(神水)를 마실 수 있겠구나! 잘 됐다!”

“어? 전하께서 복룡장(伏龍杖)을 안 가져오셨네.”

“공연히 좋다말았네, 에휴.”

요곤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의아한 눈빛으로 곁의 시녀를 보았다. 어린 시녀가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전하, 전하의 복룡장 용머리 입에서 신수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신수는 화초와 나무를 더 아름답고 튼튼하게 자라게 할 뿐만 아니라 선수(仙壽)를 연장해 주기도 합니다.”

요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만요진(萬妖陣)에서 창목(蒼沐)에게 단(丹)을 먹이자 창목이 용머리 지팡이로 변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용머리에서 정말 물이 나올 수 있었다.

요곤이 서쪽을 향해 외쳤다.

“복룡장!”

공중에서 한 목소리가 응답했다.

“주인님, 여기 있습니다.”

요곤이 다시 외쳤다.

“이리 와서 화초들에 물을 좀 주어라!”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주인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순식간에 화원의 선녀들이 다시 기쁘게 몸을 흔들었고, 몇몇 꽃들은 선아(仙娥)의 모습으로 변해 요곤을 위해 춤을 추었다.

요곤은 화원을 거닐며 꽃 선녀들이 주변에서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다가 곁의 시녀에게 가만히 물었다.

“저들은 왜 나를 무서워하지 않니?”

시녀가 웃으며 말했다.

“전하, 전하께서는 사실 모두에게 매우 잘해주십니다. 얼마나 너그러우신데요. 매년 선녀와 시종들이 자체적으로 여는 각종 작은 경기나 연회 때, 동궁에 가면 재석(財石 돈이나 재물)을 승인해주지 않지만 전하께서는 거절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많은 보물을 더 얹어주십니다. 평소에도 저희에게 자주 상을 내리시니 전하 침전의 궁녀들이 이 천계에서 가장 부유하답니다. 그러니 모두 전하를 아주 좋아하지요!”

그녀는 요곤에 대한 칭찬을 듣고 마치 자기 칭찬을 들은 듯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 대수라고. 작은 일일 뿐이야, 말할 것도 없지.”

이때의 그녀는 이미 자신이 요곤인지 양회(楊回)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장주(莊周)가 나비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장주 꿈을 꾸는 것인지…

그때 화원 상공에서 그윽한 천마(天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요곤은 꽃 선녀들의 춤에 넋이 빠져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으나, 울음소리 뒤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그녀가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이번 생과 전생을 통틀어 들어본 것 중 가장 자비롭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자애롭게 말했다.

“곤아!”

비록 짧은 두 글자였으나 그녀의 심신을 뒤흔들었다. 그녀는 이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혜혜(惠兮), 혜혜(惠兮), 돌아오너라(回兮), 돌아오너라(回兮).”

맞다! 바로 그 목소리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으나 천마가 끄는 용련(龍輦)이 너무도 빨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용련과 천마는 이미 아득한 뒷모습만 남긴 상태였다.

순식간에 화원 안의 모든 꽃 선녀와 풀 선녀들이 일제히 하늘 끝을 향해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며 말했다.

“폐하, 만안(萬安)하시옵소서!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