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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목기 시즌 4 (50)

화본선생

【정견망】

“요진, 그는 본래 나의 낭군(夫婿)이었는데 어쩌다보 당신이 차지하게 된 것이오!”

“그대 모습이 정말 아름답구나.”

“그건 당연하지요, 나는 사주(四洲) 제일의 절색이니까요!”

“과연 그렇구나, 이토록 아름답다니.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나는 옥탁(玉琢)이라 하오니 빨리 내 낭군을 돌려주세요!

……

양회는 꿈에서 깨어나 꿈속의 정경을 회상했다.

“부인,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양회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장우인이 아침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리에 앉아 그에게 말했다.

“어젯밤 꿈을 꾸었는데, 어떤 미인이 나타나 당신이 본래 자신의 부군인데 내가 당신을 가로챘다고 말하더군요.”

장우인은 음식을 씹던 양 볼을 멈추고 물었다.

“음, 그래서요? 당신은 뭐라고 했소?”

“나는 당신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지요.”

“음, 그다음엔?”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사주(四洲) 제일의 절색이라고 하더군요.”

“음, 그다음엔?”

“나는 과연 그래서 이렇게 아름답다고 말했지요.”

“음, 그다음엔?”

“그러고 나서 꿈에서 깼어요.”

장우인이 웃으며 말했다.

“부인의 심성(心性)이 높아졌구려.”

양회가 이어서 말했다

“이 꿈은 어쩌면 단지 내 심성을 시험하기 위해 온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요. 근래에 여러 신들과 상의해 첩(妾)을 들이는 제도를 실시할까 고민 중이에요. 장가만의 집집마다 아내가 한 명뿐이라, 아이를 낳으면서 집안일까지 도맡아야 하니 실로 너무 고생스러워요. 아이가 많은 집은 아내의 수고가 남편보다 훨씬 큽니다.

만약 남자가 첩을 들일 수 있다면, 첩이 집안일을 돕고 자손도 번성시킬 수 있으니 아내가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이고 출산의 고통도 덜 겪어도 될 거예요. 당신 생각은 어떠세요?”

장우인은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가능하오.”

양회가 말했다.

“그럼 우선 우리 집부터 실시해요.”

장우인은 양회를 한 번 쳐다보고는 웃으며 물었다

“우리 집이 이렇게 가난하니, 아마 부양하기 어려울 것이오.”

양회가 대답했다.

“비록 좀 가난하긴 하지만, 분명 당신을 흠모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을 거예요. 가난에 개의치 않고 오직 일편단심으로 당신을 모시고 싶어 하는 사람 말이오. 게다가 당신은 장가만의 주인이니 마땅히 솔선수범해야지요.”

장우인은 양회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는 그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 부인, 당신이 남자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구려.”

양회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내가 남자라면 어떠했을까요?”

장우인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고, 양회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 일은 우리가 추진해도 되겠지요?”

장우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양회는 장우인을 위해 첩을 고르러 나섰다. 장우인의 첩이 된다는 것은 당연히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고, 단지 집안의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장우인과 양회를 모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고대의 첩은 사실 여주인의 부담을 덜어주어 여주인을 더 한가하게 만들기 위한 존재였다.

또한 첩은 남주인뿐만 아니라 여주인도 모셔야 했다.

‘첩(妾)’이라는 글자는 사실 고생스럽다는 뜻의 ‘신(辛)’ 자에 한 일(一) 자와 사람 인(人) 자를 더한 형상으로, 실제로는 고생하는 사람, 즉 생산이 가능한 비녀(婢女 여자 종)를 의미했다. ‘생육’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데, 낳을 수는 있지만 대개 기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집 아이가 비녀에게 교육받기를 원하겠는가?

물론 남자도 미색에 미혹되기 쉽기에, 어떤 남자들은 ‘총첩멸처(寵妾滅妻)’, 즉 첩을 총애하여 아내를 멸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대 문화의 전성기였던 당조(唐朝)에는 첩을 정실로 올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법률이 있었다. 즉 정실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첩은 정실(正室)이 될 수 없었으며, 이를 어기고 첩을 정실로 삼은 남자는 옥살이를 해야 했고 형기를 마친 후에는 그 첩과 이혼해야 했다.

당시 장가만에서도 남자가 미색에 미혹되어 세속의 풍속을 어지럽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첩은 평생 정실이 될 수 없다는 법률이 있었다. 그러므로 고대 남자가 ‘삼처사첩’을 거느렸다는 말은 옳지 않으며, 일부일처다첩제(一夫一妻多妾制)였다.

고인(古人)은 자손이 많은 것을 복으로 여겨 아이가 매우 많았다.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서 집안일까지 꾸려가려면 정말 고되었기에, 이 첩이라는 존재는 아내의 수고를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훗날 현대의 여성들은 심리적 불균형을 느껴, 왜 고대 남자는 이렇게 많은 아내를 둘 수 있는데 여자는 안 되느냐고, 왜 여자에게는 ‘다부(多夫)’를 허용하지 않느냐고, 왜 ‘정절패방(貞潔牌坊)’ 같은 것을 만들어 여자를 차별하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것이 아니다.

남녀는 신체 구조가 다르다. ‘삼정성독(三精成毒 3명 이상 남자의 정이 섞이면 여자에게 독이 된다)’이란 말이 있다. 여자의 몸은 ‘받아들이는’ 것이고 남자는 ‘방출하는’ 것이니 정반대다. 여자가 정조(貞操)를 지키는 것은 자신에게 좋고 자신의 몸에도 좋다. 결신자호(潔身自好)는 매우 필요한 일인데, 몸을 깨끗이 해야 자신을 좋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즉 몸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좋다는 가르침이다.

만약 인체가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라면 당신의 몸은 하나의 세계이며, 어떤 물질이 당신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는지는 매우 엄격한 문제다. 오직 하늘이 안배한 물질만이 당신의 세계에 들어와야 당신의 세계를 오염시키지 않으며, 당신 세계의 중생들이 오염되어 훼멸당하지 않게 된다.

고대에는 왜 여자의 정조를 그렇게 중하게 보았는가?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않으면 훼멸되는 것은 당신과 대응되는 천체(天體)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래 특수한 존재이며 단지 그리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신체와 터럭 하나하나가 무량한 중생과 대응되니 몹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외계 문화에는 이런 것이 없다. 그것들은 인륜(人倫)이 없으며 마음대로 교배할 수 있다. 왜인가? 그것들에게는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그 별의 산물일 뿐이니 그것들이 어찌 자신의 천국이 있겠는가?

그것들의 몸은 그저 하나의 신체(身體)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신체는 하나의 우주(宇宙)다!

전통이 패괴(敗壞)된 이후 외계의 과학기술이 지구로 유입되면서 외계 생물의 생활 방식도 인륜을 어지럽혔다. 사람은 이 방면에서 정말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천체 세계가 있으며, 당신의 정결(貞潔)은 바로 당신 천체의 순정(純淨)함을 보호하는 것이다.

게다가 남자는 여자가 낳는 것이니 여자의 몸이 패괴되면 남자도 패괴되어 결국 전부 망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고대에 정절을 지킨 여자를 위해 세워진 ‘정절패방’만을 보았을 뿐, 그 정절의 배후에 한 여자가 도덕적 정조를 굳게 지킨 의지, 연약한 여인이 인간 세상의 풍속을 묵묵히 수호한 공로, 천체 세계의 왕으로서 자신의 무량한 중생에 대해 책임지고 감당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반면 남자는 다르다. 남자는 여자의 문제와 연관되지 않지만 남자 나름대로 맞닥뜨리는 문제가 있다. ‘삼정성독’이 여자에게 경고하는 것이라면, ‘색(色)자 위에는 칼날이 있다[色字頭上一把刀]’는 말은 남자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남자가 여색을 좋아하고 방탕하게 욕심을 부리면 복록수강(福祿壽康)이 크게 깎인다. 즉 덕행과 복분을 매우 손상시킨다는 뜻이다. 얼마나 많은 방탕한 남자가 일찍 요절하고 횡사하며 집안이 망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는가. 이 일은 실로 큰 업(業)을 짓는 것이다.

또한 당신이 다른 사람의 천체 세계를 오염시켰는데 어찌 죄가 없겠는가?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옛날에 만약 당신이 수련인(修煉人)이었는데 이 방면에서 실질적인 잘못을 범했다면, 기본적으로 만겁이 지나도 회복할 수 없으니 이번 생에는 수련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왜 홍진(紅塵) 속에서 수련하기가 쉬운가? 홍진이 험악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첩을 들이는 것을 허용하고 아름다운 첩을 들이는 것도 허용하지만, 여색을 밝히는 것은 허용하지 않으며 방탕함은 더더욱 허용하지 않는다. 혼인을 하고 자녀를 낳는 것을 요구하지만, 정조를 지키지 않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사납고 질투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마치 외나무다리를 걷는 것 같아서 발이 한 번만 삐끗해도 만장의 심연(深淵)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공자가 중용(中庸)의 도를 발견한 것이다. 오직 중용의 길을 걸어야만 이 ‘바름[正]’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불패(不敗)의 땅에 설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양회의 말대로 장우인을 흠모하는 묘령의 여인이 적지 않았고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지원했다.

“내일 우리가 선발할 테니, 당신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남기도록 해요.”

“좋소.”

다음 날, 처녀들이 모두 아주 예쁘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양회는 예쁜 처녀들을 보자 장우인보다 더 흥분한 듯 보였다.

양회와 장우인이 정당(正堂)에 앉아 있고 처녀들이 한 줄씩 들어왔다. 양회는 눈을 뗄 수 없었지만 장우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이 사람은 얼굴은 꽤 예쁜데 체격이 좀 건장하네요.” 양회가 말했다.

“그렇소, 그녀는 전생에 도살업자였기 때문이오.” 장우인이 말했다.

양회는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서 말했다.

“다음……”

“이 사람은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데 입 모양이 좀 이상한 느낌이네요.”

“그렇소, 그녀는 전생에 메기였기 때문이오.” 장우인이 말했다.

“아, 다음……”

“이 사람이 좋겠어요,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네요.”

“이 사람은 왼쪽 무릎 안에 혹이 있어서 앞으로 일을 별로 못 할 것이오.” 장우인이 말했다.

양회는 장우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당신이 직접 고르는 게 좋겠어요.”

장우인은 난처해하며 말했다.

“나는 고를 줄 모르오, 내 눈엔 다 똑같아 보인단 말이오.”

양회가 나지막이 말했다.

“천목(天目)으로 보지 말고 육안(肉眼)으로 보세요.”

장우인이 대답했다.

“육안통(肉眼通) 말이오? 육안통으로 보면 전부 해골뿐이라오.”

“에휴, 됐어요. 당신은 가보세요, 제가 고를 테니.”

“알았소 부인, 나도 일이 있으니 이만 가보겠소.”

양회는 다시 장우인을 위해 고르기 시작했다. 그때 매우 빼어난 여인이 들어왔는데, 양회가 보니 바로 꿈속의 그 여인이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양회가 감탄하며 물었다.

“부인께 아룁니다. 노비의 이름은 옥탁(玉琢)이라 합니다.”

“어디서 왔느냐?” 양회가 웃으며 물었다.

“서기(西岐)에서 왔습니다.”

“오, 우리 만(灣)과 서기가 교환한 백성이로구나.”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 장부(張府)에 들어온다면 다시는 서기로 돌아갈 수 없다. 집에 계신 너희 부모님께서 동의하시겠느냐?”

옥탁은 급히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말했다.

“부인, 제 부모님은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노비는 앞으로 오직 일편단심으로 만주(灣主)님과 부인만을 모실 것이니, 제발 저를 거두어 주십시오!”

양회가 말했다

“어서 일어나거라. 이토록 아름다운 안색이 우는 모습조차 이리도 가련하니, 집에 이런 여인들만 있다면 내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겠구나. 좋다, 너를 남기겠다.”

옥탁은 기뻐하며 예를 올리고 말했다.

“부인의 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양회는 이어서 아름다운 여인 세 명을 더 선발하고 그들 세 명에게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직접 지어주었다. 장우인의 네 명의 첩은 각각 다음과 같았다.

“옥탁, 옥아(玉娥), 옥초(玉楚), 옥완(玉阮).”

이 네 명의 첩은 한창 묘령인 스무 살 전후였다. 양회는 열일곱 살에 장우인에게 시집왔는데, 나중에 여러 신과 혼인 제도를 상의할 때 열일곱 살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여 여자는 가장 빨라도 스무 살에 시집가고, 남자는 가장 늦어도 서른 살에 자립[而立]하는 것으로 정했다.

《주례(周禮)》에 기록되기를, 남자는 서른에 장가들고 여자는 스무 살에 시집간다고 했다. 이는 남자가 반드시 서른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서른 살 전까지 혼인을 마치는 것이 좋고, 여자는 스무 살을 채운 후 남편에게 시집가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옥탁은 용모가 빼어났고, 옥아는 온유했으며, 옥초는 유능했고, 옥완은 영리했다.

그해 장가만의 세월로 계산하면 양회는 서른여덟 살이었는데, 비록 서른여덟이었지만 그녀의 용모는 기본적으로 스무 살 무렵에 고정되어 매우 젊어 보였다.

장우인은 스물다섯 살 정도로 보여 역시 젊은 편이었다.

그러나 정아와 아도, 아묵은 그렇게 젊지 않았는데, 그들은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아는

비록 양회보다 두 살 어렸지만 나이가 들고 수련인이 아니다 보니 많은 일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이때 첩을 들이는 것은 확실히 필요가 있었다.

정아는 서른여섯 살이 되어 나이가 드니 약초도 채취하기 힘들었고, 아도와 아묵은 비록 마음은 어린아이 같았으나 육신은 중년인이 되어 농사일에서 다소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장우인은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는 사람이라 한가할 틈이 거의 없었다. 양회도 반드시 ‘무사지사[無事之事 함이 없는 일]’을 해야 했기에 바깥일에 관여할 수 없었고, 그리하여 집안의 수입은 점차 줄어들었다.

뭇 신이 장가만도 국가의 정상적인 운영을 보장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세금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우인은 심사숙고 끝에 장가만에서 어떤 세금도 거두지 않기로 결정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람으로 태어남에 천지의 자산이 모두 갖추어져 있소. 천명(天命)으로 왕이 되었다면 마땅히 가진 모든 것을 아래로 베풀어야 하니, 복록과 공덕은 위에서 주시는 것이오.”

장우인의 뜻인즉, 태어난 이상 천지간의 생명이며 이러한 자원은 모든 백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고, 천명으로 왕이 된 자는 마땅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 아래 중생을 위해 쏟아야 하며, 그 왕의 복록과 공덕은 그보다 더 위에 계신 왕이나 신(神) 혹은 천지가 내려주시는 것에 기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우인은 수년간 직접 대사상(大司商)을 맡아 자신이 번 돈을 전부 국가 건설과 관리들의 봉급으로 사용했다. 장가만이 점점 부유해짐에 따라 국유 자산도 풍성해졌지만, 장우인은 이 국유 자산을 단 일 푼도 건드리지 않았다.

사실 장가만에서 그 장씨 일가만 가난할 뿐 나라 전체는 매우 부유했다.

더구나 장가만의 문화는 덕(德)을 매우 중시하고 백성들의 심성도 높았기에 이곳의 물산도 매우 풍부했다. 장가만은 유명하고 귀한 향나무와 찬란한 보석이 많이 났으며 누에의 품종도 다양했다. 누에 품종이 많으니 그것이 뽑아낸 실로 만든 옷감 또한 매우 풍부했다.

음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땅에서 자라는 것이라면 식용이 아니면 약용이었으니 풍요롭고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물건들은 만(灣) 밖으로 유출될 수 없었다. 오직 한 가지 물건만이 서기에 보내질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장나무(樟樹)였다. 장가만에는 장나무가 많이 났는데 장나무에서는 장뇌(樟腦)를 추출할 수 있었다. 장뇌는 약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가장 의미 있는 작용은 ‘먼지를 없애고[消塵]’ ‘더러움을 몰아내는[驅穢]’ 것이었다.

전쟁은 초연(硝煙)이라고도 불리는데, 전쟁이 있는 곳이라면 냉병기(冷兵器 화약을 사용하지 않는 병기)든 대포 화약이든 전후의 연기와 먼지 그리고 시체가 가져오는 더러운 기운을 피할 수 없다.

이 연기와 더러운 기운은 사람의 몸을 크게 상하게 하는데, 장나무에서 추출한 장뇌는 안정성이 매우 강하여 전쟁 후 장뇌를 태우면 공기가 즉시 정화되어 전쟁이 백성에게 가져다주는 건강상의 위해를 최대한 낮출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장나무만이 유일하게 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물건이었다.

나머지 물건들은 아무리 좋아도 모두 장가만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서기에서 교환되어 온 백성들은 만에 들어서자마자 장가만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조각상을 보고 그야말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가만의 집들은 높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어떤 집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풍겨 나왔는데, 이것이 바로 향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장가만에는 또한 거대한 조각상들이 많았는데, 이 조각상들은 갖가지 보석으로 조각된 것이었으며 조각된 대상은 바로 불(佛), 도(道), 신(神)이었다.

장가만에 문화를 다지러 온 신들은 모두 빛을 감추고 발로 걸어 다녔지만, 그들은 결국 신이었기에 거리를 걷는 모습이 사람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의복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서기에서 온 사람들은 장가만에 들어서면 눈이 쉴 틈이 없었다. 어디든 그렇게 아름답고 풍요로웠으며, 거리를 걷는 사람들조차 기인(奇人)이나 이사(異士)처럼 보였다. 그들은 오자마자 이 아름답고 선량하며 풍요로운 장가만을 사랑하게 되었다.

장가만은 첫눈에 매우 아름답고 수많은 불도신(佛道神)의 거대 조각상과 수려한 풍광, 정교한 건축물, 번화하면서도 문명화된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장가만의 문화는 수많은 세부적인 부분까지 관통하고 있었다. 결국 신이 직접 문화를 전수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길가에서 간단히 차를 한 잔 마시든 음식점에 앉아 몇 가지 반찬을 먹든, 찻잔과 식기, 그리고 주인과 한담을 나누다 보면 그는 이러한 것들 배후에 담긴 문화를 말해줄 수 있었다. 장가만의 그 어떤 사물도 이 우주의 천도(天道)를 관통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중화 정통 문화가 바로 이러했다!

당신은 그 어떤 정통 문화에서도 천도가 운행되는 축소판을 볼 수 있다!

젓가락은 왜 7촌 6분인가? 왜 한 근은 16냥인가? 왜 음악에는 5음(音)이 있는가? 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덕이 없다[缺德]’고 욕을 먹는가? 왜 사람이 위기를 모면하면 ‘덕을 쌓았다[積德]’고 말하는가?……

이 모든 것들의 정립은 바로 사람의 근원이 간단하지 않고 사람의 사명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결코 사람으로 남기 위해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만약 사람이 단지 이 저층 공간의 산물일 뿐이고 단지 사람으로 살기 위해 존재한다면, 이 우주와 우주 속의 이러한 신들이 결코 이토록 번거롭게 문화를 전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이제 깨어나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