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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목기 시즌 4 (53)

화본선생

【정견망】

한편, 양회와 장우인이 옥천산을 거닐고 있을 때, 마침 옥천산을 지나가던 이공동이 그 두 사람을 보고 의아해했다. 또한 옥천산 부근에서 뇌화(雷火)의 기운을 감지하고는 구름에서 내려와 사제인 옥정을 찾아갔다.

“옥정, 우인과 부인이 그대의 산에서 거니는 것을 보았네.” 이공동이 말했다.

“아, 그 둘은 다친 조카를 보러 왔습니다.” 옥정이 대답했다.

“조카라고?”

“네, 바로 내 제자 양전입니다!”

이공동은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 옥정의 기억에 신통이 가해진 것을 보았으나, 그 신통의 힘이 워낙 두터워 그로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

뇌화의 연기와 먼지가 이공동의 비강으로 스며들자, 이공동은 옥천산에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했다.

이에 숙명통을 사용하여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한참을 살핀 후 이공동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아아, 중생의 부모 노릇하기란 참으로 어렵구나.”

“대사형,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옥정이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네.” 이공동이 덤덤하게 말했다.

이공동 역시 산간을 거닐다 마침 장우인과 양회를 만났다.

양회가 이공동을 보고 말했다.

“대사형을 뵙습니다.”

장우인도 이공동을 보고 읍하며 문안했다

“광성자(廣成子) 진인이시군요.”

이공동이 웃으며 말했다.

“얻기 힘든 기회구려, 여기서 두 분을 만나다니. 앉아서 차나 한잔합시다.”

이공동이 소매를 한 번 흔들자 호숫가에 탁자 하나와 차 한 주전자, 찻잔 몇 개가 생겨났고 탁자 아래에는 포단 몇 개가 놓였다. 탁자 옆에는 그들을 위해 차를 달이고 따르는 동자 하나도 있었다.

세 사람이 둘러앉았는데 장우인은 괜찮았으나 양회는 표정이 다소 낙막해 보였다.

이공동이 말했다.

“사매, 네가 예전에 옥경(玉京)에서 수도할 때 나는 마침 자리에 없었지. 네가 사람으로 전생하고 나서야 우리가 만나게 되다니 참으로 인연이구나.”

양회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인연입니다. 대사형께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산림을 나오지 않으시더니, 한 번 나오시니 저희와 이토록 자주 마주치게 되네요.”

이공동도 말했다.

“그렇다. 나는 37만 천년(天年)을 살았지만, 그 세월의 대부분을 동굴 속에서 보냈구나.”

장우인이 그 말을 듣고 물었다.

“진인께서는 37만 천년 전에 태어나셨습니까?”

이공동이 말했다.

“그렇소. 나는 37만 천년 전의 세상 사람이오. 내가 인간 세상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인간의 이과기(異科紀)였소.”

양회가 물었다.

“이과기가 뭔가요?”

이공동이 말했다.

“그 한 차례 인류 문명의 말겁 시기였지. 말겁시기였기에 그 인류는 거의 파멸 직전이었고 온갖 일이 다 일어났는데, 아이들을 잃어버리는 일도 흔했다네. 나도 태어난 지 7년 만에 버려졌지.”

양회가 물었다.

“버려지셨다고요?”

이공동이 말했다.

“정말로 버려진 것은 아니고, 명에 수련할 인연이 있어 사부님께서 나를 데려가 수련시키신 것이지.”

양회와 장우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공동이 다시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수련하여 대도금선(大道金仙)이 된 것은 사부님의 큰 은혜 덕분이지만, 또한 내 어머님께도 감사드려야 해.”

양회는 의아해하며, 아마도 대사형이 어머니께서 육신을 주신 것에 감사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공동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께서 나에 대해 정(情)을 담담하게 가져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싶어.”

이공동은 산천을 바라보며 회상했다.

“그때는 마침 인류의 말겁시기였는데, 말겁의 사람들은 매우 극단적이었고 정에 대해서도 그랬었지. 당시 사람들은 정 때문에 광란하고 정을 위해 이성을 돌보지 않았지. 그때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은 모두 자녀에 대한 정에 고통받아 반 죽은 상태가 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었지.

나는 당시 일곱 살쯤이라 이미 철이 들어 부모님과의 정도 깊었소. 동굴에서 수련할 때 어머니가 몹시 걱정되고 그리웠지.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하는 정이 너무 깊어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실까 봐 두려웠고, 사부님이 애써 위로해주셔도 소용이 없었어.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수련의 길이 끊길 지경에 이르자, 사부님께서 나의 원신을 내보내 어머니를 보러 가게 하셨네.

내가 아스라이 날아서 고향에 돌아갔는데, 뜻밖에도 나의 부모님이 꽃밭에서 한가로이 사진을 찍고 계신 것을 보았지. 그때는 사진기라는 물건이 있어 사람들이 기념으로 즐기던 과학기술의 산물이었어.

아버지의 얼굴에는 근심이 서려 있었으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비록 공동이가 길을 잃었지만, 분명 이 십악(十惡)의 독한 세상을 피해 도를 닦으러 갔을 겁니다’라고.

문득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소. 내 이름을 공동(空同)이라 지어준 것은 훗날 내가 허무혼망(虛無渾茫)한 대동(大同)의 경지에 이르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하셨지.

그 말세에 어머니는 정에 얽매이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이 악한 세상을 피할 수 있음을 기뻐하며 마음을 놓으셨던 거지.

그 순간 어머니를 걱정하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고, 머릿속에는 오직 수련뿐이었네.

공동, 텅 비어 크게 하나 됨은 진실로 내 어머님께서 바라시던 것이었네.”

양회는 대사형의 말을 듣고 이것이 사부님의 점화(點化)임을 깨닫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대사형의 어머님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군요.”

이공동은 웃으며 양회를 바라보고 말했다.

“내가 나중에 신통이 나왔지만 어머니의 원신이 어디 있는지 볼 수 없었다네. 그때서야 나는 어머님의 내력이 비범하신 분이을 알았지. 그러다 37만 천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그녀를 만났다네.”

양회가 물었다.

“그분이 어디에 계시나요? 도대체 어떤 분이시죠?”

이공동은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양회는 대사형이 말하기 곤란한 것임을 알고 더 묻지 않았다.

곁에 있던 장우인은 그 뜻을 알아차렸으나 역시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공동이 하늘을 보더니 말했다.

“날이 저물어가는구려. 나는 일이 있으니 사매와 우인께서는 천천히 드시다 가시오. 나는 이만 가보겠소.”

장우인과 양회는 일어나 예를 갖추어 이공동과 작별했다. 이공동이 떠난 후 양회와 장우인도 장가만으로 돌아왔다.

이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양회는 비록 미모가 늙지 않아 불혹의 나이에도 늘 20대 젊은 여인의 모습이었으나, 줄곧 신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하산인이 장가만을 찾아와 장우인과 양회를 반도원으로 초대해 구경시켜 주었다.

장우인은 마침 얻기 힘든 한가한 때라 양회를 데리고 곤륜으로 갔다.

원내에는 복숭아꽃이 한창이었다. 아주 잘 자란 복숭아나무들이 분홍빛으로 밝고 화사하게 생기가 넘쳤으며, 연지색 고운 빛깔과 향기가 곤륜에 가득했고 가지는 대나무처럼 강인하며 뿌리는 만 척 깊이로 뻗어 있었다.

두 사람이 원 안을 거니는데 어느덧 꽃잎이 흩날리고 맑은 바람이 불어와 향기로운 꽃물결을 일으켰다……

“부인, 보시오. 새로 맺힌 어린 복숭아가 당신의 붉고 둥근 얼굴을 닮았구려.” 장우인이 복숭아를 보며 말했다.

이때 도하산인이 다가와 반도들을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이번에 맺힌 복숭아는 지난번처럼 납작한 반도 형상이 아니라, 둥글고 탐스러운 분홍빛입니다.”

도하산인은 다시 세심히 관찰하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말했다.

“좋구나, 좋아. 이번 것이 더 좋네요! 이번 것이 더 좋아!”

그는 진지하게 원 안을 몇 바퀴 돌며 수시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회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반도(蟠桃)라 부를까요?”

양회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반도(蟠桃)는 반도(攀逃)와 음이 같으니, 기어올라 달아난다는 뜻을 담아 그대로 반도라 부르지요.”

“좋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우인과 양회는 뭇신과 함께 문화를 연구했고, 장가만에서 시험 운영하던 문화 계통 전반을 관통하는 ‘예악(禮樂)’도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

주례(周禮) 중의 오례인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 같은 것이 그러했다. 또한 덕을 숭상하고(尙德), 존귀한 이를 높이며(尊尊), 친한 이를 친애하고(親親), 노인을 공경하고(敬老), 어린이를 사랑하는(慈幼) 등 모든 방면에 걸쳐 장가만의 사회 전체에 예(禮)와 도(道)가 깃들었다.

예악이라 함은 예와 악을 나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 장가만의 음악은 어떠했는가? 음악은 기본적으로 황제(黃帝) 시기의 리듬, 선율, 악기, 악리 등을 계승했다.

사람들은 황제가 우리의 인문(人文) 시조라는 것은 알지만, 황제야말로 사실 가장 훌륭한 문예 대가였으며 심오한 음악가였다는 사실은 거의 모른다.

그렇다, ‘가장(最)’이라는 표현을 써야 마땅하다. 만약 황제가 당시에 발명한 많은 악기와 악리(樂理), 그리고 수많은 문예 형식이 없었다면 인류는 야만인이었을 것이니 어찌 문명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장가만에 와서 문화를 정립한 신들은 모두 복희대제가 파견한 정신(正神)들이었으며, 황제는 바로 복희대제의 전생(轉生)이었다.

우리의 중화 신전문화(神傳文化)가 이토록 귀중한 것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사람으로 태어나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행운을 입었다는 생각이 든다.

행여 삼계에 왔어도 혼이 여전히 살아 있음이 다행이고, 성주(聖主)의 간곡한 가르침이 담긴 문명을 얻음이 다행이며, 만왕의 왕이신 무상왕(無上王)과 함께함이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장가만의 예악 문명은 당시 대주(大周)에서 즉시 완전히 시행될 수는 없었는데, 무엇이든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훗날 주공(周公)의 시기에 이르러서야 주례가 기본적으로 형상화되었다.

일부 전장(典章) 제도와 군사 제도는 장가만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전란도 없었기에 주나라 천자가 스스로 보완해야 할 몫이었다. 다만 장우인과 뭇신은 그 작은 기틀을 마련해 두었다.

분봉, 종법, 정전(井田), 기복(器服), 작록(爵祿) 등의 제도는 현대인들에게 곡해되기도 하는데, ‘봉건사회’라는 단어는 고대의 분봉 제도를 일컫는 말이다.

‘봉건사회’를 두고 토지를 조각조각 나누어 가장 안정적이고 통제 가능한 중앙 구역은 자신이 갖고, 주변은 친족과 공신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라고들 한다. 이것이 주나라 이념인 ‘친친(親親)’과 ‘존존(尊尊)’에 부합하며, 결국 친친존존은 고대 군왕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수사라고 말한다.

이런 해석은 사실 무신론과 이기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매 하나의 일조일대(一朝一代)는 뿌리가 있으며, 모두 천상의 천체(天體) 체계를 대표한다. 황제든 황실 사람이든 그가 왜 그런 역할을 맡았겠는가? 왜 태어날 때부터 천자의 형제자매였겠는가? 그의 내력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내력은 그 왕조와 대응하는 천체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그가 왕으로 봉해지든 땅을 받든 그것은 그가 운명적으로 타고난 책임의 일부이다. 그것을 일반 백성에게 나누어준들 일반 백성의 내력은 그곳에 있지 않고 뿌리도 그곳에 없으며 그런 책임을 질 필요도 없는데 땅을 나누어준들 무엇하겠는가?

현대인들은 무신론의 관점으로 고대인을 분석하며, 고대인을 현대인보다 더 나쁘고 이기적인 존재로 몰아세우곤 한다.

현재 중국인의 문화는 이미 오래전에 파괴되었다. 지금의 대륙인들이 신전문화를 보는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듯 천박하기 짝이 없으며, 늘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

처음 사람에게 남겨준 문화 이념은 무사무아(無私無我)를 주장했다. 왜 고대인들은 ‘나’를 ‘오(吾)’라고 불렀겠는가? 너무 이기적으로 굴지 말라는 뜻이다! ‘나’를 너무 대단하게 여기지 마라, 나는 곧 ‘무(無)’와 같다는 의미다.

[역주: 중국어로 ‘오(吾)’와 ‘무(無)’는 발음이 같다.]

그러므로 이런 문명이 온전하게 전승되기만 한다면, 사람은 무엇을 하든 자신만을 고려하지 않고 도덕과 예의, 염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고대 군왕의 치국의 도(道) 또한 그러했다.

전장, 제도, 예악, 도덕 등을 우리는 대체로 ‘정면(正面)’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이 사회의 ‘부면(負面)’을 한 번 살펴보자.

인간의 사회는 우주의 저층에 있기에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가 매우 뚜렷하며 선악(善惡)의 대비도 두드러진다. 사람이 고통이 무엇인지 알아야 행복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러므로 도덕 표준이 아무리 높아도 인류 사회에는 부(負)의 일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장가만이 서기와 자민(子民)을 교환한 후, 장가만에도 도둑과 강도가 생겨났다. 이는 정상적인 일이다.

인간 세상의 문화를 전면적으로 연기해 내려면 도둑, 강도, 비적 등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인간 세상이란 본래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문화의 세례를 거치면서 장가만의 ‘도둑계’, ‘강도계’, ‘비적계’에도 규칙이 생겼으니, 이른바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는 도둑도 도가 있다(盜亦有道)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규칙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난장판이 된다.

장가만의 도적들에게는 세 가지 큰 규칙이 있었다.

첫째, 경전을 훼손하지 않고 도(道)를 손상하지 않는다.

도둑질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스스로 업을 짓겠다는 것을 남은 선량하게 권할 뿐이며 사법 기관은 몸을 다스릴 뿐 그 마음까지 어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련과 관련된 서적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떤 도둑이나 강도가 수련에 관한 죽간을 훼손했다면, 그 도적은 ‘도둑계’에서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었다.

어떤 도적도 그와 동료가 되려 하지 않았고 그를 ‘불길한 존재’로 여겼으며, 도적 우두머리 또한 규칙을 어긴 자라 하여 그를 쫓아냈다.

둘째, 수련인을 죽이지 않는다.

남의 집을 털거나 재물을 빼앗는 비적이 되겠다면 그것 또한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장가만의 사법망에 걸리기 전까지, 자신의 덕(德)이 다 깎이기 전까지 굳이 그런 일을 하겠다면 말릴 재간이 없다.

하지만 수련인을 죽여서는 결코 안 된다!

수련인이 당신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면, 흑도(黑道)든 백도(白道)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신을 찾아내 죽일 것이다.

장가만의 비적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짓을 하지 않았는데, 장가만의 법도에서 이는 최악의 대죄였기 때문이다. 구족을 멸할 뿐만 아니라 조상 9대와 자손 9대까지 연루되었기에 감히 범하는 자가 없었다.

셋째, 추잡한 일은 묘(廟), 관(觀), 종사(宗祠)를 피해 행한다.

물건을 훔치거나 강도질하더라도 수련과 관련된 사찰이나 도관 옆 혹은 안에서 해서는 안 되며, 조상인 염황(炎黃)이나 신농(神農) 등을 모신 종묘 근처나 안에서도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당시 장가만에는 불교나 도교는 없었지만 불도신(佛道神)을 모시는 묘우(廟宇)와 도관(道觀)은 많았다.

만약 어떤 비적이 이처럼 신명(神明)과 조상을 불경하게 여기고 청정하고 신성한 곳에서 추잡한 짓을 벌인다면, 다른 비적들도 그를 멀리했다. 그가 곧 응보를 받을 것임을 알았기에 연루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러했다. 본래 비적은 덕이 적은데 위의 세 가지 대죄까지 범하면 머지않아 급사하곤 했다.

그리하여 장가만의 얼마 되지 않는 비적과 도둑 중에서도 극악무도한 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악에도 표준이 있는 법이라, 너무 악하면 인간 세상에 머물지도 못하고 지옥에 떨어져 소멸당하게 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장가만에서는 줄곧 전쟁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승자가 왕이 되고 패자가 도적이 된다는 반리(反理)가 존재하기에, 전쟁에 관한 문화도 어느 정도 정립해야 했다.

그래서 서기와 백성을 교환할 때 싸움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사람 몇 명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서기에서 어느 정도 관직을 지냈던 자들이었다.

그들이 오자 장우인은 작은 성 두 곳을 택했는데, 하나는 수성(須城)이라 하고 하나는 담성(曇城)이라 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두 명을 뽑아 성왕(城王)으로 삼고 나머지는 그들을 보좌하게 했다.

이 두 성은 크지는 않았지만 서로 성문을 마주 보고 있었다.

마주 보고 있는 데다 호전적이고 한때 관직까지 지냈으니 서로 자존심이 대단했다.

그러니 두 성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는 아주 쉬웠다. 물론 그렇게 안배된 것이기도 했다.

두 성을 관할하는 관리들이 장우인에게 올리는 상소문이 갈수록 늘어났는데, 모두 서로에 대한 불만과 다툼에 관한 내용이었다.

장우인은 대재(大宰 제1재상) 방운교(方雲喬)를 불러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물었다. 방운교 역시 문화를 정립하러 온 신이었기에 잠시 장가만의 대재 직을 맡고 있었다.

방운교가 말했다.

“차라리 만주님(灣主)께서 그들이 한판 싸우게 하여 서로의 원한을 풀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우인이 말했다.

“좋소.”

그리하여 대재는 두 성의 성왕에게 서로 공격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알렸다.

두 성왕은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뻐했다. 마침 싸우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쌓인 울분을 풀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막 전쟁을 시작하려던 찰나, 대재가 직접 찾아와 장가만의 ‘전쟁 예법(戰事禮法)’ 두 통을 전달했다. 전쟁은 하되 반드시 예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전사(戰使 사자)’가 상대 진영의 장수와 성왕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첫째 날, 수성 성왕의 몸이 좋지 않았다. 상대의 위급함을 틈타 이기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이므로 싸울 수 없었다.

둘째 날, 담성 성왕의 아이가 갑자기 앓아누웠다. 경로효친의 예법을 중히 여겨야 하고, 또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하루 군사를 물리는 것이 도리였기에 싸울 수 없었다.

셋째 날, 전사가 대재에게 보고하기를 수성 성왕의 병은 별거 아니었고 담성 성왕의 아이는 가벼운 감기라 다음 날 바로 활기차게 뛰어놀고 있어 지금 아픈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이제 싸워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대재가 말하기를, 아직 안 된다고 했다. 성 안의 노인, 부녀자, 어린아이들이 짐을 다 챙겨 성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만(灣)에서 그들을 위해 마련해 둔 거처와 음식을 안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넷째 날, 이 모든 안돈이 끝났으니 싸워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래도 안 된다고 했다. 성 안에 있는 불도신(佛道神) 조상 중 옮길 수 있는 것은 옮기고, 옮길 수 없는 것은 천으로 덮은 뒤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 조각상이 훼손되거나 전쟁의 살벌한 기운이 신명께 불경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이 이틀간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수성의 마차가 부족하자 담성에 가서 빌려 오고, 담성의 천이 부족하자 수성에 가서 빌려 왔다. 두 성은 하루빨리 전쟁을 하기 위해 오히려 서로를 돕게 된 것이다.

성 안의 여자와 노인, 아이들이 일시적으로 떠났기에 이제 성인 남자들만 남아 일을 했다. 울타리를 치고 조각상을 운반하고 천으로 감싸는 데 이틀이 걸렸다. 이틀 동안 두 성 사람들 모두 녹초가 되었기에 쌍방은 다시 하루를 쉬었다.

일곱째 날이 되어서야 마침내 전쟁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먼저 신명과 조상께 절을 올리며 전쟁을 치르게 되었음을 고해야 했다.

신명과 조상께 배례를 마친 후에는 묘우(廟宇)와 종사(宗祀)의 문을 굳게 걸어 잠가 전쟁의 추잡한 기운이 신령과 조상을 범하지 않게 했다.

이런 일을 다 마치니 이미 정오였다. 점심때는 낮잠을 즐겨야 했으므로 전투는 오후가 되어서야 시작될 수 있었다.

오후에 대재가 선포했다. “두 성은 이제 마음껏 싸워도 좋다!”

즉, 두 성이 이제는 실컷 시원하게 한판 붙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비록 이레 동안의 준비 과정을 거치며 두 성 모두 싸우고 싶은 흥미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싸우지 않는다면 그간의 고생이 헛수고가 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며칠간의 겨룸 끝에 수성이 승리했다. 담성은 비록 졌으나 전쟁 예법이 공정했고 궤계나 간계 같은 수단이 동원되지 않았기에 깨끗이 승복했다.

또한 전쟁 중에도 부녀자와 노인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고, 문명 신상을 훼손하지 않았으며, 불묘(佛廟)와 도관(道觀)에 침입하지 않았다.

그 후 두 성의 갈등은 씻은 듯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싸우면서 정이 들었다. 담성 왕은 수성 왕이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알고 승리하고도 자만하지 않음을 높이 샀고, 수성 왕은 담성 왕이 예법과 규칙을 엄수하며 지고 나서도 원망하지 않음을 높이 평가했다.

뜻밖에도 마지막에 두 성왕은 의형제를 맺었고, 두 성은 ‘형제성’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신전문화 속 ‘예(禮)’의 힘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