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회계산에 안개 걷히니 푸른 봉우리 높고 가파르고,
거울 같은 호수는 바람이 없어도 스스로 물결치네.
봄이 지나 꽃이 다 졌다고 말하지 말라,
강 한가운데서 마름과 연꽃을 따는 이가 따로 있다네.
稽山罷霧鬱嵯峨
鏡水無風也自波
莫言春度芳菲盡
別有中流采芰荷
하지장(賀知章, 659~744)은 자가 계진(季真)이고 호는 사명광객(四明狂客)이며, 월주 영흥(越州永興: 지금의 절강성 소산蕭山) 사람으로 당대(唐代)의 저명한 시인이자 서예가이다.
하지장의 시는 절구가 가장 뛰어난데, 풍격이 청신하고 자연스러우며 의경(意境)이 그윽하면서도 깊다. 〈영류(詠柳)〉, 〈회향우서(回鄉偶書)〉 등의 작품은 인구에 널리 회자되며 천고에 전송되고 있다. 그의 시는 현재 《전당시(全唐詩)》에 단 19수만 남아 있으나, 매 작품마다 정묘하여 그의 문학적 성취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 〈상화가사·채련곡(相和歌辭·采蓮曲)〉은 표면적으로는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강남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지만, 자세히 음미해 보면 시인이 단순히 경치를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치에 기탁하여 회포를 서술하며 자신의 인생 태도를 표현하는 동시에 후인들에게 깊은 계시를 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회계산에 안개 걷히니 푸른 봉우리 높고 가파르고,
거울 같은 호수는 바람이 없어도 스스로 물결치네.”
회계산(會稽山)의 구름과 안개가 걷히니 높고 푸른 산봉우리가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거울처럼 잔잔한 호수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스스로 겹겹의 잔물결을 일으킨다.
옛사람들은 시를 쓸 때 흔히 경치에 정을 기탁하고 사물에 뜻을 실었다. 여기서는 실제 풍경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지만, 깊은 인생 철리도 포함되어 있다.
안개가 걷힌 후에야 산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마치 사람이 명리와 집착을 내려놓은 후에야 비로소 인생의 진상과 의의를 똑똑히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회계산이 구름과 안개에 가려졌다가 다시 높은 자태를 드러내는 것은 겉으로는 산을 쓰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온갖 세상 풍파를 겪은 후 활짝 열리는 인생 경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장은 말년에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도를 닦는 데 전념했다. 수십 년 동안 관해(官海)의 부침을 겪은 후, 그는 인간 세상의 부귀영화란 결국 지나가는 연기와 구름 같으며 인생에서 진정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은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 귀숙이라는 점을 아마도 깨달았을 것이다.
“거울 같은 호수는 바람이 없어도 스스로 물결치네.”라는 구절은 경치로 사람을 비유한 것에 더 가깝다. 호수에 바람이 없는데도 물결이 이는 것은 자연 현상 같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내면 활동을 비유한다. 많은 이들이 외부 세계의 간섭이 없는 조용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조차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온갖 생각과 집착이 생겨난다.
수련은 안으로 원인을 찾는 것을 중시한다. 바람 없는 물결이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부 요인에서 비롯된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많은 번뇌와 곤란 역시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종종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봄이 지나 꽃이 다 졌다고 말하지 말라,
강 한가운데서 마름과 연꽃을 따는 이가 따로 있다네.”
이 연(聯)은 경치를 묘사한 듯하지만, 실은 시인 자신의 인생 상태를 묘사한 것에 가깝다.
봄은 흔히 청춘 시절에 비유된다. 이때의 하지장은 이미 말년에 접어들었으므로 속인의 관점에서는 인생의 가장 찬란한 단계가 이미 지나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 때문에 소침해지지 않고 오히려 초연함과 맑은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는 높은 관직과 두터운 녹봉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도를 닦고 참됨을 구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당 현종(唐玄宗)이 그를 극히 공경하여, 그가 나이가 들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친히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교외까지 배웅했으며 시를 지어 작별을 고했다고 한다. 이러한 예우는 역사상으로도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러므로 “강 한가운데서 마름과 연꽃을 따는 이가 따로 있다네.”는 단순히 연꽃을 따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말한 것이다. 비록 청춘은 지나갔으나 인생은 끝나지 않았고, 비록 관직을 떠났으나 새로운 방향을 찾았으며, 비록 나이는 들었으나 여전히 인생의 또 다른 천지 속에서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고인(古人)이 시를 쓰는 진정한 목적은 흔히 경물을 묘사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치에 기탁해 뜻을 말하고 사물에 의지해 이치를 밝히는 데 있었다.
이 시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어떤 일이든 진심으로 하고자 한다면 결코 너무 늦지 않다’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인생 태도이다. 나이는 장애가 되지 않으며, 사람을 진정으로 제한하는 것은 대개 자기 내면의 망설임과 위축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 〈제1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그의 남은 생의 나이가 이미 아주 한정되어 있어 모자랄지도 모르는데,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 연공 노정을 단축하게 할 수 있다. 동시에 또한 성명쌍수 공법이므로 당신이 끊임없이 수련할 때 끊임없이 당신의 생명을 연장해 줄 것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연마(煉)하면 끊임없이 연장해 주어 근기(根基)는 좋은데 나이가 많은 사람, 당신의 연공 시간 또한 넉넉해진다.”
법리(法理)로 보면 창세주(創世主)께서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며, 나이의 많고 적음 때문에 그 어떤 중생도 포기하지 않으신다. 진심으로 선을 향하고 진심으로 수련하기만 하면 모두 소중한 기연과 도움을 얻게 된다.
비록 나이가 많을지라도 여전히 수련의 길로 걸어올 기회가 있으며, 비록 이번 생에 원만(圓滿)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미래의 수련을 위한 기초를 닦을 수 있다. 그러므로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이는 비단 수련뿐만 아니라 인생의 많은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이들이 늘 “이미 너무 늦었어.”, “나이가 너무 많아.”, “기회를 놓쳤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진짜 유감은 시작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시작하지 않은 것이다.
아직 오늘이 남아 있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한 여전히 기회는 있다.
하지장의 시는 본래 함축적이고 심원하다. 그의 생애와 경험을 알지 못한다면 그 속의 진짜 깊은 뜻을 체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인의 인생 궤적과 결합하여 이 시를 다시 읽을 때 비로소 그가 단순히 경치만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인들에게 소박하면서도 깊은 도리를 말해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늦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진짜 두려운 것은 신심과 결심을 잃는 것이다.
인생이 그러하고, 수련 또한 그러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