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林雨)
【정견망】
회서 반란 평정하고 말 채찍질해 동래를 지나다
마침 매화가 찬란하게 피어난 것을 만났네.
엄동설한 서로 견디며 고결한 절개 보존하니,
차가운 경지 속 마른 뿌리에서 싹을 틔웠구나.
平淮策騎過東來
適遇梅花灼爍開
相耐歲寒存苦節
故於冷境發枯荄
이소(李愬)는 당대(唐代)의 명장으로 평생 군공(軍功)으로 이름을 떨쳤고 시문으로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니기에, 사서에 나오는 그의 기록은 그리 상세하지 않다. 어쩌면 바로 이 《매화음(梅花吟)》이라는 시 덕분에 후인들이 전장을 누비던 이 장군이 이토록 의미심장한 시편을 남겼음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매화음》은 이소가 회서(淮西)의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지은 것이다. 그가 말을 타고 가다가 우연히 만개한 매화를 만나자, 자연스레 풍경을 보며 감회가 일어나 이 시를 썼다.
“회서 반란 평정하고 말 채찍질해 동래를 지나다
마침 매화가 찬란하게 피어난 것을 만났네.”
시인은 시작하면서 시를 지은 연유를 곧장 설명한다. 회서에서 반란을 평정한 후 말을 타고 동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마침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것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중 ‘동래(東來)’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동방에서 왔다는 것이고, 둘째는 지명으로서 즉 동래를 경유했다는 것이다. 시 전체의 어조로 볼 때 여기서는 후자의 해석이 더욱 합리적으로 보인다.
장군의 신분으로서 이소의 필법은 문인들처럼 겹겹이 펼쳐놓는 수식어가 없고 직설적이다. 짧은 두 구절만으로 시간, 장소, 사건의 연유를 조금의 지체도 없이 명백하게 설명했다.
이때 매화 한 나무가 찬란하게 만개하여 유독 눈부셨다. 그러나 이 ‘작삭(灼爍, 찬란하게 빛남)’이라는 두 글자는 단지 매화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 깊은 비유를 담고 있다. 매화가 유독 눈부시게 보이는 것은, 바로 그것이 전란이 휩쓸고 간 뒤의 황량한 경지 속에서 피어났기 때문이다.
회서의 반란은 수년간 지속되었고, 전쟁의 재앙이 미치는 곳마다 백성들은 유리걸식하고 전원은 황폐해졌으며 가옥은 무너졌으니, 이것들이 모두 전쟁이 가져온 진실한 광경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추위를 맞이하며 피어난 매화 한 그루는 유독 소중해 보이고, 유독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어쩌면 시인은 바로 이 매화를 빌려 전란이 백성에게 가져다준 고난을 투영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자신의 희망을 기탁했을 것이다. 그는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매화처럼 곤경 속에서 다시 떨치고 일어나 고향을 재건해 새로운 삶을 맞이하기를 바랐다.
“엄동설한 서로 견디며 고결한 절개 보존하니,
차가운 경지 속 마른 뿌리에서 싹을 틔웠구나.”
매화가 엄동설한의 혹한을 견뎌내고 자신의 품격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얼어붙은 환경 속에서도 마른 가지 위로 새로운 싹을 잉태하고 꽃을 피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인이 매화를 빌려 찬미한 것은 그것의 강인하고 굴하지 않는 품격뿐만 아니라, 생명이 역경 속에서 끊임없이 희망을 잉태하는 힘이다. 이는 매화 정신에 대한 예찬이자 시인이 전화(戰禍)를 겪은 후의 깨달음이다. 생명은 오직 마난과 시련을 겪어야만 더욱 강인해지고, 새로운 희망을 맞이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때의 시인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공업(功業)을 가장 염려한 것이 아니라, 전란 후 백성들의 삶을 염려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고난에 용감하게 맞서고 눈앞의 곤경 때문에 신심을 잃지 않기를 바랐는데, 혹독한 겨울은 결국 지나가고 봄이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을 돌아보면 우리 역시 도전으로 가득 찬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일자리의 미래를 우려하게 만들고 있으며, 각종 자연재해와 사회적 변천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신심과 용기를 시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직면하여 많은 사람이 망망함을 느끼고 심지어 앞날의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떠한 시대에 처해 있든 선량함을 유지하고 정직함을 고수하며 경외심을 마음속에 품는 것은 시종 인생에서 가장 보배로운 품격이다. 신앙에 대한 추구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신념으로부터 힘과 방향을 얻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 모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명에서 진짜로 아끼고 수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자신의 인생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시종 우리를 관조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기탁하는 친인들과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지금 대법(大法)이 널리 전해져 우리에게 생명의 출로를 가리켜 보이고 있다. 법을 얻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며, 설령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선량한 사람이 되고 신령(神靈)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바른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1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