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清雅)
【정견망】
꽃 피니 온 나무가 붉고,
꽃 지니 만 가지가 비었네.
오직 한 송이만 남았으니,
내일은 반드시 바람을 따르리.
花開滿樹紅,花落萬枝空。
唯餘一朵在,明日定隨風。
진지현(陳知玄)은 자가 후각(後覺)이며, 만당(晚唐) 시기 미주(眉州)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랐고 학문을 좋아했다. 다섯살 때 곧 《오세영화(五歲詠花, 다섯 세에 꽃을 읊다)》를 지었고, 열세살 때는 곧 사천(四川)에서 도를 강의해 명성이 널리 퍼졌다. 당 희종(僖宗) 때 그에게 ‘오달대사(悟達大師)’라는 도호(道號)를 하사했다.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 세 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원래는 시문 이십여 권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유실되었다.
이 《오세영화》라는 시가 뜻밖에도 다섯살 어린이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시는 결코 단순한 영물시(詠物詩, 사물을 읊은 시)가 아니라, 선의(禪意)가 가득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경세(警世)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짧은 스무 글자로 인생의 무상함을 남김없이 말해 주었으며,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명리(名利), 부귀 및 세간 만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花開滿樹紅,花落萬枝空。
唯餘一朵在,明日定隨風。
“꽃 피니 온 나무가 붉고,
꽃 지니 만 가지가 비었네.”
꽃이 필 때는 온 나무가 진홍빛으로 물들어 화려하고 눈부시니,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그러나 꽃이 진 후에는 가지 끝이 문득 텅 비어, 번화함이 순식간에 공(空)으로 돌아간다. 벚꽃이든 배꽃이든 혹은 복사꽃이든 모두 그렇다. 꽃이 필 때 사람들은 다투어 감상하며 벚꽃 축제, 배꽃 축제를 열고 즐기느라 집에 돌아가는 것을 잊지만, 꽃이 진 후에는 다시 발길을 멈추고 감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인생 또한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젊은 청춘 시절에는 신체가 강건하고 정력이 충만하며, 용모가 아름다우니 모두 부러워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해지고 청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 옛날의 풍화(風華)는 끝내 세월을 따라 사라지고 최종적으로 생명의 종점을 향해 걸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흔히 청춘의 아름다움에 도취하면서도, 또 노년의 노쇠로와 무력함을 탄식하곤 한다.
“오직 한 송이만 남았으니,
내일은 반드시 바람을 따르리.”
한바탕 봄바람이 불어 지나가면 대부분의 꽃송이는 사뿐히 떨어지지만, 늘 여전히 한두 송이는 가지 끝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시드는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단지 조금 늦을 뿐이다. 다음번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리면, 끝내 역시 바람을 따라 떨어지게 된다.
사람의 생명도 이와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7~80세 이전에 인간 세상을 떠나며, 설령 어떤 사람이 장수하여 백 세를 살 수 있다 한들 또 어떠하겠는가? 끝내 여전히 생로병사의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시간은 다를지언정 결말에는 차이가 없다.
시인이 다섯 살 때 이미 이처럼 깊은 인생 철학을 함축한 시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명백히 후천적인 학습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타고난 지혜에 가깝다. 어쩌면 숙세(宿世)의 인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이미 동년배를 초월하는 오성(悟性)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훗날 진지현은 벼슬길을 선택하지 않고 출가하여 수도(修道)했는데, 이 역시 그가 소년 시기에 드러냈던 사상 경지를 입증한다.
이 시가 진짜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인생의 비관이 아니라, 세간 만물은 모두 성·주·괴·멸(成·住·壞·滅)이 있으며 부귀영화와 청춘의 미모는 끝내 봄꽃과 같아서 활짝 핀 후에는 필연적으로 시든다는 사실이다. 오직 세간의 명리와 득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반본귀진하며, 몸을 닦고 도를 닦아(修身修道) 자신의 심성과 경지를 제고하는 것만이 무상(無常)을 초월해 진정한 안녕과 영원한 가치를 얻는 인생의 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