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국촌로(北国野叟)
【정견망 2021년 1월 9일】
이 말이 떨어지자 두 아이도 덩달아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정청은 싱글벙글하며 아이들과 함께 탁자 위의 과일과 석반, 석잔을 치우고 탁자를 깨끗이 닦았다. 탁자 면을 닦아내자 그곳엔 가로세로 각각 19줄의 바둑판 무늬가 정갈하게 새겨져 있었다. 평소 정청 사제들이 바둑을 둘 때 사용하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 고풍스러운 등나무 통 두 개를 가져와 탁자 위에 놓았다. 정청이 등나무 통의 먼지를 불어내자 두 아이가 연신 재채기를 해댔다. 등나무 통 뚜껑은 매우 두꺼웠는데, 열어보니 그 안에는 두께가 적당하고 옥처럼 매끄러운 바둑알이 가득했다. 검은 것은 고양이 눈처럼, 흰 것은 우유처럼 빛나니 이 외딴 산골짜기에서 보기엔 지나치게 정교한 물건이었다.
노도는 이 훌륭한 바둑알을 보고는 놀렸다. “네 스승은 어찌 그리 사심이 많아 이런 좋은 도구를 감춰두었느냐? 또 어찌 그리 소홀히 먼지를 뒤집어쓰게 두었단 말이냐?” 정청은 그저 웃을 뿐 대꾸하지 않고, 흰 바둑알 두 개와 검은 바둑알 두 개를 꺼내 바둑판 대각선 화점(星) 위치에 놓았다. 이어 흰 바둑알이 든 등나무 통을 도인 앞으로 밀어내며 공손히 말했다. “조사님, 먼저 두시지요.”
“허? 기이하고도 괴이하구나. 꼬마가 재주가 늘었어, 노인네인 나더러 흰 돌을 쥐고 선수를 두라는 게냐?” 도인은 농담을 던진 것뿐이었다. 정청이 후배이자 손님을 대접하는 입장이라 예의상 선수(백)를 양보했다는 것을 그가 어찌 모르겠는가.
정청이 대답했다. “조사님, 웃지 마십시오. 제자가 흑을 잡으면 조사님께 봐달라고 애원해야 할 처지인데 어찌 감히 조사님을 얕보겠습니까. 조사님께서 백을 잡으시고, 제자가 먼저 두겠습니다.”
“그럼 네가 먼저 두어라.” 노도는 차를 한 모금 머금고 여유롭게 말했다.
정청은 더 사양하지 않고 검은 바둑알을 하나 집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둑판 정중앙인 천원(天元) 자리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대국 시작부터 천원에 둔 파격적인 수에 노도는 마시던 차를 삼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맛을 음미하지도 못한 채 멈춰 섰다. 옆에서 구경하던 두 아이는 이 수가 너무나 방자하다 여겼다. 개국부터 실리를 다투지 않고 중원을 취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 홍의동자가 참지 못하고 말을 꺼내려 했으나 사제가 “관기불어진군자(觀棋不語眞君子, 바둑을 구경할 때는 입을 열지 않아야 참된 군자다)”라며 막아섰다. 노도 역시 화내지 않고 백돌을 하나 집어 여유롭게 그 옆에 바짝 붙여 두었다.
흑은 선수를 잃지 않고 가로막고 젖혔으며,
백은 날 일(日)자로 뛰지도 않고 끊으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따내고 치받으며 뒤엉켜 싸웠다.
이런 식으로 두다 보니 40수도 지나지 않아 바둑판은 온통 뒤섞여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난전이 되었다. 두 아이는 연신 감탄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청 사형은 몇 년 사이에 어찌 이런 바둑 실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36수가 지나자 노도는 바둑알을 든 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목구멍에서 “음…”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바둑판 위를 보니 흑이 이미 기세를 얻어 ‘곤(坤), 간(艮), 중(中), 감(坎)’ 네 구역을 차지했는데, 특히 ‘감’ 자리가 단단했다. 노도는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장고하는 사이, 노도의 원신은 어느새 육신을 빠져나가 몽롱하고 아득한 기운 속에 바둑판 속으로 떨어져 들고 말았다. 주변의 사물들은 작아졌다 커지고, 실체는 허상으로 변했다. 바둑알은 산이 되고, 틈은 골짜기가 되었다. 별처럼 흩어진 바둑알 속에서 흑과 백을 분간할 수 없었다. 이 혼돈 속에 빠져 하늘에 물어도 답이 없고 사람을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태허(太虛)를 유람하며 환영 속을 헤매다 보니, 갑자기 금빛 찬란한 보전(寶殿)과 보랏빛 광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거대하고 성스러운 신선이 칼을 들고 갑옷을 입은 채 보전 한가운데 서 있었다. 좌우에는 교룡과 악어, 사대 호법이 있었고, 36명의 하늘 장수와 9천 7숙의 군대를 거느리며 삼계의 요괴를 제압하고 지옥의 귀신들을 굴복시키고 있었다. 수많은 마물을 베고 사악한 기운을 제거하며 물과 불을 다스려 중생을 구하는 그 모습, 노도가 어찌 모르겠는가. 그는 이 성선이 바로 북극진천진무현천대제(北極鎭天眞武玄天大帝), 즉 상계 28수 북방 현무궁의 주신임을 깨달았다.
“오는 자는 화산의 도조(道祖)인가?” 진무활천존이 위엄 있게 앉아 물었다. 장수와 원수들은 모두 엄숙했다.
도인은 즉시 몸을 굽혀 보전 아래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제자는 감히 도조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백 년 전 화산에서 득도하여 오늘 고향을 다시 찾았다가, 친구를 방문하러 왔다가 그만 바둑판 속에 잘못 들어왔습니다. 성선의 청정한 수행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진무가 말했다.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은 내가 부른 것이니, 잘못 들어온 것이 아니다.”
노조가 청했다. “성선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성선께서 제자를 부르신 까닭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진무가 물었다. “너는 큰 겁(劫)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느냐?”
노조가 대답했다. “인간 세상에 병란이 닥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수재나 화재, 역병의 겁난입니까?”
진무가 말했다. “아니다.”
노조가 말했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에 겁이 닥쳐 마귀와 요괴들이 날뛰는 것입니까?”
진무가 말했다. “그 또한 아니다.”
노조가 말했다. “제자가 우둔하여 무슨 겁이 닥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진무가 이어서 말했다. “병란도 있고, 수재와 화재도 있고, 역병도 있다. 마귀와 요괴는 더욱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큰 겁이 아니다. 나의 명호를 아느냐?”
노조는 매우 황공하여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 꿇어앉아 말했다. “제자는 감히 성선의 존함을 직접 부를 수 없습니다.”
“말해도 괜찮다.” 진무가 말했다.
노조가 대답했다. “성선께서는 북극현천상제(北極玄天上帝)시며, 마를 물리치고 영원히 진압하여 마지막 겁에 고통받는 자를 구제하시는 천존이십니다.”
“맞다. 내가 바로 그 마지막 겁을 구제하는 신이다. 네가 말한 겁은 우리 신들이 보호하면 백 가지 요괴와 만 가지 마귀도 감히 날뛰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는 큰 겁은, 마지막 겁 위의 겁(劫上之劫)이다.” 진무가 엄숙히 말했다.
노조는 그 말을 듣고 극도로 두려워하며 물었다. “성선께 감히 묻겠습니다, 겁 위의 겁이란 무엇이며,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까?”
진무가 다시 말했다. “천지건곤의 수에는 다섯 겁이 있다. 시작인 용한겁(龍漢劫), 이루어지는 적명겁(赤明劫), 상황(上皇)과 개황(開皇)은 머무르는 주겁(住劫)이며, 연강(延康)의 괴겁(壞劫)으로 끝난다. 반고가 천지를 연 이래 성, 주, 괴, 멸을 거치며 만겁을 지냈다. 인간 세상의 전쟁과 역병, 기근은 작은 겁이라 하고, 하늘이 불에 타고 물에 잠기며 별들이 난을 겪는 것을 큰 겁이라 한다. 멸공(滅空)의 말겁(末劫)에 이르러 내가 도를 닦아 신이 되었고, 하계의 요괴를 진압하고 고통받는 자를 구제했다. 그러나 이 말겁은 총 12만 9,600년의 운행을 하며, 매 5천 년마다 윤회한다. 지금 천지가 타락하여 900년 후면 겁수가 닥친다. 삼계 안, 9천 아래의 모든 선과 불, 도, 신, 인간, 귀신, 짐승들이 이 겁수를 피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겁 위의 겁이다. 말법 말겁, 해결할 방법이 없다.”
노조는 경악하며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하고 말했다. “성선의 말씀대로라면 만물이 멸망하고 천지가 모두 파괴되는 것입니까! 부디 성선께서 자비를 베풀어 창생을 위난에서 구하시고, 기울어가는 세상을 바로잡아 주십시오. 제자도 성선과 제천신장들을 따라 하계의 창생을 구하는 데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진무대제는 이 말을 듣고 침묵했다. 보전 안에는 노조의 애처롭고 비장한 탄식 소리만 가득하여, 노을빛도 빛을 잃고 보배로운 종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바로 그때, 금빛 광명이 쏟아지고 선악(仙樂)이 울리더니, 흰 눈썹의 금선(金仙) 한 분이 서쪽 하늘 너머에서 보전으로 내려왔다. 그 흰 눈썹의 신선은 금빛 두루마리를 들고 낭랑하게 읊었다.
“옥황상제의 칙령이다. 삼계의 마지막 겁이 다가오고 있다. 주불 성왕(主佛聖王)께서는 중생들이 겁을 당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시어 입세(入世)하여 법을 바로잡으시겠다는 서원을 세우셨으니, 창궁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파괴되지 않게 하려 한다. 이제 상상계(上上界)의 모든 신성들은 주불 성왕을 따라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 말겁의 법을 전하고, 예부터 없던 판을 열어 만 년에 다시 없을 기반을 닦아라. 모든 선반(仙班)은 법을 수호하며 보필하라. 태백성군과 북극진무는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감수(坎水)와 금(金)의 덕으로 토목과 이화(離火)의 나라를 정벌하여, 강산을 바꾸고 하나로 통일하는 형세를 만들라. 문창(文昌)과 무곡(武曲)은 남조(南朝)로 들어가 간언하고 책략을 바치며 군사를 훈련하게 하라. 천하가 크게 변할 때, 죽음으로 나라에 충성하여 다시 한번 충의(忠義)를 연기하라. 이렇게 하면 마지막 때에 성왕이 출세하시어 세상 사람들이 충과 간을 분별하고 선과 악을 구분하며 정기를 지킬 지혜를 갖게 될 것이다. 흠차(欽此)!”
진무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신이 칙령을 받들겠습니다.”
여러 호법천장들도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말장이 칙령을 받들겠습니다.”
그 흰 눈썹의 신선은 바로 서방 금덕 태백태호성군(太白太皓星君)으로, 이번 칙령을 선포하러 온 것이었다. 그는 노도 노인이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그대는 화산의 도조인가?”
노조가 대답했다. “조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제자는 화산에서 도를 닦았으나, 이제야 말겁이 다가옴을 알았고 자신과 남을 구할 방법이 없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이제 성왕께서 법을 바로잡으신다니 제자도 상선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태백금성이 말했다. “그래, 올라와 칙령을 들어라.” 노조가 머리를 조아려 공손히 들었다.
“옥황상제의 또 다른 칙령이다. ‘주불 성왕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불의 불이시다. 말겁이 되면 제천신불들은 모두 성왕의 법을 들어야 할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겁이 닥칠 때 수명이 다할 것이다. 지금 이미 절반의 선가(仙家)는 천상의 요직을 지키게 하였고, 나머지 수는 모두 인간 세상에 내려가 환생하여 성왕과 인연을 맺고, 말겁에 성왕을 도와 법을 바르게 하고 대도를 다시 닦아 원만하게 하늘로 돌아와야 한다. 성왕은 이미 하계에 내려간 지 오래되었으나, 윤회 환생하여 분별하기 어렵다. 지난 생에는 무장으로 태어나 충성을 다하고도 원통하게 죽었으니, 군주가 도가 없으면 하늘이 반드시 벌하고, 상생상극의 죄를 피할 수 없었기에 강산이 바뀌고 만백성이 노예가 되는 망국의 화가 있었다. 이번 생에 성왕이 다시 나오시면 말겁에 도를 전하는 행보를 미리 보여주고, 오방 삼교 중생의 인연을 맺어 근본으로 돌아가 진실을 찾는 정수를 밝혀야 한다. 이에 특별히 화산 도조와 자양진인에게 명하여 제자들을 이끌고 입세(入世)하여 도가의 학문을 전하고, 근본을 바르게 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라. 흠차(欽此)!’”
노조가 꿇어앉아 사례했다. “제자가 신의 칙령을 삼가 따르겠습니다!”
태백성군이 칙령을 선포하고 떠나려다가 문득 생각난 듯 돌아서서 노조에게 말했다.
“그대는 바둑 한 판을 잘 두었다. 흑과 백의 움직임이 곧 오늘날 천하의 형세이니, 네 제자 운암은 성품이 나쁘지 않아 이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진무가 여기서 다 지켜보았으니 이제 일어나 속히 가거라.” 말을 마치자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무대제는 손에 든 보검에서 은빛 광명 한 줄기를 뽑아 노조의 몸속으로 불어넣으며 말했다.
“이 검은 내가 태악(太岳)에서 도를 닦을 때 얻은 것으로, 단사벽마혜광검(斷邪辟魔慧光劍)이라 한다. 오늘 특별히 빌려줄 터이니, 성왕을 조속히 찾아라. 어서 가거라.”
노조가 사례하려 했으나 보전은 사라지고 바둑산과 돌 골짜기가 다시 나타났다. 원신이 복귀하자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깨어나세요.” 그제야 노도는 연신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 바둑은 이미 종국에 다다라 있었다. 흑은 감(坎)부터 간(艮)까지, 그리고 천원과 중원까지 모두 차지하여 백은 살아날 길이 없었고 동남쪽 구석에만 간신히 남았다. 노조는 방금 전 태허에서 들은 천기를 가슴에 품고 답답함을 느꼈다. 그저 성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라 생각도 하지 않고 홧김에 죽을 자리에 바둑알을 하나 놓았다. 이 수로 인해 자신의 백돌 한 덩이가 죽었으니, 보는 이들은 모두 어처구니없는 악수라고 탄식했다.
그러나 죽은 돌을 떼내어 공간이 비자, 백은 흑과 몇 수 더 두다가 눈(眼)을 만들어 살아났다. 결국 승패는 바꿀 수 없었으나 흑돌 열 개 정도를 따내었다. 노조가 말했다. “그만두자. 진 것은 진 것이니 인정하겠다. 정청아, 네 스승은 돌아왔느냐?” 대답을 기다렸으나 대국자는 어느새 젊은 도사가 아니라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고 있는 중년의 유생으로 변해 있었다. 두 아이도 깜짝 놀라 외쳤다. “사숙(師叔)! 왜 사숙께서 계신 겁니까? 정청 사형은 어디 갔고요?” 노조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며 웃으며 꾸짖었다. “장용성(張用成), 이놈! 제자로 변해 나를 놀리다니. 방금 내 원신을 빠져나가게 한 것도, 나를 꾀어 바둑을 두게 한 것도 네놈이구나!”
그 유생은 웃으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헤헤헤, 탓하지 마십시오. 하늘의 기밀을 평범한 사람에게 누설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알고 보니 이 바둑판은 장진인이 상제의 뜻을 전하기 위해 구현한 것이었다. 남들은 모르는 채 평범한 대국이라 여겼을 뿐이다.
(다음에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44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