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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개려 할 때

운수(雲袖)

【정견망】

송도헌에서 등선지(鄧善之)의 그림에 제화하다(松濤軒題畫爲鄧善之)

봄비가 개려 할 때,
산빛은 안개 짙은 푸름을 희롱하네.
숲속에는 높은 도인이 있어,
웃음소리 하늘 밖으로 떨어지네.

春雨欲晴時,山光弄煙翠。
林間有高人,笑語落天外。

원대(元代)의 사대부 화가 고극공(高克恭)은 자가 언경(彥敬), 호는 방산(房山)이며, 색목인(色目人)으로 본적은 대동(大同)이고 그의 부친이 연경(燕京 지금의 북경)으로 이주하였으며, 조상의 고향은 서역(지금 신강)이다. 관직은 형부상서에 이르렀다.

그는 산수화를 그리되 “처음에는 ‘이미(二米, 미불·미우인 부자)’를 배웠고, 나중에는 이성(李成), 동원(董源), 거연(巨然)의 화법(畫法)을 사용”하였으며, 오로지 사의(寫意)의 기운을 취했고 먹으로 대나무 치는 것도 잘하여 문호주(文湖州 문동)와 나란히 명성을 떨쳤으니 조예가 정묘했다.

이 시 《송도헌에서 등선지(鄧善之)의 그림에 제화하다(松濤軒題畫爲鄧善之)》는 사실 화가의 입장에서 그림을 보고 시를 쓴 것이다. 바라보는 각도가 다르면 보는 것 또한 달라진다.

“봄비가 개려 할 때,
산빛은 안개 짙은 푸름을 희롱하네.”

시인의 관찰이 매우 정밀해서 그림 속의 세부 묘사를 민첩하게 보는 동시에 풍부한 상상력까지 보여준다. 봄비가 막 그치고 개려 할 때 먹구름이 흩어지며 햇살이 내리쬔다. 산속의 물방울과 이슬 위에 햇살이 비치어 겹겹이 물결 같은 빛을 발하고 미풍 속에서 반짝거리는 것이 마치 산속의 구름 안개와 서로 장난을 치는 듯하다.

여기서 ‘희롱할 롱(弄)’ 자는 ‘장난을 친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며, ‘희롱한다(戲弄)’고 하면 다소 점잖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연취(煙翠 안개 짙은 푸름)’는 아마도 가느다란 비와 산속의 푸르른 나무가 어우러져 이뤄진 것일지도 모른다.

“숲속에는 높은 도인이 있어,
웃음소리 하늘 밖으로 떨어지네.”

시인의 눈에는 그것이 단지 한 폭의 그림일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가득 찬 하나의 경계(境界)이기도 하다. 상상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어떤 경계에 대한 느낌이다. 보통 사람이 보는 것은 단지 한 폭의 산수화일 뿐이지만, 시인이 보는 것은 산림 사이에 있는 더욱 깊은 내함을 지닌 것들이다.

시인이 느낀 것은 시 속의 영기(靈氣)요 고인(高人)이다. 그의 웃음소리는 이미 그림을 뚫고 나왔으며 심지어 구소(九霄) 밖까지 울려 퍼지고 있다.

서양의 유화는 섬세하고 정확함을 중시하지만, 중국화는 내함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몇 번의 간소한 붓질 속에 초탈한 경계가 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 이 표면의 사물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사람의 인지를 초월한 요소와 생명들인 것이다.

이 시는 얼핏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그림 배후의 내함을 아주 남김없이 훌륭하게 표현해 내었다. 우리는 평소에 좋은 그림을 볼 때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아마도 이것이 바로 아주 훌륭한 본보기일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