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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천선(天仙)을 보다 — 《청평락·화당신기》 해독

청풍

【정견망】

그림 같은 방에서 아침에 일어나니, 눈꽃이 내린다고 소식을 전하네.
높이 주렴을 걷고 상서로운 눈을 바라보니, 하얀 빛이 멀리 뜰의 섬돌까지 아스라이 감싸네.
기세 좋은 불길은 화로의 연기를 끌어올리고, 차가운 풀밭에는 옥노리개 같은 눈꽃이 서리네.
아마도 하늘의 신선이 몹시 취해, 하얀 구름을 제멋대로 짓뭉개 조각내어 뿌린 것이리라.

畫堂晨起,來報雪花墜。
高卷簾櫳看佳瑞,皓色遠迷庭砌。
盛氣光引爐煙,素草寒生玉佩。
應是天仙狂醉,亂把白雲揉碎。

이백의 작품은 예로부터 발상이 기이하고 거대하면서도 경계(境界)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초탈하고 세속을 벗어난 시적 경계는 어쩌면 단순한 문학적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더욱 심층의 생명 내함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백은 후세 사람들로부터 ‘시선(詩仙)’이라 불렸다. 여기서 ‘선(仙)’을 단순히 속인 층차의 찬사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의 생명 경계에 대한 진정한 묘사로 본다면, 그의 시 속에 나오는 그토록 불가사의해 보이는 광경들은 전적으로 세속의 사유에 국한하여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백은 도가(道家)를 신봉하며 신선을 구하고 도를 찾아다녔는데,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그의 많은 작품이 세속을 초월한 시야를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평락(清平樂)·화당신기(畫堂晨起)》는 설경을 표현한 작품이다. 역대로 눈을 노래한 걸작은 매우 많고 저마다 각기 특색이 있지만, 이 사(詞)는 그 독특한 기상으로 발군이다. 전체 사(詞)는 문장이 응축되고 의경(意境)이 광활하며, 통속적이면서도 자연스럽고 또 날아오듯 기이하면서도 절묘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운(神韻)이 넘치는 대목은 아무래도 맨 마지막 두 구절일 것이다.

“아마도 하늘의 신선이 몹시 취해, 하얀 구름을 제멋대로 짓뭉개 조각내어 뿌린 것이리라.”

현대 과학에서는 눈을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차가운 기운을 만나 응결하여 형성된 얼음 알갱이로 보며 고체 강수(降水)에 속한다고 여긴다. 또한 구름은 수증기가 차가운 기운을 만나 액화되어 작은 물방울이 되거나 응결하여 작은 얼음 알갱이가 되어 응결핵에 부착되어 모인 가시적인 부유체라고 본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물질 공간에서 인식한 눈과 구름의 형성 과정이다.

그러나 사물에는 어쩌면 또 다른 공간의 존재와 표현 형식이 있을지도 모른다. 《전법륜》 제2강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물체가 존재하는 형식은 이런 것이지만, 그것의 표현 형식은 도리어 이런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수련 문화의 각도에서 볼 때, 비바람이나 눈과 비 등의 형성과 운행은 모두 신령이 주관하고 있으며, 그 발현 방식 또한 다채로울 수 있다.

이렇게 다시 “아마도 하늘의 신선이 몹시 취해, 하얀 구름을 제멋대로 짓뭉개 조각내어 뿌린 것이리라.”를 본다면, 그것은 어쩌면 단순히 문학적인 과장과 상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백이 어떤 광경을 목격한 후의 진정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즉, 하늘의 신선이 미치도록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해 곁에 있던 하얀 구름을 손으로 마구잡이로 짓뭉개 부수어 세상에 흩날리게 하였고, 그리하여 하늘 가득 내리는 눈으로 화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범인(凡人)이 천선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詩仙)’이 ‘천선(天仙)’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 몸은 미혹(迷)에 처해 있어 다른 공간의 진정한 광경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시인이 쓴 모든 것을 습관적으로 상상으로 돌려버리곤 한다. 그러나 속인은 왜 이토록 기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문장을 좀처럼 쓰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바로 생명의 경계가 다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광경 또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백의 작품 속에는 이와 유사한 시구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아슬아슬한 누각 높이 백 척,
손을 뻗으면 별을 따리라.
감히 큰소리로 말하지 못하노니,
저 하늘 위의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라.

危樓高百尺
手可摘星辰
不敢高聲語
恐驚天上人

속인의 각도에서 보면 이것은 낭만주의적 과장이다. 그러나 또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이것은 어쩌면 다른 공간 속의 진정한 장면을 묘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공간 속에서 별들은 마치 눈앞에 지척으로 다가와 있어 손을 뻗으면 따낼 수 있을 것 같고, 하늘 위의 사람들 역시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있어, 이백은 그들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 감히 큰소리로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 역시 여전히 ‘시선이 천선을 본 것’이다.

속인은 속인의 차원에 입각해 사물이 현실 공간 속에서 드러내는 표면적 형태만을 보기가 십상이며, 그 더욱 심층적인 본질을 통찰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이백의 시 속에 등장하는 그 세속을 초월한 경계들이 기이한 상상력으로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백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쩌면 근거 없는 상상이 아니라, 그가 직접 보고 느꼈던 또 다른 일종의 진실이었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