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산바위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장 찾아 나서니,
이 또한 구름 밖으로 올라 소나무 그늘로 드네.
비록 신선이 사는 동굴 속 경지는 아니지만,
세상의 명리심과는 사뭇 다르다오.
聞有山岩即去尋
亦躋雲外入松陰
雖然未是洞中境
且異人間名利心
주돈이(周敦頤)는 주원호(周元皓)라고도 하며, 원래 이름은 주돈실(周敦實)이며, 자는 무숙(茂叔), 시호는 원공(元公)이다. 도주(道州) 영도루(營道樓) 전보(田保 지금의 호남성 도현) 사람이며, 세상에서는 염계선생(濂溪先生)으로 불렸다. 북송 오자(五子) 중 한 명이며, 송조 유가 리학(理學) 사상의 비조(鼻祖)이자 문학가이며 철학자이다. 저서로는 《주원공집》, 《애련설》, 《태극도설》, 《통서(通書)》(후에 후손들이 《주원공집》에 편입함) 등이 있다.
이 시 《우도현에 이르러 여항의 전건후 척사명 심기성 희안을 초대해 나암에 놀러가다(行縣至雩都邀餘杭錢建侯拓四明沈幾聖希顏同遊羅岩)》은 시인이 산바위 풍경을 오른 후의 소감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명리를 다투려 하지 않는 청정한 마음이다.
“산바위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장 찾아 나서니,
이 또한 구름 밖으로 올라 소나무 그늘로 드네.”
시인은 산을 오르며 탐험을 했는데 안내인도 없었으니, 찾아간 곳이 분명 매우 외진 곳이었음을 말해준다. ‘찾음(尋)’이란 글자는 독자들에게 이곳이 바로 인적이 드문 곳임을 알려준다. 마치 낭떠러지처럼 험준한 곳이 구름 층계 바깥까지 뻗어 있고, 그곳에는 꼿꼿이 선 푸른 소나무까지 있으니, 탐험가들에게는 성지(聖地)겠지만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오싹해지는 곳이다.
전에 이러한 탐험지를 본 적이 있는데, 산바위 곳곳이 험준할 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기는 더욱 어렵다. 가는 길 내내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도착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신선이 사는 동굴 속 경지는 아니지만,
세상의 명리심과는 사뭇 다르다오.”
은자(隱者)나 도를 닦는 이들은 대개 산속 동굴에 거주하기를 좋아하는데, 이곳에는 동굴이 없고 단지 산바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인의 입장에서는 이곳이야말로 명리심을 버리기 좋은 장소이다.
시인은 어째서 이곳을 명리심을 버리기 좋은 장소라고 여겼을까? 아마도 산바위가 매우 위험하여 조금만 방심해도 절벽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생사(生死)를 마주하고도 마음에 동요가 없을 때 명리심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일반 관광객들의 입장에서 이곳은 유람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타고나기를 대담한 이들도 물론 존재한다. 물론 여기에서의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라 시인이 명리를 초연히 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담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 불교 우화 하나를 본 기억이 난다. 어떤 사람이 활을 매우 잘 쏘았는데, 어떤 스님 역시 자신과 활 솜씨가 비슷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찾아가 겨루어보고 싶어 했다. 그러자 스님은 그 사람을 밖으로 툭 튀어나와 흔들리기까지 하는 바위에 세운 뒤 활을 쏘게 했다. 결국 그 사람은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고 활을 쏘기는커녕 엄두도 못 냈다. 반면 스님은 신색(神色) 하나 변하지 않고 의연하게 화살을 쏘아 맞혔다.
무당산의 용두향(龍頭香) 역시 대개는 수행자들의 담력을 시험하는 과정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목숨을 건 장난처럼 여기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수행자들은 신체가 가볍게 떠오르는 감각을 느끼며, 특히 대주천(大周天)이 뚫린 이들에게는 위험할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일이다.
시인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시인 자신부터가 현묘한 이치를 알고 있었고 태극 등의 이치에 통달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필히 세속의 평범한 이들과는 달랐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시인에게는 어쩌면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자신이 바위를 등반한 경험을 서술하는 방식을 통해 명리를 가볍게 여기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도 이런 뜻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