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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홍전(佛法洪傳)——당태종과 삼장의 일화

전운(田雲)

【정견뉴스】

《서유기》는 당승사도(唐僧師徒 당승과 제자들) 4명이 서천(西天)으로 경전을 얻으러 가서 온갖 고생을 다 겪고 요마(妖魔)를 제거한 실화와 신화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현장(玄奘)법사는 멀리 인도까지 찾아가 중국은 물로 해외 여러 나라에까지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당 태종은 그를 존중해 많은 찬사와 상을 내려 중원에 불법(佛法)을 널리 보급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겼다.

현장법사는 당 태종 정관 3년(629년) 장안(長安)을 출발해 3년에 걸친 고생 끝에 5만 리 여정을 걸어 천축(지금의 인도)에 도착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불법을 배웠다. 그러다 정관 19년(645년) 정월 24일 657부의 불전(佛典)을 지니고 장안으로 돌아오니 거국적으로 큰 환영을 받았다.

태종은 현장의 위대한 행동에 감동해 ‘왕조의 성대한 일’로 칭하며 칙명을 내려 장안 홍복사(弘福寺)에서 번역장소를 설치해 전문적으로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번역하게 했다. 아울러 여행기간에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게 했다. 646년 현장이 제자 변기(辯機)의 도움으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완성했다.

이렇게 천축에서 귀국 한 후 19년에 걸쳐 현장은 무려 1335권의 불경을 번역했는데 모두 130여 만자에 달한다. 이는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이래 가장 중대한 공헌이었다.

션윈(神韻)예술단이 2010년 제작한 무용극 《불법홍전(佛法洪傳)–불법이 널리 전해지다》은 바로 이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예술로 승화시켰다.

눈부시게 화창한 날 당승(唐僧 현장), 손오공, 저팔계, 사화상(沙和尚 사오정) 4명이 온갖 고생을 다 겪은 후 마침내 장안성 밖에 도착했다. 장안 성에서 수많은 관원과 백성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면서 공경하게 당승 일행과 이들이 가져온 불법을 맞이했다. 당 태종 이세민이 직접 궁문 밖까지 나와 현장을 맞이하고 두 눈 가득 찬사와 위로를 보낸다. 당승 사도는 자신들이 가져온 불경을 여러 사람들에게 한권씩 나눠주고 천자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경전을 받드니 경성(京城) 전역이 장엄과 기쁨으로 가득 찬다.

이 무용극은 부처님께 공경하게 예를 올렸던 당대(唐代)의 기상을 잘 부각시켰다. 알다시피 대당(大唐)은 큰 바다가 모든 하천을 포용하듯이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물게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었으며 유불도 삼교가 모두 절정을 이뤘다. 정교(正敎)의 전파는 도덕을 유지하고 국가를 번영시키며 안정화하는데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한다.

현장법사는 불경을 번역하는 과정 중 일찍이 태종 황제에게 표문을 올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서문을 써줄 것을 청했다. 당 태종이 흔쾌히 이에 응해 만든 작품이 바로 유명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教序)》다.

현장은 이를 큰 영광으로 여겨 다시 황제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문을 올렸다. 나중에 홍복사의고승 회인(懷仁)이 왕희지(王羲之)의 서법으로 글자를 모아 이 문장을 비문에 새겼는데 이 비가 아직도 서안 비림(碑林)에 남아 있다.

《성교서(聖敎序)》는 전체 문장이 1904자로 이중에는 당 태종의 서문, 고종의 기(記)와 현장 본인이 번역한 경전 등 3부분으로 나뉜다.

태종은 문학에도 뛰어난 조예가 있었다. 그가 쓴 《성교서》는 글은 비록 간단하지만 시적인 언어로 불법(佛法)에 대한 깨달음과 존중 및 현장에 대한 찬사를 표현했다. 문채가 날아오를 정도로 뛰어나고 의미 역시 깊고도 심오하다.

우선 현장이 겪은 고생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니 지팡이 짚고 홀로 길을 갔노라. 쌓인 눈 날리는 새벽에는 중간에 길을 잃었고, 거센 모래바람 부는 저녁에는 텅 빈 교외에서 방향을 잃기도 했노라. 만 리 이역의 산천을 지나며 안개와 노을을 헤치며 걸음을 재촉했고, 모진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서리 밟고 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갔노라.”

한편 불법 이치에 대한 태종의 해석은 더욱 고명하다.

“확대하면 우주에 가득 차고 축소하면 터럭 끝에도 거둘 수 있으며, 소멸되거나 생겨남도 없어 천 겁(千劫)을 지나도 쇠하지 않노라. 감춰진 듯 드러난 듯 온갖 복(百福)을 운용하며 지금까지 이르렀도다. 오묘한 도(妙道)는 현묘함에 응축되니 그것을 따르려 해도 그 끝을 알 수 없으며, 법의 흐름(法流)은 고요함에 침잠하니 그 물을 퍼내려 해도 근원을 찾을 수 없도다.”

​“서역 끝에서 자비로운 구름을 끌어와 동쪽 끝 중화에 불법(佛法)의 비를 내리게 했노라. 이에 성스러운 가르침 중에서 빠진 부분이 다시 온전해졌고 창생(蒼生 중생)이 죄를 짓다가 다시 복을 받게 되었노라.”라고 하며 불법이치를 자비로운 구름에 비유하고 불법의 비로 중화를 적셔준다고 찬양했다.

현장법사의 출현은 화하(華夏)에 신기(神奇)를 추가한 것이다. 당 태종의 종교와 신앙에 대한 개방적인 기상과 불도에 대한 깊은 이해는 보는 이를 탄복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는 인과와 윤회를 깊이 깨달아 관리와 백성들이 선을 쌓고 악을 피할 것을 격려했으며 대당의 성세(盛世)를 개창한 천고일제(千古一帝 천년에 한번 나올 만큼 뛰어난 황제)로서 후대에 모범을 보였다. 이렇게 찬란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션윈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션윈예술단은 매년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음악, 무용, 가곡, 색채, 의상, 무대장치 등 여러 방면에서 중화 오천년 신전문화(神傳文化)를 연기해 사람들의 시야를 크게 넓혀주고 있다. 션윈 작품은 역사에 근거하며 짧은 프로그램 배후에는 풍부한 문화적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뜻을 크게 세우고 견문을 넓혀준다.

현재 션윈이 창작한 작품들을 온라인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60여개에 달하는 션윈 초기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중 적지 않은 작품들이 고대 수련전통과 신불(神佛)세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정신과 신앙 방면에서 보는 이들을 사색하게 한다.

《불법홍전》 이외에도 《서유기》에서 소재를 취한 작품으로는 《금 원숭이가 지혜로 저팔계를 거두다(金猴智收豬八戒)》와 《지혜로 사화상을 거두다(智收沙和尚)》 등이 있다. 매 작품마다 묘미가 넘쳐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