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뉴스】
신비하게 사라진 고대 전국(滇國)의 유물이 2000년 만에 출토
서한의 저명한 사학자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한 무제(武帝)가 전국(滇國) 왕에게 금인(金印)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사료가 부족해 옛 전국의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순금으로 주조된 ‘전왕의 인(滇王之印)’이 출토돼 이 나라가 실제로 약 300여 년 동안 실존했음이 확인되었다.
최근 대륙 국가문물국이 발표한 새로운 고고학적 성과를 보면, 유적지에서 한대(漢代)의 간독(簡牘 종이가 보급되기 전에 대나무나 나무 조각에 글자를 쓴 것) 대량 출토되는 등 서한 중앙정부가 운남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사마천은 《사기 서남이전》에서 “한 무제 원봉(元封) 2년, 전왕(滇王) 상강이 한에 항복했고” “한 무제가 전왕에게 왕인(王印)을 하사하고 다시 그 백성들을 다스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서한 원봉 2년(기원전 109년) 한 무제가 전나라 왕에게 순금으로 된 왕인을 하사했을을 가리키며, 1956년 운남에서 옛 전문화 석채산(石寨山) 고분군 ‘하박소 유적(河泊所遺址)’이 출토되어 《사기》에 언급된 금으로 만든 ‘전왕지인(滇王之印)’을 비로소 찾았다.
2019년에는 고대 기밀문서에 도장이 찍힌 진흙을 뜻하는 ‘전국상인(滇國相印)’이라는 봉니(封泥)도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고대에 기밀문서의 인장을 덮는 일종의 진흙이며 ‘전왕지인’과 상호 확인돼 전국의 진실성을 더욱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 무제가 전나라 땅에 익주군(益州郡)을 설치하고 왕인을 하사하면서 행정관리 체계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대륙 국가문물국은 유적지에서 대량의 한대 봉니와 죽간이 출토되어 서한 중앙정부가 운남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했음을 보여주었다.
운남성 문물고고연구소장 류정웅(劉正雄)의 소개에 따르면 “유적지는 주로 양한(兩漢)시대 문물을 밝혀주며 건물 터, 회갱, 무덤, 수로, 우물 등 중요 유적이 발견됐으며, 출토 유물은 봉니, 죽간, 구리그릇(銅器), 철기(鐵器), 골기(骨器), 옥석기(玉石器) 등 2000여 점으로 이 중 봉니는 모두 500여 점으로 관인봉니(官印封泥)와 사인봉니(私印封泥)로 나뉜다. 봉니가 출토한 위치는 고대에 문서자료를 파기하는 장소였을 것“이라고 했다.
봉니(封泥) 외에 간독(簡牘)이 있는데, 글씨가 분명한 파편이 약 200여 점, 뚜렷하지 않는 파편이 약 1000여 점으로 현재 ‘전지이정행(滇池以亭行)’, ‘건령현(建靈縣)’, ‘시원(始元) 4년’ 등의 문자가 확인되었다. 또 대형 건물 터, 폭 12m의 도로, 길이 48cm의 기와 조각, 와당(瓦當), 벽돌 등이 발굴되어 서한이 익주군을 설치하여 다스린 단서를 제공한다. 이는 또한 중국이 오랫동안 통일된 다민족 국가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