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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파룬궁 평화 상방 (1) 중공의 실패한 음모

뤄충(羅瓊)

【정견뉴스】

1999년 4월 25일, 만여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난하이 인근에서 평화 상방을 진행하고 있다. (명혜망)

들어가는 말

2026년 2월, 명혜망은 중공 고위 관리로부터 나온 소식을 공개했다. 1999년 4월 25일, 당시 중공 두목 장쩌민이 청원(上訪)에 나선 만여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을 겨냥해 무장 학살을 의도적으로 획책했으며, 파룬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려고 고집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생들의 평화롭고 이성적이며 높은 소양을 갖춘 모습과 파룬궁 수련생 대표와 중공 고위 관리 간의 협상이 합의에 도달함에 따라 한 차례 학살을 피할 수 있었다. 본 보고서는 해당 폭로에 근거하여, 이 탄압이 실현되지 못했던 배후 원인을 다각도에서 밝히고자 한다.

명혜망 2026년 2월 7일 보도에 따르면, 한 독자가 해당 사이트에 중공 고위 관리가 밝힌 내막을 폭로했다. 1999년 4·25 당시 만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국무원 신방국(청원실)으로 상방하러 온 당일, 장쩌민은 이미 비밀리에 부대를 현장에 투입해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병사들은 모두 경찰복으로 갈아입고 탄약을 장전한 채 명령만 떨어지면 ‘중난하이 포위 공격자’ 전원을 사살하여 1989년 ‘6.4’와 유사한 대학살을 재현하려 했다. [1]

소식은 또한 당시 몇몇 중앙 지도자들이 극구 만류하며, 먼저 파룬궁 수련생 대표와 협상할 것을 요청했다고 지적했다. 만약 청원자들이 철수에 동의하면 총을 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당일 몇몇 고위 관리와 파룬궁 수련생 대표는 협상을 통해 합의에 도달했다. 그날 밤 청원에 동참한 수련생들은 모두 신속하고 평화롭게 철수했으며,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종이까지 치워가는 등 매우 높은 소양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준비된 무장 학살을 피할 수 있었다.

폭로에 따르면, 장쩌민의 파룬궁에 대한 규정은 어떠한 사실 조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질투와 독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법률적 차원에서 보자면 거대하고 황당한 모순이다.

이러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놀라운 내막이 27년 만에 폭로되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수년간 수많은 4·25 경험자들의 회고와 인터뷰 보도를 통해, 사람들은 그들의 묘사에서 당시 현장의 공포와 살벌함, 일촉즉발의 위험한 형세를 충분히 볼 수 있었으며, 동시에 파룬궁 수련자들이 시종일관 보여준 평화롭고 이성적이며 선량한 모습을 확인했다.

무기도 없는 선량하고 평화로운 청원자들을 마주하고 칼을 갈며 살심(殺心)을 품었던 중공 당국은 과연 어떤 정권인가? 무장한 군경들 앞에서 동요함 없이 조용히 거리를 지켰던 청원자들은 어떤 집단인가?

전 중공 당수 장쩌민은 왜 4·25 당시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총격을 획책했는가? 또 왜 같은 해 7월에 독단적으로 파룬궁 금지를 강행했는가?

본 보고서는 명혜망의 폭로 내용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4·25 만(萬) 인 평화 상방 역사를 더 깊은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진실을 밝힐 것이다.

내용은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다.

(1) 중공의 실패한 음모
(2) 공안이 설치한 함정
(3) 중난하이 협상
(4) 중공의 탄압 획책 이면
(5) 황당한 규정

중공의 실패한 음모

1999년 4월 11일, 중국과학원 원사 허쭤슈(何祚庥)가 톈진 교육학원이 창간한 《청소년과기박람》 잡지에 파룬궁을 비방하는 문장을 발표했다. 4월 18일부터 톈진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끊임없이 톈진 교육학원을 찾아가 사실 진상을 밝히고 정정을 요구했다. 4월 23일 밤, 대규모 폭동진압 경찰이 톈진 교육학원에 진입하여 노인과 아이를 포함한 수련생들을 구타하며 쫓아냈고, 45명의 수련생을 체포했다.

톈진 정부는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공안부가 이 사건에 개입했으므로, 수련생들을 석방하려면 베이징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수련생들은 베이징에 가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권고를 받았다. 그 후 그들은 4월 25일 국무원 신방국에 청원하기로 결정했으며, 이 소식은 파룬궁 수련자들 사이에서 신속히 퍼졌다. 이것이 바로 4·25 만 인 상방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오전 6시경부터 수련생들 국무원 신방국 인근에 도착

4월 25일 오전 6시경, 베이징 시안먼 대로 인도 양쪽에는 이미 파룬궁 수련자들로 가득 찼다. 많은 이들이 전날 지방에서 올라와 밤을 지새운 상태였으며, 이곳은 국무원 신방국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잠시 후 경찰이 와서 수련자들을 중난하이 서쪽의 푸유가로 가도록 유도했고, 수련자들은 모두 순순히 따라갔다.

7시 반, 한 젊은 부부가 신방국으로 향하던 중 자금성 동쪽 해자를 지나다가 지프차에 나눠 타고 푸유가 방향을 향해 앉아 있는 병사들을 보았다. 그들이 든 총에는 대검이 꽂혀 있었다. [2] 당일 이른 아침부터 무장 진압을 실시하기 위해 병사들이 이미 엄중히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원에 참여한 수련생들은 자신들을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8시: 경찰 배치 증가 시작

오전 8시경, 경찰과 경찰차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수 표식이 있는 경찰차들이 거리에서 천천히 왕복하며 주행했고, 차 안에서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 길가의 수련자들을 향해 단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으려는 듯 계속해서 촬영했다. 경찰 외에도 많은 무장경찰 병사와 ‘사복 경찰’들이 나타났다. [3]

수련생들은 인도 위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들은 백발의 노인부터 어린이, 임산부에 이르기까지 사회 각계각층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군중 속에는 구호도, 현수막도, 소동도, 불평도 없었다. 일부 수련자들은 파룬궁의 주요 저서인 《전법륜》을 읽고 있었고, 일부는 가부좌를 틀고 연공을 했다. 모두의 공통된 소망은 정부가 진상을 알고 톈진에서 잡혀간 수련자들을 석방하는 것이었다.

오후: 대규모 군경이 갑자기 쏟아져 나와 수련생들과 대치

오후가 되자 갑자기 중난하이 서문에서 대규모 군경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모두 철모를 쓰고 기관단총을 든 채, 도로 건너편에서 수련자들 앞에 일렬로 늘어섰다. 첫 번째 줄의 수련자들과는 불과 한 걸음 거리였다. 그때도 수련자들은 여전히 평화로웠으며,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말없이 조용히 서 있었다. 당시 뒤쪽의 수련자들은 앞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느끼지 못했다. [4]

수련생들은 자발적으로 도로를 깨끗이 유지했으며, 심지어 경찰이 버린 담배꽁초까지 주웠다. 이들을 지켜보던 경찰들의 경계심과 긴장감은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어떤 경찰들은 자발적으로 수련생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현장은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5]

당시 수련생들 앞에는 몇 미터 간격으로 경찰이 서 있었고, 경찰차도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다. 점차 무료해진 경찰들은 서너 명씩 모여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들 맞은편에 서 있던 수련생 중 일부는 자신이 들고 있던 《전법륜》을 경찰에게 건네주기도 했고, 어떤 이는 차 안에 앉아 있는 경찰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경찰들은 책을 받아 넘겨보며 중간중간 수련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6]

4·25 당일, 도로에는 많은 경찰이 있었다. 그들은 수련생들을 마주하고 몇 미터 간격으로 서 있었으나, 분명히 매우 느긋해 보였고 할 일이 없어 보였다. 일부는 아예 함께 모여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명혜망)

1999년 4월 25일, 북쪽에서 남쪽으로 푸유가를 주행하는 버스 안에서 촬영된 사진(버스 뒷유리를 통해 촬영). 사진 왼쪽은 청원 중인 파룬궁 수련생들이며, 오른쪽의 붉은 담벼락은 중난하이다. 파룬궁 수련자들과 중난하이 사이에는 푸유가가 있다. 수많은 경찰이 파룬궁 수련자들 맞은편에 서서 서너 명씩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다. (명혜망)

4·25 당일, 청원 중인 파룬궁 수련자들 앞을 지키던 경찰들이 느긋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다. (명혜망)

4·25 당일, 파룬궁 수련생들 맞은편에 선 경찰들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조용히 《전법륜》을 읽고 있다. (명혜망)

베이징 기차역의 사복 경찰, 수련생 속여 경찰차에 태워 가

당일 오후, 베이징 기차역에서 사복 경찰이 수련생로 위장해 무리를 지어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질문하는 것을 본 수련생들도 있었다. 수련생임이 확인되면 그들을 데리러 온 사람이라고 속여 기차를 타고 온 수련생들을 무더기로 경찰차에 태워 갔다. 이상함을 눈치채고 떠나려던 일부 수련생들은 사복 경찰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다. 이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당일 청원에 참여했던 중국과학원 부연구원 류징항(劉靜航)은 직감했다. “중공은 이미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평온한 겉모습 뒤에는 사실 이미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7]

오후 2~3시: ‘양판(兩辦)’ 통지, “이용당하지 말라”

오후 2~3시경, 사복 차림의 사람들이 길을 따라 수련자들에게 ‘양판’(중공중앙판공청, 국무원판공청)의 통지문을 배포했다. 정부는 누구의 기공 수련도 반대한 적이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연공의 자유가 있다는 내용과 함께, 나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말라는 권고 등이 담겨 있었다. 많은 수련자가 전단지를 보았지만 아무도 떠나지 않았다. [8]

지금 돌이켜보면 이 ‘전단지’는 폭력 진압이 임박했음을 이면에서 뒷받침한다. 명혜망 폭로에 따르면, 만약 청원자들이 철수하지 않았다면 병사들이 그들 모두를 향해 사살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이미 ‘6.4’ 때 잔혹하게 연출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청원에 참여한 수련생들은 쉽게 떠날 수 없었다. 그들은 톈진에서 잡힌 수련생들이 석방되는 것을 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청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당시 대외경제무역부 판공실 처장 장이제(張亦潔 현재 미국 거주)는 독일 출장을 마치고 막 베이징으로 돌아와 오후 2시경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당시 둥화(東花)시 베이리 단지의 보도원이었다. 잠시 쉰 후 단지 수련생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모든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집 전화가 울렸고, 남편(당시 대외경제무역부 유럽사 사장)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스광성(石廣生) 대외경제무역부 부장이었다. 그는 “빨리 부서 내 중난하이로 청원하러 간 파룬궁 수련생들을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즉시 문을 나섰다. 장이제는 그제야 중난하이에 일이 생겼음을 알았고, 모두가 그곳에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녀는 곧바로 자전거를 타고 중난하이를 향해 질주했다.

그녀는 곧 창안가(중난하이 남쪽)에 도착했는데, 평소 차들로 붐비던 창안가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차도 사람도 없었고, 인도에만 한가롭게 거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모두 사복 경찰이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창안가가 “계엄 상태”임을 느꼈다. [9] 아마도 당시 스광성 부장은 무장 진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급히 사람을 보내 대외경제무역부의 청원 수련자들을 찾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한 것으로 보인다.

오후 3시: 무장한 병사들 기관단총 든 채 수련생 맞은편에 배치

오후 3시경, 당일 청원에 참여했던 베이징 모 연구소 고급 엔지니어 류즈춘(劉志春 현 캐나다 거주)은 중난하이 서문에서 갑자기 30여 명의 무장 병사들이 급히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기관단총을 손에 쥐고 수련생들이 서 있는 거리 양옆에 섰다. 이어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중난하이 서문에서 나와 한 바퀴를 돈 뒤 남쪽으로 떠났다. 소문에 따르면 그것은 장쩌민의 차였다.

이후 3시가 넘었을 때 중난하이 인근에는 계엄이 선포되어 외부인이 푸유가로 진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류즈춘은 푸유가 북쪽 입구에서 걸어 나오다가 녹색 캔버스 덮개가 있는 대형 군용 트럭이 베이하이 인근의 옛 베이징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어 곁에 있던 한 수련생이 그런 차가 이미 5~6대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1989년 ‘6.4’ 당시 류즈춘은 이런 군용 트럭에 군인들이 가득 타고 학생들을 학살하러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차 한 대에 50~60명이 탈 수 있으니, 5~6대면 약 300명의 군인이 있는 셈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순간 하얘졌다. 장쩌민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10]

오후 4~5시: 국무원 전단지, “빨리 떠나라, 가지 않으면 결과는 스스로 져야”

오후 4~5시경, 공기 중에는 억눌리고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수련자들 사이에서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는 말이 조용히 퍼졌다. 이는 그들이 수행자로서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요구하는 준칙이다. 그 후 국무원에서 전단지가 몇 장 전달되었는데, 내용은 대략 이랬다. “빨리 떠나라, 떠나지 않으면 결과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생들은 동요하지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11]

해 지기 전, 무장경찰 부대의 지휘차 행렬이 푸유가를 몇 번이고 정찰했다. 그전까지 무장경찰이 푸유가에 출동시킨 차량은 녹화용 차량뿐이었다. [12]

저녁 무렵: 내부 소식, 경비부대 기관총 거치하고 살인 준비

저녁 무렵, 한 파룬궁 수련자가 가족으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가족은 경비부대 소속이었는데, 그녀에게 반드시 즉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며, 경비부대가 이미 기관총을 거치했고 곧 폭력적으로 살인을 시작할 것이니 지금 돌아오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말했다! [13]

날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거리의 모든 등이 꺼졌고, 도로는 어둠에 휩싸였다. 젊은 수련생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으나 중공이 얼마나 악한 짓을 저지를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연령대가 높은 수련자들은 공산당이 곧 손을 쓸 것임을 즉각 알아차렸다.

첫 번째 줄의 수련생들은 경찰의 총구 앞에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인도 위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켰고,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약 30분 정도가 지난 후 다시 불이 켜졌고,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4]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파룬궁 수련생에 따르면, 그녀의 이웃인 베이징 모 병원 의사가 다음 날(4월 26일) 그녀에게 말해주기를,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이 어제 무장경찰의 명에 의해 임시 긴급 동원되었다고 했다. 저녁 식사 전까지 모든 병실을 비우고 대량의 외상 의료용품을 준비했는데, 긴급 임무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다른 동료들이 있는 여러 병원도 어제 같은 명령을 받고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15]

밤 9시: 톈진에서 체포된 수련자 전원 석방, 수련자들 평화롭게 철수

당일 밤 9시경, 파룬궁 수련생 대표와 국무원 신방국 관리가 협상을 통해 합의에 도달했으며, 톈진 정부는 체포했던 수련자 전원을 석방했다. 이 소식을 들은 모든 상방 수련자는 신속하고 평화롭게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저우위링(周玉玲)은 당시 청원 경험자로, 그때 그녀는 베이징의 중국국가도서관 간행물의 부교수였다. 4·25 당일 밤 10시경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녀는 급히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다급하게 푸유가 현장에 있는 수련자들에게 빨리 철수하라고 알리라고 말했다. 총참 작전부가 방금 회의를 마치고 그날 밤 12시에 상방 수련자들을 무력 진압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만약 수련자들이 자정 12시까지 떠나지 않으면, 제2의 ‘6.4 사태’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총참(중공군 총참모부)에서 근무하는 파룬궁 수련자였고, 그 수련자의 친척이 총참 1부(중공군 총참모부 작전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16]

전원 철수 후 경찰의 감탄, “바닥에 쓰레기 하나 없어”

당시 칭화대학교 토목공학과 부교수인 쉬인(須寅)도 청원하는 군중 속에 있었으며, 거의 13시간 동안 머물다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게 많은 수련자가 아침부터 밤까지 십여 시간 동안 그곳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본 것은 거리와 인도가 씻은 듯 깨끗하고 쓰레기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경찰들이 버린 담배꽁초까지 수련자들이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17]

그가 집 방향으로 걸어갈 때 앞에 세 명의 경찰이 있었다. 그는 그들이 하는 말을 직접 들었다. “저기 파룬궁 사람들 좀 봐, 여기서 하루 종일 있었는데 바닥에 쓰레기 하나 없네.” [18]

전 국무원 비서 위메이쑨(俞梅蓀)은 80년대와 90년대에 국무원 경제법규연구센터, 국무원 법제국에서 입법 업무에 종사하며 종합비서팀 부팀장과 팀장을 역임했다. 그는 2015년 4월 22일 NTD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의 동창 중 한 명이 베이징 공안국 처장이자 베이징 정법위 처급 간부였는데, 그 사람이 매우 감개무량해하며 말하기를, 만여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푸유가에서 하루 종일 서 있었는데 떠날 때 바닥에 담배꽁초 하나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매우 문명적이었고, 모두가 그들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했습니다.” [19]

(계속)

주석

[1]明慧网,“4·25”内幕爆料:江泽民非法定性并部署当日屠杀,2026年2月7日,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2/7/505799.html

[2]伊森‧葛特曼(Ethan Gutmann):An Occurrence on Fuyou Street,2009年7月20日发表在《国家评论》(National Review),https://www.david-kilgour.com/2009/Jul_05_2009_04.php,原始存档:https://web.archive.org/web/20130604114413/https://www.david-kilgour.com/2009/Jul_05_2009_04.php

[3]大纪元,刘静航:中共对法轮功的精心构陷(下),2005年4月28日,https://www.epochtimes.com/gb/5/4/28/n919385.htm

[4]大纪元,孔维京:《朱镕基曾两次请法轮功学员进入中南海》,2024年4月25日,https://www.epochtimes.com/gb/24/4/25/n14234012.htm

[5]大纪元,闫晓华:前中科院博士生见证法轮功4·25和平上访,2023年4月24日,https://www.epochtimes.com/gb/23/4/24/n13980076.htm

[6]大纪元,“四二五”和平请愿亲历者:永远的记忆,2021年4月23日,https://hk.epochtimes.com/news/2021-04-23/27817783

[7]见[3]

[8]明慧网,清华副教授亲历九九年“四‧二五”大上访,2011年4月24日,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11/4/24/清华副教授亲历九九年“四–8226-二五”大上访-239491.html

[9]明慧网,一位前经贸部官员所亲历的“四二五”,2013年4月25日,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13/4/25/%E4%B8%80%E4%BD%8D%E5%89%8D%E7%B6%93%E8%B2%BF%E9%83%A8%E5%AE%98%E5%93%A1%E6%89%80%E8%A6%AA%E6%AD%B7%E7%9A%84%E3%80%8C%E5%9B%9B%E4%BA%8C%E4%BA%94%E3%80%8D-272481.html

[10]大纪元,4月25日 一高级工程师在北京经历了难忘一天,2018年4月26日,https://www.epochtimes.com/gb/18/4/26/n10337638.htm

[11]大纪元,前清华学子回顾4·25上访:非常理性平和,2021年4月24日,https://hk.epochtimes.com/news/2021-04-24/46573211

[12]明慧网,“写出我见证的历史画面”征文:亲历4·25,2003年10月27日,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03/10/27/59566.html

[13]见[3]

[14]大纪元,前清华学子回顾4·25上访:非常理性平和,2021年4月24日,https://hk.epochtimes.com/news/2021-04-24/46573211

[15]见[12]

[16]4·25亲历者:紧急电话与未发生的军队镇压,https://www.epochtimes.com/gb/26/4/21/n14746341.htm

[17]大纪元,须寅:“四‧二五”的见证,2009年4月27日,https://www.epochtimes.com/gb/9/4/27/n2508236.htm

[18]自由亚洲电台,法轮功成员在纽约纪念“4·25”事件,2012年4月26日,https://www.rfa.org/mandarin/yataibaodao/ml-04262012152446.html,原始存档:https://web.archive.org/web/20260322123932/https://www.rfa.org/mandarin/yataibaodao/ml-04262012152446.html

[19]【禁闻】“名人心中的四二五”系列报导(一),2015年4月24日,https://www.ntdtv.com/b5/2015/04/25/a1192773.html

(에포크타임스 전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