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샤오화(顧曉華)
【정견뉴스】

2026년 5월 중순, 후난성(湖南省) 창더시(常德市) 시먼현(石門縣)이 역사적으로 가장 극심한 지속적인 강우를 겪었다. 난베이진(南北鎮) 진허촌(金河村)의 피해가 가장 심각해서 마을 전체가 ‘소실’되었고, 10여 명이 실종 및 사망했다. 100여 명의 주민은 스스로 구조에 나서 3~4시간 동안 도보로 이동한 끝에 마을을 탈출했으며, 현재 진(鎮) 내 여러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제보자 제공)
5월 중순, 후난성 창더시 시먼현이 역사적으로 가장 극심한 지속적인 강우를 겪었다. 난베이진 진허촌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여 마을 전체가 ‘소실’되었고, 10여 명이 실종 및 사망했다. 100여 명의 주민은 자구책으로 3~4시간을 걸어서 마을을 탈출했으며, 현재 진 내 여러 대피소에 분산 수용되어 있다.
대륙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5월 17일 7시 이후 시먼현에 강우가 집중되면서 여러 지역에서 산사태, 땅꺼짐, 도로 단절 등의 재해가 발생했다. 시먼현은 샹시베이(湘西北) 산간 지대에 위치하여 하곡이 밀집하고 지형이 복잡하며, 연속된 폭우로 인해 짧을 시간 내에 산사태를 동반한 홍수가 급격히 발생했다. 해당 현 난베이진 진허촌은 당시 곧바로 외부와 연락이 끊기며 고립된 섬이 되었다.
현지 주민 리(李) 씨는 에포크타임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홍수 발생 이후 현지 진 정부에서는 진허촌에 이토록 심각한 재해가 발생했는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와 몇몇 실종자 가족들이 5월 20일 마을에 진입한 후에야 실제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리 씨는 “나는 20일에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난베이진 정부도 안에서 그렇게 큰일이 터졌는지 몰랐고, 가족과 연락이 안 되는 몇 명만이 확인하러 가자고 했을 뿐이었죠. 당시 도로가 끊겨 안의 사람들이 모두 실종 상태였으며, 구조대가 진입한 후에야 실태를 알게 되었습니다. 안에 100여 명이 있는데 면적이 넓어서 서로 흩어져 거주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알기로는 3세 어린이를 포함해 12명이 실종되었으며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진허촌은 진산타이촌(金三台村), 훙야오촌(紅耀村), 난차촌(南岔村), 바이주산촌(白竹山村), 허우자링촌(猴家嶺村), 자쌍핑촌(炸桑坪村)과 진허 본촌을 포함해 여러 작은 지역들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는 훙야오촌, 난차촌, 진허 본촌이 ‘한 번에 전멸’하며 3개 마을이 소실되었다.
리 씨는 “우리가 들어간 후 안을 보니 온통 엉망진창이었고 사방이 무너져 내려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제보자 제공)
또 다른 진허촌 주민 장원(張文, 가명) 씨는 저강성에서 일하고 있으며, 5월 17일 저녁 홍수가 막 발생했을 때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는 “1년 치 비가 그날 밤 하루 만에 다 쏟아졌습니다. 홍수가 쓸고 내려오는 데는 단 2초밖에 걸리지 않아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여동생과 매제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도망쳐 살길을 찾으라고 당부했으나, 18일 새벽 2시경 정전으로 인해 장원 씨는 가족과 모든 연락이 두절되었다.
5월 29일, 어머니가 진 내 대피소로 대피한 후 고혈압 증세가 도져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에 그는 외지에서 집으로 급히 돌아왔다.
그는 기자에게 18일 밤 이후 가족과 완전히 연락이 끊겨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나중에야 그는 그날 밤 주민들이 어떻게 탈출했는지 알게 되었으며, 이번 토사 재해로 그의 60대 친척 한 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여동생과 매제가 어머니를 부른 뒤, 다른 마을 주민들을 깨워 즉시 대피시키고 높은 곳으로 이동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어머니와 다른 주민들은 모두 도보로 탈출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고 목숨을 걸고 달려야 했죠. 당시 물이 이미 방 안으로 들이닥쳐 수심이 무릎 위까지 찼고, 깊은 곳은 허리 아래까지 찼습니다. 물이 방 안까지 들어왔기 때문에 매제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가장 높은 곳으로 대피시켰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장원 씨는 높은 곳으로 이동할 때 걷기도 하고 업기도 하면서, 100여 명의 주민이 약 2시간 넘게 걸려 고지대에 위치한 주민의 집으로 대피했다고 설명했다. 그곳에서 주민들은 서로를 도우며 임시로 재난을 피했다.
그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5월 29일 실종자 가족들이 마을에서 굴착기를 이용해 시신 한 구를 발굴했다. 장원 씨는 사망자가 생전에 2층으로 대피했기 때문에 발견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현재 실종자 수는 10명이며, 사망자는 4~5명이다. 3세 아이와 조부모 등 일가족 3명이 모두 실종되어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이다.
장원 씨는 또 정전과 단수, 도로 파손으로 외지 인력이 전혀 마을에 진입할 수 없었으며, 홍수 발생 사흘 뒤인 5월 21일이 되어서야 정부가 파견한 헬리콥터 구조 및 식량 공중 투하가 이루어졌다고 폭로했다.
그는 당시 진허촌은 비행기로만 진입해 구조할 수 있었으나 단 두 차례만 주민을 이송했다고 전했다. 헬리콥터 한 대에 3명만 탑승할 수 있었고, 두 번째로 물자를 공중 투하한 비행기는 15명만 이송했는데 이들은 모두 거동이 불편하거나 부상을 입은 주민들이었다. “이후 안개가 끼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100여 명의 주민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었다”라는 것이다.
장원 씨는 22일, 그의 매제의 인솔 하에 주민 전체가 스스로 걸어서 마을을 탈출해 진 내 대피소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스스로 걸어서 올라왔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진까지 10여 km를 대략 3~4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도로가 전부 무너져 내려 온통 진흙탕이었고, 길이 있는 곳은 걸어가고 길이 없는 곳은 산을 기어올랐습니다. 진흙탕이 있으면 밟고 가며 그렇게 자구책으로 걸어 올라온 것이죠. 신체 상태가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 올라왔습니다.”
장원 씨는 현지 정부가 왜 100여 명을 동시에 철수시킬 수 있는 비행기를 파견하지 못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재해에 정부가 파견한 구조대가 있었지만 다소 너무 늦었습니다. 현재 수색과 사람을 찾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사망자의 친척들이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100여 명의 이재민은 난베이진 내 9개 호텔과 민박에 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원 씨는 주민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수해 후 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상급 기관이 수해 지역이 여전히 거주 가능한지 현지 실사를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주민들이 안심하고 돌아가 거주할 수 있습니다. 만약 거주할 수 없어 이주해야 한다면, 혹은 이주하지 않는다면 보조금을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에 대해 현재까지 정부는 아무런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부가 어떻게 배치할지 지켜봐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훙야오촌은 이미 산사태로 강이 막혀 생긴 호수가 형성되어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장원 씨는 외부에서 진허촌의 수해 후 재건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줄 것을 호소했다.
(에포크타임스 전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