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제쓰(李潔思)
【정견뉴스】

헤이룽장성 여자교도소는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하는 소굴로, 지금까지 최소 56명이 박해로 사망했다. (명혜망)
헤이룽장성 자무쓰(佳木斯)시의 뤼잉화(呂迎華)는 2001년 구치소에서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2002년 헤이룽장성 여자교도소로 이감된 그녀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문과 학대를 받았다. 명혜망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2026년 6월 박해로 사망했다.
뤼잉화는 과거 살인죄로 사형 유예 선고를 받았던 인물이다. 2001년 1월 탕위안(湯原)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파룬궁 수련자들을 접하게 되었고, 파룬궁을 수련하며 진심으로 선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진·선·인(真·善·忍)’의 신념을 굳건히 지켰다는 이유로 이후 20여 년 동안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며, 결국 2026년 5월 헤이룽장성 여자교도소에서 박해로 숨졌다. 뤼잉화는 이 교도소에서 이와 유사한 비극을 겪은 유일한 수감자가 아니다.
‘전향’ 거부하다 모진 고문 당해
명혜망에 따르면, 뤼잉화는 복역 중에 대법 수련을 시작했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녀가 대법을 통해 엄청난 혜택을 입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탄압이 시작된 이후로도 그녀는 ‘진·선·인’ 신념을 고수해 교도소에서 박해하는 표적이 되었다. 그녀는 2001년부터 2013년 사이에 이른바 ‘소호(小號·독방)’인 금폐실에 18차례나 갇혔다. 거듭된 구금과 학대는 그녀의 신체에 심각한 상해를 입혔다.
그녀는 생전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2003년 초, 그녀는 노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솜바지를 입지 못한 채 바닥에 수갑이 채워진 채 한 달 동안 방치되었고, 그로 인해 허리를 펼 수조차 수 없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거꾸로 수갑이 채워진 채 매달려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고, 손목의 힘줄이 수갑에 조여 끊어지는 바람에 손이 3개월 동안 부어 있었다.
2004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나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교도소 측은 사망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감형을 허가하지 않았다.
2006년에는 햇빛이 들지 않는 음침한 방에 갇혀 24시간 동안 외출이 금지되었고, 이 감금이 무려 6년 동안 이어졌다.
2013년에는 교도관 취자량(曲佳良)이 뤼잉화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고 군화로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심근경색을 일으켜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고, 수 시간 동안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끝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1999년 이전: 중죄수들 옥중에서 수 입문
헤이룽장성 여자교도소에는 뤼잉화 외에도 이와 유사한 처지에 놓인 수감자들이 적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1999년 이전부터 이미 교도소 내의 일부 수감자들이 파룬궁 수련에 입문해 심신에 뚜렷한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박해가 시작되면서 이들은 교도소 측의 강압적인 ‘전향(사상 개조)’ 대상이 되고 말았다.
보도에 따르면 1996년 헤이룽장성 여자교도소의 일부 경찰이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건강이 좋지 않거나 통제하기 힘든 수감자들에게 파룬궁 수련을 권유했다.
파룬궁은 불가 수련 법문으로, 1992년 리훙쯔(李洪志) 선생이 중국에서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다스릴 것을 가르치며 다섯 가지 공법을 전수했다. 당시 중국 대륙의 언론들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한 뒤 건강을 되찾고 도덕성이 향상된 실제 사연들을 앞다퉈 보도했다.
명혜망에 따르면 당시 헤이룽장성 여자교도소에서는 80명이 넘는 수감자가 파룬궁을 접했다. 그중에는 살인죄로 사형 유예를 선고받은 이, 교도소 안에서 함부로 남을 폭행하고 욕설을 일삼던 이, 혹은 불치병에 걸려 비관과 절망에 빠져 있던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수련을 통해 성품, 행동, 심지어 신체 상태까지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다칭(大慶) 출신의 류링링(劉玲玲)은 잔인한 수법으로 남편을 살해한 뒤 수감되었으며, 수감 초기 자신의 살인 행위에 대해 반성할 줄 몰랐다. 명혜망에 따르면 류링링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성품이 완전히 바뀌어 주변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같은 방 수감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가오궈보(高國波)는 철퇴로 남편을 살해한 후 자수하여 사형 유예를 선고받았다. 파룬궁을 수련한 뒤 담배와 술을 끊고 남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았다. 경찰조차 “가오궈보가 양처럼 순해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 가오궈보는 “만약 일찍 파룬궁을 배웠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고, 남도 해치고 나도 해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해 개시 후: ‘전향’이 교도소의 정책으로 자리 잡아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탄압을 시작한 이후, 교도소를 비롯한 구금 시설들은 파룬궁 수련자들을 상대로 이른바 ‘전향’, 즉 수련과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명혜망에 따르면 이후 헤이룽장성 여자교도소 역시 온갖 수단을 동원해 수감자들에게 수련 포기를 강요했다.
장옌팡(張艷芳)은 헤이룽장성 다싱안링(大興安嶺) 출신으로 1993년 형사범으로 체포되어 사형 유예를 선고받았다. 1995년 옥중에서 수련을 시작한 그녀는 명혜망 보도에 따르면 수련 포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약 16차례에 걸쳐 ‘독방’에 갇혔으며, 그 기간을 모두 합치면 무려 4년에 달했다. 2003년 9월에는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몽둥이와 플라스틱 파이프 등으로 100대가 넘는 매를 맞았고, 상처 입은 몸에 소금물을 발라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었다. 2010년 11월 2일, 16년 동안 옥고를 치르다 향년 54세의 나이로 박해 속에 세상을 떠났다.
류링링은 수련 포기를 거부하자 교도관들은 그녀를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붉은색 플라스틱 양동이 뚜껑이 부서질 때까지 그녀의 머리와 얼굴을 내리치는 등 폭행을 가했다. 류링링은 2017년 봄 억울함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명혜망에 따르면 과거 교도관 류(劉) 모 씨는 “차라리 예전에 사람 때리고 욕하던 류링링이 낫지, 지금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된) 이런 류링링은 필요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중공은 왜 이미 착한 사람으로 거듭난 수감자들을 기어코 전향시키려 했을까? 캐나다의 국제인권 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David Matas)는 중공이 파룬궁을 공산당 이데올로기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파룬궁은 정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공산주의 체계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가 2017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공은 당에 대한 충성보다 정신적 권위를 더 우위에 두는 어떠한 집단도 대개 용납하지 않는다. 보고서는 당시 중공이 당·정·군 시스템 내 일부 파룬궁 수련자들이 파룬궁의 가르침에 대한 충성심을 중공 지도부에 대한 충성심보다 앞세울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에포크타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