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장쩌민의 실체》 12: 천안문 광장의 불

제3장 “질투 때문에 세기의 박해” 제6절

【정견뉴스】

지금부터 14년 전, 《장쩌민의 실체(真實的江澤民)》가 처음으로 독자들과 만났다. 14년이 지난 지금, 장쩌민은 이미 죽었지만 그가 남긴 정치적 독소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중국의 많은 혼란과 위기는 모두 장쩌민 집권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부패로 국가를 다스리고, 법치(法治)를 짓밟으며, 도덕을 파괴하고, 파룬궁을 박해하는 한편, 그로 인해 팽창된 중공의 전제(專制) 및 폭력 기구는 중국에 끝없는 환란을 남겼다. 오늘날의 중공을 똑똑히 보고, 중국이 어찌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장쩌민의 실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에 에포크타임스에서는 본문을 다시 게재한다.

제6절 천안문 광장의 불

중공 역사상 누구를 타도하려 하면 사흘도 안 되어 타도할 수 있었으니, 국가주석 류사오치부터 ‘6·4’ 학생 운동에 이르기까지 예외는 없었다.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할 당시에도 “3개월 안에 파룬궁을 소멸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공이 실패했다. 1년 넘는 시간이 흘러 이미 2000년 말이 되자, 장쩌민은 여러 방면으로부터의 압력에 직면했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굴복하지 않았고, 통치의 상징인 천안문 광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파룬궁 수련자들이 거의 매일 찾아와 가부좌하거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현수막을 펼치거나 연공을 했다.

역대 정치 운동마다 나팔수 역할을 하던 선전 도구들은 새로운 탄약이 없어 속임수가 뻔히 보이는 낡은 상투어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많은 민중들은 이미 정치 운동에 진절머리가 나서 이전처럼 선동되어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 국제적으로도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아, 2000년 박해가 시작된 이후 첫 제네바 유엔 인권회의에서 중공 대표단은 회의장 안의 추궁과 회의장 밖의 항의에 직면하여 체면을 구겼다. 2001년 유엔 인권회의가 눈앞에 다가오자, 장쩌민은 자신을 곤경에서 건져낼 중대 사건이 절실히 필요했으며, 가급적 앞서 언급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2000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 파룬궁 대응에 관한 중앙급 회의가 잇따라 개최되었다.

2000년 12월 26일, 장쩌민은 중앙기율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파룬궁’ 문제에 관한 연설을 했다. 그러나 공개된 연설문에는 파룬궁에 대한 언급이 단 한 마디도 없었다.

2001년 1월 5일, 중공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리창춘(‘중공 중앙 파룬궁 문제 처리 영도소조’ 조장)이 총공회(總工會), 공청단, 부녀연맹의 주요 책임자를 소집해 회의를 열고 반(反) ‘파룬궁’ 투쟁을 연구·배치했다.

1월 5일 전후로 중공 중앙조직부 중심조가 학습회를 열어 기율위원회 5차 전회의 정신과 장쩌민의 연설을 학습했다. 쩡칭훙은 회의에서 ‘파룬궁’과의 투쟁 강화를 강조했다.

1월 8일,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저우창(周強)이 공청단 중앙서기처 회의를 주재하여, 리창춘이 1월 5일 오후 총공회·청청단·부녀연맹 책임자 회의에서 한 연설 정신과 중공 중앙 ‘610 판공실’의 설 기간 베이징 내 ‘파룬궁’ 수련자 활동 상황 통보를 학습·전달하고, 관철하고 착실히 실행하도록 연구·배치했다.

1월 10일,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저우창이 공청단 중앙서기처 회의를 주재해, 전국 파룬궁 문제 처리 작업 회의 정신과 ‘중앙 파룬궁 문제 처리 영도소조’의 ‘파룬궁’과의 투쟁 형식 및 향후 공작에 대한 의견을 학습·전달했다.

1월 15일, 인민일보는 국무원 신문판공실 책임자가 신화사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파룬궁을 모독하는 장문의 글을 발표하고, 중공의 위법하고 위헌(違憲)적인 파룬궁 박해를 “중국 정부가 군중의 요구에 따라 법에 따라 처리한 것”으로 호도했다.

1월 16일, 장쩌민은 중일(中日) 우호 7단체를 회견한 자리에서 자신의 체중이 90kg이라며 파룬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떠벌렸다.

1월 17일, 중국 전국총공회가 노동모범과 공회 간부들을 동원해 회의를 열고 ‘파룬궁을 깊이 있게 폭로·비판’했다.

1월 18일, 전국학생연합이 조직한 수도 14개 대학 학생들이 베이징에서 전국 대학 및 중등 전문학교 학생들에게 《과학을 숭상하거, 문명을 제창하며, 사교를 저지하자》는 창의서를 발표했다.

1월 20일, 인민일보는 평론을 발표해 파룬궁에 대해 “그 흉악한 용심은 바로 중국에 혼란을 조성하고 사회 안정을 파괴하며, 나아가 중국 공산당의 영도를 전복하고 중국의 사회주의 제도를 바꾸려는 정치적 음모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지목했고, 아울러 파룬궁이 “이미 서방 반중 세력의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고 비난했다.

1월 20일, 뤄간이 전국 ‘엄밀 타격’ 회의를 주재해 지방 관료들에게 체포를 늘릴 것을 지시하고, 파룬궁을 포함한 ‘국내외 적대 세력, 소수민족 분열 및 종교 세력’을 엄정하고 엄중하게 판결할 것을 지시했다.

1월 21일 이른 아침, 뤄간은 베이징시 공안국 형사정찰총대 특경지대, 무장경찰 베이징 총대 6지대 및 베이징시 공안국 국내안전보위 총대를 찾아 공안 민경(民警)과 무경(武警) 부대 장병을 위문했다. 그는 앞서 공안 민경과 무경이 천안문 광장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것에 대해 충분한 긍정을 표시하고, 민경과 무경에게 피로를 두려워하지 말고 연속을 작전해 다음 단계의 엄밀 타격 임무를 수행하라고 요구했다.

1월 21일, 전국부녀연맹이 ‘가정에서 사교를 거부하자’를 주제로 한 선전 교육 활동을 전개했다.

1월 22일, 국무원 기관관리국이 ‘파룬궁’과의 투쟁에서 기층 당조직과 공산당원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할 것에 관한 기율위원회·조직부의 통지와 중앙 국가기관 기공위(紀工委 기율검사위원회)·당공위(黨工委 당 작업위원회) 조직부의 《통지》를 전달하고, 두 개의 《통지》를 깊이 있게 관철·실행할 것과 관련해 다섯 가지 요구를 제기했다.

2000년 11월, 과학계와 관변 종교계 인사들을 위주로 한 조직인 ‘중국반사교(反邪敎)협회’가 베이징에서 설립되어 중국과학기술관 내에 설치되었고, 명목상으로는 중국과학협회에 소속되었으나 실제로는 중공 중앙 ‘610 판공실’의 직접 지도를 받았다. 이 협회가 설립된 이후 첫 번째 주요 활동은 바로 2001년 1월 ‘백만 파룬궁 반대 서명’ 운동을 발동한 것이다. 1월 11일, 중국반사교협회가 발기한 ‘사교 반대, 인권 보장’ 백만 서명 활동이 베이징대학에서 출범했다. 1월 16일, ‘중국반사교협회’ 부이사장이었던 허쭤슈 등의 주도로 중국과학원에서 300명의 원사들이 백만 서명에 가담하도록 발동했다. 백만 서명 활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긴박한 움직임은 다가오는 또 한차례 광풍과 폭우를 예고하고 있었다.

2001년 1월 23일, 섣달그믐이라 천안문 광장에는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신화사의 보도에 따르면 오후 2시 41분, 인민영웅기념비 동북쪽에서 왕진둥(王進東)이 먼저 불을 붙였고, “4명의 경찰이 즉시 소화기를 꺼내 들었으며”, “1분도 되지 않아 재빨리 불길을 진화했다”고 한다. 몇 분 후 4명의 여성이 기념비 정북쪽에서 불을 붙였고, 1분 반 만에 불길이 꺼졌으며, 전체 사건은 7분을 넘지 않았다. 그중 1명은 현장에서 사망하고 4명이 화상을 입었다. 이와 동시에 자살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친 사람도 두 명 있었다. 이 중에는 두 모녀가 포함되었는데, 현장에서 사망한 류춘링(劉春玲)과 그녀의 나이 고작 열두 살인 딸 류쓰잉(劉思影)이 있었다. 중공 나팔수 매체들은 이들이 파룬궁 수련자들이며, 소위 ‘원만해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천안문 광장에서 분신했다고 강조했다.

파룬궁은 불법(佛法) 수련으로 살생과 자살을 금지하는데, 어찌 분신 자살을 할 수 있겠는가? 해외 파룬궁 수련자들은 중공 나팔수 CCTV가 방송한 분신 자살 사건 관련 녹화물을 슬로모션으로 재생하고 분석하면서, 허점이 백출할 뿐만 아니라 속도를 늦춘 화면 속에서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했다. 이 ‘분신’ 자살 사건은 완전히 치밀하게 기획된 사기극이었기에, 이 사건은 또 ‘천안문 분신 자살 의혹’, ‘천안문 분신 자살 위조 사건’으로 불린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이를 토대로 이 사기극을 폭로하는 녹화물을 제작해 널리 배포했다. 2002년 3월 5일 창춘 TV 삽입 방송 녹화물에도 《분신자살인가 사기극인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NTD TV가 이를 토대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위화(僞火)》는 2003년 제51회 콜럼버스 국제 영화·텔레비전 페스티벌 영예상을 받았다.

불에 타 죽은 것인가, 맞아 죽은 것인가?

하지만 류춘링은 과연 불에 타서 죽은 것인가? 사실 그렇지 않으며, 경찰이 현장에서 흉기로 때려죽인 것이다. CCTV 녹화물의 슬로모션은 매우 중요한 세부 사항을 보여주는데, 불을 끄는 과정에서 류춘링의 머리 부근에 힘껏 휘두르는 팔 하나가 나타나 이 팔이 류춘링의 머리를 내리치고, 이로 인해 류춘링의 두 손이 위로 치켜올라가며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고, 나아가 류춘링의 몸에서 막대 모양의 물체가 빠르게 튕겨 올랐다.

분신자살 사기극이 발생한 후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가 류춘링이 살던 허난성 카이펑을 찾아가 취재했는데, 이웃들은 류춘링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류춘링은 다른 지역에서 허난으로 이주한 사람으로, 노모와 열두 살 난 딸이 있었으며 의지할 곳 없이 바(Bar)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려갔고, 게다가 어머니와 딸을 자주 때렸다고 한다【22】. 이 모든 것은 진정한 파룬궁 수련자의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류춘링이 구타당해 사망했다는 슬로모션의 허점이 폭로된 이후, 중공은 단 한 번도 이에 대해 해명한 적이 없다.

불에 타지 않은 플라스틱 스프라이트 병

CCTV의 분신자살 프로그램 화면에는 왕진둥의 현장 클로즈업 장면이 담겨 있는데, 그가 선명하게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한 명의 경찰이 그의 곁에 서서 소화용 담요를 든 채 왕진둥이 연기하기를 여유있게 기다리며 기계적으로 소화용 담요를 왕의 머리에 덮어주는 모습이 보인다. 이 화면들 속에는 또 하나의 매우 명백한 조작 흔적이 있는데, 바로 녹화 속 소위 ‘왕진둥’이 입은 온몸의 옷은 갈기갈기 불에 타 찢어졌으나 두 다리 사이에 놓인 휘발유가 든 초록색 플라스틱 스프라이트 병은 소품으로서 멀쩡하게 온전했다는 점이다.

명혜망은 2003년 5월 14일 <CCTV ‘분신자살’ ‘초점방담’ 여기자 리위창, 화면에 조작이 있음을 시인하다>라는 제목의 보도를 발표했다. 보도에 따르면 2002년 초, CCTV 기자 리위창(李玉强)이 허베이성 성회(省會) ‘법제교육훈련센터’를 취재하러 갔는데, ‘법제교육훈련센터’는 사실 중공이 파룬궁 수련자들을 세뇌하기 위해 불법으로 설치한 검은 감옥이었다. 리위창은 그곳에 불법 구금된 파룬궁 수련자들과 소위 ‘좌담회’를 가졌다. 당시 파룬궁 수련자가 그녀에게 분신자살 화면의 온갖 의혹과 허점을 추궁했는데, 여기에는 두 다리 사이에 끼워둔 휘발유가 든 스프라이트 병이 왜 멀쩡히 온전한가 하는 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자 리위창은 마지못해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광장의 ‘왕진둥’ 두 다리 사이에 있던 초록색 플라스틱 스프라이트는 자신들이 갖다 놓은 것이며, 이 화면은 자신들이 ‘보충 촬영’한 것이고 왕에게 파룬궁과 관련된 구호를 한마디 외치게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분신자살한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이렇게 들통날 줄 알았더라면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화면 밖의 카메라맨은 누구인가?

파룬궁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한 이 소위 ‘분신자살’ 사건에 대해, CCTV의 분신자살 프로그램 속에는 대량의 클로즈업 화면이 담겨 있고, 몰입감이 극대화된 현장 음향이 녹음되어 있으며, 게다가 카메라 렌즈가 사건 전체 과정을 추적하며 촬영했다. 카메라는 먼저 경찰을 뒤따른 뒤 경찰의 이동에 따라 사건 발생 지점으로 이동했다. 분신은 마땅히 돌발 사건이어야 하는데, 이 화면과 렌즈들은 어디서 난 것인가? 그렇다면 적어도 한 명의 카메라맨이 만반의 준비를 했음이 틀림없으며, 게다가 이 카메라맨은 반드시 경찰의 전폭적인 협조를 받아야 했다. 경찰이 소화용 담요를 흔들며 왕진둥이 구호를 외치는 클로즈업 촬영을 기다리고, 병원으로 이송하는 중대한 고비 순간에도 류쓰잉이 고통 속에서 엄마를 부르짖는 처절한 소리를 녹음하여 훗날 파룬궁에 누명을 씌울 소위 ‘생생한 소재’를 제공할 수 있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천안문과 같은 민감한 곳에서 그 어떤 관광객이나 구경꾼, 하물며 서방 기자라 할지라도 경찰의 눈앞에서 근거리 촬영을 시도했다면 진작 경찰에게 카메라를 압수당하고 촬영한 사람까지 체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공이 대대적으로 선전한 소위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 속에는 막대한 원거리, 근거리 및 클로즈업 화면이 존재하며 모든 것이 사전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화면 밖의 카메라맨, 심지어 촬영 팀은 또 누구란 말인가?

사전에 누설된 음모

신화사가 보도한 소위 ‘분신자살’ 사건이 일어나기 두세 달 전부터 이미 중공 ‘610 판공실’ 내부의 사정을 아는 이로부터 소문이 흘러나와, 중공이 파룬궁에 누명을 씌우기 위해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비록 명혜망에서 당시 중공이 분신자살 음모를 기획했다는 소식을 게재했으나, 심성이 선량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파룬궁 수련자들은 이러한 정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10여 년이 지난 2011년 2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꼼꼼한 이들에 의해 명혜망에서 10여 년 전 이미 중공의 분신자살 음모 관련 두 편의 보도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2000년 10월 11일, 분신 사건이 일어나기 3개월 전 명혜망에는 《사악한 세력이 분신자살 거짓 장면을 조작할 계획이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이미 실려 있었다.

분신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 명혜망에는 분신 음모에 관한 또 하나의 보도가 실렸는데, 제목은 《’파룬궁을 가장’한 파괴 음모를 경계하라》였으며, 중공이 천안문에서 분신 음모를 벌일 것이라고 명확히 언급했다.

국제적으로는 독자적이고 권위 있는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가 존재하여 수많은 웹사이트의 웹페이지 백업을 저장하고 있다. ‘인터넷 아카이브’ 웹사이트 상에서도 명혜망의 이 중공이 분신 가짜 모습을 조작할 계획이라는 보도 백업이 역시 1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23】

이러한 분신 사건 발생 전의 보도들은 모두 측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공이 이 파룬궁에게 누명을 씌운 분신 사건을 직접 기획했음을 증명해 준다.

분신자살 사건 이후, 전국의 선전 기구들은 다시 전력을 다했는데, CCTV는 분신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열두 살 소녀 류쓰잉의 녹화물을 반복 재생하며 증오를 선동했고, 파룬궁 반대 ‘백만 서명’ 운동이 전면적으로 진행되었다. 3월 중순에 이르러 반사교협회가 제네바 유엔 인권회의에 가져간 서명 100권은 무게가 1톤에 달했고, 주최 측은 약 150만 명의 서명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중국 정부가 성(省) 경계를 넘는 민간 단체 활동을 금지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서명 운동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공식적인 조직과 분신 사건의 부추김에 의존한 덕분이었다. 예를 들어 톈진시는 공청단 시위원회가 조직했고, 장시성의 서명 장소는 성 정부 구내였으며, 각 대학교의 서명은 국가교육위원회와 각급 교육위원회가 통일적으로 배정했다.

천안문 광장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실질적인 계엄 상태를 유지했으며, 파룬궁 수련자들도 더 는 천안문 광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분신 현장에 있던 소화기가 사전에 준비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후 소화기는 천안문 경찰차의 표준 장비가 되었다. 다시 개방된 이후, 천안문 광장은 점차 민원인들이 항의하거나 심지어 분신하는 장소가 되었으나, 단지 그러한 항의와 분신은 더 이상 중공 선전 매체의 보도에 등장하지 않았다.

천안문 광장 분신자살 사기극은 장쩌민과 중공 당국이 세력을 재정비하여, 진행되지 않던 이탄압을 신속하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창춘 파룬궁 수련자들의 TV 진상 방송 삽입

2002년 3월 5일 저녁 8시 무렵, 창춘시 유선텔레비전 네트워크의 8개 채널에서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 《분신자살인가 사기극인가》 등의 진상 TV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삽입 방영했다. 시간은 4~50분에 달했고, 창춘의 10만 명에 달하는 TV 시청자들이 진상을 보게 되었다. 다음 날 사무실에서, 버스 안에서, 학교에서, 상점에서 사람들은 모두 천안문 분신 현장에서 공안에게 맞아 죽는 류춘링의 슬로모션 화면을 쑥덕거리며 논의했다. 거짓말의 장막이 찢어진 후 사람들의 마음에 미친 충격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로버트 쿤의 《장쩌민 전》에서도 “황금 시간대였기 때문에 모두가 ‘파룬궁’의 프로그램을 보았고, 온 도시가 떠들썩했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삽입 방송은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중공이 조작한 천안문 분신자살 모함 사기극을 전면적으로 폭로했다. 3월 6일 밤 명혜망 1면은 이 사건을 보도했고, 3월 7일에는 영국의 BBC, 로이터통신, AFP도 잇달아 보도했으며, 로이터통신은 이 삽입 사건을 “파룬궁의 가장 대담하고 두려움 없는 행동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파룬궁 수련자들의 장거(壯擧)는 각계의 감탄을 자아냈으며, 파룬궁을 박해하는 장쩌민 일당을 매우 두렵게 만들었다. 장쩌민은 삽입 방송 사건을 알게 된 후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죽여도 용서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중공은 5,000명이 넘는 창춘 파룬궁 수련자들을 불법 체포했다. 대대적인 체포 과정에서 최소 7명의 파룬궁 수련자가 맞아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외 15명이 불법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그중 진상 삽입에 참여한 파룬궁 수련자 량전씽(梁振興), 류청쥔(劉成軍)은 불법 19년 형을 선고받았고; 저우룬쥔(周潤君), 류웨이밍(劉偉明)은 불법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나중에 감옥의 고문 학대 속에서 류청쥔, 레이밍(雷明), 양전씽 등은 잇달아 모진 고문을 받아 사망했다.

미국 《위클리 스탠더드(The Weekly Standard)》는 2010년 12월 6일 제16권 제12호에 장편 보도를 발표했는데, 보도의 메인 제목은 <미세한 전파 속으로(Into Thin Air Waves)>였고, 부제목은 <무명의 몇몇 중국 열사들이 전 세계의 자유 사업을 도운 방법>이었다. 글쓴이는 민주주의방위재단의 겸임 연구원인 에단 구트만(Ethan Gutmann)이었다. 그는 서구인의 관점에서 자신이 알게 된 창춘 TV 삽입 방송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저자는 현재 중국인들이 널리 사용하는 중공의 네트워크 봉쇄를 뚫는 동태망(動態網), 프리게이트(Freegate), 자유문(Freegate) 등의 소프트웨어 개발이 바로 이 삽입 방송 사건의 격려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여겼으며, 삽입 방송 사건은 이미 정보 자유를 추진하는 이들에게 신화와 전설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참고문헌:

【1】明慧网,“法轮功与健康”,2003年04月26日,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3/4/26/%E6%B3%95%E8%BD%AE%E5%8A%9F%E4%B8%8E%E5%81%A5%E5%BA%B7%EF%BC%88%E4%B8%8A%EF%BC%89-48953.html

【2】一九九八年十月二十日国家气功评审调研组在长春、哈尔滨召开各界法轮功学员座谈会上的发言,明慧网,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0/2/21/%E6%B3%95%E8%BD%AE%E5%8A%9F%E5%90%84%E7%95%8C%E5%AD%A6%E5%91%98%E5%BA%A7%E8%B0%88%E4%BC%9A–%E5%9B%BD%E5%AE%B6%E6%B0%94%E5%8A%9F%E8%AF%84%E5%AE%A1%E7%BB%84%E5%8F%91%E8%A8%80-8913.html

【3】石采东,“4.25朱镕基带我们走进中南海”,明慧网,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4/2/15/67288.html

【4】BayFang,“AnOpiateoftheMasses?MillionsofChineseembraceamysticalexercisemovement”,USNewsandWorldReport,2/14/99,https://www.usnews.com/usnews/news/articles/990222/archive_000322.htm

【5】严大明,“江泽民终身后悔的两大事件”,《前哨月刊》,2011年2月号,FrontlineMagazine2011-2.“ThetwomajoreventsJiangZeminregretsinhislife.”byYanDaming.

【6】1966年5月16日中共中央政治局扩大会议通过的《中国共产党中央委员会通知》(即《五一六通知》)是发动文化大革命的标志。https://cpc.people.com.cn/GB/64162/64167/4527267.html

【7】中共河北省委办公厅冀办发[1999]21号中共河北省委办公厅关于认真贯彻落实中办发[1999]19号文件精神的通知

【8】江泽民,《在省、自治区、直辖市党委负责同志会议上的讲话》,1999年7月19日https://www.sdyc.cn/qgy/xuexiyuandi/qita/shenru.htm

【9】人民日报1999-08-14第一版,新华社8月13日电(记者钱彤)【10】TheAssociatedPress,September12,1999,ClintonGivenFalunGongBook

【11】People’sDailyOnline,ChinaBansFalunGong,30July1999

【12】JohnPomfret,AFoeRattlesBeijingFromAbroad:FalunGong’sMastermindinNewYorkGuidesaCampaignofProtest.TheWashingtonPost.Mar9,2001.PageA01

【13】《中新网》巴黎1999年11月21日https://www.chinanews.com.cn/1999-12-5/26/10606.html

【14】《中国驻法国大使馆网站》(2001年2月17日)https://www.amb-chine.fr/chn/15574.html

【15】《中国国际广播电台》2001年2月18日报导

【16】《新华社》2001年3月24日https://www.legaldaily.com.cn/gb/content/2001-03/26/content_15304.htm

【17】《青海新闻网》2002-8-7https://www.qhnews.com/402/2002-8-7/3@107887.htm

【18】《人民日报》(1999年11月07日第2版)https://www.people.com.cn/item/flg/news/110701.html

【19】《明慧网》2000年12月3日:李肇星在维吉尼亚大学诽谤法轮功和西方媒体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0/12/3/3165.html

【20】《人民日报》1999年12月02日https://www.people.com.cn/GB/channel1/10/20000709/136845.html

【21】《新华网》2001年1月19日https://202.84.17.11/world/htm/20010120/328117.htm

【22】PhillipPan,HumanFireIgnitesChineseMysteryMotiveforPublicBurningIntensifiesFightOverFalunGong,WashingtonPost,2001年2月4日

【23】Web.archive.org备份明慧文章,内部消息:邪恶势力计划制造自焚假象https://web.archive.org/web/20010501003822/https://minghui.org/gb/0001/Oct/11/news_china_100700.html

《장쩌민의 실체》 공동 집필팀

2012년 5월 첫 발행

(에포크타임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