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우겁》제3장: 사탄이 내려올 때 (1)
폭풍전야 (중)
작자:백운비
【정견망 2007년 4월 11일】
4.25의 풍파
우주는 망망하고 천지에는 극이 없으며 세월은 흐른다. 호한한 창궁 우주에는 각 경지에서 우주 정법의 일을 협조하고 책임지고 있는 뭇 신들이 있는데 이들은 정법에 참여하기로 선택된 혈홍의 신령들이다. 그것들이 정한 정법의 바퀴를 강력하게 돌리며 천상(天象)을 밀어주어 마침내 경천동지할 “4.25” 파룬궁 중남해 단체 상방 사건을 일으켰다.
정견망에 실린 “파룬따파 대사기연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999년 4월 11일: 하조휴(何祚庥)가 중국 천진 교육학원의 <청소년박람> 잡지에서 <나는 청소년의 기공단련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에서 다시금 1998년 북경 TV에서 써먹은, 이미 부실하다고 알려진 예를 들어 파룬궁을 비판했다.
1999년 4월 18일부터 24일까지: 천진의 파룬궁 수련생은 천진교육원과 기타 관련 기구에 가서 파룬궁의 실정을 반영했다. 며칠 내에 수천 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그 자리에 왔다.
1999년 4월 23, 24일 : 천진시 공안국은 300여 명의 경찰을 이용하여 파룬궁 수련생을 구타하고 해산시켰으며 45명을 체포했다. 일부 수련생이 피를 흘리고 다쳤다.
1999년 4월 25일: 북경, 천진, 하북 등지에서 온 만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남해에 있는 국무원 신방사무실을 찾아가 상방했다. 주용기(朱鎔基) 총리가 직접 나와서 대면했는데 상방 대표는 세 가지 요구를 했다.
“체포된 파룬궁 수련생을 석방할 것.
파룬궁 수련생들의 수련 환경을 허용할 것.
파룬궁 서적의 출판을 허용할 것.”
회담 결과 천진에서 체포된 수련생들이 당일 석방되었다.
1999년 4월 25일 밤: 중공 중앙 총서기 강택민이 중공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기타 관련 지도자들에게 지시 편지를 보내 “공산당이 파룬궁을 싸워 이기지 못하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 편지는 내부문건으로 층층이 아래로 전달되었다.
1999년 4월 27일 :대련시에서 만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이 대련 화북로에서 단체 연공하며 4월 25일의 상방활동을 성원했다.
……
“4.25” 중남해 사건은 대법이 널리 전해진 역사상 획기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우주의 사악한 세력이 하늘을 거스르는 일을 강행하고 대법과 대법제자들에 대해 전면적이고 빠짐없는 와해식의 사악한 고험을 시작한 것이다. 대법제자들은 “4.25”부터 시작하여 명확히 하늘의 뭇신들의 관심 아래 신성한 서약을 실천했다. 이들의 서약 중에는 사악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속인의 몸과 신성한 영혼으로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한다고 분명히 쓰여 있었다.
“4.25” 사건은 천진, 북경, 하북, 요령 등지의 대법제자들에게 영향이 미쳤는데 그것은 파룬궁이 대법을 실증한 장거로서 천지를 진동시키고 뭇신들을 경탄하게 했다. 북방 각지의 제자들은 모두 이 마당에서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았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똑바로 나와 법을 실증했고, 어떤 사람은 태도가 평안했으며, 어떤 사람은 마음이 격동되었고, 어떤 사람은 확고히 수련한다는 명분으로 두문불출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정치에 말려드는 것이 아닌가 회의하며 신중했고 그동안 또 일부 신분이 불분명하고 이지가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선동하며 요언을 퍼뜨렸다. 일시에 대법제자들은 각자 부동한 수련 경지와 수련생의 각종 다양한 집착심과 사람의 마음을 나타냈다.
소성은 시골에 치우쳐 있어 소식이 꽉 막혔고 육청과 동료들은 여전히 옛날같이 생활하고 직장에 다니며 수련하고 있어서 4.25에 북방에서 폭발한 인심을 뒤흔드는 큰 일을 조금도 알지 못했다.
각설하고, 4월 말 어느 날 육청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여 막 공장 대문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열렬히 무엇을 토론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육청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즉시 입을 다물고 말을 멈추었는데 그 모양이 이상했다. 육청은 속으로 답답했으나 평소처럼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하며 웃으며 인사하고 자전거를 주차장에 밀어 넣고 4층 기술과로 올라갔다. 육청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만나는 사람마다 느낌이 이상했고 말하기를 꺼려했다. 오늘 어쩐 일이야, 무슨 일이 생겼나, 어쩐지 오늘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뭘 숨기는 것 같네.
기술과 과장 사무실을 지나는데 과장 유북안이 그를 사무실로 부르더니 물었다. “육청, 어제 TV나 신문 못 봤어?”
육청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기는 생활이 매우 간단하여 깨끗하고 욕심 없는 수도자의 상태로서 물질생활에는 최저한도에 달해 있었다. 육청은 대학 졸업 후 공장에 배치된 이래 가장 싼 17인치 흑백 TV조차 사지 않았다. 그는 TV는 마음과 정신을 산란하며 인이 박히고 많이 보면 더 중독되어 사람의 칠정육욕을 조장하니 수련자로 말하면 TV를 보는 것은 일종의 마이기 때문에 몇 번 미루다가 사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일은 직장에서 구독하는 신문만 보면 되기에 TV의 존재가 없는 것이 견문이 꽉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
유북안도 육청의 이런 상황을 알기에 서랍에서 오늘의 신문을 한 묶음 꺼내주며 말했다. “잘 보게, 당신들 파룬궁에 큰일이 났어.”
육청이 신문을 받아 자세히 보니 신문에 제1면에 보도가 크게 났는데 “4.25” 파룬궁 상방사건과 천진과 북경 사건이 이미 잘 타결되었다고 하였다. 또 일면 제일 위에는 국무원 책임자의 이에 대한 태도를 실었으며 파룬궁 수련생들은 요언을 믿지 말라, 정부는 연공과 군중의 정상적인 연공활동을 간섭하지 않는다. 기공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선전하거나 보도하거나 평론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삼불(三不)” 정책이며 연공하는 사람들은 정부를 믿어라 등등이었다.
육청은 매우 놀랐다. 원래 중남해에서 이런 큰 사건이 발생했구나. 만 명이 넘는 수련자들이 중남해에 가서 청원했는데 자기는 아직도 하나도 모르고 있다니, 소성은 확실히 너무 편벽한 곳이구나 생각했다.
유북안이 말했다. “육청, 조심하게. 사회적으로 이런 단체활동에 참가하지 말게나, 이것은 정치운동을 하는 것이니 매우 위험해.”
유북안은 50세가 넘었는데 “문화대혁명”의 정치운동을 겪어온 사람으로서 풍부한 정치운동 경험이 있다. 그는 어제 TV와 오늘 신문을 보고는 즉각 공산당 정부가 “4.25” 중남해 사건을 용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는데 이는 공산당 집권 이래 있어본 적이 없는 수련자가 집단적으로 모인 사건이었다.
이는 중남해와 같은 이런 중앙 금지구역에서 1989년 “6.4”학생운동이 발생한 이후 최대의 군중봉기 사건이었다. 유북안은 정치에 민감하여 공산당이 결코 쉽게 끝내지 않을 거라고 단정했다. 일단 사건이 조용해지면 공산당은 반드시 나중에 결산을 할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이 당이 일관적으로 해온 방법이며 수단이었다. 유북안은 육청이 소성의 파룬궁 보도소의 책임자로서 만약 당이 청산을 시작한다면 육청같은 젊은이는 아마 액을 피하기 어려우며 당의 타격 대상이 될 것이니 육청을 위해 심히 걱정하였다.
육청은 유북웅 과장이 자기 때문에 염려하는 것을 눈치 채고 미소 지으며 “과장님 안심하세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우리는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고 정부 관보에서도 발표했듯이 연공을 간섭하지 않겠다고 표명하지 않았습니까. 아, 제가 당시 북경에 없어서 아쉽네요, 만약 북경 부근에 있었다면 저도 중남해에 가서 청원했을 텐데.”
유북안은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젊은이라며 탄식했다. 너는 “삼반”, “오반”, “문화대혁명” 이런 정치운동을 겪어보지 않아서 공산당이 이분자를 얼마나 심하게 치는지를 모르는구나. 비록 요 몇 년간 개혁 개방하여 경제가 잘 돌아가지만 사람들의 사상과 정신은 모두 개방되지 않아 마치 공산당의 옛날의 흉악한 면모를 잊어버린 것 같다.
유북안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픔이 있었다. 그는 문혁기간에 공장에서 “냄새 나는 지식분자”의 전형으로 찍혀 큰 모함을 당했으며 거리에 내몰렸는데 아직도 그 공포스런 세월을 잊을 수 없었다.
유북안은 오랜 세월 형성된 정치를 관찰하는 판단력으로 매우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당(중공)은 일단 누군가 그의 정치 기초를 흔든다고 여기면 절대 손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 파룬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만 명의 군중을 모을 수 있다. 이는 파룬궁이 이미 매우 강력한 호소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당은 결코 자기의 위신과 권력에 엄중한 위협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여 그것은 필히 추후에 결산할 것이다.
옛날 “6.4” 학생운동 때처럼 파룬궁을 탄압할 것이다. 아, 눈 앞에 한바탕 피비린내 나는 정치 운동이 또 시작되는구나. 유북안은 탄식하며 “4.25” 사건에 대해 다시 무슨 말을 하지 않았고 일부 작업하는 일을 주며 육청에게 자기 사무실로 돌아가 도면을 그리라고 했다.
육청은 과장실을 나오면서 속으로, “과장님이 담이 너무 작아 두려워하는 군!” 하고 탄식했다. 육청은 과장이 문혁시기에 박해받은 것을 말해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과장은 문혁기간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20세기 말이고 곧 21세기 신기원으로 진입하는데 문화대혁명이 언제적 이야기인가!
육청의 젊은 마음에는 털끝만큼도 두려움이 없었고 그저 자기가 북경에 가서 대법을 보호하지 못한 것이 유감일 뿐이었다.
일요일 오후 육청과 유검봉은 함께 주의청의 집으로 가서 예정된 보도원 법공부를 했다. 현재 유검봉은 공장 연공장 보도원이라 시간이 나면 시골에서 달려와 일요일 오후 보도원 법공부에 참가했다.
이번의 모임에서 주의청이 “4.25”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사람들에게 통보해 주자 사람들은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런 것이었구나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토론 결과는 의외로 희극적으로 세 가지 뚜렷하게 다른 인식이 나타났다.
육청, 주의청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수련생들은 “4.25” 사건에 참가한 수련생들들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대법을 수호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어찌 신문에서 대법을 멸시하는 보도를 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왕건민을 중심으로 하는 몇 사람들은 “중남해” 사건에 관련된 대법제자들이 이렇게 대규모로 가서는 안 되며 이렇게 큰 영향을 준다면 아마 우리의 정상적인 수련 환경에 영향을 줄 것이다. 대법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데 수련생의 이런 방법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또 유검봉을 중심으로 하는 몇 명은 수련생은 중남해에 가서는 안 된다. 그들은 속인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하면 우리를 좋다고 해도 되고 좋지 않다고 해도 되며 우리 대법제자들은 근본적으로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 그들이 좋다는 것을 따르면 이상하지 않다고 보는데 습관이 되고 모든 일에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이 일은 자연히 흩어질 것이다 고 말했다.
주의청의 거실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의견을 내놓으며 논쟁했는데 뜻밖에도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이는 소성에 대법 보도소가 설립된 이후 나타난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육청은 대법 수련은 본보기가 없고 절대적인 표준이 없으며 속인중의 그런 통일적인 인식방법이 없으니 대법 수련에는 부동한 수련경지가 나타나며 매 수련자마다 자기 경지 중의 대법을 인식하며 눈앞의 4.25 사건의 인식에도 이런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인식했다. 아마 바로 매 개인의 수련 경지의 차이가 조성한 것이 아닌가 하였다.
4.25 사건이 비록 북경에서 발생했고 인근 몇 성의 수련생들이 참여했지만 4.25의 파급은 절대 북방 몇 개 성의 일만이 아니며 그것은 실제상 중국 국내 내지 세계적 범위의 모든 수련생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매 개인마다 사색하고 판단하며 갑작스런 한 장의 시험에 각자 부동한 답안을 기입하였다.
거실에서 소성 보도소장과 보도원들이 열렬하게 토론할 때 누구도 주의하지 않았는데 창밖에는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어 검은 구름이 내려깔리면서 먼 하늘가에서 은은히 천둥소리가 전해와 한바탕 광풍폭우가 올 것 같았다.
발표시간:2007년 4월 11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4/11/432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