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 원만 이야기 (5) 황(黃) 진인
작가: 초명
【정견망 2002년 8월 13일】
송대에 황(黃) 진인이 있었는데 이름은 지미(知微), 자는 명도(明道)라 하며 여산(廬山) 태평흥국궁(太平興國宮)의 도사이다. 그는 비록 신체가 건장했지만 성격은 차분했다. 하루는 한 수도인(修道人)이 찾아와 황 진인에게 신선의 비결을 전수해 주었다. 이때부터 황 진인은 사람이 변해 하루 종일 미친 것처럼 변해 매일 주정을 부렸고 술을 마시면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황 진인은 늘 무슨 영문을 알 수 없는 일 때문에 궁문 앞 다리에서 큰 소리를 질렀고 또 미친 듯이 옷을 벗어 버리기도 했는데 엄동설한이나 더운 혹서에도 상관하지 않았다. 누가 그에게 보시를 하라고 하면 즉시 나누어 주었다. 황 진인은 때로는 산속에 거주했고 때로는 혼잡한 시내에 거주하기도 했는데 항상 두 개의 포대를 들고 다니며 모든 물건이든 관계없이 포대 속에 넣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포대 속에 각종 물건이 혼잡하여 냄새가 고약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이름인 “비단향(錦香)” 이라고 불렀다.
어느 해 큰 눈이 내려 온 산과 들이 온통 눈에 뒤덮였는데 오직 황 진인이 사는 집만 눈이 오지 않았다. 그는 늘 집 옆 벽이 갈라진 곳을 가리키며 이곳은 내가 촉(蜀)으로 놀러 가는 도로라고 했다. 황 진인은 책은 별로 읽지 않았지만 이야기할 때면 늘 경전을 인용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다. 평소에 그가 문장을 배우는 것을 본 사람이 없지만 글을 한번 썼다 하면 정말로 교묘한 문장을 만들어 세인들이 신기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고관, 귀인, 문인, 묵사들이 그와 왕래하기를 즐겼다. 90여 세가 되어도 용모는 젊은 사람과 같았고 피부가 백옥같이 희었지만 미친 행동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매일 마시고 크게 취했다.
황 진인은 사람의 화복(禍福)을 아주 영험하게 알아맞췄다. 선화(宣化) 말년 황제가 그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입궁하도록 불렀지만 진인이 핑계를 대고 거절하자 지방관리가 강제로 입경시켰다. 구강(九江)에 도착했을 때 진인은 “이제 조정에서는 황제가 바뀔 텐데 내가 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과연 멀지 않아 새 황제가 즉위하여 진인을 사면하였다. 하루는 진인이 궁에서 낙엽을 치우면서 노래를 불렀다. “내년에 온다, 내년에 온다.” 다음 해 같은 날 강도가 궁에 침입해 재물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얼마 안 있어 진인이 궁에서 사망하자 궁 중의 도인들이 그를 궁 부근에 매장했다.
몇 년 후 사천에 다녀온 사람이 성도(成都) 길거리에서 황 진인을 보았다고 하면서 진인이 보낸 한 장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 사람들이 믿기지 않아 열어보니 흥국궁에서 강도를 만난 후에 온 도사의 이름들이었다. 모두들 크게 놀라 급히 황진인의 묘를 파보니 관에는 장례 때 입혔던 옷만 있고 다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수련 중에는 “진풍(眞瘋)”이라는 일종의 상태가 있다. 보기에는 마치 미친 것 같아 추위와 더위를 모르고 더러운 것도 모른다. 이런 수련 상태에서 사람이 겪는 고통은 매우 크며 수련도 매우 빠르다. 단 아무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대근기(大根基)의 사람이어야만 가능하다.
참고자료: <여산 태평흥국 진군(眞君)인터뷰 사실>
발표시간:2002월 8월 13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2/8/13/171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