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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연의 해독 (4)

작자: 불진(拂塵)

【정견망】

13. 숭흑호의 대의 멸친

숭흑호(崇黑虎)는 상나라 4대 제후인 숭후호(崇侯虎)의 동생이다. 숭후호는 상나라 조정의 중신(重臣)으로 조정을 문란케 하고 천자를 미혹시키며 백성을 잔혹하게 대해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았으니 그 악이 산처럼 쌓였다. 이에 문왕이 백성을 위해 숭후호를 정벌하기로 하자 강자아는 숭흑호에게 책 한권을 준다. 숭흑호는 대의(大義)에 밝아 조상에 죄를 짓는 한이 있더라도 백성들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되고 형을 잡아 법을 바로잡아 종묘를 보존하고 숭씨 가문을 보존하며 전쟁의 재앙에서 백성을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숭흑호의 이런 행동은 대의멸친(大義滅親)의 모범이다. 만민들에게 충성을 하고 친족에게 불충하며 백성에게 충성하고 임금에게 불충하는 이것이야 말로 대장부의 충의에 대한 해석이다. 이런 배경과 선택이 있었기에 숭흑호는 살신성인 할 수 있었으며 나중에 오악정신(五嶽正神)에 봉해진다.

14. 천고에 빛난 문왕의 덕행

봉신방 중에는 충신, 훌륭한 장수, 대라신선(大羅神仙), 기이한 인사들이 많다. 하지만 유독 문왕은 봉신방에 이름이 없으며 부처와도 인연이 없음에도 특수한 지위와 함께 고금에 덕행을 빛냈다.

문왕의 인자한 덕망은 서기(西岐)의 만민을 덕으로 감화시켰다. 이에 감동한 봉황이 기산에서 울었으며 인심이 순박해져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는 사람이 없었으며 집집마다 문단속을 하지 않았다. 문왕은 상나라 수도에 세 번 들어가 간언하다 유리옥에 7년간 감금되었다. 그 동안 64괘를 만들었으며 위수(謂水)에서 현인 강자아를 얻어 군신간의 천추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겼다. 그는 죽을 때까지 신하의 절조를 지켜 상왕조를 토벌하지 않았으며 자식들이 큰 복이 있어 천수를 누렸다.

문왕은 가히 천년에 나오는 한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원래 모두 사람으로 온 신들과 인연을 맺어 한바탕의 큰 연극으로 신전문화를 남긴 것이다.

15. 은교와 은홍의 힘든 선택

고대의 제왕은 나라를 집안으로 보았으며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었고 왕의 신하가 아닌 이가 없었다. 왕공(王公)과 귀족들은 성탕(成湯 상나라 창업자)의 은(殷)씨 성을 가졌다. 이들은 나라의 변고를 만나 어느 쪽을 선택했는가? 은씨 형제는 모친이 비참하게 죽고 부친이 친아들을 죽이려 하자 흩어져 도망갔다. 나중에 도가 곤륜(昆侖)에게 구원을 받아 명산(名山)에서 무예를 전수받았다. 본래 하늘에 순응하여 죄를 토벌해야 했으나 오히려 군친(君親)의 부귀와 천리(天理)와 천명(天命)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임금과 부친에게 충성하는 것과 성탕의 종묘에 충성하는 것은 다르다. 은교, 은홍 두 형제는 큰 충을 배반하고 작은 효를 택했으며 맹세를 위배했다. 결국 한명은 재로 변해 날아가고 다른 한명은 가래에 찍혀 죽었으니 인과에는 반드시 응보가 따름을 입증한다. 군왕의 아들로서 신구의 교체기에서 천명과 친족간의 모순에서 선택 하는 역할을 하여 후세인들에게 침통한 교훈을 남긴다.

16. 몇몇 여인의 절조

강(姜)황후는 상나라 주왕(紂王)의 정실황후였다. 하지만 간신의 모함을 받아 눈을 도려내고 손을 불에 지지는 형벌을 받았다. 그녀는 모함당한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극형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씨는 “나는 평생 예교(禮教)를 지켰으며 역모는 인정할 수 없다. 또 부모를 수치스럽게 하여 종사에 죄를 얻으려 하지 않았다. 부친을 불충의 경지로 몰고 가서 태자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지 않는다. 설사 능지처참을 당할지라도 이는 전생의 업보를 금생에 받는 것이지 어찌 대의를 위배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 말로서 강씨의 귀한 집의 자제로서의 교양을 볼 수 있고 어머니로서 천하에 모범이 되며 인과를 따르고 선조를 존중하며 윤리를 지키고 아들을 사람하며 효성을 다하고 죽음으로서 결백함을 보임을 알 수 있다.

가(賈氏)씨는 무성왕(武成王) 황비호의 아내다. 달기가 설치한 함정에 걸려 주왕이 경망하게 호색의 뜻을 드러냈을 때 가씨는 노기충천하여 혼군을 크게 야단쳤으며 누대에 부딪혀 온몸이 부서지니 남편을 위해 정절을 지켰다.

마씨(馬氏)는 강자아의 아내다. 강자아가 위수(渭水)에서 군왕을 기다리려고 마씨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마씨는 조가(상나라의 서울)의 여자는 황야로 가지 않는다며 미루고 가난함을 싫어했다. 나중에 강자가가 주를 멸하고 조가로 들어와 높은 대신이 되자 마씨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목을 매어 죽었으며 사후에 궁신(窮神)에 봉해졌다.

바른 사람도 있고 반대 사람도 있으며 귀한 사람, 천한 사람도 있는데 몇 여성들은 수건으로 눈썹을 보이지 않도록 하고 생사 부귀로 부부의 의를 증명했다.

17. 황비호 부자의 주저

황씨 가문은 7대에 걸쳐 상나라의 충신이었다. 부친은 계비관(界牌關) 총병, 아들 황비호는 무성왕으로 봉해졌고 여동생은 황비가 되었으니 일가족이 상나라 강산을 위해 많은 공로를 세웠다. 하지만 그의 아내와 여동생이 핍박당해 비참하게 죽음에 이르자 황비호는 주왕에게 반역하여 서기에 몸을 의탁하고 새 주인을 보좌했다.

임금의 은혜 중에는 명예도 있고 이익도 있다. 소인은 은혜를 이익과 영화로 보지만 군자는 은혜를 하늘의 이치와 도덕에서 착안한다. 황비호 부자는 성탕의 덕행과 은혜에 감사하며 지위, 명예, 금전, 감정에 연연하며 잠시 망설임을 보였다. 그러나 주왕이 황음무도하여 충신을 잔혹하게 죽이고 황후를 죽이며 패륜을 일삼자 황비호는 결국 대의를 따라 소의를 버리며 백성을 위해 죄를 토벌하기로 한다. 소의(小義)란 임금이 준 부귀영화와 선조의 옛 은혜이며 대의(大義)는 만민과 충혼으로 병사를 일으켜 죄를 묻는 것이다. 이러한 취사선택 중에 진성한 성품을 볼수 있다. 무성왕은 일단 노하자 주왕을 반대하며 주를 정벌하는 길에 올라 장수로서 전장에 몸을 바친다.

무성왕의 선택은 후세를 위해 천칭(저울)을 열었으며 충신을 위하고 정의를 신장하며 왕과 제후를 위해 본보기를 세웠으니 부귀영화는 진정한 호걸을 유혹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18. 불가 도가와 기문(奇門)

도가(道家)는 도교(道敎)와 다르고 불교(佛敎) 역시 불가(佛家)와 같지 않다. 또 기문(奇門) 역시 수련이다. 이런 내포는 이 소설 중에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다. 봉신연의 중의 일기화삼청(一氣化三清)의 노자는 도가의 신이며 천상의 신인데 팔백년 후 세상에 내려와 오천자 《도덕경》을 남긴 그 노자는 신이 사람의 몸을 받아온 것이다.

도가가 전해져온 원류는 매우 길다. 여와낭랑(女媧娘娘)은 중국에 인류를 만든 신이며 삼황오제는 사전문화를 개창했으니 복희는 팔괘를 그렸고 신농은 백가지 약초를 맛보았다. 또 창힐은 문자를 만들었으며 황제와 뭇신하들이 백일 비승했고 대우(大禹)는 물을 다스렸다. 이런 인물들은 봉신연의에서 모두 도가의 신이 되어 한가지 내포를 표현해 냈다. 여기서 말하는 도가는 물론 후세의 도교와는 다르다.

불가도 불교와 다르다 접인도인(接引道人)과 준제도인(准提道人)은 모두 불가이다. 천교 중의 자항도인은 후에 관세음보살이 되고 문수광법천존은 문수보살이 되며 보현진인은 보현보살이 되고 연등도인은 연등불이 된다.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소설은 본래 허구적이다. 관건은 이런 묘사를 통하여 중화 토지에 스며들고 중국의 수행인과 서방종교(불교)의 연원 관계, 불교와 도가의 연원을 스며낸 것이다.

기문은 도가 불가와 독립적이며 수련 성취 후 구속을 받지 않는 흩어진 신선(산선)이 된다. 《봉신연의》 중에 육압(陸壓)은 시작에서 말한다. “삼교(三敎) 중에 있지 않고 극락에 있지 않으며 사람의 왕의 관할을 받지 않고 지하에도 복종하지 않는다. 소소히 자재롭게 마음대로 떠돌아 다니며 자재로운 성선(聖仙)이다.”

봉신연의는 불가 도가 외에도 기문의 산선이 있다는 한가지 분명히 일을 밝혔다.

수련계의 많은 비밀을 세상 사람들은 상세히 모른다. 하지만 한부의 소설을 통해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