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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연의 해독 (5)

작자: 불진(拂塵)

【정견망】

19. 문왕은 구금된 채 주역을 연구

역경(易經)은 온갖 경서 중의 으뜸으로 정미하고 현묘하여 중국문화의 중요한 원류이다. 선천팔괘(先天八卦)는 삼황오제 중 복희씨가 창제했다고 하는 데 전설에 따르면 하나라의 하역(夏易), 상나라의 상역(商易)이 있었다고 한다. 문왕은 팔괘로부터 64괘상을 추단해 연역했는데 이것이 지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주역(周易)이다.

문왕은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주왕(紂王)에게 충언을 간하다 죄를 얻어 목숨을 잃을 상황에 처했다. 이때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보여 사면을 받고 대신 유리(羑裏)에 구금된다. 성인은 천명을 알고 유리에서 즐거이 지내니 군사들과 백성들이 즐겁게 생업에 종사했다. 성인은 일월처럼 비치니 은혜가 퍼지고 크게 교화를 하여 군대와 백성이 다 편안히 지냈다. 서백후(문왕을 가리킴)는 군주를 원망하지 않고 한가로이 지내며 64괘를 만들고 384효로 나누어 천추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루었다.

문왕은 선황(先皇)의 신기한 술수를 전승하며 군신의 관계를 신기(神技)로 나타냈으며 중원 사람을 교화하고 유리(지금의 하남성 탕음)와 인연을 맺는다. 본분을 지키며 걱정 없이 지내 냈으니 성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바탕 큰 연극으로, 수행자는 다 알 듯이 문왕은 중생들과 연을 맺었으며 그 인연은 금세에 중국에서 이루어졌다.

20. 장이정광선(長耳定光仙)의 깨우침

장이정광선(長耳定光仙)은 절교 통천교주(通天教主)의 제자이다. 최후에 육혼번(六魂幡)을 흔들라는 통천교주의 당부를 받았으나 정광선은 접인도인의 백련과체에서 사리가 빛을 발하며 12대 제자가 기이한 상을 갖춘 것을 보고 육혼번을 흔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노봉(蘆蓬) 아래 은거한다.

나중에 원시천존을 찾아가 절을 하며 죄를 인정한다. “제자는 사백(師伯)의 도가 바르고 이치가 분명한 것을 보았고, 사부님께서 거꾸로 된 이치를 따라 죄를 짓는 것을 면하기 위해 차마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 말에서 우리는 정광선의 근기를 볼 수 있다.

정광선은 큰 겁난 앞에서 대전(大戰) 중에도 청성을 유지하고 바른 도리를 알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진성(眞性)의 사고를 했고 최후에 절교 제자의 겁난을 피해 불교와 인연을 맺어 새로운 삶과 미래를 열었다.

21. 강자아는 신이 되어 어디로 귀위하는가?

봉신방은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의문을 남긴다. 봉신방에 각자 유명인사들이 있는데 그러면 주를 도와 상을 멸망시킨 최대 공신인 강자아는 결국 어떻게 되었으며 그가 사망한 후에 신(神)은 어디로 가는가?

강자아는 원래 입산수도했는데 근기가 낮아 대도(大道)를 깨달아 정과(正果)로 수련성취할 수 없었다. 이에 원신천존의 명을 받들고 봉신(封神)하여 부귀를 누리고 지극히 높은 신하가 되었다. 이는 2대에 걸쳐 상나라 주왕의 정치를 보좌한 문태사(聞太師)와 비슷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봉신방이란 소설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욱 깊은 층의 내포가 있다. 강자아가 위수가에서 낚시를 한 이야기는 백가의 문학을 개창하여 《육도》를 낳았다. 후세인들은 이를 무경칠서(武經七書)에 넣었다. 강자아는 또 《건곤만년가(乾坤萬年歌)》를 지어 예언서의 시초를 이루었다.또한 병가(兵家), 유가, 법가, 종횡가, 점복 등 제자백가의 시조가 되었다. 나중에 무왕(武王)에 의해 제(齊)나라 땅을 분봉받았다. 제나라는 “풍속 예의가 간단하고 상공업이 발달했으며 어업, 염전업이 발달했다.” 이리하여 강자아는 제나라와 노나라 문화를 개창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신의 안배는 사람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에 올라 신이 되고 어떤 사람은 세상에 들어가서 신전문화(神傳文化)를 열었다. 벼슬을 하든 은둔하든 모두 공덕을 쌓는 일이며 기연이 성숙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22. 운소선자의 자매의 정

운소(雲霄), 벽소(碧霄), 경소(瓊霄) 세 선자(仙子)의 수행은 같지 않았다. 운소선자의 수행이 가장 높았다. 조공명(趙公明)이 정해주(定海珠)를 거두자 세 자매가 있는 곳에 가서 금교전(金蛟剪)을 빌리려 했다. 그런데 세 선자 중 운소만 빌려주려 하지 않고 조공명에게 서기(西歧)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권한다. 최후에 여러 선자의 요청에 의해 조공명에게 금교전을 빌려주었고 이는 결국 조공명의 살신지화(殺身之禍)를 불러오게 되었다.

조공명이 죽자 운소는 여전히 경소, 벽소가 화근을 일으킬까 두려워하다 끝내는 그들을 따라 서기로 간다. 세 선자는 물건을 보고 사람을 그리워하는데 조공명이 비참하게 죽은 것을 보고 정을 움직여 육압도인(陸壓道人)을 찾아 원수를 갚으려 했다

육압도인이 운소와 도리를 따질 때 운소는 읊조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쌍방이 초수를 교환하자 마침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구곡황하진(九曲黃河陣)을 펼쳐 살신지화를 부르니 끝내는 봉신방에 이름이 오르게 된다.

운소선자가 천년 수행을 하루아침에 망친 것은 모두 자매간의 정 때문이었다. 일념의 차이로 인해 청정해지지 못한 까닭에 이런 겁난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23. 황천화 사문을 불경하다 액을 당하다

마가(魔家) 4형제는 주왕(紂王)이 주나라를 정벌할 때 4명의 대장들로 법술(法術)과 신기한 능력을 지녀 주나라 대장을 포위했다. 도덕진군(道德真君)의 제자 황천화(黃天化)는 스승의 명을 받들어 하산한 후 첫 싸움에 손해를 보았다. 그러자 도덕진군은 백운동자(白雲童子)를 파견해 황천화의 재난을 구해준다. 동시에 황천화에게 그 인과를 경고했다.

황천화가 처음 하산하여 도복을 바꿔입고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은 것은 비록 주의하지 않은 것이지만 이미 죄를 범한 것이다. 그래서 액운을 당하며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한 것이다. 수행자가 사문(師門)을 존경하지 않고 계를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징벌을 받는다. 이 역시 인과의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사부에게는 제자에 대한 고험과 교훈이 있다.

봉신방은 이 작은 일화를 통해 수행에 대한 고대인들의 엄숙함을 표현했다.

24. 악을 원수처럼 미워한 방씨 형제

방필(方弼), 방상(方相)은 주왕 휘하의 진전대장군(鎮殿大將軍)이었다. 그러나 주왕이 아내와 아들을 죽일 때 몸을 빼내 두 황자(皇子)를 보호하며 솔선하여 조정을 떠났다. 이들의 용기는 결연했다. 무성왕 황비호는 “애석하게도 문무 중에 방필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방필, 방상 형제는 본래 거칠고 경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주왕의 잔혹함을 보고 힘을 내어 서로 도왔으니 이는 진정한 생사 고험 앞에서 직위나 권력, 재물은 무관함을 설명한다. 오직 악을 원수처럼 볼 수 있는가 하는 진성(眞性)만 본다. 방필, 방상처럼 생사를 도외시 하고 경솔했던 사람이 오히려 선악을 분명히 구분하는 본성을 지닌 것이다. 이런 심성과 경지 때문에 이들은 비로소 봉신방에 이름이 오르게 된다.

절교문인은 십절진을 펼치는데 본래 양교간의 수행인의 싸움에 일개 범부인 방필이 풍효진에 들어가 수많은 칼날에 갈래갈래 찢어져 죽임을 당한다. 악한 신에 대해 생사를 두려워 하지 않자 즉시 신이 된다.

25. 강자아가 말한 주왕의 십대 죄악

나중에 강자아는 조가에 들어가 주왕 앞에서 그의 십대죄악을 언급했다.

첫째 : 하늘에 불경하고 주색에 빠진 죄

둘째 : 음란하고 무도하여 인륜을 파괴한 죄

셋째 : 후사(後嗣)를 돌보지 않고 대를 끊게 한 죄

넷째 : 충신에게 포락형을 가해 군신간의 예의를 끊은 죄

다섯째 : 지방 제후들을 죽여 천하의 민심을 잃은 죄

여섯째 : 형벌을 남용해 원혼이 천하에 퍼지게 한 죄

일곱째 : 사치로 백성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낭비한 죄

여덟째 : 염치를 모르고 신하의 처를 겁탈하려다 죽게 한 죄

아홉째 : 생명을 잔혹하게 하고 백성을 해친 죄

열번째 : 사람의 간을 잘라 백성의 후손을 끊고 잔인하게 한 죄

강자아는 열편의 죄를 벌하는 격문을 읽고 왕조의 멸겁을 나열했다. 이상은 온갖 악이 가득 찼을 때 구체적인 표준과 조건이 되어 후세인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26. 육신을 가지고 성인이 된 칠장사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일곱 명의 가장 큰 현문지사(玄門之士)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천교 원시천존의 삼대(三代)제자로 즉 이정(李靖), 금타, 목타, 나타, 양전(楊戩), 위호(韋護), 뇌진자(雷震子)를 말한다. 이들은 적과의 전투에서 탁월한 공훈을 세웠지만 최후의 선택은 모두 은거하는 것이었다.

이들 7인은 비범한 경력과 재능, 경지를 지녔고 또 큰 부귀와 공명, 지위와 복록이 있었으나 이런 것들은 모두 수행인이 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욕심 없이 조용히 지내며 천명으로 인간세상에 와서 소원을 이루고 산속으로 돌아가 육신을 지닌 채 성인이 되고자 했다.

나타는 바다를 시끄럽게 하고 연꽃의 몸을 가지고 머리가 3개 팔이 6개를 가졌다. 양전은 89현공(玄功)과 72변(變)을 지녔고, 이정은 천계의 탁탑천왕이 되었다. 또한 금타 목타 뇌진자의 이야기는 천추만대에 불려져 천계를 지나 인간세상의 경전과 전기가 되어 흘러 내려온다.

수행인이 인간세상에 온 것은 하늘이 부여한 사명을 지닌 것으로 신불(神佛)의 안배가 있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숱한 고생에도 사명을 욕되게 하지 않아 육신을 지니고 신이 된다는 점에서 칠장사는 후세의 모범이 되었다.

27. 백이 숙제가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일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의 주왕을 멸하고 서기로 돌아오는 길에 백이 숙제라는 두 도인을 만났다. 무왕이 상나라는 이미 망했다고 하자 이들은 소매를 떨치고 떠나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는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었다.

백이 숙제 두 도사는 성탕(成湯 상나라 창업자)의 도덕을 마음에 품고 주왕(紂王)을 도와 악을 행할 수 없었다. 이들은 일개 백성으로서 왕도(王道)의 정신을 지니고 옛 왕조를 위해 순직했다. 하지만 이들은 기자, 미자, 비간, 상용과 다르다. 기자를 따라 멀리간 옛 신하와 다르고 몸을 싸움 마당에 버린 무장과도 다르다. 이들은 단지 상나라 백성의 신분으로 죽는 것을 택하여 멀리 사라져간 왕조의 정신을 따랐다. 옛것에 충실해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세울수 있다. 대변혁의 시대에 이들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 왕조가 다하고 다른 왕조가 오니 신하와 백성들은 다 인연이 있고 생사도 운명이 있다. 이는 인간이 모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늘에는 또 다른 안배가 있다.

28. 주나라 무왕의 기상

800년에 걸친 주나라 왕조는 중국 역사상 진정한 의미에서 휘황찬란한 왕조였다. 앞을 받아 뒤를 이어 큰 영향을 끼쳤으며 중국문화의 기초를 다지는 가장 중요한 시대였다. 주나라는 중국문화에서 드넓은 왕자의 기상을 나타내었으며 후세 왕조의 귀감이자 모범이 되었다.

모름지기 제왕(帝王)의 업을 성취한 자는 반드시 선조의 기업을 이어받아 하늘을 존경하고 따르며 백성을 사랑하고 예의를 지키고 재물을 아끼며 도덕을 쌓아야 한다. 문왕(文王)의 큰 덕에 봉황마저 감동해 기산에서 울었다. 문왕은 신하의 본분을 지켜 임금에게 간언했고 유리성에 구금되어서도 심성을 지켰으며, 위수에서 현인(강자아)을 구했다. 백읍고가 목숨을 바쳐 문왕의 생명을 구한 후 천하의 3분의 2가 자신에게 귀의했음에도 주왕을 정벌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의 아들인 무왕에 이르러 온갖 악이 가득 쌓이고 많은 제후들이 모이고 현자가 찾아왔다. 병마와 호걸이 충분히 모이고 신선들이 돕자 천하가 천지인의 운이 모여 비로소 상나라를 토벌하는 대업을 이루고 하늘의 뜻에 순응할 수 있었다.

무왕은 주왕을 토벌하고 부친의 도덕을 계승해 형제들이 힘을 모아 생사를 돌보지 않고 임금과 신하가 한마음이 되었다. 또 서기 백성들의 재앙을 구하고 상나라 백성들 무도하게 대한 주왕을 토벌하기 위해 과감히 몸을 던졌으니 큰 덕을 지닌 군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왕은 주를 멸망시킨 후 포락형, 전갈 연못을 흔적을 없애버렸고 주왕의 아들을 죽이지 않았으며 노대의 재물을 풀었다. 또 기자를 석방하고 비간의 묘를 봉했으며 상용(商容)을 존중하고 궁녀들을 풀어주었다. 나중에 천지에 고하고 전쟁을 중단하고 문(文)을 진흥시켰으며 말과 소를 풀어주어 전쟁이 발생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천하가 크게 복종하고 만백성이 편안히 생업에 임하게 되었다. 도처에서 상서로운 풀이 솟아나고 봉황이 나타났으며 샘이 솟고 감로가 내렸다. 그야말로 천하태평의 기상이었다. 강자아는 천명을 받들어 봉신했으며 7장사는 육신을 가진 채 성인이 되었다. 무왕은 제후국을 크게 봉해 중국문화의 신기원을 개창했다.

이처럼 주나라 왕의 기상은 만고에 없던 일로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도에 응했으며 후세에 휘황한 왕도를 개창했다.

29. 심장을 꺼낼 때 비간의 속인 마음

달기가 충신 비간을 음해하여 심장을 파내는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비간은 강자아의 부적물을 마셔 스스로 심장을 파냈으나 피가 나오지 않았다. 비간이 대에서 내려 말을 타고 성을 나갔는데 미친 듯이 달리다 한 노부인을 만난다. 그녀는 무심채(無心菜)를 팔고 있었다. 비간이 “사람에게 만약 심장이 없으면(無心) 어떻게 되오?”라고 묻자 부인은 “사람이 만약 심장이 없다면 죽겠지요.”라고 대답했다. 비간은 그 소리에 즉시 소리를 지르며 말에서 떨어져 피를 쏟으며 죽었다.

《봉신연의》의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가지 도리를 말해준다. 즉, 비상(非常)한 능력, 비상한 일, 비상한 술법이 있어도 반드시 비상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비간에게는 도가의 부적물을 마신 공력으로 단기간 죽지 않았다. 하지만 관건적인 시각에 속인 마음이 움직였고 부적의 공이 즉시 효과를 잃게 된 것이다.

《서유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손오공이 길에서 강도를 만났는데 강도가 몽둥이를 들었다. 손오공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고 손가락 하나로 “멈춰라” 하자 강도는 제자리에 못박혀 버린다. 이처럼 평범한 도술조차도 사용자의 마음에 잡념이 없고 속인의 마음이 전혀 없어야 한다.

비간의 죽음과 손오공의 도술은 수행자의 심성과 능력의 관계를 보여주며 비상한 일에는 비상한 이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