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당산대법제자 우환(宇環)
【정견망】
나의 시할머니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고모집에 얹혀살았다. 시집간 후 할아버지가 장애인이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할머니는 십대 때 할아버지와 결혼했다.
당시 시할머니의 시댁은 대가족이었다. 형제는 5명인데 할아버지가 셋째였고 아래로 또 2명의 시동생이 있었으며 출가한 세 시누이가 부근에 살았다. 할머니는 집안이 가난했다. 이런 2, 30 명의 식구 중에 일을 가장 많이 했으며 학대도 가장 많이 받았다.
1945년 8월 아직 미혼이던 막내 시동생이 북경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여름 방학에 늙은 조모가 우리 할머니에게 부탁하기를 학교 다니는 삼촌에게 솜신발을 한 켤레 만들어 겨울에 신도록 준비하라고 했다. 어느 날 마침 할머니의 셋째 시누이가 친정으로 돌아와 지내며 도대체 누가 동생에게 신을 만들어 주느냐 물었다. 조모는 네 셋째 올케가 만들어주는데 왜냐하면 셋째가 바느질을 가장 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할머니와 셋째 시누이는 나이가 비슷했는데 셋째 시누이는 전에도 늘 할머니를 괴롭혔다. 그녀는 몰래 솜 신발 속에 신발 꿰매는 바늘을 집어넣고는 시어머니에게 고자질했다.
“세째 올케가 신속에 큰 바늘을 집어넣어 몰래 동생을 해치려 했어요.”
시어머니는 이 말에 조사해보고는 우리 할머니를 욕하고 때렸다. 셋째 고모도 이 기회에 우리 할머니를 욕했다. 할머니는 셋째 시누이가 몰래 뒤집어 씌운 것이라고 변명했다. 두 사람의 다툼이 그치지 않고 급하게 되자 셋째 고모는 땅에 한무더기 흙을 쌓은 다음 장작을 세 개 꽂아 향을 피운 것으로 치고 땅에 엎드려 하느님에게 맹세했다. “만일 제가 그녀를 모함한 것이라면 나중에 저희 집 자손이 끊어지고 집안이 망하게 해주세요.” 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읍을 했다.
셋째 시누이의 맹세가 끝난 후 할머니도 맹세를 하려고 했다. 막 입을 열었는데 큰 올케가 입을 막고 그녀를 집안으로 끌고 갔다.
당시 일본이 항복했을 때인데 큰비가 끊임없이 오고 큰 홍수가 터졌으며 전염병이 돌아 온데 죽은 사람이 많았다. 또 조류, 돼지도 전염병에 걸렸다. 셋째 시누이 시집의 두 고모와 두 자녀가 다 걸려 여덟 식구의 절반이 죽었다. 또 1년 여가 지나서 셋째 사위와 두 노인도 잇달아 세상을 떠나 남은 사람은 셋째 고모 혼자뿐이었다. 정말 자기말대로 자손이 끊어지고 집안이 망했으니 맹세가 영험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셋째 고모는 또 개가했는데 늙은 조모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고향으로 한번 와서 자기 엄마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나중에 들리는데 따르면 또 흑룡강의 계서(雞西)로 개가했다고 한다. 만약 살아계신다면 거의 100세가 되었을 것인데 이것은 우리 시댁에서 일어난 실화다.
중화 전통문화 중에 맹세가 영험한 이야기는 무궁하다. 사람이 맹세는 극히 중요하다. 오늘 날 중공이 나라를 훔친 지 60년 중공 통치하에 백성들이 무신론에 세뇌되었다. 맹세를 하나의 형식으로 여기며 무슨 소용이 없다고 여기는데 여겨 천만도 넘는 중국 백성들이 극히 무서운 독한맹세를 하고서도 잘 모르게 만들었다. 사실 사람이 (공산)당, 단, 대에 입단할 때 혈기 앞에서 하늘을 향해 독한 맹세를 한다. 그러면서 “일생, 생명을 모두 중공에 바친다”고 말한다. 맹세는 장난이 아니다. 사람이 잊어도 하늘은 잊지 않는다. 공개적인 방식으로 자기가 가입한 중공의 모든 조직을 퇴출해야 만 비로소 이 큰 맹세를 제거해버릴 수 있다. 또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킬 때 평안을 보장할 수 있으며 자신의 미래에 보험을 든 것과 같다.
발표시간: 2014년 6월 4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3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