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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고인을 만난 이업

작자/ 문선(文仙)

【정견망】

지금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고수는 민간에 있다”고 한다. 원인은 아주 간단한데 바로 많은 고인들은 세간에 들어오기를 원치 않고 숨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녹이기(錄異記)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때 인물 이업(李業)이 과거시험에 참가했지만 떨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협괵 일대의 산길을 지나게 되었다. 때마침 폭풍우를 만나 인근 시골집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이곳의 인가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 집은 한 어린이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이업은 집 처마 아래 나귀를 매어놓았다. 이때 좌군 이생(李生)과 행궁 양진(楊鎮) 역시 비를 피하기 위해 이 집에 도착했다. 이생에게는 한필의 말이 있었다. 세 사람이 함께 이 집에서 휴식하는데 날이 조금 맑아지려고 하니 해는 이미 어두워졌다. 이때 어린이가 말했다. “저희 할아버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외인을 좋아하지 않으시니 그만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업이 말했다 “날이 이미 어두워져 갈수가 없다네!”

잠시 후 아이의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그는 손님들을 보더니 매우 기뻐하며 특수한 예절로 그들을 접대하며 집에 묵게 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을 간절히 만류하면서 또 요리를 대접했다. 이업이 재삼 감사를 표시하며 말했다. “손자가 어르신께서 외인을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하여 밤에 길을 떠나야하나 걱정했습니다. 떠나지 않고 남은 후 혹 나무라실까 염려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무거운 예절로 저희를 도와주시니 부담이 되어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집이 가난해 손님을 대접하기 어렵습니다. 손님 접대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지 접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 분은 모두 절도사인데 제가 어찌 감히 공경히 모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업이“우리 셋 중 한 사람만 행궁(관직)이니 말씀이 너무 과하십니다.”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행관령절월(行官領節鉞)은 병마사를 지내기 이전의 직책이고, 수재 당신은 병마사가 된 후 5곳을 총괄할 것이니 자중자애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이업은 다년간 과거에 응시했지만 붙지 못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대 참모가 되었다. 다음 해에 양진(楊鎮)이 구사량에게 선발되어 개봉에서 쓰였다. 점차 진급해 군사(軍使)가 되었으며 경주 절도사(涇州節度使)까지 올라갔다. 이업과 양진은 동시에 군사가 되었으며 빈주의 절도를 다스렸다. 이업은 후에 공을 세워 빈경진무 절도사가 되어 5개 진의 군무를 겸임했다. 이는 당시 노인이 한 말과 일치한다.

http://www.zhengjian.org/2016/03/23/151860.李業村舍遇高人.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