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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야기: 관원이 색심을 내자 신선이 떠나가

작자/대륙수련생

【정견망】

당나라 때의 일이다. 광저우(廣州)에 하이랑(何二娘)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신발 만드는 일을 했다. 나이는 20세였는데 모친과 함께 살았다. 다른 사람의 눈에 그녀는 선술(仙術)을 닦는 사람이 아니라 보통 여자였다.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모친에게 말했다. “여기 사는 게 갑갑하니 밖에 나가 여행 좀 하고 싶어요.” 다음 날 그녀는 갑자기 날아갔으며 광동 나부산(羅浮山) 위의 절에 도착하여 승려에게 말했다. “저는 스님을 시봉하고 싶습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나부산에 거주했다. 처음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늘 산에서 과일이나 따고 재식을 만들어 절의 승려들을 공양했다. 그들은 그녀가 어디 가서 과일을 따오는지 몰랐다. 나부산 북쪽은 둔주(循州)인데 남해에서 4백리 떨어져 있다. 둔주는 바로 오늘의 광동 혜주시, 하원시, 산미시, 매주시 일대다. 둔주의 어느 산사에 양매(楊梅) 나무가 있는데 둘레가 수십 아름이나 된다. 하이랑은 늘 그 나무의 과실을 따서 스님들이 밥을 먹을 때 돌아왔다. 나중에 둔주산 사찰의 승려가 나부산에 와서는 사람들에게 모년 모일에 어느 선녀가 절에 와서 양매 열매를 따갔다고 했다. 나부산 승려들이 해당 날짜를 헤아려 보니 그날은 바로 하이랑이 양매실을 따서 스님들에게 공양한 날이었다. 때문에 원근의 사람들이 모두 하이랑이 신통이 있는 신선임을 알았다.

아마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인지 하이랑은 곧 그곳을 떠났고 단지 매번 열흘이나 보름 간격으로 나부산에 한 번씩 왔다. 당나라 개원 연간(서기 713-741)에 그녀의 명성은 장안까지 전해졌다. 현종은 명을 내려 황문사(黃門使)를 시켜 광동에 가서 이 여선(女仙)을 찾아 장안으로 모셔오라고 했다. 마침내 황문사가 그녀를 찾았고 그녀가 황문사를 따라 장안으로 가기로 했다. 가는 배 위에서 황문사가 그녀의 미모를 보고 마음속에 색심이 일어나 희롱하려고 했다. 하지만 말을 하기도 전에 하이랑은 그가 내심 생각하는 것을 알았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색심이 너무 많아 나는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를 수 없군요.” 하고는 훌쩍 뛰어 날아가 버렸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다시 그녀를 보지 못했고 종적이 끊겼다.

이 일화에 나오는 여선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수련한 것은 도가의 벽곡(辟穀)술이다. 그럼에도 불문의 승려들을 공양한 까닭은 아마도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르게 전해지는 수련 방법 사이, 즉 도가와 불가 간에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존중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수행자는 신앙과 수련 법문을 선택함에 반드시 전일(專一)해야 한다. 또 황문사가 여선을 찾을 수 있었으니 그에게 신선과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선이 황문사의 생각을 감지하고 그의 색욕심을 알고는 날아가 다시는 오지 않았는데 황문사는 이 때문에 황제가 준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고 기연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신의 눈에 색심은 매우 나쁜 것이며 수행인으로서 반드시 색욕심을 제거해야 한다.

자료출처:《광이기(廣異記)》 《영남총술(嶺南叢述)》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8460